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35:1~10, 시 89:1~4, 19~26, 밷전 1:22~2:3, 눅 2장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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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꼴 아기 진달래// 잘 아시죠
제가 가사만 바꾸어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ppt 부탁)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이 찬양 가사에는 구세주라는 말과 구주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신 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는데 11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서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인데 구원자의 “구”자와 주님의 “주”자를 합하면 구주가 되는 것이고, 여기에 더하여 세상을 구원할 주님이라고 하면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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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14절 말씀은 우리들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구세주요,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받으실 것이며,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임한다고 증언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생활 한복판에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의 증언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 아기를 찿았습니다. 성경은 목자들의 이 행동을 이렇게 전합니다. 16절에서 아기를 찾아서 17절에서 보고 천사의 말을 전했다. “찾아서” “보고” “전했다.” 지금 막 태어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하는 첫 증언자들이 목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실 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최초의 증언자가 목자들입니다. 저는 우리들도 그 증언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같이 하실까요?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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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을 증언해야 하는가? 오늘 성사일과에 기록된 이사야서와 시편 말씀을 읽어보면 아주 중요한 단어 다섯 개가 나옵니다. 먼저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면 8절에 “구속함”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10절에서 “속량함”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나의 죄를 우리의 죄를 씻어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속량자”이십니다. 그 다음 8절에 나의 죄를 씻어내고 나를 구원하시는 “구속자”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거룩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예수님으로 오셨는가? 정답은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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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더하겠습니다. 왜 속량하고 왜 구속하셨는가? 우리가 쓰는 말로 왜 죄를 용서해주시고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그 답은 시편 89편에 있습니다. 19절에 돕는 힘을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24절에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22절에 원수가 그를 강탈하지 못하고 곤고하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23절에서 하나님이 직접 대적자를 박멸하고 미워하는 자를 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우리를 돕고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자! 왜 이렇게 까지 하실까요? 분명한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우리로부터 시작하시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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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구주 예수님이 누구냐? 속량자/ 용서하시는 분. 구속자/ 구원하시는 분, 돕는 자/ 힘이 되시는 분, 동행자/ 함께 하시는 분/ 보호자/ 지켜주시는 분! 다섯 손가락으로 한 번 해보겠습니다. ① 속량자 ② 구속자 ③ 돕는자 ④ 동행자 ⑤ 보호자
문장으로 한 번 풀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나는 너를 용서하려고 왔어/ 나는 너를 구원하려고 왔어./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왔어./ 나는 너와 함께 하려고 왔어./ 나는 너를 지켜주려고 왔어./ 아멘이십니까? 이렇게 하려고 오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언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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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서일과의 말씀!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서 2장 3절의 말씀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1장 22절 말씀은,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1장 23절에서는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을 거듭났다고 하면서, 그 거듭남은 썩지 아니할 씨!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하면서, 베드로전서 2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여기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잘 키운 소나 잘 자란 염소의 젖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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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 있다는 것이니다.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고, 또하나는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은 절실하게 간절하게 원하고 갈망하고 애쓰고 바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게 소중하고 귀중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돈이든 마음이든 음식이든 재능이든 무엇이든 필요로 하는 이에 거저 채워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의 말씀을 자세히 천천히 읽어보면 이렇게 하면 구원받은 거야. 믿으면 되는 거야. 구원받았지! 무슨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정확하게 구분이 된다는 듯이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의 맨 마지막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을 이루어내기까지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 구원받았어? 안 받았어? 언제 구원받았어? 우리가 생년월일이 있는 것처럼, 구원받은 날짜가 있는 거야! 날짜도 모르면서 뭔 구원을 받았다고 그래. 착각하지마. 제대로 믿어야지. 몇년 몇월 며칠인지 알고 있어야~ 그게 확실한 구원이야. 너 기억하고 있어? 기억 못하지? 구원받은 게 아냐? 구원받았어? 확실해?” 이건 이단들이 쓰는 방법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은 구원받았다는 걸 자격증처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매일 매일 구원을 향하여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하면서 구원을 향하여 오늘도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단이 아니라면 나는 구원받았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유가 있지요. 예수믿으면 구원받는다. 맞습니다. “예수 나의 구세주 예수 내 구주” 이 고백을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럼 구원이라고 이름하는 학교에서 졸업을 했냐?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이제 됐는가? 베드로전서는 2장 2절은 말합니다. 구원받았다는 확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받고 교회다니면 예배드리면 구원받은 거지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믿으면 구원을 움켜쥐고 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날마다 구원이라는 푯대를 향해 그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걸아가는 사람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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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여러분, 오늘은 대림절 넷째주일입니다. 12월 25일을 기점으로 해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유는?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뻐하면서 내가 지금 구원의 길을 잘 걷고 있는가? 내가 구원을 향하여 자라나고 있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가? 뜨겁게 사랑하는가? 이 질문으로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 가다듬어 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쉽게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멈출 수 없습니다. 구원을 향해서 오늘도 한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면서 말과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뜨겁게 사랑하면서 구원의 언덕을 올라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