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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1-2) - "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 이영재 목사 (재일동포선교주일, 개척선교주일)

관리자 2020-09-05 (토) 10:33 3년전 1081  

본문) 창 1:1~25, 요 1:1~5, 계 4:1~11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구석구석에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드높다.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이 개신교 교회로 드러난다. 종교 중에서도 개신교가 받는 타격이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난다. 불교나 천주교는 그저 잠잠하고 확진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개신교는 확진자도 많이 나오고 사회적 책임성도 미약하여 코로나19를 온 사회에 퍼뜨리는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회인들에게 교회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반사회적 집단처럼 각인되고 있다.

한국개신교가 유독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잘못된 지도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올바른 성경의 이해와 올바른 사회적 관계에 기초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종교적 편견과 아집을 가지고 교리적 신앙만 교집하다가 시대와 함께 숨 쉬는 신학이 교회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근본주의, 은사주의, 신사도주의, 창조과학회, 따위의 편향된 신학이 한국개신교에 판을 치고 있었는데 코로나19의 충격은 이들 편향된 교회주의자들을 거의 맨붕에 빠뜨리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주이시다.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만사가 하나님의 예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뜻대로 움직인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는 살고, 그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죽는다. 이것을 우리는 창조신앙이라 부른다. 오늘부터 창조절이 시작되어 11월 말까지 지속되다가 대림절로 이어진다. 이 창조절 기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의 위기를 직면하면서 살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판데믹과 창조신앙이란 주제를 놓고 성경을 찾아보면서 우리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받들어온 교회의 미래를 함께 내다보기 바란다.

창조주 하나님의 소리와 말씀이 온 땅에 세상 끝까지 이른다고 시편기자는 노래한다(19:4).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생길 수 없다. 창조주는 구원자이시며 또한 심판자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을 죄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뜻을 고의로 거역하는 자가 죄인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자는 의인이라 인정을 받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욕망대로 살아가는 자는 죄인으로 간주된다. 구원은 의인에게 주어지고 죄인에게는 징벌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한편으로는 구원을, 다른 한편으로는 징벌을 준다. 주님은 코로나19를 심판의 다림줄로 내리셔서 의인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징벌을 주신다. 성경에 무수히 많은 전염병 기사가 나온다. 이스라엘과 이방에 내린 그 모든 전염병이 하나님의 주시는 심판임을 성경은 증언하다. 잘못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심판에 직면한 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악인은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대항하려고 더욱 강퍅한 마음을 굳히며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인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거꾸러지며 회개하고 잘못된 삶의 습관적 행위들과 생각을 고치려고 한다. 회개의 열매는 맺는 의인은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것이 창조신앙의 내용이다.

성경에서 창조신앙을 가장 체계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말씀은 창세기 1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일곱 차례의 과정을 거쳐서 창조의 사역이 이루어진다. 일곱 차례의 매듭이 있는데 한 차례의 매듭이 지어질 때마다 성경은 그 매듭을 이란 말로 표현한다. 히브리어로는 인데 이것을 지구상에서 계측하듯이 24시간을 하루로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의 하루/”()은 규정할 수 없는 시간이다. 넷째 날에서야 태양계가 창조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은 첫째날에서 셋째날까지를 창조의 첫 문단으로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완전히 다르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시간을 우리에게 살짝 암시해 주고 있다. 하늘의 열린 문을 환상을 보는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외롭게 유폐되어 있는 중에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확고하게 표현하여 이제로부터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영원이란 것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요한은 고백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심판 아래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교회를 통해서 이득을 꾀하는 자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대면예배만 고집하여 온라인 비대면 예배를 거부하는 거짓된 목사들이 태반이다. 그들은 일생 지켜온 종교적 습관과 선입관에 매몰되어 코로나19가 주는 새로운 미래 뉴노멀의 비전을 말씀을 통해 새롭게 찾아내지 못한다. 대면하면서 드리는 공중예배만을 예배라고 믿는다. 더 나아가 그들은 언제나 대형집회를 꿈꾸며 그 대형집회의 지도자로 군림하기를 열망한다. 그 대형군중을 깔고 세상의 권세자들과 야합하며 대제사장 아나스와 가야바의 행보를 밟기 원힌다. 종교권력자들은 세속권력자들과 연대하여 부를 향유하고 세습하려고 한다. 재산이 많은 종교인들이 밟고 있는 대형집회의 터전이 코로나19 때문에 무너지고 있으니 그들은 악착같이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외면하고 공중대면집회만을 고집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노아를 홍수심판에서 건져내셨다. 노아는 대중집회를 열어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그는 가족과 함께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렸다. 사람이 세운 바벨도성의 성민들은 대형군중집회를 열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외쳐댔다. 세속의 우상종교들은 대형군중집회를 도모하며 하나님을 자신들의 삶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삼는다. 그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규정하며 엄히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은 언제나 하나님을 홀로 만나고 직면한다. 하나님과 의 바른 관계를 도모하며 그 기초위에서 이웃사랑의 공동체로 나아간다. 주일마다 드리는 공중예배도 그 참여자 각각의 진실한 신앙들이 모여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 집단적 군중들이 인간의 힘을 합쳐서 저마다 다른 신들의 총합체를 이루는 군중집회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가 된다. 모든 제국의 황제들이 우상을 세우고 모든 신민들을 불러모아 대형집회를 열고 우상에게 절하게 하였다. 인간이 신을 만들어 내어 자신들의 이득을 꾀하는 일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 제국의 우상숭배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대형 금상을 세워놓고 느부갓네살이 만국의 백성들에게 다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강요하였다. 바빌로니아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의 종교는 지구랏과 같은 웅장하고 거대한 신전을 갖추었고 그곳에 운집한 군중의 대형집회로 예배가 이루어졌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우상 앞에 엎드리는 대형군중집회를 거부하였다(3:8-12). 골방에 들어가서 주님과 직면하여 예배를 드렸다. 가족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야훼 창조주 하나님을 비대면예배로 드리는 일은 성경에 비일비재하게 증언되고 있다.

아브람은 하란을 떠나서 첫 기착지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것은 대중집회가 아니다. 아브람이 주재하여 온 가족이 예배에 참여했을 것이다. 혼자서 드리거나 가족과 함께 드리는 예배는 창세기 전반에 걸쳐서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 속에 자주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애굽 파라오와 블레셋 아비멜렉의 삶이 이스라엘 조상들의 삶과 대조되어 나온다. 도시국가의 삶은 폭력에 찌들어 있고 그들이 폭력을 뒷받침하는 우상종교가 국가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다. 요셉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애굽 제사장들과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제국의 국가종교가 지닌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대형신전에 운집한 대형집회는 모든 제국이 벌여왔던 우상종교의 폐악이었다. 이러한 대형집회의 폐혜를 지적하여 참된 를 찾아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 독대하여 주님을 만나면서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드리는 참 예배인 것이다. 모세도 애굽의 대형집회에 익숙해 살다가 애굽에서 도망쳐서 미디안 종교에 귀의하여 살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호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홀로 하나님을 만나 거꾸러졌고 경배를 올려드렸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또한 말씀이시기도 하다. 주일의 공중예배는 말씀이 중심으로 선포되는 현장이며 그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믿는 자 개개인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정립되는 사건에 있다. 그것은 설교의 현장이며 그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말씀이사라는 진리가 선포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예배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예배의 본질은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대형집회가 갖는 사회적 권력에 연루되지 않은 채 언제나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참된 를 찾아 회복하는 데 있다. 참된 예배 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거짓되고 타락한 자아를 벗어 던지고, 하나님이 지어주신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사건이 각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장이 참된 예배의 현장인 것이다.

창조절을 맞아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코로나19의 위기 앞에서 교회는 의인가 악인으로 나누어 지고 있다. 가리지는 뽑혀 나가고 알곡만 남는 교회가 될 것이다. 심판의 혹독한 과정을 교회는 겪어야 한다. 연단을 받아야 정금과 같이 나아올 수 있다. 주께서 주시는 심판은 교회로 하여금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교회가 지난 날 무슨 짓을 하였는지 되물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일제의 만행에 눈감고 일제의 근대화가 주는 물질적 달콤함에 젖어서 천황이라는 우상을 섬기지 않았던가. 총회가 천황숭배를 결의하고 대동아전쟁에 앞장 설 것을 결의하지 않았던가! 그 우상숭배의 죄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일제가 취한 반공노선에 교회도 그대로 따르다가 해방 후에는 좌우대립의 무서운 갈등 속에서 교회가 중립을 취하지 못하고 반공전선에 나서지 않았던가. 성경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건만, 말씀을 무시고 우익이라는 한쪽 진영에 교회는 속하였다. 교회가 제주4.3과 같은 민중을 학살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던가. 재일동포들이 고통을 당할 때 그들을 조총련계라고 몰아세우며 배척하고 돕지않고 외면하는 일에 교회가 방관하며 동조하지 않았던가.

세상권세와 짝하여 권력을 누리며 하나님을 등지고 구국반공이라는 기치 아래에서 군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하지 않았던가. 교회는 반공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냉전체제가 끝난 근자에도 한국교회는 여전히 보수대연합이라는 반민주적 음모에 가담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 않는가.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거짓 목사들은 언제나 대형집회와 대형교회의 군중을 딛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어둡게 하는 한기총, 한교총, 등 보수주의 집단들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임이 코로나19의 심판 아래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 안에는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이끄는 참된 빛이시다. 악인들이 아무리 국가권력과 야합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앞장 선다하여도 하나님의 생명을 담고 있는 교회들은 코로나19의 위기에서 더욱 찬란한 빛으로 빛날 것이다. 심판은 연단하며 의인들을 등경위에 등불과 같이 드러나게 한다. 아브람과 같이, 모세와 같이,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홀로 대면하여(33:11)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도가 수많은 촛불이 되어 세상의 환히 불 밝힐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섭리임을 성경을 통해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대형집회, 공중예배만이 예배가 아니다. 그 예배 속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개인이 없다면 그 예배는 우상숭배가 되고 만다. 코로나19의 위기를 겪으면서 비대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의 설교말씀에 더 깊이 경도하고 깨닫고 회개하는 참된 자아를 회복한다면 그것이야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는 것이다.

창조절 절기에 온라인 예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대면 온라인 예배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오늘도 예배에 성공하는 거룩한 무리들이 이 땅에 많이졌으면 좋겠다. 이 또한 주께서 친히 이루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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