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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9-1) -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개혁 " / 이영재 목사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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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9-1) -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개혁 " / 이영재 목사

관리자 2019-10-23 (수) 16:02 25일전 79  

본문) 시40:5-10; 삼상16:1-13; 2:22-36; 22:41~46

들어가는 말

하나님은 국가를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지만, 왕들이나 권력자들은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통치하는 국가를 창조하신 적도 없습니다. 시편 40편은 주 나의 하나님, 주께서는 놀라운 일을 많이 하시며 우리를 위한 계획을 많이도 세우셨으니, 주님과 견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창조주 하나님의 위업을 노래하는데 이는 모두 애굽왕국과 같은 세상 폭력을 이기는 위업을 노래한 것입니다(5). 주의 놀라운 일과 구원하시는 계획은 모두 애굽의 통치자 파라오와 세상의 교만한 군왕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하시고 해방하시는 놀라운 위업에 대한 증언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세운 국가를 기뻐하지 않으심이 분명합니다.

오늘 봉독한 사무엘상서 16장에는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서로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 사울이 버림을 받고 새로운 왕으로 다윗이 피택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개혁하시려고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사무엘상서 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장로들이 왕국을 다스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이 왕으로 등극한 후에 주님에게 버림을 받는 슬픈 과정이 오늘 봉독한 본문 사무엘상서 16장까지 펼쳐집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능력 있는 사람의 통치가 필요하여서 사람이 만든 제도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의 본질

십계명은 야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합니다(출20:2-3). 야훼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노예들을 해방시킨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십계명 서두에서 알려주십니다. 야훼께서는 애굽이란 왕국을 지탱하는 모든 권력을 부정하십니다. 생산현장에 노예들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십계명에 적시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노동을 담당하고 있던 노예들을 이끌어 애굽 왕국 바깥으로 탈출하게 하신 분이 야훼 하나님입니다.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노동력을 빼내버리면 국가가 망하지 않겠습니까?

십계명의 이 말씀은 야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왕들이 다스리는 모든 왕국체제를 일체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뜻을 강하게 전달합니다. 그 까닭은 고대근동의 모든 왕국들이 노예체제를 갖추고 노예들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왕과 귀족들이 노예들을 짓밟고 착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타자를 폭력으로 지배하고 착취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고대노예제사회는 야훼 하나님을 부정하는 우상숭배의 만행이었습니다. 이 점을 성경은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왕국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국가의 기원은 죄의 폭력이다

창세기는 국가의 창시자를 카인과 그 후예들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난 후에 야훼 하나님을 등지고 놋 땅으로 가서 거기에서 에녹성을 건설하였습니다(4:17). 에녹성은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인데 현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수메르 문명권의 에리두(Eridu) 유적지에 해당한다고 보며 그 시대는 B.C. 3000년경으로 간주됩니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에 최초의 도성 에녹성이 생겨났고 수메르 문명이 번성하고 도시국가의 체제가 형성되었습니다. 에녹성을 필두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도시국가들이 우후죽순과 같이 생겨났고 이들 도시들로 인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이 광범하게 형성되었습니다. 카인의 후예들이 도시국가들을 건설하였습니다. 라멕의 후손들에게서 산업과 문명이 융성했습니다. 도성의 문명과 산업이 발달했던 반면에, 사회적 폭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였습니다(4:20-24). 라멕의 후예들은 도성을 쌓고 문명생활을 하면서 힘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이윽고 네필림이라는 위대한 엘리트들이 생겨났습니다(6:1-4). 네필림이라는 거구의 종족들은 강하고 힘센 폭력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휘두른 폭력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연이 망가지고 하나님의 소중한 피조물인 인간의 인권이 유린되었습니다(6:5-6). 이 땅에 폭력이 가득 차게 되었을 때, 주께서는 노아의 가족만을 제외하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을 멸절시켜 버리셨습니다(6:11).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는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생명살림의 사명을 저버리고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살게 되었습니다. 타자를 위한 사랑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죄의 실체입니다. 자신을 내세우는 이기심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카인은 아우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모든 폭력의 배후에는 분노가 있으며 분노는 이기적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서 생기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죄는 폭력이라는 행위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노아홍수 이후에도 함의 후예들 중에서 니므롯과 같은 용사들이 출현하여서 도시국가들을 또 세웠습니다. 도시국가들이 연합하여서 왕국들이 출현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서 창세기 10 10절은 <마믈레케트>라는 히브리어로 표현합니다. <마믈레케트>란 단어는 ‘왕국’을 가리키는 전문용어입니다. 왕을 <멜레크>라고 하는데 이들이 다스리는 국가를 <마믈레케트>라고 부르니 우리말로는 ‘왕국’이라고 번역합니다. 영어로는 Kingdom입니다. 사무엘상서 8장은 이스라엘에 왕국이 생겨난 기원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왕국의 문제점들

사무엘상 8장의 본문은 왕국의 문제점들을 일곱 가지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왕을 세워달라는 장로들의 간청을 듣고 사무엘은 몹시 언짢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요구는 주께서 세우신 가나안의 평등사회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영도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 있던 우상숭배의 도시국가들을 모조리 진멸하고 거기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평등한 말씀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사사들의 통치로 평화를 이어가면서 이스라엘은 왕이 없는 언약의 공동체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계약공동체는 야훼 하나님을 임금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공동체였습니다. 세상의 왕국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조금씩 평화를 확대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역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로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해 주는 왕들을 옹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무엘상서 8 5절과 20절에 의하면 장로들은 “모든 나라와 같이, 또는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했습니다. 왕을 세워서 왕국을 건국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자 사무엘은 무척 슬퍼했습니다. 왕들이 통치하는 방식은 하나님의 통치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것임을 그들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왕들이 통치하는 방식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는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11).

    2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12)

    3.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다(12).

    4. 그는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이다(13).

    5. 그는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 너희가 거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14-15).

    6. 그는 너희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이다(16). 

    7. 그는 또 너희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17). 

왕국을 세우면 관료라는 지배층이 등장할 것이고 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안보를 위하여 군사력을 증강시킬 것입니다. 한편 백성들은 군역과 부역에 동원될 것이며 세금을 납부하는 납세가 제도화될 것이며 왕은 백성 위에 폭력으로 군림하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왕국의 부작용을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면 이러한 폭력에 근거한 통치의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설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과 장로들은 세상 이방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왕을 옹립해 달라고 고집을 피우며 집요하게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로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면서 왕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직접 경험해 보라고 마지못해 허락해 주십니다. 이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사울을 왕으로 옹립하고 사울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사람이 세운 왕국은 다윗왕조를 거쳐서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했다가 마침내 둘 다 멸망하고 마는 실패의 여정을 걷게 됩니다. 사무엘상서는 왕국 멸망의 첫발을 내딛는 장면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국가들과 하나님의 나라

오늘 봉독한 마태복음 22장의 본문은 예수님을 해치려는 바리새인의 음흉한 질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답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에는 예수께서 왕국의 도시들에 대해 선포하신 심판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시대의 도시국가들의 악행을 질타하셨습니다. 고라신과 벳세다, 가버나움과 같은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이웃사랑은커녕 이웃을 착취하고 박해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예언하셨습니다.

물론 예수시대에 유대를 지배하였던 국가는 로마제국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는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세워서 가나안 지역의 통치를 맡겼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지역을 특별히 관리하려고 빌라도라는 총독까지 파견하였습니다. 가나안의 민중들은 로마제국의 치하에서 이중삼중의 착취를 당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제국과 헤롯의 통치와 야합하여 그들과 더불어 민중의 고혈을 빨아 먹으며 호의호식하고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며 그가 와서 유대를 구원하고 독립된 왕국을 세울 것이라며 다윗왕국의 옛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왕국의 재건이라는 그들의 청사진을 잘못된 성경해석이라고 질타하셨습니다. 세상의 왕국을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한 것임을 지적하셨습니다.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곧 참된 메시야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예수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 보다 먼저 있었다고 답변하셨고, 심지어 아브라함보다도 더 먼저 예수가 있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체제를 지탱해온 정신적 지주였던 예루살렘 성전을 송두리째 부정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거짓된 신전이기 때문에 사흘만에 허물어 버리고 참된 새 성전을 세워주시겠다고 공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폭력 위에 세워진 이 세상의 어떤 나라와도 다른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담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친히 다스리시는 믿음의 공동체를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이 비전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생겨난 부활신앙의 공동체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폭력과 전쟁으로 고통스러운 국가에 역사적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들이 세워지고 지중해 전 지역에 사랑의 메시지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폭력과 죽음의 세력에 갇혀 있던 인류의 역사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대노예제 사회는 폐기되기 시작했고 중세의 농노제 사회는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근대사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을 필두로 세계에는 왕정체제가 무너지고 세상에서 억압당하던 민중들이 국가의 주체로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근현대사는 이러한 민주적 민중들이 왕들을 폐위시키고 국가의 권력을 차지하는 일관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문화하여 주권재민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모든 왕정체제의 불의를 타파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시대 정신의 발로였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체제의 정립은 불가역적이며 되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진보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은 성경 속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된 역사의 발전 방향에 부합합니다.


교회개혁의 전망 속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성립하고 유지되는 장기적 전망을 내다보면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건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바울은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를 잘 받들고 운영하려면 그 성원 각 사람이 성숙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왕국의 폭력을 극복하고 주권재민의 원리로써 민주주의 국가를 운영하려면 국민 개개인이 폭력을 버리고 사랑의 일꾼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점을 무척 강조하였습니다. 폭력을 조장하는 탐욕을 내려놓고 사랑을 선양하는 새로운 성령의 능력이 민주국가의 운영 주체인 국민 개개인에게 충만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모든 개혁은 추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민주주의를 표명하면서도 폭력과 차별과 착취와 지배와 전쟁의 악행을 멈추지 않습니다.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권력자들이 상존하고 있으며, 국가들 사이에는 전쟁의 위험이 늘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들이 돌출하여 범죄가 만연하고 경쟁이 치열하여 권력과 부의 독과점과 세습의 현상이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경쟁주의 교육체제 하에서는 참된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인재들이 육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마저도 탐욕과 욕망의 실현에 빠져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참된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는 대의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국가의 세속적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형교회를 지배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세상풍조에 덩달아 세속주의를 부추기며 타락의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교회가 바르게 개혁하려면 국가개혁의 과제와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 현상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울을 위시한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당대에 당면했던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세밀하게 논했습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개혁

베드로 사도께서는 성령께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능력을 힘껏 증언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이한 일과 표적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증언하신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이한 일과 표적은 시편 40편의 시인이 노래한 찬양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은 권력과 폭력으로 운행되는 세속국가를 무너뜨리고 사랑과 평등과 자유의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시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다윗왕국의 재건을 추동하는 메시야 대망은 이제 버려야 함을 베드로는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나사렛 예수께서 참된 메시야이시며 다윗 보다도 먼저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비로소 세상의 국가들이 강요하는 권력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은 하나님나라의 참된 현실이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참된 개혁의 지표를 오늘의 본문 말씀이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온 누리에 선포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근현대사를 거쳐서 새롭게 정립한 민주주의의 국가들에게 참다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교회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회는 스스로를 부단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개혁하고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탐욕과 정욕에 물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능력에 충만한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죽음의 열매를 맺었던 지난 날의 모든 악한 역사를 벗어 던지고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이 시급합니다. 지금 교회가 받은 개혁의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다윗과 엘리압의 대조법을 통해 보이는 개혁의 지표와 방향성

사무엘서 16장은 엘리압과 다윗이라는 두 가지 인물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맏아들 엘리압은 키도 크고 영웅과 같은 풍모를 띠고 있었습니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16:7) 엘리압은 사울처럼 키가 크고 준수한 영웅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그 중심을 보십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던 다윗이 돌아왔습니다. 12절을 한글개역 성경은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라고 번역했고 새번역 성경은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역은 둘 다 좀 수정하고 싶습니다. 엘리압에 대한 묘사는 왕에 대한 통념을 반영한 반면에 다윗에 대한 묘사는 겸손하고 순수한 신앙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묘사가 서로 대조되도록 번역해 주어야 더 정확합니다.

엘리압을 묘사하는 히브리어 <거보아흐 코마토>란 표현은 전쟁용사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육적인 능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순전한 신앙인을 지도자로 택하십니다. 막내 다윗에 대한 히브리어 묘사는 <아드모니> <여페 에나임> <톱 로이>란 세 가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장군이나 왕이나 엘리트와 같은 인간의 육적인 위대함을 나타내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막내 다윗에 대한 묘사는 권력자로서의 왕에 대한 통념과 거리가 멉니다. “그는 붉고<아드모니> 눈이 아름다웠고<여페 에나임> 보기에 좋았다<톱 로이>”라고 번역하면 더 낫습니다. 양떼 가운데서 먹이고 있었다는 표현도 다윗의 일상적 노동을 묘사하는데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생명의 일꾼임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습니다(11,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וְהִנֵּה רֹעֶה בַּצֹּאן). 히브리어 <로에 하촌>이란 어구는 창4:2에 사용되어 아벨의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윗은 백성 위에 군림할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먹이고 섬기고 받드는 생명의 일꾼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울의 타락상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하였습니다(삼상16:2). 이는 사울이 폭력을 휘두르는 데 익숙해졌음을 시사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명령은 이제 사울 왕에게는 모반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어서 야훼 하나님의 명령도 아랑곳하지 않는 교만한 상태로까지 타락하였고 사무엘과의 관계도 더 이상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원수로 변질하였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말씀으로 맺어진 사랑의 관계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러한 폭력의 관계를 극복하는 일이 교회개혁의 일차적 과제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의 과제는 어렵지 않습니다. 주께서 친히 명하시고 친히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단순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의 지상과제는 말씀 준수라는 사명으로 펼쳐집니다. 이러한 교회의 개혁과제는 국가의 개혁 없이는 완전하게 이루질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주권재민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주권재민의 원리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권력의 주체가 된 모든 국민은 저마다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왕들과 귀족들의 면모를 완전히 벗어 던져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새롭게 겸손한 일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권력과 부를 세습하면서 낡아빠진 왕권사회의 권력층을 세우고 오래 영위하려는 모든 죄인의 시도는 성경의 말씀 앞에서 남김없이 분쇄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은근 슬쩍 들어와서 자리잡고 세속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든 세속적 권력의 형체들은 남김없이 청산해야 합니다. 참된 교회개혁은 모든 국민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여 스스로 희생할 줄 알며 온갖 탐심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교회개혁의 과제는 이처럼 지난한 과제입니다. “개혁한 교회라 할지라도 계속 개혁해야 한다는 칼뱅 선생님의 가르침이 오늘도 귀에 쟁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단히 교회와 국가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말씀 아닌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된 관습과 선입견과 제도들을 버려야 합니다. 말씀에 맞는 새로운 생각과 삶과 행동을 교회에 도입합시다. 말씀이 아닌 모든 인간의 권력이 교회 안에 있다면 그 모든 죄의 형체를 남김없이 무너뜨립시다. 구체제를 해체하는 동시에 새롭게 세워야 할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의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시는 성령의 새로운 능력을 받아서 종교개혁 주일에 개혁의 의지를 다시 다짐하며 또 한 해를 힘차게 전진하는 개혁의 새로운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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