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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2-1) - " 창조질서의 보전 - 하나님 아들로 살기 " / 교회연합주일 / 홍철화 목사

관리자 2020-09-10 (목) 21:30 3년전 1170  

창  1:26-31, 요일 3:1-10, 눅 12:4-7

 

코로나 19 재난이 이렇게 오래 가는 현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왜 이런 재앙이 오는가.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끝장낼 수 있을까. 누구나 이 중차대한 문제에 맞닥뜨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제 전 지구적인 재난이 되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을 지내면서, 이것은 사람들이 그동안 알든지 모르든지 스스로 저지른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인간들이 계속해서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인해 멈출 수 없는 자연파괴를 자행하여 자초하게 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생활방법이 끝없는 경쟁과 탐욕 때문에 멈출 수 없는 재앙을 만든 것이다. 

 

교회력에서 창조절기를 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과오를 저지른 인간의 죄악을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세계교회 협의회에서는 오래전에 이 같은 지구 환경파괴를 경고하면서 ‘생명 평화 정의를 향한 창조질서 보전’을 외쳤던 것이다. 우리가 창세기를 새롭게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절실하고 절박하게 새겨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인공위성에 탑승한 우주인들의 한결 같은 소감은 지구별이 참 아름답더라는 것이었다. 이 아름다운 지구를 인간이 어떻게 관리했고 간수하고 있나?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뼈아프게 경험하는 것들은,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계속 발생한다는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바다의 쓰나미, 인간의 생존 현장을 싹 쓸어버리는 태풍, 이상기후.... 여기에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코로나 19 재난 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지구에 닥쳐온 무서운 파국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금처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항공사업, 교통수단, 난방시설, 전력, 비닐, 프라스틱 사용, 화학약품과 이에 따른 생활방식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우리가 너무 깊이 거기 안주하고 길들어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일상에서 자주 경고를 듣지만, 거기 귀기우리지 않는 무지에서 언제 깨어날 수 있을까?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지속 된다면 지금 인류가 그대로 존속 가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양심적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우리가 다음 세기를 과연 마지 할 수 있겠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여 지금의 재난에서 삶의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 파국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우울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뼈아프게 경험하는 긴 고행의 행진은 어떤 비장한 변화를 요청한다. 

 

창세기 본문에,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1:26-27)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이토록 망가져 파멸로 간다면 그 책임이 얼마나 중하겠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살아갈 세상을 아름답게 관리하고 가꾸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란, 파멸 직전에 있는 이 삶의 터전을 새롭게 간수하겠다는 일대 전환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요청하신 ‘회개에 합당한 열매’일 것이다. 본문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는 구절이다. 우리에게 맡긴 이 세상을 ‘참 좋았다’라는 감탄사에 걸맞도록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돌이켜야 한다. 

 

2. 인간은 귀한 존재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이제 후진국이라든지 개발도상이 국가라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국민소득 3 만 달러의 나라! 이런 표현이 해방 이후, 6, 25 한국 전쟁을 치루 던 때 국민소득 100 달러 내외였던 가난한 나라를 상상하면 꿈같다. 게다가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이룬 나라라고 자부한다. 이것이 사실이지만, 정말 그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그늘이 짙다. 이런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명예스러운 것들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 자살 율이 계속 1위로 높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업 재해로 죽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나라라는 것이다. 출산율 세계 최하위로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한다. 세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나라, 더 나아가서 5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 국가가 된 것이다. 이것을 어서 청산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생명이 우주보다 더 중하다고 하신다. 세상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은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말씀하시면서 이것들을 배려하고 살피신다고 하셨다.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은 존귀하고 고귀한 존재로 하나님께서 새보다 더 배려하고 꽃보다 더 영화롭게 여기니까 아무 염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할 때, 이렇게 귀한 존재임을 깨닫고 사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존귀한가? 창세기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편의 기자는 사람을 천사처럼 귀하게 지으셨다고 찬양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지닌 것이다. (시편 8편, 2편, 요 1:12) 이 고귀한 신분으로 잘 살아야 할 텐데, 자만하고 교만하여 다른 피조물에 군림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해친다면 인간의 참 본분을 잃어버린 행동을 한 것이다. 

 

누가복음 12:4- ‘내가 내 친구인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듣는 제자들에게 <친구>라고 한 것이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내가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죽인 뒤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건 행위였음에도 그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두려움보다 강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 19 재난이 장기화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질병과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용직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 매일 고객에 의존하는 상인들, 여행업, 서비스업 등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살 길이 막연해 졌다. 교회마저 타격을 받는다. 이 급박한 때에 두렵고 겁나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 대책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이 위기가 우리 믿음을 시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자신의 생존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믿음의 결단이 요구된다. 그렇게 할 때‘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사정을 아시고 돌보신다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가지도 다 세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눅 12:7)

 

3. 하나님의 아들로 살기

내가 몸담은 교회 비전문,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세상으로부터 나와 예수님의 믿음과 사랑을 믿어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사랑하는 기쁨과 감사 누리며 이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 교회의 주인으로 살아간다.’비록 은퇴한 시니어지만, 이 비전문을 매일 새롭게 고백하고 일상에서 살기로 다짐한다. 

 

예수님의 공생애 출발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써 시작된다. 그 사건이 예수님의 <원체험>으로 하나님나라 사역을 일관하게 하는 동력이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그 사건에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의 머리에 내려오는 순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고 만족한다.’라는 메시지가 선포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개혁운동에 ‘예수살기’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의 또 다른 것은 ‘하나님 나라로 살기’라고 할 수 있고, 더 확실하게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기’일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살 때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이며, 예수를 따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의례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아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세상으로부터 나와 노예로 살던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하나님의 아들 체험이 필요하다. 그것이 마치 혈육의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철저하고 확실하여야 할 것이다. 

 

요한 일서 3:1-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삶에서 구체화되게 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들에게서는 <혈연>보다 더한 <영연霙緣>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라고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드려져 이 세상에서 정죄 받을 수 없는 입장에서 장차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그리스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알고 그 모습 그대로 뵙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깨끗하게 사는 것이며,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참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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