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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9-2) - " 그냥 사랑하신 거다! " / 이훈삼 목사 / 종교개혁주일 > 창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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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9-2) - " 그냥 사랑하신 거다! " / 이훈삼 목사 / 종교개혁주일

관리자 2021-10-29 (금) 09:20 2년전 550  

본문) 신 7:6~11, 롬 1:1~7, 마 5:43~48


1. 너는 하나님의 성민 


옛날에는 사람의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서 성명학이 널리 퍼졌다. 아이를 낳으면 전문가에게 돈을 내고 이름을 지어 달라 했다. 지금은 이런 운명론적 이해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내 평생 나를 표현하는 것, 죽어서도 나에게 따라다니는 것이 이름이니 그 이름 자체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현실적으로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에서도 이름은 어떤 존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에는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에 깊은 뜻을 간직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고 야곱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으로 사람의 삶과 본질적 성격 등을 나타내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줄기차게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래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고 이러한 인간의 요구에 대해 야훼(나는 나다)라고 모호하게 대답하신 하나님도 끝내 자신의 정체를 다 드러내 알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다. 첫 사람 아담이 다른 피조물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주인으로서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지배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창 2:20).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내 안에 주님이 없으면 본질이 빠져서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버림받게 된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비참한 운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한 마디로 이렇게 부르셨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신 7:6)


우리 이름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이것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가장 숭고한 이름이다.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너무나도 감사할 일이다. 


2. 너를 사랑한 이유 


1) 80년대를 풍미했던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으로 운동권과 대중 사이의 정서를 노래한 가수 안치환이 있다. 1965년생 연세대 84학번이니 벌써 50대 후반이다. 그는 ‘광야에서’ ‘철의 노동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 같은 노래들로 한 시대에 뜨거운 열정과 따스한 서정을 불어넣었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그는 2014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다행히 완치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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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발표한 그의 4집 앨범 타이틀곡이 ‘너를 사랑한 이유’였다.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조금 설렌다-너‧사랑‧이유! 이것도 지금 알았는데 11월에 같은 제목으로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오직 통 기타 하나로만 노래하는 그 모습을 한번 가보고 싶다. 이 노래는 안치환이 작사‧작곡‧노래 혼자서 다 했다. 80년대를 거세게 휘몰아쳤던 혁명의 바람이 90년대 들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허망해지고 그 쓸쓸함이 거리를 짙게 배회하는 시대, 그는 목에 핏대 세우며 무엇을 노래하고 싶었을까. 


너를 사랑한 이유

……………

너의 시댄 이미 흘러갔다고

누가 말해도 나는 널 보며 살아있음을 느껴

너의 길이 비록 환상일지라도

그 속에서 너는 무한한 자유를 느낄 거야

포기하지 마 너를 사랑한 이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바로 그 믿음 때문에

……………


불의한 시대와 화해하지 않으며 상처투성이로 외롭게 대결하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을 멀찍이 서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안쓰럽게 바라보는 눈빛을 본다. 너를 사랑한 이유는 그랬다. 

주님이 나를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2) 예수님은 만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다. 심지어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인 세리와 창녀까지도 품어주셨다. 그런데 반대로 자타가 공인하는 의인인 바리새인들은 유별나게 비판하고 각을 세웠다.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님이 바리새인과 투쟁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화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어떤 이유나 조건이 있어서가 아닌데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가르쳤다. 

바리새파 가르침의 원래 의도는 율법을 잘 지켜야한다는 것인데 그 결과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조건이 되어버렸다. 하나님 신앙의 핵심은 사랑인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숭고한 사랑을 인간 차원의 조건적 사랑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은 여기서 격분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조건은 없다. 그냥 사랑하시는 거다, 이게 은혜다. 사도 바울이 평생 율법주의자들과 대결한 것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사랑이 조건적 사랑, 이유 때문에 이루어지는 사랑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3) 서양 중세 천년을 이어온 로마 가톨릭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신앙이 공적주의에 빠졌다. 구체적 실천을 강조하다보니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데도 실제 선한 행위를 요구했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천주교인이 개신교인보다 더 도덕 실천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웃 사랑과 도덕적 실천의 방법에는 당연히 물질적 요소도 포함되었다. 시대가 불량하면 나중에는 물질적 요소가 오히려 중심을 차지한다. 이 때 교회가 타락하는 것이다. 이제 구원은 내가 행한 도덕적 선행에 좌우된다. 본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인데 이제는 반대로 인간의 도덕적 선행과 공적이 결정권을 갖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축소되고 인간의 행함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 복음의 변질이다. 교회의 타락이다. 개혁의 때가 온 것이다. 그 카이로스를 우리는 1517년으로 잡는다. 


3. 내가 개신교인이라는 것  


1) 독일의 가톨릭 수도사였단 마틴 루터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의 확신에 이를 수 있는지 기도하면서 고민했다. 구원 받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야 하니 구원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런데 로마 교황청에서 제시하는 구원의 방법은 자꾸만 인간의 선행을 강조했다. 착한 일을 많이 한다든지 큰돈을 내고 면죄부를 산다든지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했지만 루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방식으로는 구원의 확신에 도달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 받는 걸까, 얼마나 많은 헌금을 하면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종교개혁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2) 우리는 종교개혁의 자식들이다. 로마 가톨릭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신앙 원리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루터나 캘빈 등 종교 개혁가들이 함께 주장한 5가지 신앙고백이 있다.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다. 내가 볼 때 이 중에서도 가장 중심 요소는 은혜다, 오직 은혜(Sola Gratia)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은혜) 때문이다. 성경은 이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를 기록하고 있기에 거룩한 책이고 믿음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삶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혜가 종교개혁 복음의 핵심이다. 우리가 은혜 받았다는 것은 이 고백을 마음 깊이 깨닫고 공감했다는 뜻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사방에서 차고 넘쳐야 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무엇이라 대답할까. 부모에게 효도하니까, 예쁘고 멋있으니까, 공부를 잘 하니까, 능력이 뛰어나니까, 남들보다 성공하니까…, 그런가? 그러면 그렇지 못하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가? 정상적인 부모는 이런 조건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자식을 내 자식이니까 그냥 사랑하는 거다. 내 자식이니까 좀 못났어도 효도 안 해도 버르장머리 없어도 속 썩여도 사랑하는 거다. 그래서 부모님의 사랑은 은혜다. 하나님 사랑은 이 부모의 사랑보다도 더 숭고하고 깊은 것이다.


하나님이 왜 하필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구원하셨는가. 수수께끼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신 7:7~8)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에 비해 오히려 보잘 것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바로 그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기뻐하시고 구원하셨다. 왜? 이유는 단순하고 명백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냥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없다. 그냥 사랑하시는 거다.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이 너무 큰데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다. 오늘도 우리는 그 사랑 앞에 서 있다. 종교개혁은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사랑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되살리는 것이 전부다. 오늘 우리는 정말 이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을 회복해야 할 절박한 지점에 서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와 우리들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그냥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고 영접하는 것이다. 개혁은 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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