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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4-3) - "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 " / 이태영 목사 > 대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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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대림절(4-3) - "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 " / 이태영 목사

관리자 2021-12-18 (토) 13:20 3년전 669  

본문) 35:1-10, 벧전 1:22~2:3, 9:33-37

 

누가 크냐

 

누가 크냐는 문제는 제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이 질문은 세상적, 세속적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누가 더 힘이 있는가, 누가 더 강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목숨을 건 판단을 해야 했습니다. 두 개의 권력이 다툴 때, 승자를 선택하고 지지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판단과 선택을 한 사람들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습니다.

누가 크냐는 질문은 자신들에게 적용될 때에는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신들이 지분으로 차지할 자리와 권한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길에서 서로 토론했을’(9:33) 뿐 아니라, ‘쟁론했다’(9:3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도 똑같은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제자들 간에 누가 크냐라는 질문은 제자들의 주된 관심 중에 하나였음은 분명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까지 계속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22:24).

누가 크냐는 질문은 마태복음서도 그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다만 마태복음은 이 질문이 자신들의 관계 뿐 아니라 천국까지 확대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18:1) 이렇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누가 크냐에 대한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23:11)

누가 크냐는 문제가 제자들 사이에 지속되는 갈등 요인이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질문은 단지 예수님의 열두 제자간의 문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문제는 초대교회 공동체 내부의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열두 사도 중 누가 예수님의 말씀과 권위를 가장 크게 이어받는 제자인지를 묻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정통성과 교권에 있어 어느 제자 공동체가 더 큰 권위를 갖는지를 따지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로마의 교회가 313년 콘스탄티누스에 의하여 공인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 교회 역사의 어두운 흐름을 보여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갓난아이처럼 말씀을 사모하라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는 고백 속에는 인생이 입김처럼 짧다는 깊은 신앙적 성찰이 들어있습니다. 입김처럼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이 크면 얼마나 클 것이며, 위대하면 또 얼마나 위대하겠습니까?

베드로전서의 고백도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벧전 1:24)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곧 말라버릴 풀처럼, 이제 금방 떨어질 꽃처럼 덧없고 허망한 인생드ퟝ이 서로를 향해 누가 크냐고 쟁론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일입니다.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일과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는 일(벧전 1:22),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는 일(벧전 2:1), 젖을 사모하는 갓난아기들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삶을 추구하는 일(벧전 2:2)이야말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3). 풀과 꽃처럼 사라질 것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살아가야 할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않으시는”(147:10)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크냐의 질문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앞에 세우시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구원이 사랑과 말씀에서 오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라

 

우리는 이번 주일로 대림절 넷째주일을 맞이합니다. 하나님과 본체이시지만, 자신을 비우시고 인간의 몸으로 화육하셔서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새기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기를 결단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누가 크냐는 헛된 질문 속에서 인생을 헛되게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는 근본적인 대답입니다. 나를 버리는 진실한 사랑만이 죄에 얽매여 죽음으로 향하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 진정한 능력임을 보여주는 구속 사건입니다.

나를 죽이고 너를 살리는 진실한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진실하고 참된 사랑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예수님의 참되고 진실한 사랑은 광야와 메마른 땅을 변화시켜 백합화가 피는 옥토로 만드실 것입니다(35:1). 맹인의 눈이 밝아지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35:5), 다리를 저는 사람이 사슴같이 뛰게 될 것이고, 말 못하는 사람들이 노래를 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35:6).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와 사랑의 힘으로 온전하게 된 이들이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되며 모든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35:1, 10).

이 모든 기적의 시작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물이 흐르고 흘러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채워지듯이, 예수님의 사랑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몸이 어머니의 품에서 떠나 강보에 싸여 짐승들이 먹는 구유에 뉘인 것(2:7)은 가장 비천한 곳,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성탄절을 앞둔 대림절 넷째주일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으로 오셔서 친히 섬김의 사랑을 보여 주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시는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고, 마침내 죄에 얽매여 살아가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구원하시는 대속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온 세상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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