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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9-2) - "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 / 종교개혁주일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2-10-27 (목) 17:26 1년전 474  

본문) 삼상 16:1-13, 행 2:22-36, 마 22:41-46


이스라엘에서 왕은 하나님의 거룩한 대행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돌보고 살피며, 하나님 뜻대로 국가를 경영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영광을 드높이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던 하나님의 명령이고, 뜻이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왕은 모든 백성들의 거룩한 모델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권능을 드러내야 할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인물이었습니다. 왕의 신앙, 왕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할 존재가 이스라엘 왕이었습니다. 


처음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받았던 사울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셨던 신정 통치체제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왕정체제로의 전환기에 있던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자기 주관대로 행동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은 바로 이런 측면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행자로 택함 받은 왕이 그 뜻에 순종치 않으니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를 왜곡시켰고, 이는 나아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던 뜻을 거스르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존재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백성들을 타락하게 만드는 행위를 하나님께서 용납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매몰차게 그를 버리시고, 오늘 구약의 말씀을 통해 새로운 왕을 준비하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사실 처음 사울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은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대행자로 선택받았음을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선택하셨던 방법이 제비 뽑기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베냐민 지파, 베냐민 지파 중 마드리 가문, 그 중에서도 기스의 아들 사울이 선택되는 과정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왕으로 피택받은 사울은 자신을 세우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않음으로 결국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구약의 말씀은 처음 사울을 찾으시고 기름 부으셨던 과정과 같이 다윗을 택하여 기름붓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목할 것은 새롭게 선택하는 기준이 외모가 아니라 중심, 철저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겉보기에는 전혀 흠잡을 것 없던 사울이 정작 중요할 때 하나님 대신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려 했던 것에 대한 질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대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이나 자질, 외모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사무엘이 눈으로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에 차이가 있음이 드러납니다. 사무엘의 생각에 이 사람이겠구나 했던 이들은 하나님의 외면을 받고, 사무엘이나, 이새가 아니라 생각했던 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소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새로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누구보다 뜨거운 하나님 신앙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후일 골리앗과의 대결을 통해 증명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다윗이 선택한 무기는 다름 아닌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으로 승리했고, 그 믿음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던 것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드러납니다. 오늘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 백성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며 다윗을 예로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부흥과 영광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다윗이 기뻐하며 찬송하던 메시아요, 거룩한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왕이라는 다윗왕 조차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흠모하며 찬송했는데 어찌 다윗의 후손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부했느냐는 지적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는 다윗왕 조차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 장사 되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왕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 같은 길로 가지 않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으로 오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세상을 통치하게 되셨음을 증거합니다. 겉보기에는 다윗에 비해 보잘 것 없고, 한 일도 없고, 영광과 존귀를 받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윗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부활의 주인공이요, 위대한 권세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을 지적하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다윗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듯,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택하여 이 역사를 구원할 메시아로 보내셨음을 베드로는 증거하고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요, 계획이라는 점을 오늘 베드로는 담대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복음서를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질문 가운데도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내놓은 답은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다윗의 고백을 인용하여 그들의 대답을 지적합니다. 조상 다윗이 그 후손을 그리스도라 칭하며 어찌 찬양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말문이 막혀 어쩔 줄 몰라 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의 한계와 악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육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은 우리들의 생각, 판단을 뛰어넘는 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라 고백하며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생각이나 능력을 뛰어넘는 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작은 틀 안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전통이나 고정 관념에 의지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받은 사울은 분명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외모와 능력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을 잃게 되자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존재 다윗을 새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다윗조차도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이해 남북으로 분열되고, 외세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그 실패의 역사를 끝내고 세상을 향한 구원의 새 길을 열고자 예비 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구원자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그 처음은 목수의 가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땅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셨고,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거부했던 인간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죽었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그리스도임을 세상에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우리들의 생각과 기대,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낮고 작은 자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12제자를 통해, 초대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증거되고, 전해지게 되었음을 역사는 증명합니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상징적이며 중요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고 세우시는 지도자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능력, 지식에 따라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지며,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조차도 그 거룩하신 섭리 아래서 이 땅에서 활동하고,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거쳤음을 오늘 성경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이 역사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살피는 자세입니다. 오직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그 뜻대로,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500여년 전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성당 정문에 붙이며 중세교회와 정면으로 맞섰던 마틴 루터의 모습은 이 시대 우리가 닮아야 할 거룩한 모델이요, 오늘 말씀의 가르침대로 오직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실천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의 현실에 대한 자기 반성과 회개에서 출발한 신앙자정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로로 선택받은 종교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까지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던 현실을 바로잡고, 개혁하여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 종교개혁의 취지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종교개혁은 병들었던 중세교회를 건강하게 치유하고, 회복하는 거룩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역사는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종교개혁 당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목격합니다. 국민을 중심에 두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할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고집과 생각을 앞세우고, 나라와 민족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정치 이익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영광을 드높여야 할 교회는 세속에 물들어 갖은 꼼수로 세습을 정당화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과 정의를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코로나의 광풍으로 교회는 더욱 침체되었고, 하나님의 몸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보다는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 현실입니다. 이 때 오늘 말씀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며, 깨어있는 우리가 먼저 나아가 외치라 요구합니다. 깨어있는 우리가 먼저 나아가 주의 뜻을 선포하고 드러내라 명령합니다. 위기와 좌절의 시대에도,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깨어 기도하는 교회가 있음을, 깨어 말씀대로 실천하는 교회가 있음을, 깨어 거룩한 대행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가 있음을 드러내라 명령합니다. 그것이 흐트러진 교회를 바로 잡고, 흐트러진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는 지름길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할 하나님의 대행자가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치 못할 때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그 역할을 감당케 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대안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 뜻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고 헌신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고,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을 허락해 주셨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헌신하고 충성하셨던 그리스도의 모범 따라 이 시대를 바꾸고,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희망을 심는 거룩한 주의 일꾼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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