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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9-1) - "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교회" / 종교개혁주일 / 오정석 목사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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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창조절(9-1) - "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교회" / 종교개혁주일 / 오정석 목사

관리자 2022-10-27 (목) 08:11 1년전 338  

본문) 삼상 16:1~13, 마 22:41~46, 행 2:22~36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믿으며, 창조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2. 올해 창조 절기를 보내면서, 여러 상징적인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그리고 지난 주일의 사무엘까지입니다. 

3. 아담과 하와에게는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복이 되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애굽에서 학대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 시키라(출 3:9~10)고 하셨습니다.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에게는 강하고 담대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수 1:9)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삼상 3:19)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게 하셨습니다.

4. 다스림, 복의 통로, 출애굽의 지도자, 임마누엘, 사사로써의 지도자. 모두가 개개인들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5.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을까요?

6.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역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따라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와 책임은 한 개인에 머물지 않습니다. 개인에 이어서 공동체로까지 이어집니다.

7.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이길래, 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일을 대신할 사람 내지는 공동체를 세우실까요?

8. 그것은 온 피조물들을 향한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고, 피조물 사이의 서로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 사랑은 특정 민족, 특정 나라, 특정 대상이 아닌 온 피조물을 향한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누구나 골고루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창조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죠.

9. 결국, 창조주 하나님은 인류 보편적인 사랑을 완성하시려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개인을 뛰어넘는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가 바로, 먼저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뤄진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인 보편적인 사랑을 세상을 보여주는 대신할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복이요,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해야 하는 민족이 된 셈입니다.”


10. 지난 시간에 사무엘상 8장 말씀에서 신정 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바뀌는 이스라엘 민족 이야기를 확인했습니다. 비록 신정 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인 보편적인 사랑을 보여주며 하나님을 대신할 민족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왕이 된 사울은 어떻게 나라와 백성들을 지도하고 인도해야 할까요? 당연히 그의 통치는 왕정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통치여야 했겠죠. 그런데 결과는 실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채 아말렉 왕 아각과 품질 좋은 전리품들을 남겼습니다. 

11. 이것은 전쟁의 목적이 절대로 절대로 약탈이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긴 일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에서 약한 나라와 민족을 약탈하려는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12.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사람으로 다윗이 새로운 왕으로 택함을 받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택함을 받은 과정 중에 2가지의 기준이 나옵니다. 하나는 외모로써의 용모와 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면으로써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이 중에 외모가 아닌 내면, 즉 중심을 보십니다.

13. 하나님이 중요하게 보시는 “중심”에 따라서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를 비롯한 이새의 7명의 아들은 제외가 됩니다. 그리고 막내인 다윗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십니다.

14. 왜 다윗이었을까요? 다윗의 중심이 무엇이었을까요?

15. 본문에 보면, 다윗은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을 만나는 일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을 지키는 책무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후에 다윗이 왕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보면, 다윗의 중심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다윗의 신앙의 면모를 볼 수 있는데, 힘이 세다고, 군대가 많다고 약자를 공격하고 약탈하는 블레셋, 그리고 그의 장수인 골리앗을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갑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의 마음과 뜻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보편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이후에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러던 중에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며, 사울을 헤치지 않습니다.

16. 이처럼 다윗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맡겨진 양을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약자를 무시하고 약탈을 일삼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갔으며, 지도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월권하지 않았습니다.

17. 하나님은 다윗의 이러한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사람으로 택하셔서, 다윗이 다스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인류 보편적인 사랑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18. 그런데, 다윗 왕의 이스라엘도 점점 변질되어 갑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고, 솔로몬은 고된 노역으로 백성을 다스렸고, 정략결혼으로 수많은 이방신들을 이스라엘에 수입했습니다. 이후 남북으로 나뉜 유대와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세상에 보이는 일은커녕, 약소국을 약탈하기 위한 전쟁, 심지어 같은 민족끼리 전쟁, 자국 내에서 만들어진 계층까지 서로 노예를 삼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나라를 빼앗기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19. 이후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찾고자 했던 신명기 역사가들의 독려와 백성들의 회개로 말미암아 기사회생한 이스라엘은 한 때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들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약 400~500여년 간 강대국들에게 지배를 받으면서 유대인들에게는 크게 2가지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자신들의 민족을 구원하는 다윗 왕과 같은 그리스도(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안식일, 할례, 정결례등의 유대교 율법이 점점 더 구체화되고 강화되었습니다. 이 결과 유대인들은 타민족을 향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했고, 유대인들 내부적으로도 의인과 죄인으로 나뉘었습니다. 


20.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으로 오늘 복음서에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1.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메시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물으시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와서 전 세계를 지배할 황제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22.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지은 시편 110편 1절을 예로 들으시면서 유대인들의 그리스도(메시아) 신앙이 허구임을 지적하십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일 수 있겠냐는 해석입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펼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사람으로써의 다윗, 그리고 자신들도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망각한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신앙의 담을 높이 쌓을 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그릇된 그리스도(메시아) 신앙이 커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습니다.


23.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구약성경을 다시 해석해서 다윗 왕이 아닌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이신 증거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합니다. 

24. 27절입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메시아)의 부활을 예언한 것이고, 그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유대인들의 그리스도(메시아) 연구에 의하면 고난당하는 그리스도(메시아)는 있을 수 없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과 사망, 그리고 부활이야말로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이라면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메시아)라고 믿는 다윗의 시를 증거로 댔던 것습니다.

25.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만 목격했을 뿐 일반 유대인들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이어진 설교에서 시편 110편 1절을 재해석하면서 그 증거를 제시합니다.

26. 35절입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27. 다윗은 그리스도(메시아)가 부활하신 후 승천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리라고 예언했는데, 이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합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메시아)이신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28.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오순절 성경 강림 사건입니다.

29. 33절입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느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0.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각 지역의 방언으로 복음이 전해진 일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는데, 이것을 증거로 말합니다.


31. 그러면 왜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제자들은 다윗 왕이 아닌 나사렛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로 믿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제자 공동체들에 이어서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2. 그 기준은 나사렛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인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33. 다윗 왕을 그리스도(메시아)로 고대하는 유대인들에게 보편적인 사랑은 없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는 자기 민족만 위한, 자기 나라만을 위한 사랑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적으로는 자기 집안만을 위한, 자기 가족만을 위한, 자기만을 위한 사랑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특정 집단과 개인을 뛰어넘지 못하는 사랑은 결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은 개인을 뛰어 넘는 사랑입니다. 특정 집단을 뛰어 넘는 사랑입니다. 인류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사망과 고통을 감내하시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은 사망 권세에 매이지 않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34.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이 땅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로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때야 할까요?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 어떤 개혁을 기도해야 할까요?

35.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라고 고백하지, 다윗 왕의 후손이라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사람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36. 첫 번째 사명과 역할을 받은 유대인은 다윗 왕에서 멈췄다. 그리고 다윗 왕이 그리스도(메시아)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황제 국가로 만들어서 세계를 지배하기를 여전히 꿈꿉니다.

37. 두 번째 사명과 역할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분명히 누구나 골고루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38. 그리스도(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동일 피조물인 우리의 이웃이 울 때 함께 울어줍니다. 동일 피조물인 우리의 이웃이 웃을 때 함께 웃어줍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이웃에게 대접해 줍니다.

39. 예수님께서 그 사랑의 길을, 십자가의 길로, 고난의 길로, 희생의 길로 가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그 길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가신 길로써, 부활의 길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변함없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전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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