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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11-1) " " 참 사람으로 사는 길 " / 홍철화 목사

관리자 2022-11-10 (목) 19:20 1년전 410  

본문) 왕상 8:12-30, 고전 3:10-17, 마 12:1-8

  

 

  정년 은퇴 후 곧바로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에 출석하여 꾸준히 그 한 교회에서 이제까지 함께하고 있다. 올해 부활주일에는 그동안 그 교회 주보에 실렸던 글들을 <날마다 새롭게>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고 북 콘서트를 정성 들여 마련했었다. 나이 든 시니어로 말씀 전한다는 게 한편 부담스러우나 큰 보람이고 기쁨이기도 하다. 유동식 박사는 100세 고령인데 연세대 교회에서 매년 초 설교한 내용이 유튜브에 소개된다. 매우 감동적인 말씀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이 어려운 시대에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며, 그 교회에 몸담은 구성원들의 책임은 과연 무엇일까? 매년 종교개혁 주일을 지키면서 교회의 갱신을 소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지탄받는 일이 많다. 코로나 19 재난을 2년 이상 경험하고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기도하고 몸부림치는 것 같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시련을 거치면서 새로운 출구를 찾는 교회가 생기고 있다. 그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전적 인도를 따라야 하겠다. 


  오늘의 성서일과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려는 뜻이 담겨 있고, 서신서에 사도 바울이 놀랍게도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을 주신다. 그리고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폭탄적 선언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하신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그 뜻을 따르고 그가 인도하시는 길을 간다면 겁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면 된다.

  

  1.구약 말씀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당 건축물을 대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구약 출애급기의  광야 장막을 생각한다. 그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버텨내고 드디어 가나안 땅에 입주하였다.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기가 있었고 ,그 후 다른 나라처럼 왕국이 시작되어 사울 왕 다윗 왕을 지나 솔로몬 왕대에 이르러 성전을 지으려고 한 것이다.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니 거기 걸맞은 성전이 얼마나 화려하고 자랑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유명한 성전 건축물에 대한 인상이 있을 것이다. 성지순례의 경험으로 베드로 성당과 밀라노 성당, 켈른 성당,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스페인의 아우디 성당 등... 이 건축물들은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졌고 지금도 리모델링을 계속한다. 유럽의 명소를 방문할 때마다 성당 안팎에서 보는 크고 화려하며, 유명 작가의 조각과 성화들 스테인드글라스 앞에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었을 것 같다. 그 성당을 품고 살았던 그곳 시민들이 과연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았을까? 종교개혁을 거치고, 교회가 신구 교회 갈등을 겪으며 서로를 증오하고 배척하였으며 결국은 전쟁과 학살로 이어진 비극을 대하면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손가락질과 걱정거리인지 새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막 13:1~2) 이 말씀을 읽는 사람이 예루살렘을 순례할 때 <통곡의 벽>에서 기도했던 경험이 떠오를 것이다. 그 폐허가 된 장소에서 무엇을 생각했을지 떠올려 보기 바란다. 솔로몬이 기도한 내용에 27절, ‘하나님, 하나님께서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라는 대목이 있다. 거기에 이어 30절, ‘그리고 주님의 종인 나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는 대로 용서해 주십시오.’그 용서와 화해와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해야 하겠다. (행 7:48~51 스데반의 설교 참조 바람)


  2. 서신서 말씀


  서신서 말씀은 보이는 집과 건축물, 사람들의 작품, 업적에 대한 말씀들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것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14절~에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라고 한다. 우리가 보이는 것들에 너무 좌우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참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잘 알 듯이,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온 것이다. 보이는 건축물이 있고, 보이지 않는 예술품들이 많다. 보이는 것들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 계시록 21:22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시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보이는 성전이 있듯이, 더 중요한 성전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교회가 있다. 그 가운데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것일까? 지금 다시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그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행 4:32~) 이 초대 교회 공동체의 힘은 사도행전에서 강조한‘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행 2:32)라는 것이다. 


  소박하고 본디 것을 찾으려는 생각을 해 보자! 우리가 뜻밖에 놀라운 코로나 19 재난을 경험했다. 교회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을 것이다. 교인이 줄었고 그 공동체를 운영하던 활력이 떨어져 앞으로 어떻게 할지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상상할 수 없는 환란과 핍박을 견뎌내고 더욱 순수하고 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 로마 근교에 있는 카타콤 공동체를 생각해 보자! 그 토굴 속에서 뜨거운 사랑과 믿음으로 예수님이 가르친 삶을 따랐다. 고난 속에서 그들이 처한 토굴이 성전이었고 자신들의 삶이 성전이었을 것이다. 지금 겪는 고난과 시련이 믿음의 공동체를 더 굳게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이 있다.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때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그러고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하고 하셨다. 이어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하셨다. 요한복음서에서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라는 것이다. (2:13~22)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중요한 직분자들을 향해 묻는다. 자신들이 무엇 하는 사람들이냐는 것이다.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갈등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될 말인가. 그들이 속한 분파의 대표들이 누구냐고 묻는다. 모두 하나님의 밭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임을 자인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 일터에서 서로 함께 물을 주거나 가꾸는 수고를 한 사역자로 안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정황을 깨닫게 하려고 엄히 경고하는 말씀이다.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일터에서 수고할 뿐 곡식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각각 하나님의 동역자요,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다.


  이런 존재감과 자의식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가운데서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6~17)


  3. 복음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규정은 율법정신을 표현하는 대표적 가르침이다. 현재도 이스라엘의 안식일은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일이라고 터치 안한다. 따라서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관념으로 예수님 당시 제자들이 행했던 것을 생각해 본다. 안식일에 그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윗의 일행이 굶주렸을 때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라고 하시며‘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에 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성경은 안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뜻깊은지 알려준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쉬셨다고 한다. 일이 중요하듯이 쉼 또한 중요하다. 일이 쉼과 이어지고 쉼이 다시 일로 이어진다. 이 순환질서는 깨질 수 없다. 마치 숨을 쉴 때 들숨과 날숨이 있는 것과 같다. 이 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그 자연 순환질서에서 사람의 생명이 유지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식일 규정 율법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이라 하겠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냐? 생명을 죽이는 것이냐? 어느 쪽이 귀하고 중한가를 선택해야 한다. 신명기 30장에서 사람이 복을 받는 길에 대하여 전한다. 그 전해주시는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 엄숙한 자리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길을 따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단적으로 명령하신다. ‘너희와 너희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15~20) 여기서 하나님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표현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이 표현을 신학적으로 교리상으로 설명한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 뜻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식을 낳으면 그 자녀들이 부모를 닮는다. 예수께서 공생애 출발하실 때 세례자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셨다. 그가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막1:9~11) 이 원체험으로 공생애를 일관하신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살라고 하시면서 <주의 기도>를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 참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보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살기보다 세상의 아들로 살기를 좋아하여, 거의 세상의 흐름을 따라 돈의 노예, 권력의 노예, 세상 인기의 노예로 사는 듯 보인다. 그것이 출세이고 성공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 엄청난 조류를 따라야만 사는 것처럼 길든 듯 보인다. 어떻게 여기에서 참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바리새인들같이 예수님의 흠집을 잡으려고 율법주의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생명을 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아들로 사랑하는 삶의 길을 갈 것인가. 이 선택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음이 바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선언이다. 


  하나님 아들로 사는 참삶은 솔로몬의 영광보다 비교가 되지 않는 존귀하고 복된 삶의 길이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를 보아라….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마 6:26~29)라고 하셨다. 


  우리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양 Top of the world 가사에 ‘내가 바라는 모든 세상 이뤄지네 바로 이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여 우리 하나 되니 지금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  난 지금 세상 꼭대기에서 모든 것 굽어보네 내게 사랑 있기 때문에 사랑은 내가 깨달은 생명의 비밀!’에서 감동하고 좋아한다.


  살기 좋아졌다고, 선진국으로 진입했다고 들떠있던 우리에게 청천벽력 같은 부끄러운 사건들이 줄줄이 터진다. 세월호 사건, 이촌동 참사! 참으로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자살율 세계 제일. 출산율 세계 최저. 산업재해가 계속 터지고. 남북 분단 현실로 오는 수많은 손실과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건가. 정신 차리자. 깨어나자. 세상의 자식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로 명실상부하게 하나님 나라를 사는 길이 우리 앞에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생명 중심, 사랑 실천의 참사람으로 살아 보겠다고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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