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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10-1) - " 사랑으로 사랑의 열매를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19-11-01 (금) 08:57 4년전 1989  

본문) 삼하 1:17-27, 14:13-15:4, 15:12-17

오늘은 창조절 열 번째 주일이며 또한 우리교회가 매년 가을감사절로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결실의 계절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빕니다.


가수 해바라기1989년에 발표한 사랑으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해바라기 멤버인 이주호씨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데에는 슬프고 가슴 아픈 한 가족이야기가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열기로 대한민국이 한창 들떠있을 때 서울 공항동의 한 동네에 가난한 환경미화원 가족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거리청소를 위해 새벽부터 엄마아빠가 일을 나가자 집에 있던 네 딸이 배고픔을 참다못해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3자녀는 목숨을 건졌지만 세 살 박이 막내만 죽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이 축제가운데 들떠 있을 때 서울 한복판에서 이처럼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고심하다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일보다 고통 중에 있는 이웃에게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 밀어/ 밝혀 주리라

이 가을에 듣는 불같은 사랑의 노래들


오늘 세 본문에 담겨진 모든 말씀은 뜨거운 불같은 사랑의 노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먼저 활의 노래로 알려진 삼하 1:17-27>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사망한 사울과 요나단을 추모하며 부른 “사랑의 노래”인데 이곳에는 사울 왕 부자에 대한 다윗의 사랑의 마음과, 다윗을 온 맘을 다해 사랑했던 요나단의 사랑을 애도하는 고백이 담겨있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두 번째 서신서 본문인 <계시록 14:13-15:4의 말씀>에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여 목숨 걸고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알곡성도들의 모습이 나옵니다.(14:14-16) 이들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14:1) 이들은 온갖 고난을 사랑으로 이기고 승리한 이들인데 불 섞인 유리바다 가에 서서 “두 개의 사랑노래”를 부릅니다. 하나는 구약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모세가 미리암과 함께 불렀던 홍해 도강의 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신약시대에 살았던 이들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어린양의 노래를 부릅니다(15:1-3). 메시야에 나오는 장엄한 할렐루야 코러스마저 초라하게 만드는 모든 구원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승리를 찬양하는 우주적 대 코러스를 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음서 본문 <사도 요한의 복음서 요15:12-17의 말씀>은 사도요한이 부르는 “형제사랑의 노래”입니다. 이 사랑의 노래는 높은 고음을 구사하는 사랑의 아리아같은 노래입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의 수준이 높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는 사랑,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사랑입니다. 오늘 저는 이 불같은 사랑의 노래를 여러분과 함께 1, 2, 3절로 나누어 한 마음으로 함께 불러보고 싶습니다.

1. 사랑으로 사랑을(삼하1:17-27)


사랑의 노래 1은 다윗과 요나단이 부른 사랑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노래입니다(15:12). 이 노래는 우리가 이웃과 형제를 사랑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복과 사랑을 베푸시고 또한 그 사랑을 통해,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으로 사랑을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티끌로 만드셨지만 하와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그 갈비뼈로 만드십니다. 외과 의사처럼 아담의 신체 일부를 도려내십니다. 아담의 사랑, 자신의 몸의 일부를 희생하는 사랑을 통해 소중한 가정을 이루시고 에덴동산에 최초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그 희생과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는 큰 민족과 나라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약본문에서 다윗과 요나단을 통해 우리는 매우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이성간의 사랑도,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친구간의 사랑도 뛰어넘는 매우 기이한 사랑(26)입니다. 이 사랑은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피어난 사랑입니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은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다윗을 죽도록 미워합니다. 요나단의 누이 미갈은 다윗을 좋아해서 결혼한 아내지만 다윗의 지나친 하나님사랑 때문에 서로 갈등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왕위계승을 놓고 심각한 대립과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서로 대립하는 관계요 원수 같은 관계이며 사랑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은 사랑할 수 없는 여건을 뛰어넘는 사랑, 여인을 향한 사랑보다, 혈육사랑보다 어떤 친구의 우애보다 부모사랑보다 더욱 친밀하고 우애하며 신뢰하는 사랑을 했습니다.(삼상18:1/ 19:1/ 20:17/ 삼하1:26) 무엇보다 요나단은 다윗을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인정했고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그를 보호했으며 패배가 자명한 전쟁에서 뛰어들어 아버지와 함께 전사함으로 다윗시대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소중한 사랑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고 이 사랑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하는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의 불을 일으키는 불쏘시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선교의 불을 일으키기고 교회 부흥의 문을 여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고 이 민족과 백성을 새롭게 하시는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2. 사랑에서 사랑을, 분노에서 분노를(14:13-15:4)


사랑의 노래 2은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행하시는 사랑의 추수불같은 심판의 추수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에서 사랑을 분노에서 분노를 발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2:9) 계시록 14장의 말씀은 마지막 때에 있을 두 가지 추수의 광경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잘 익은 곡식을 예리한 낫으로 추수하는 모습이고(14:15-16) 다른 하나는 역시 예리한 낫으로 포도를 추수하는 광경입니다.(14:17-20) 잘 익은 곡식을 추수하는 분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런데 포도송이를 추수하는 이는 다른 천사입니다. 그리고 불을 다스리는 천사의 말을 듣고 낫을 휘둘러 포도송이를 거두어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졌고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혀 피가 사방에 퍼집니다. 상상할 수 없는 큰 심판과 저주가 부어진 것입니다.


잘 익은 곡식에 해당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배당에 나오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13장에 보면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자를 죽이기까지 하는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고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13:15-17). 황제숭배를 거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그의 말씀의 원칙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포도송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포악하고 무서운 짐승의 힘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 마귀의 유혹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이 둘을 구별하여 하나는 하늘 창고에 다른 하나는 심판과 저주의 포도즙 틀에 밟히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두를 다함께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믿고 말씀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창고에 모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을 끝내 거부하고 주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에 이르게 하시는 사랑이십니다. 참 사랑은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악을 미워하며 악을 심판합니다. 결코 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곳이지만 동시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이루어진 현장입니다. 그 아들에게 부으신 죄에 대한 심판이 얼마나 참혹했습니까? 우리는 죄와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시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을 행하며 어떤 고난도 이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승리의 노래를 부릅니다.(14:14-16) 그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는(14:1) 이들은 불 섞인 유리바다를 건넌 후 그 바다 가에 서서 모세가 미리암과 함께 불렀던 홍해 도강의 노래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어린양의 노래를 부릅니다(15:1-3).

3. 형제사랑으로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15:12-17)


사랑의 노래 3형제사랑을 노래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2)”고 하시면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13)”고 하십니다. 15장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대상은 주님이 사랑한 제자들(15:9-10), ‘함께 주님을 따르는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형제사랑(φιλαδελφία)에 대한 명령을 자주 듣습니다. 우리는 박애적인 사랑과 형제사랑을 잘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다릅니다. 박애적인 사랑은 그 대상을 구별하거나 제한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모든 인류를 향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랑을 가장 고귀한 사랑으로 추앙합니다. 그러나 형제사랑은 제한적이며 조금은 배타적인 성향을 가집니다. 사랑의 대상이 아무나가 아니라 특별히 구별된 사람, 형제로 제한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은 이웃사랑에 소홀하면서도 사랑의 대상만큼은 아무 차별이나 제한 없는 박애적인 사랑을 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가운데 사는 자신에 대한 긍휼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웃사랑도 말씀하시지만 그 대상이 제한된 형제사랑을 매우 자주 요구하셨고(살전4:9, 13:1, 벧전1:22, 3:8, 요일2:9-10, 3:10,14,16,17, 4:20,21) 오히려 먼저 형제사랑을 실천하고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십니다(벧후1:7). 왜냐하면 주님을 따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온 인류를 사랑하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귀신을 내쫓으신 예수를 비난하여 바알새불을 힘입어 내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질 것이요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12:25)”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먼저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하면 서로 분쟁하게 되고 세상의 웃음꺼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형제끼리 분쟁하는 형국이 아닙니까? 형제를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서 온 인류를 사랑한다는 것은 속옷은 안 입은 채 멋진 겉옷만 걸치고 먼 길을 나서는 모양이 아니겠습니까?

형제사랑은 어떻게 합니까? 첫째는 친구를 사랑해야 합니다.(12) 누가 친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사람(교회)이 우리가 사랑할 친구입니다. 성격이 안 맞고 의견이 안 맞아도 주님이 그를 사랑하여 구원하셨으니 우리도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로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13)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조건이 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친밀한 친구가 되기 위해 사랑해야 합니다.(14-15) 형제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키면 비로소 주님은 우리를 그의 친구, 곧 아버지께 들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친밀한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넷째로 형제사랑으로 많은 이웃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사랑해야 합니다.(16) 교회 안에 성도들의 사랑이 풍성할 때 비로소 교회의 담을 넘어 이 세상의 빛이 되고 소망이 되고 성교의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올 가을 풍성한 결실의 계절에 먼저 형제사랑의 풍성한 열매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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