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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8-2) - " 위기의 광장에서 거룩한 광야로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19-10-19 (토) 16:13 4년전 1976  

본문) 삼상 8:1-22, 롬 7:5-13, 마 11:16-24

  

오늘 우리의 시대는 광장의 시대입니다. 오늘의 광장은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 곳입니다. 모든 대중매체가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도합니다. 모든 뉴스의 초점 광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 문화도 저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지는 광장에서 시작됩니다. 저 광장을 지배하는 사람이 가장 힘 있는 자요, 의인입니다. 저 광장을 지배해야 이깁니다. 가장 쉽게 세상을 지배하는 일은 저 광장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가장 쉽게 역사의 의인이 되는 방법도 저 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 광장과 거리가 의롭고 성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억울한 자, 약한 자, 고통당하는 소수자들이 모여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의의 소리를 외쳤던 곳이었고 세상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 내던져진 사람들이 갈데없어 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러워 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외치던 곳입니다. 외치다가 두들겨 맞기도 하고 잡혀가기도 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기도 했습니다. 고통의 눈물과 희생의 피가 흘려진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저 홍콩의 광장과 거리에서는 매 맞고 체포되고 최루탄 마셔가며 자유와 평화를 위해 눈물과 희생의 피가 흘려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점점 그 광야의 외침이 큰 함성이 되고 들불처럼 일어나는 강한 힘이 되어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키기도 하자 이 매력적인 공간을 탐내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아무 희생의 대가를 지불한 적이 없는 이들이 눈물과 희생으로 얻은 자유의 공간에 무임승차하여 가장 쉽게 세상을 정복하고 내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욕망의 도구로 야욕의 무기로 삼으려고 합니다. 과거의 의롭고 거룩했던 광장은 지금 더러운 이를 탐하는 장사꾼들의 발걸음과 종교장사를 하는 타락한 성직자들의 외침으로 더없이 추해지고 소란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위기의 광장으로부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우리의 골방, 저 광야로 돌아가 세례요한처럼 내 가슴을 치고 참 회개를 외치며, 사람들이 주목하는 넓은 길거리로부터 조용히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거룩한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이 좋은 왕이 되십시오(삼상8:1-22).

 

우리가 원하는 좋은 왕을 세운다고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빨리 타락하는 방법은 좋은 왕 세우는 일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명분은 좋습니다. 좋은 왕 세워야 좋은 나라가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백성을 이끌었던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로 인해 나라가 평안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보아도 매우 타락했고 허물이 많았으며 이스라엘을 이끌만한 리더십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고 그 주위에 있는 강한 왕들을 보았습니다. 강한 왕을 세우면 나라가 갑자기 눈에 띠게 강해집니다. 군대를 이끌고 나가면 한 순간 엄청난 부요가 함께 따라옵니다. 그러니 우리도 강한 왕을 세우자! 그랬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사무엘에게 원한 것은 사무엘같이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저 주변에 거대한 힘을 가지고 순식간에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왕을 세워 우리 살림살이가 부요해지고 강한 힘을 갖게 기를 원했습니다. ! 정말 매력적인 유혹입니다. 좋은 대통령 뽑고 민주주의 바로 세우고 바른 법을 만들고 좋은 국회의원 세우면 잠시 동안 세상이 금방 눈에 띄게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좋은 지도자를 세우고 악한 제도를 고쳐가는 일을 부정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을 아시고 하나님 대신 왕의 통치가운데 살기를 원하는 이스라엘의 원대로 왕을 세워 주십니다.

 

제일 빨리 세상을 눈에 띄게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정치권력을 가진 지도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방 표면적인 변화가 오고 세상이 금방 새로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하나 갈아치우고 새 법을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처럼 항상 주의 전에 머물며 그분이 말씀하시는 바를 주목하며 주의 말씀을 거역하는 길을 걷지 않고 오직 주의 명령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친히 그 민족의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고 이끄시고 도우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발하는 광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광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아리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 곳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십시오!(7:5-13)

 

하나님의 법은 내가 지키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율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는 자임을 알아야 됩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대로 못산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나를 포기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순종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는 통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할 뿐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지 못합니다.(7:5-7) 보십시오! 율법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죄를 몰랐으나 율법이 옴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나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또한 율법은 죄를 책망하며 우리를 꾸짖습니다. 그러나 죄에서 우리를 건져내지 못하고 오히려 죄책감을 갖게 하고, 두려워하게 하며 절망하게 합니다. 죄에서 떠나게 하지 못하고 죄를 속량하지 못합니다.(7:8-11)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해주고 우리를 죄에서 떠나라고 책망하지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살려낼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죽습니다. 절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 앞에서 죽어야 합니다. 나는 율법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당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한 선배목사님이 군목을 제대하고 경기도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개척예배를 참석해서 개척목회를 새로 시작하는 목회자로서 참석한 분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공수부대 군목으로 근무할 때 고공 낙하훈련을 하는 병사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그들을 격려하는 기도를 해주기 위해 그들과 함께 점프를 시작했답니다. 그 목사님이 첫 점프를 할 때 얼마나 긴장됐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오직 낙하산을 목숨 걸고 붙잡았다고 합니다. 그 줄 놓치는 순간이 끝나는 순간이요 죽고 마니까요! 지상에 내린 후 낙하산을 접어야 하는데 얼마나 줄을 굳게 잡았던지 줄잡은 손이 펴지지 않습니다. 훈련조교가 와서 손가락을 잡고 펴줄 때에야 손을 펼 수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늦은 나이에 개척 목회를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렵지만 단 한 가지 제가 첫 점프를 한 때의 심정으로 오직 주님만 붙들고 그 손 절대 놓지 않고 날마다 그 손잡고 목회하겠습니다.” 그 목사님 교회 든든하게 잘 세우고 목회 훌륭하게 하시고 은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을 알고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율법대로 살지 못함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함께 매는 겨리 소가 되어 주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쉼을 얻습니다.

 

오직 그 행한 일로 인하여(11:16-24)

 

하나님의 법으로 남을 비판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자신이 그 법대로 행한 일로 인해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예수님은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십니다. 넓은 장터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놉니다. 유대의 아이들이 장터에서 잘 하는 놀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피리불기 놀이입니다. 한 아이가 피리를 부는 역할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그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합니다. 주도권은 피리 부는 아이에게 있습니다. 빨리 불기도 하고 늦게 불기도 하고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은 그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가만히 앉아서 피리 부는 아이가 힘겹게 춤추는 아이들을 비난합니다. 왜 춤을 안 추냐? 왜 늦게 추고 또는 빨리 추느냐? 그것도 춤이냐? 피리 부는 아이만 쉽고 좋습니다. 자기가 피리 부는 데로 춤을 춰야 하니까요! 다른 놀이 하나는 장례식 놀이입니다. 한 아이가 입으로 애곡하는 소리를 냅니다. “아이고 아이고!”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은 이 곡소리에 맞추어 가슴을 막 두들기고 몸부림을 쳐서 슬픔을 나타내야 합니다. 역시 주도권은 곡하는 아이에게 있습니다. 가만 앉아서 슬픈 소리만 내면 다른 아이들은 그 곡소리에 맞추어 가슴을 치고 땅을 치고 몸부림하며 그 슬픈 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힘들어요! 곡 소리하는 아이가 비난합니다. 내가 크게 곡하는데 왜 가슴을 잘 안치느냐! 가만 보면 피리 부는 아이와 곡하는 아이가 주도권을 갖고 다른 아이들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사람에게 왜 이러냐 저러냐 비난하는 자들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의로운 일을 행한 사람인가로 인정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목사들에게 가슴이 철렁거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바르게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바르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얼마나 정의로운 말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정의롭게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좋은 왕을 세우는데서 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리가 사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그 말씀으로 다스리는 곳이 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연약함을 알고 회개하며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그 법을 실천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 말씀을 이루며 사는 곳에 세워집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으로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으로 내 가슴을 치며 겸손히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곳에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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