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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주현절(5-1) - " 하나님 말씀 위에 선 신학교육 되어야 ' / 신학교육주일 / 최부옥

관리자 2025-02-09 (일) 08:36 1개월전 72  

본문) 눅12:49~59, 렘23:23-32, 계8:1-5 





오늘은 주현절 다섯째 주일이다. 절기는 어느덧 입춘(立春)도 지나면서, 봄에 접어들었으나, 


날씨는 아직도 매서운 추위를 감추지 않고 있다. 봄은 왔으나 아직은 봄이 아닌 시절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감기 환자들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계절 감각이 예민하게 


대응하지 못해서 얻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때에 대한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얻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부디 독자들도 대응을 잘하셔서, 건강이 상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길 바란다. 




하긴, 이런 착각이나 오류는 어찌 일기나 계절에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더욱 무서운 것은 시


대를 읽지 못해서 얻은 삶의 피해는 훨씬 더 클 것이고, 우리의 영적 환경을 어지럽히는 어둠


의 권세들의 유혹과 공세들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는 한순간 


우리의 영혼까지 사냥을 당할 수 있기에, 진짜 무섭기 그지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당부하시는 말씀을 이렇게 주신다. - ‘너희는 늘 깨어 있어라! ’ 




요즈음 우리 사회는 온갖 이단과 거짓 세력들이 제 세상을 만나 활개 친다. 대통령 부부가 사


교와 주술 집단의 앞잡이 역할을 노골적으로 주도하자, 거기에 극우와 폭력 세력이 합세하고, 


기독교 계열의 여러 이단(異端)들도 연합한 데다가, 전광훈 같은 거짓 예언자 세력들까지 합세


하는 바람에, 그들은 요즈음 마치 모든 사이비 종교세력들이 마치 자기들 세상을 만난 듯 활


동한다. 그것도 내란(內亂)괴수로 체포된 윤석열의 석방운동을 펼치면서, 세 과시에 열중한다.




그 바람에 요즈음의 이 시대 최대의 위기는, 아니 그것도 한국 기독교의 최대 위기는, 예수의 


거룩한 이름을 심각히 훼손한 거대 기독교 세력이 거리에 등장하면서, 기존 기독교의 순수 삼


위일체 신앙을 온갖 잡탕식 혼합(混合)종교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국 대형 보


수교회 목사들의 책임이 너무 크다. 그들은 거짓 종교세력과 이단 세력이 한국 정치 무대에 


마치 아합과 이세벨처럼 등장했음을 감지 내지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찾아가 안수하고 


축복하면서, 마구잡이 그들의 앞잡이 응원집단으로 한통속을 이루며, 그들 사이비 세력의 지


지 그룹으로 변질(變質)한 일이 가장 큰 비극이 되었다. 




그 바람에 한국교회는 십계명에 담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양대 구원의 축을 허망


하게 무너뜨리면서 거짓과 이단 세력과 야합을 이룰 정도의 분별력을 상실한 집단이 되었고, 


지고의 신앙 핵심인 사랑 대신에 이념(理念)이란 허상을 기독교 신앙의 최상위에다 올려 놓았


으며, 정치적 뜻이 맞으면 그 어떠한 폭력과 파괴와 분열과도 서슴지 않고 연대하고 야합하는 


무자비한 정치 성향의 행동 집단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 집회에 참


석하기 위하여 상경하는 시골교회 성도들의 버스들이 많아졌다. 도대체 누굴 위한 원정인가? 




저들이 참석하면 일단 전광훈의 훈시와 과격한 선동으로 세뇌된다. 저들은 그를 시대의 예언


자요 선지자로 간주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지난주 말씀에서 우리는 모든 나무는 그 열매


로 자신을 알린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전광훈은 과연 예수의 제자요 하나님의 선지자인가, 도


대체 어떤 점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우리며 그를 쫓고 있는가? 그가 보


인 열매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에게서 예수 닮은 점이 진정 단 하나라도 있기는 한 것인가? 




얼마 전 우리는 서울서부법원에 난입하여 윤석열 체포를 허용한 법관을 체포하려고 기물을 부


수고 파괴를 일삼으며 온갖 난동을 벌렸던 100여명의 폭력배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전광훈으


로부터 들었던 국민저항권에 따른 응답자들이었다. 바로 전광훈의 친위대요 행동대원들이었


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체포되자, 전광훈은 그 파괴자들이 자기와는 상관없는 자들이라는 발


뺌 식 대응을 보여 준 모습이었다. 참으로 치사하기 그지없는 비겁한 두목의 행태이다.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약 600명의 로마 군인에게 체포당하게 될 때에 보여 준 우리 예


수님은 어떠하셨는가? 요 18장을 보면, 베드로가 칼을 빼어 예수님을 잡으려 하던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떨어진 귀를 다시 붙여주시면서(마가), 이


렇게 말씀하셨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그렇기에 그곳에서는 결국 단 한 사람의 폭력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묻는다. 전광훈이


는 진정 예수의 제자인가, 그런 자를 선지자로 따르는 교회의 사람들은 과연 하나님의 사람들


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떨까? 그들은 정말 제대로 믿는 것일까, 엉뚱하게 믿는 걸까? 




오늘은 마침 우리 총회가 제정한 신학교육(神學敎育)주일이다. 우리 신학교육의 목적은 예수를 


닮은 하나님의 종들을 생산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하면서, 이 땅에 


올바른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세우고 돌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신학은 철저히 


정직하고 올바른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거짓과 위선의 세력들과


는 철저히 단절하고 배격하여야 한다. 진짜 바른 신학이 중요하다. 세상의 소금과 빛을 드러


낼 신학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메시지도 지난 두 주간의 메시지와도 이어진 내용과 만나게 된다. 하나님


의 말씀은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에만 머물면 안 되고, 가르친 대로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말씀의 생명력이 살아나게 되고, 기적도 일어나며, 삶


에 커다란 변화와 기쁨도 경험하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회칠한 무덤과 같아서, 말씀을 허망


한 것으로 전락(轉落)시키게 될 뿐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누구에게 임할까? 바로 말 만하고 


실천이 없는 자들에게 임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영역을 제대로 전하는 신학이 필요하다.




1. 복음서 / 눅12:49-59 / ” 내가 세상에 화평(和平)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分爭)하게 하려 함이로다 “ 




분문은 예수께서 당신을 만나 따르게 될 무리들의 복잡다단(複雜多端)한 모습에 대하여 언급


하신 내용이다. 당신은 분명히 이 세상에 평화의 주로 오신 것은 분명하지만(눅2:14), 그러나 


당신을 받아들인 모습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땅의 존재들에게 예수는 분명


히 세상 기존의 낡은 인간상을 태워버릴 하늘의 불이셨다. 어둠을 밝히는 진리의 불이요, 위


선과 거짓을 소멸시키고 낡은 질서와 위선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혁명의 불이요, 역사의 새 


길을 밝혀줄 희망의 불이셨다. 




이 불은 자기 혼자만 밝히는 고고한 불이 아니라, 주변에 옮겨붙고 힘을 확산시키는 불이었


다. 그러기에 이 예수의 불을 가슴에 받은 이들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고 새로워진다. 그 


불을 받은 자와 못 받은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클 수밖에 없다. 오신 예수를 자


기 삶의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인 자들에게는 분명히 예수는 생명이요 희망이다. 하지만 그


를 이용하려거나 거부하려는 자들에게는 예수는 불편이며 부담이다. 가족 안에서도 얼마든지 


차이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소위 가족 사이의 분쟁(分爭)이 가능한 이유이다. 




1)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놀라운 선언을 하신다. 당신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의 그 불이 확산해서 온 땅에 붙기를 원하셨다(49절). 그 일을 위해 당


신은 이미 당신의 목숨을 거셨음도 밝히셨다(50절). 그렇다면, 그 불을 온 세상에 확산(擴散)


의 방안은 어떤 것일까? 대략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당신의 그런 크신 뜻과 사명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을 찾으시며 택하여 불러세우신 일


이다. 곧 당신의 목숨 건 그 소명을 함께 나눌 존재들을 제자로 세워 훈련 시키고 온 세상에 


파송(派送)하시는 일이다. 12제자가 그런 목적에서 선택된 인물들이었다. 그렇게 당신과의 운


명을 공유할 하늘 가족이 된 무리이었으니,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람이 얼마나 지고했을까!




또 하나는, 그 불을 세상에 확산시키는 매체로서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그 말씀을 실천


하며 살게 하는 일이었다. 불의 확산의 결정적인 통로는 역시 그의 말씀이다. 본래부터 진리


와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그 자체 속에 불이 들어 있다(렘23:29). 그래서 듣는 자의 


가슴과 양심에 떨어지는 순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동토(凍土)의 가슴을 옥토(沃土)


로 뒤집어 놓게 하고, 어둠과 죄악과 불의의 마음 밭도 생명과 희망의 샘터가 거듭나게 한다.




2)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다. 어둠과 마귀의 권세가 각종 장난을 격하게 준동하며 훼방하기 


때문이다. 순종하는 자들도 나오지만, 거역하고 의심하며 훼방하는 세력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평화를 깨고, 분쟁을 안겨준다. 특히 가족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게 발생하기도 한다(50-53절). 


더욱이 어둠과 마귀의 세력은 예수의 이런 불길이 자신들의 최후를 안겨줄 일임을 직감하고 


더욱 자기의 사람들을 결집하면서, 위선과 거짓으로 맞서게 한다. 그래서 각가지 억압과 배신, 


탄압과 박해, 각종 힘겨루기 등의 육체적 준동을 발생하게 하면서 세상을 분열하게 한다. 




3) 실로 고도의 분별력과 의를 위한 단호한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57-59절). 가운데에서 머뭇


거리며 세월을 보내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예수 시대를 선택하는 일은 이미 도래한 대세


(大勢)을 받아드린 지혜로운 행위이다. 따라서 이제 우상 문화가 안겨줄 허세를 거부하고, 주


저 없이 주 예수와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합류하는 일은 가장 지혜로운 처신이 될 것이다. 




2. 예언서 / 렘23:23-32 /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誠實)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


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


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본문은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계시 말씀을 들은 자들이 반드시 선포하는 데에 준수해


야할 지침(指針)이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사상이나 주장, 의견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고, 받은 주의 말씀을 성심성의껏 받들어 온전히 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말


씀을 위탁받은 자는 말씀을 주신 여호와의 뜻과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일에 집중하여서, 자기 


선포에 여호와의 본뜻과 마음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1) 예레미야 시대의 예언자들의 선포의 가장 큰 문제는 여호와를 온전히 전하지 못하고, 그 


크신 분의 일부만을 집중하여 그게 전부인 양 전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마치 요즈음의 


한국교회 강단의 생태계(生態界)와 너무도 흡사하다. 교파와 신학교가 산산조각이 나다보니,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 신학이 한쪽으로 치우쳐, 하나님의 전체를 보


는 눈을 갖추지 못하고, 그 일부만을 가르치는 바람에 ‘편협한 하나님’, 그래서 ‘우리 삶에 감


동과 도전을 안겨주시지 못하는 나약한 하나님’으로 전락하게 한 범죄를 저지르게 한 것이다.




2) 예레미야 시대의 증언자들은 치우쳐 있었다. 일부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만을 전하였


고, 일부는 ‘먼 데에 있는 하나님’만을 전하였다. 그 바람에 ‘온 천지에 충만한 하나님‘, ’내 


안팎 모두에도 계신 크신 하나님‘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다(23-24절). 교회와 세상 모두


의 주님이심을 잃어버리고,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종교를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영혼이 구원받으려면 교회 예배에 집중해야 하고, 세상에서 출세하려면 세속의 그 바람에 편


승하며 살아야 하는 허황한 영적 체질을 가진 백성이 되게 하였다. 




그 바람에 세상에 나가면 여호와를 잊고, 세상의 대세인 바알 종교의 제자로 살았다(27절). 세


상에서의 정의와 공의의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과는 철저히 등지며 살아간 것이다. 이런 이


중적 생활이 지속되면서, 이스라엘에는 말씀과 삶의 주되신 여호와는 가리어졌고, 거짓과 꿈


을 예언하고 자만심 속에서 자기주장만이 가득한 선지자들의 외침들만 난무하는 현장이 되고 


말았다. 부실하고 어리석은 선지자들의 행태 때문에, 불같고 바위를 쳐 부서뜨릴 방망이 같은 


여호와의 말씀은 제 기능이 정지된 것이다. 이 얼마나 여호와의 분노가 크셨겠는가-!!




3) 결국 깊은 속앓이하시던 여호와가 심판을 선언하셨다.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


가 치리라‘(30절),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31


절), ’거짓 꿈을 예언하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迷惑)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


리라‘(32절). 그런 심판은 결국 어떻게 나타났는가? 바벨론에 패망하며 오랜 세월 참담한 포로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라 잃은 서러움과 비극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일로 이어지고 말았다.




3. 서신서 / 계8:1-5 / ”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가다 땅에 쏟으매 ---“




본문은 요한이 본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신실한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의 향을 받으신 후에 


집행될 것을 확인한 내용이다. 지상에서는 당신의 택한 종들의 무책임하고 탈선한 증언들로 


인한 패망의 쓰라린 흔적들이 쌓여왔지만, 그러나 공의롭고 자비로우신 여호와는 지상에서 올


린 당신의 또 다른 제자 그룹의 축인 신실한 성도들의 기도의 내용까지도 받아 살피셔서, 최


종 집행에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는 부족한 기도라도 말할 수 없는 탄식


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의 개입을 통하여 올라온 기도의 역할이 최후의 순간에 


자비와 긍휼의 빛을 발함을 보여 준 일이 아니겠는가! (행8:26-28 참조). 




O 오늘은 신학교육 주일이다. 한국교회가 가장 위기를 맞이한 이 시기에 맞이한 신학교육주일


의 의미는 매우 크다. 신학이 건강하여야 교회가 건강해진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는 건강한 신학에서만 건강한 미래의 말씀 사역자들이 생산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다


시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 지금같이 협소하고 편협한 말씀의 신학의 굴레를 벗지 못하면 


교회의 희망은 없다. 어서 예례미야 시대의 전철에서 벗어나야 하고, 혼합종교의 굴레에서도 


교회를 건져내야 한다. 거짓 선지자들의 무익한 선동에서 우리 교우들을 해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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