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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10-2) - " 예수님과 '주 안에서 죽는 자들' " / 이태영 목사

관리자 2022-11-05 (토) 09:56 1년전 439  

본문)  요 15:1~17, 삼하 1:17~27, 14:13~15:4 


농부와 참포도나무’(15:1)

 

농부에게 있어 포도나무는 친 자식과 다름이 없습니다. 묘목을 심고 정성껏 물을 줍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오가면서 어린 포도나무를 기릅니다. 땅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벌레가 먹지는 않는지, 새싹은 잘 올라오는지, 가지는 잘 벋고 있는지 매일매일 포도나무를 지켜보면서 돌봐줍니다. 포도나무를 참으로 사랑하는 농부는 한시도 포도나무를 잊지 않습니다. 농부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스러운 포도나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라는 말을 농부에게 붙여서 참농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참포도나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 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포도나무를 돌보는 농부의 모습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농부를 향하는 포도나무의 모습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포도나무는 농부가 자신을 과수원에 심어주기 전, 농부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합니다. 자신을 과수원에 심어줄 때 자신을 어루만지고 축복을 하던 그 마음을 기억합니다. 어린 포도나무가 커가는 과정에서 겪게 될 숱한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내고 복되고 알찬 포도송이를 맺기를 원하는 농부의 염원을 잊지 못합니다.

포도나무의 마음속에는 온통 농부가 있습니다. 농부의 발자국을 기다리고, 농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농부의 사랑어린 손길로 자신을 다듬어 주기를 원합니다.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고 충실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가지를 정결하게 해 주시는 농부의 사랑에 행복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농부가 되시며, 예수님은 참포도나무가 되신다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의 거룩한 관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포도나무와 참가지’(15:5)

 

포도나무와 가지는 하나입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달려있지 않다면 포도나무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할 뿐 아니라,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달려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면 그 가지는 금방 말라버리고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라버린 가지는 버려지거나 불쏘시개로 사용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참가지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며,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참된 제자들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15:5)이라는 말씀, 그리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15:7)이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레마, 15:7)사랑”(아가페, 15:9)계명”(엔톨레, 15:10)을 말씀합니다.

”(레마)는 예수님께서 주신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를 진실한 기도로 인도합니다. 이 기도 안에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15:7). “사랑”(아가페)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이 거룩한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15:10). “계명”(엔톨레)은 예수님께서 내려주신 율법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고 행할 때 우리에게 참된 기쁨이 충만해집니다(15:11).

 

예수님과 참친구들’(15: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친구”(필로스)는 그냥 친한 사이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므로 목숨을 내어주는 관계입니다. 특히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라는 말을 사용하실 때 모두 복수형인 친구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서 친구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적 의미에서 친구들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친구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나는 너희를 위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15:13)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너희를 위해 목숨을 버린 것처럼, 너희들도 다른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랑 안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15:14)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심으로 참친구가 되신 것처럼,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때 그들의 참친구가 되는 동시에 예수님의 참친구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삼하 1:26)

 

구약성경에서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는 사이였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인 사울 왕이 다윗을 해치려고 했을 때 항상 다윗의 편에서 다윗을 구해주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인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위치에 있었지만 다윗을 정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삼상 18:1, 3, 20:17) 여겼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이 죽이려는 다윗을 도왔습니다.

훗날 다윗이 사울 왕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이들의 죽음을 슬피 여긴 것은 요나단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 왕을 깊이 애도했으며, 요나단에 대해서도 심히 마음 아파했습니다(삼상 1:26).

 

 

예수님과 주 안에서 죽는 자들’(14:13)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은 순교자들에게서 꽃을 피웠습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14:13)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사랑의 완성을 이룬 분들입니다.

어린 양의 노래’(15:3)는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죄 없는 피를 흘린 어린 양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 이들(15:4)이야말로 참된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 이들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이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거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이들 안에 계시며 예수님께서도 이들 안에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일이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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