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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3-2) - " 그리스도의 아내 된 교회 " / 남신도회 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0-09-18 (금) 14:16 3년전 1167  

본문) 창 2 : 18 – 25, 엡 5 : 21 - 6 : 4, 막 10 : 1  – 16

 

  성경을 읽다가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창1:27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는 말씀을 읽었는데, 오늘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2:21-22)합니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증명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전하는 경전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역사-과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까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두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은 성경을 기록한 기록자가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에 대한 묵상이 깊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입장입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 즉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함께 하면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각각 독립적입니다. 2장에 오니 남자에게서 빼낸 갈빗대로 만든, 남자의 찬양을 받는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아담이 ‘여자’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창세기도 에베소서도 또 예수님께서도 ‘남자는 여자와 한 육체가 되기 위해 부모에게서 떠나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가부장적 사고가 지속되면서 남자든 여자든 가부장적 제도에 적응했고 또 순응하도록 요구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부모에게서 떠나는 일이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집니다. 부모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성경말씀은 부부란 두 사람 이외의 다른 누군가의 간섭 없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관계여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부부 사이의 친밀함과,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합니다. 예수께서는 버림받은 아내, 버림받은 남편을 편 들어 주십니다. 중심에서 소외당하는 어린아이를 가까이 부르십니다. 중심과 주변이 나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구분되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요즘은 더 많이 파편화되어 살아갑니다. 파편화된 사회는 가정도 영향을 받습니다.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패륜적 일들이 부부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벌어집니다. 그런 시대에 돕는 배필을 향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아담의 찬사는 공허하게 울리는 메아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는 다음에 오는 “이 비밀이 큰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는” 더 중요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 땅의 사람들과 하나 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 몸 된, 하나의 육체로 세워진 몸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남자와 여자, 아내와 남편, 어른과 아이의 비유는 그들 직접적인 당사자들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유하기 위해 사용된 소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남편이 되어서 이 땅의 교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이 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인 교회와 한 몸이 되셨습니다. 이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와 교회, 이 둘이 나눠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면 함께 책임지며 가야하는 지향점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던 사랑의 길을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무릎에 앉히고 축복하셨던 아이들을 돌볼 책임이 교회에게 있습니다. 사람을 피해 물을 길러 나왔던 그 가엾은 아낙, 남편인 듯 한 남자 여섯을 겪어야 했던 서글픈 여인을 사랑해할 책임이 교회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아내 된 교회는 가족만을 사랑하는 일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되 교회 안에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들만 와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아린 가슴을 가진 사람이나 놀이터를 찾아 온 아이들을 위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밀쳐낸 어린이를 당신의 무릎에 앉히셨던 예수처럼 소외되고 밀려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무릎이 되어주어야 하는 곳이 교회이고 교회당이어야 합니다. 상징적으로 열린 교회, 열린 예배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열린 교회당에서 세상이 무어라고 이름붙인 그 이름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앞 주님의 무릎에 앉아, 마음을 내려놓고 몸을 쉴 수 있도록 교회는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지난 100여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아버지, 아들, 남편, 남자로 사는 일이 무겁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 딸, 아내, 여자의 삶도 녹녹치 않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들이 짊어져야 했던 책임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희망을 가질 길 없는 식민지의 아들, 전쟁 통에 가족을 보호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남편, 가난하기 때문에 미안해서 어찌할 바 모르던 아버지의 세월이었습니다. 쓰린 역사의 현장에서 피흘리던, 피흘림을 강요당하던 시간들을 겪었습니다. 예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떠메고 따라갈 수밖에 없던 구례네 시몬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의 아내 된 교회에서 편히 쉬십시오.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어리광을 부리고 눈물을 흘리셔도 좋습니다.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는 찬사를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담에게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아담은 성실하게 맡겨진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런 아담을 주께서 보셨습니다.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는 것도 보고 아셨습니다. 아담에게 맡겨진 모든 일이 마쳐진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돕는 배필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 각자와 교회는 맡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면 됩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주님께 맡깁시다. 어쩌면 아담은 자신이 맡은 일이 다 끝난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무언가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이 받은 놀라운 선물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러분 각자에게, 또 우리 교회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주실 주님을 기대합시다.

남편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과 섬김과 순종의 길을 가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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