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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6-1) - " 하나님께 부요하라 " / 김은승 목사

관리자 2019-10-02 (수) 09:31 21일전 57  

본문) 신 26:1-15, 고후 9:6-15, 눅 12:13-21

안데르센이 쓴 임금님의 새 옷이라는 글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 직책에 걸맞지 않은 사람 또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은 임금님이 입은 옷을 볼 수 없을 거라고 하는 말에 속아 임금님은 새 옷을 입고 행차를 했습니다. 신하들은 자기들 눈에 임금님이 입은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 탄로날까 감히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하나가 이 모습을 보고 임금님이 벌거벗었다하고 소리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는 인정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남들은 다 인정하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그래서 차마 자기 입으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런 형편을 빗대어 말할 때,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런 형편은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개 성도들은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분들이라면 어련히 신앙이 좋고 그 삶도 경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더라도 어떻게든 좋게 해석하려고 애를 씁니다. 또 이런 암묵적인 인정이 있기 때문에 본인들도 자기의 연약한 부분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거룩한 체 합니다. 서로 서로 한 꺼풀 마스크를 쓴 채로 사는 격입니다. 그러니 외부 사람들이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초대 교회에도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 주인공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교회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가리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3:17).” 사실 부자이기 때문에 잘 차려 입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자기들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채로 살았기 때문에 벌거벗은 것과 같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성도로 잘 살고 있습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부요한 자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자녀가 장성해서 직장을 가지게 되면,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합니다. 자식이 사 준 그 유명한 빨간 내복은 아까워 입지도 못하고 대개는 장롱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빨간 내복은 아들이 받은 첫 월급이 넉넉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부모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빨간 내복은 너무 값비싼 것이어서 귀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 입장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은 그간 키워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추었으니 걱정 마시라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빨간 내복을 든 부모님의 마음에는 자식이 참 대견하고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싸구려 빨간 내복일지도 자식의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있기에 더없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예 노골적으로 빨간 내복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에 정착해서 결실을 거두었을 때, 땅에서 거둔 모든 농산물의 첫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은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음을보고 드립니다 하고 아뢰라 하셨습니다. 사실 주님 앞에 내 온 첫 열매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겠습니까? 거대한 포도 송이는 고사하고 몇 줌의 올리브 열매들, 무화과 열매들 뿐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열매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이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 되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복 주실 하나님의 약속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바치는 첫 열매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열매들을 앞에 둔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 했지만 사실 그 땅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써서 그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불레셋 사람들, 아모리 족속들과 끊임 없이 분쟁하면서 그 땅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땅에서 그들이 일구어낸 결실들은 그야말로 자기들이 힘써 살아온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열매들을 하나님께 먼저 가져 온 것은 마치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해 온 모든 시간들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을 깨닫는 자식들의 심정과 같은 것입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을 먹고 살았다는 감사가 있기에, 자기 손으로 거둔 첫 열매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첫 열매를 가져오면서 자기들의 첫 출발점부터 반추합니다. 그들은 우리 조상은 떠돌이였습니다라는 말로 고백을 시작했습니다. 떠돌이였고 이집트의 노예였던 자신들이 이제 땅을 차지하고 제 손으로 일해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것도 모든 것이 안정되고 성취되었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고, 자기 힘으로 힘써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있게 된 그 사실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힘써 살아가겠다고, 염려하지 마시라고 부모님을 안심시키듯 하나님께 보고 드리는 것입니다. 결실의 계절에 이와 같은 감사와 다짐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믿음에 기초하여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갈 방법을 제시합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첫 결실을 가져왔을 때에 레위 사람들과 외국인까지 다함께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 자신들의 형편이 이방인들과 같았음을 잊지 않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믿는 사람의 일상이 나눔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에 구제헌금을 요청하면서, 이렇게 돕는 일이 어떻게 모든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지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다른 성도들을 도울 수 있도록 넉넉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고린도교회 위에 있습니다. 둘째는 이들이 남을 돕는 일을 통해 스스로의 의로움을 세움으로써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은혜가 넘칩니다. 셋째는 도움을 받은 이들이 이 헌금을 통해 궁핍함을 면하고 또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기 때문에 은혜롭습니다. 넷째는 도움을 받은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기 때문에 은혜롭습니다. 일일이 다 셀 것도 없이 바울 사도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는 이런 은혜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사도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는 이나 받는 이나 모두가 넉넉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와같은 나눔의 삶에 대해 하나님께 부요한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 때문에 사람은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는 일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삶이란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주머니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주머니입니다. 그러니 주머니가 빌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자선을 베푸는 일인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은 하늘의 복을 받아 살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통해 모두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일과 이웃을 돕는 일 사이의 긴장관계는 때로 오해를 일으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구제하는 일에 각별한 의미를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자기를 내어주기까지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았을 때, 제자들은 돈을 허비했다고 분을 내며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위를 자기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로 여기시며 여인이 한 일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내밀한 교감과 소통의 깊이를 제자들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귀한 일을 두고 돈을 허비하는 일이라고까지 폄하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가치롭게 여겨지지 않는 일에 정성을 쏟는 일을 두고 사람들은 쉽게 그 가치를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빨간 내복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 첫 열매를 바치듯 자기의 정성을 다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치를 논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면에 사로잡혀 자기 만족의 헌금을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당장 도움을 구하는 이를 옆에 두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만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 역시 본질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허례에 가득찬 바리새인들을 향해 질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태23:23).”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은 사람에게도 부요한 사람입니다. 부요한 자로서 이웃과 나누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부요한 사람입니다. 그 주머니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사람은 참으로 부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차고 넘쳐서 만인에게까지 그 은혜가 흘러가게 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압니다. 다만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거룩함이라고 하는 위선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인생을 선택해 주시고 그 이름을 하늘 생명책에 기록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진실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삶의 자리가 아무리 고단하다 할지라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진실되게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은 나를 넘어서서 형제들과 또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랑을 통해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감사와 나눔이 우리 삶에 있을 때에 우리는 세상이 입혀주지 못하는 거룩한 옷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다함 없는 복을 받아, 세상에 대해서나 하나님께 대해서나 진정으로 부요한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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