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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창조절(4-2) - " 풍랑에 시달리는 교회에게 " / 김거성 목사

관리자 2026-09-25 (금) 17:24 1시간전 4  

본문) 욥 37:14-24; 롬 9:14-26; 마 14:22-33)


창조절 넷째주일, 한가위 명절 잘 보내셨는가요?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이 예배 공동체에, 평화를 주시는 주님, 또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길 빕니다. 


1. 실마리


남과 북 교회의 대표들, 그리고 세계교회 대표들이 스위스 글리온에서 만나 성만찬을 함께 나누며 평화의 원칙을 확인하고 연대하기로 합의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International Ecumenical Peace Convocation)에서도 글리온 정신을 기억하고 이어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첫날 기조연설에서 스웨덴교회 요나스 욘손(Jonas Jonson) 주교는 신앙인들의 사명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온 세계를 아우르는 생태 문명, 곧 상처가 치유되고 공의가 바로 서며 정의로운 평화가 실현되는 세계, 한마디로 ‘에큐메니컬 공동체’(civitas oecumenica)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 자료집”(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26), pp. 32-48.


지난 2024년 내란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지만, 크고 작은 일들이 여전히 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서 이제는 마치 그런 일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에큐메니컬 공동체의 목표는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2. 바람과 풍랑


멀리 여행을 할 때 보면 비행시간이 짧을 때도 있고 더 걸릴 때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제트기류입니다. 항공기의 제트기류가 순풍, 배풍(tail wind)으로 강하면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역풍, 정풍(head wind), 즉 맞바람이 강하면 오래 걸려서 항로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착륙 때에는 오히려 맞바람을 받기 위해 풍향에 따라 공항마다 이착륙 방향을 바꿉니다. 


행 27:4에 보면 “시돈을 떠나 행선할 때에, 우리는 맞바람 때문에 키프로스 섬을 바람막이로 삼아서 항해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성능이 강력한 엔진들이 있어도 이 맞바람이 부담스러운데, 당시 사람이나 바람의 힘에만 의지하는 조그만 배야 말할 나위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 본문에는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가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으로 풍랑을 만나 몹시 시달리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다는 말씀에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마가에 따르면 그 건너편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 벳세다였습니다.(막 6:45)

 

날은 이미 저물었고 제자들이 탄 배는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바람이 거슬러 불어와 풍랑에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 바로 맞바람입니다. 열 명 남짓 타고 있었을 작은 배, 엔진도 없이 사람들이 손으로 노를 저어 나가야 하는 보트였을텐데, 맞바람에 풍랑까지 닥치니 정말 그 제자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3. 풍랑 속에 있는 교회


당시 복음서 기자(들), 또한 그 복음서를 읽을 독자들이 살고 있던 그 시대 교회는 어떤 상황을 겪었는가요? 기독교 박해의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네로 황제 시기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서기 54년부터 68년까지 재위했습니다. 마 14장의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 오병이어의 기적에 이어집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교회가 박해당하고 있는 당시의 현실과도 오버랩됩니다. 주후 64년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6일이 지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히는데, 이 화재로 말미암아 로마 14개 구역 가운데  열 곳, 전체의 71%가 초토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네로가 방화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결국 네로는 이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합니다. Tac. Ann. 15.44 : “결과적으로, 네로는 그 보고서를 없애기 위해 하층민들이 기독교인이라고 불렀던 그들의 혐오로 인해 증오하는 계급에 극도의 고문을 가했다. 그 이름의 기원이 된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치세 동안 우리의 대리인 중 한 명인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손에 의해 극심한 형벌을 받았으며, 그래서 그 당시 통제되었던 가장 해로운 미신은 첫 번째 악의 근원지였던 유대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모든 흉측하고 수치스러운 것들이 자신의 중심지를 찾고 인기를 누리는 로마에까지도 다시 나타났다./ 


그래서 유죄를 자인한 사람들을 먼저 체포하고, 그들이 실토한 정보에 따라 수많은 군중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것은 도시를 불지른 죄라기보다는 인류에 대한 증오 죄였다. 온갖 조롱이 더해졌다. 그들의 주검은, 짐승들의 가죽으로 뒤덮여 개들에게 찢겨 죽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날이 저물면 불에 태워져서 밤을 비추게 되는 운명이었다. / 네로는 이 구경거리를 위해 그의 정원들을 내어놓았고, 전차부(전차 모는 사람) 복장을 한 사람들과 뒤섞이거나 전차 꼭대기에 올라서서 서커스에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극단적이고 본보기로 처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들에게도 연민의 감정이 생겨났다. 보이는 것처럼 공공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한 사람의 잔인함의 탐닉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풍랑 속에 있는 제자들의 배를 교회의 상징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교회 본당에서 평신도 예배자들의 자리를 설교자나 성가대 자리와 구별하여 영어로 ‘네이브’(nave)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navis’에서 유래했는데, 바로 배라는 뜻입니다. 이미 오래전 1세기 때부터 배는 교회의 상징이었습니다. 1948년 출범한 세계교회협의회(WCC)도 배 모양의 로고를 사용합니다. https://www.oikoumene.org/resources/logo


4. 차별, 혐오, 박해의 풍랑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일 한국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이른바 혐한 시위가 확산했습니다. 유럽에서도 외국인들을 혐오하며, “외국인들 나가라“(Ausländer Raus)는 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정이나 경제적 난관을 이주 노동자들 등을 공격하며 이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세력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혐중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세를 과시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악정이나 실정을 감추기 위해서 특정 대상을 공격해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물론 마 14장에서도 헤롯 또한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비판을 그를 참수함으로 답하지 않았습니까? 앞서 언급한 네로 황제 뿐만 아니라 100년 전 일제 하에서 간토 대지진 때 조선인 등을 그 공격했던 일이나, 85년 전 히틀러 하에서 ‘수정의 밤’ 이후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을 희생 대상으로 삼았던 역사를 기억합니다. 요즘에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차별 살상하고 있기도 합니다. 


1. 풍랑에 시달리는 교회에 오시는 주님


안타깝고 억울한 현실 속에서, 조그만 보트 속에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그 제자들과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까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불공평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욥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욥은 ”오늘도 이렇게 처절하게 탄식할 수밖에 없다니! 내가 받는 이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그분이 무거운 손으로 여전히 나를 억누르시는구나! 아 그분이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욥 23:2-3a) 사도 바울은 오늘 로마서 본문에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다“(롬 9:16)고 답합니다. 


풍랑을 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여기서 다 죽는 것 아닌가?’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는 이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른 새벽에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바다 위로 걸어 오시는 예수를 본 제자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유령이다!”(마 14:26) 소리를 질렀습니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말씀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합니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갑니다. 그렇지만 그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자,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면서 외칩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2. 마무리


이기심과 탐욕울 바탕으로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는 현실 속에서 정의롭고 공감하며 연대하는 사회는 마치 신기루처럼 여겨집니다.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생활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일도 불가능한 꿈처럼 생각됩니다.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 또한 멀고 힘든 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우리 가정이나 교회, 나아가 이 사회와 세계에서 여러 가지로 풍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시편 1편에서 시인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복 있는 사람과 ”한갓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은 악인을 비교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악행들의 주인공들, 악인들의 종국을 시인은 뭐라고 노래했는가요?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는 말씀이 시 1편의 결론입니다. 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는 약속을 받는 복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주님의 뜻을 찾으려 애쓰며 어렵지만 그 길을 함께 갑니다. 그 길이 교회의 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희망, 용기와 격려를 받으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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