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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창조절(8-2) - "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이성호 목사(포항을 사랑하는 교회) / 이단경계주일

관리자 2021-10-23 (토) 20:37 2년전 675  

본문) 20:1-21, 4:8-9, 12:28-34

 

1.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이들은 유럽에서 망망대해를 건너 아메리카를 찾아내고, 세계로 통하는 항로를 개척해서, 본격적인 국제화 시대를 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험심과 의지는 매우 강했지만 그렇다고 인류애가 넘치던 위인들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위인보단 불량배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북아메리카로 건너와 미국을 세운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1600년대 영국에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도 안 피우고, 아이 낳을 목적 외에는 부부간 성행위를 금지하며, 검은 옷만 입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별난 기독교 종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순결하게, ‘pure’하게 지킨다고 해서 ‘puritan’, 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독교를 믿어온 유럽인들이 볼 때도, 마치 사이비 종교로 보여서, 정부가 이들을 이단으로 규제할 준비를 하는 중에, 이를 알게 된 청교도들은, ‘5월의 꽃이라는 (mayflower)배 한 척을 타고, 정부의 간섭이 닿지 않는 먼 대륙, 아메리카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미국 역사책은 말합니다.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기독교인답게 십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지키며, 화목하게 살았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치게 미화된 이야기와는 달리,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새로운 기후와 풍토에 맞는 농사법을 몰라, 곡물들을 미처 추수하기도 전에 겨울이 닥치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을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인심좋은 인근 지역의 인디언들이 칠면조를 보내주었고, 청교도들은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굶주림에서 구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하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청교도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인디언을 시켜서 먹을 것을 보내주셨으니, 이것은 우리들에게 이땅 전체를 차지하라는 신의 계시>라고 신념화 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결국 자기들의 목숨을 구해준 인디언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는, ‘미국이란 나라를 세웠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이 이땅을 차지하고 살라고 계시한 날로 축하하며, 해마다 11월 넷째주 목요일이면 감사제를 드리는데. 이날이 감사를 드리는 날바로 thank giving day, 추수 감사절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들의 기도를 받으시면서, “잘했다!” 칭찬하실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2. 문제는 이것입니다. 범죄자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사람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나는 정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일을 했다거나, “신의 계시를 받아서 실행한 것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교회도 좀 커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요즘 기독교의 현주소와 많이 닮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 갈까요? 교회도,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해졌다는 반증일 겁니다. 잘되면 복이고 잘살면 은혜라는 공식이 선포의 말씀을 대신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성과를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됨을 보신다는 점에서, 오늘 세 본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3. 십계명(20:1-21)

구약 본문에 등장하는 십계명은, 너무나 쉽고 평이하게 쓰여있습니다. 3,300년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두 개의 돌판에 새겨진 열가지의 계명을 받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동안 십계명은 수많은 기독교인들 삶의 기본 지침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구속하기 위해, 신이 내린 명령으로 받아 들여져 사람들은 은연중에, 하나님을 엄격하고도 까다로운 존재로 이해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열가지의 계명은 그저 도덕 규례와 같은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찬, 놀라운 외침이 담겨있습니다. 한 예로 무엇 무엇하지 말라는 부정문의 계명은, 욕망에 얽메이지 말고 온전한 존재로의 삶을 살라는 당부와 축복이며, 인간의 진정한 자유로움을 보장하기 위한 선언이라는 점입니다.

 신앙적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우리의 몫이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는 것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말을 듣는 것우리 몫이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십계명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인간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선포 형식을 취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하나님으로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영원한 약속과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 오늘도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4. 사랑이 아니면(12:28-34)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예수님은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란, 두 개의 계명으로 압축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12:30-31). - 아멘

 어거스틴은 이 본문을 두고 사랑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인도자다라는 주석을 남길 정도로, 믿음에 관한 우리 주님의 명료한 설명입니다. - 우리가 다시 확신하기는, 하나님 사랑이 종교적인 삶을 이끌고, 이웃 사랑이 일상의 삶을 이끌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가르침이, 오늘 복음서 본문의 요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요약한 계명들은, 인간이 탐욕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벗어날 때에만, 비로소 지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예컨대 누구든 성적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간음과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소유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도둑질이나 이웃의 소유를 탐하는 일에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 때문에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상징이자 표식이라 하겠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궁극적인 하나의 개명을 꼽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 - 아멘. - 이때 다른 신이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각종 우상에 불과하고, 나마지 아홉 계명은 이 제1계명의 대한 순차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이라 하겠습니다.

 

5. 무속과 사이비와 같은(4:8-9)

이번 주일은 여덟 번째 창조 주일임과 동시에 이단경계주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세 본문을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하지 않지 않게하시려는 뜻에서(20) 이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계명은 우리를 얽메고 간섭하는 규정이 아니라, 온전한 주의 백성이 되게 하는 축복의 약속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단이라고 하면, 먼저 사이비 종파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수단화하는 것,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이웃에 대한 관계 설정은 어그러져 있는 상태, 하나님의 뜻과 그 나라에 대하여 주여만 외치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마치 교회안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여기는 것. 이러한 종교 형태와 현상들은 우리 안에서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팔고 소비하는 이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우리 안에서 사이비와 같은 일들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본질을 놓치면 무속보다 이단들보다, 더 무섭고 위력이 더 강합니다. 전파력도 더 쎄지요.

 21세기 오늘의 세계에서는 사이비나 무속 신앙이 들어설 자리는 예전처럼 많지 않습니다. 벌써 교육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무속이나 사이비 이단의 확산은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도시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농촌으로 밀려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무속과 사이비와 같은 경향과 방향성이 기독교 안에 정착되어 간다는 점은, 우리가 주의 깊게 깨어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죄의 산물인 탐욕과 이기심으로부터 해방시키시고, 구원의 길로, 사랑의 길로 이끄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너희는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아멘.

 

이 말씀을 품는, 여러분들의 뜨거운 가슴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소나기와 같이 임함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일괄된 의지와,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실천의 인생을 기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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