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합 2:1-4, 마 25:1-13, 롬 13:8-14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지난 화요일 밤에 들려온 비상 계엄 소식은 너무나 황당하고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를 잠 못 들게 하고 분노하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역사를 어둠과 야만으로 돌리려는 악의 농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성탄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진리와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기다릴 것을 찾습니다. 한겨울에는 봄을, 봄에는 꽃이 피는 것을, 한여름에는 모처럼 찾아올 휴가를, 가을에는 먹음직스러운 빛으로 익어가는 열매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꽃도 잎도 다져서 아무것도 없는 초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는 불빛이 드리워지고 쉼 없이 달려온 이들은 그제야 행복과 소망을 사랑과 감사를 이야기하지요. 크리스마스가 없었다면 이 겨울은 얼마나 삭막하고 길게 느껴졌을까요. 해는 저물고 우리는 불을 밝힙니다.
우리가 다시 성탄을 기다리는 것은 전쟁과 살육과 차별과 혐오와 파괴의 광기가 일상처럼 진행되는 ‘죽임의 현실’ 성장과 성공의 이름으로 덮을 수 없는 추악한 우리의 탐욕과 끝을 알 수 없는 거짓과 위선을 들추고 갈아엎을 그리스도의 검과 평화가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시간 속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시리고 춥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아침이 오지 않는 것 아니야 하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시리고 춥고 어두워도 아침은 어김없이 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의심할 만한 시련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압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의 신실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어둠이 끝나고 새 역사의 희망이 솟아 오르는 시간의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동이 트는 시린 시간에 우리가 가져야 할 일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1. 시린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는 것을 믿어라.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하나님의 심판이 즉시 실행되지 않는가요. 사악하고 불의한 인간들이 악행을 저지르고 선량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받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략하고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고 조롱하는 데 왜 침묵하십니까?
하박국은 하나님께 항의성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기 위해서 파수꾼의 “망대”에 올라갔습니다. 하박국은 망대 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2:2-4)
하나님께서는 심판은 빈말이 아니고 확실하다. 더디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속히 이루어질 것이니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심판의 때에 교만한 자, 정직하지 못한 자는 심판받을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유다가 바빌론에 의해 심판받았듯이, 교만한 바빌론이 바사의 고레스에게 멸망 당했듯이.
그러나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정직한 자, 곧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약속을 믿고 불의하고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2. 준비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를 혼인 잔치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십니다. 우리에게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종말을 준비하는 비법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주님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주님의 뜻에 충실하고 신실하게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밤에 열립니다. 낮에는 뜨거운 열기로 하지 못하고, 해가 지고 시원해지는 밤에 합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에 초대된 신부의 친구들은 흰옷을 입고 들러리로 신랑 행렬이 오는 밤의 골목길을 등잔불로 밝힙니다. 이는 신랑을 신부의 집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이며 밤에 이루어지는 혼인 잔치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종말 때를 맞는 우리의 자세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10)
신랑이 올 때 신부의 친구인 처녀들은 등불을 들고 나가 신랑을 맞이합니다. 신랑이 오는 때를 모르기 때문에 처녀들은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열 처녀 중 다섯 명은 등불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다 채워 준비했습니다. 신랑이 오는 시간이 늦어지자 기다리던 사람들은 졸았습니다. 졸다가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기름이 없어 등불이 꺼져가는 처녀들은 행렬에 참여할 수 없었고, 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기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계속되지 않듯이, 오늘 주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적당히 내 맘대로 살다가 다음엔 주의 뜻을 행하겠다고 미루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의 뜻을 힘써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다음이 또 있을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3. 시대를 분별하고 빛의 자녀로 살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13: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종말의 시대를 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권면합니다. 바울은 왜 갑자기 종말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일까?
로마서 13:1-7절에 나오는 국가 권세에 대한 성도의 자세나 로마서 13:8-10절에 나오는 이웃에 대한 성도의 바른 삶은 우리가 임박한 종말을 살고 있다고 인식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종말론적 긴박감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시대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 ‘빛’은 ‘어두움’과 반대되는 것으로 도덕적, 종교적으로 성결한 생활을 가리킬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갑옷’이란 군사적 용어를 사용한 것은 로마 시대 갑옷은 영예의 상징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특히 ‘빛의 갑옷’이란 말이 연상케 하는 번쩍번쩍 빛나는 갑옷은 대장군이 입는 것으로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성도는 도덕적 종교적 성결로써 그리스도인의 영예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표현에는 이 세상이 영적 전쟁터란 사실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은 성결함으로 무장하고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동이 트기 전에 어둡고 시련이 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약속을 믿고 매일 그 나라를 위해 충실한 성령의 삶을 살고 시대를 분별하고 빛의 자녀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부탁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