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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승천주일-도시.농어촌선교주일

관리자 2019-05-24 (금) 00:01 2개월전 84  

본문) 요14:1-14, 왕하2:1-15, 엡4:1-16 

 

오늘은 부활절 여섯째 주일이다. 세계교회는 예수 승천(昇天)주일로 지키며, 교단에서는 도시.농어촌 선교주일로 지킨다. 메시지에는 승천과 선교가 함께 담아야 하는 데-,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들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승천의 의미와 가치가 믿음 안에서 제대로 찾아진다면, 선교는 자연히 살아나리라 믿는다. 그 무대는 그 다음이다. 도시이든 농어촌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승천이란 신앙의 주제는 아주 특별하다. 기독교 신앙의 최고의 경지(境地)를 열어 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승천은 땅(세상)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하늘 세계를 말하고 하나님의 세계 자체를 바라보게 해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승천 건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이 땅과 세상을 넘어선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인한 삶의 갱신과 함께, 이 죄악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일까지도 해오고 있다. 

 

사실 승천은 부활이란 주제 못지않게 사실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 자체도 충격과 갈등을 안겨 준 것이라면,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늘에 오른다는 것은 더 큰 충격을 안겨 줄 수 있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활이 그렇듯, 승천도 오직 믿는 자에게만 열리는 세계이다. 과학적이고 생물학적 접근으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영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신앙은 승천신앙의 입문(入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좇아 보면 그 놀라운 부활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이 보인다. 부활도 그 자체를 넘어 겨냥하는 세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하늘 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향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나라(천국)이다. 승천도 그렇다. 부활과 영생을 이어주는 디딤돌일 뿐이다. 여기에도 확실한 것이 있다. 말씀에 대한 믿음 없이는, 바늘구멍만큼도 보이지 않는 영역이 바로 부활이요 승천이며 영생의 세계라는 점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능력의 세계를 믿는 자에게는 부활이나 승천이나 영원한 생명은 바로 그의 것이 되고 그런 세계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간다. 

 

성경은 승천 세계를 경험한 이들을 세 분 소개한다. 창세기에서의 에녹이 첫째 인물이었다(5:24). 그리고 오늘 세 본문들에 소개된 두 분들이다. 구약의 주인공인 엘리야 선지자가 둘째 인물이었고, 복음서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셋째 분이시다. 이 분들은 모두 살아서 하늘에 올리심을 받은 영광의 주인공들이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있다. 세 번째 오르신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 그의 사람들을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는 거다. 그 바람에,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再臨)신앙까지 품고 사는 무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또 다른 과제(課題)가 있다. 우리가 오시는 분을 언제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삶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종말(終末) 신앙의 문제가 함께 따른다. 즉, 재림의 주를 맞이할 우리는 과연 이 땅에서 어떤 삶으로 대비하여야 되는가에 대한 영적 과제도 만난다는 말이다. 사실 이 영역은 낯설지 않다. 복음서 후반부에는 ‘항상 깨어 있으라’라는 경고의 내용들로 가득하게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부활이 열어준 세계, 즉 승천(휴거)-재림-종말론-영생의 세계는 지금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의 내용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한다. 이제 설교자들은 주님의 양무리를 보호하고, 자신들의 건강한 목회를 위하여서도 이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말씀의 안내와 확고한 지침이 필요하다. 전통적이고 제도권의 교회일수록, 이 분야에 대한 더욱 치밀한 말씀 교육이 있어야 한다. 자칫 크게 오용할 수 있는 이 거룩한 복음과 생명의 영역을, 저 이단들에게 넘겨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적그리스도 세력들에게 무너진 교회들이 많음을 기억하라. 

 

이제 오늘의 승천주일 말씀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승천의 주인공들에 대한 인물 자체의 소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인공들 자신이 자신들의 승천 자체를 과시(誇示)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승천을 통하여 그의 제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꼭 보여주고 안겨주려고 했던 승천자들의 관심(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관심과 믿음의 지평(地坪)을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세계까지로 끌어올리려고 했던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을 육적 차원에서 영의 차원에로 끌어올리려고 했던 내용임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심판 날까지 땅과 하늘 양쪽 세계에 필요한 존재의 탄생을 목표하고 있음도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당부할 부분이 있다. 이 종말론적 말씀들의 목표는 우리의 세상 현실에, 도피하고 무책임적 존재를 생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이겨내는 복음 전사의 생산에 있다. 십자가에서 얻어낸 구원은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잖은가-! 

 

복음서를 다시 보자

본문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하늘 아버지 집으로(본향으로) 돌아가시는 내용이 예고되고 있다. ‘나 이제 죽는다’가 아니라, 제자들과의 긴 이별(離別)을 예고하신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그 통보를 받게 된 제자들의 마음이야 얼마나 받아들이기가 복잡하고 힘들었겠는가? 게다가 제자들에게는 아직 스승의 죽음도, 부활도, 승천도 모두가 전혀 감(感)이 오지 않는 때였기에, 주님의 이러한 사전(事前) 예고와 통보는 더더욱 난감하지 그지없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엄청난 세계가 예수로 인하여 그들에게 임할 것을 예고하신 내용이었지만, 당시는 그것을 꿰뚫어 알 이는 오직 예수뿐이셨기에, 그 난감한 현실을 풀어주실 분도 예수님뿐이셨다. 결자해지(結者解之)가 답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먼저 1-3절까지의 말씀을 주셨다. 

 

요지는, ‘절대 근심(요동)하지 말라. 너희가 하늘 아버지를 믿는 것처럼, 나를 꼭 믿어라’는 강한 요구를 시작으로, 주님은 당신이 당신을 보내셨던 하늘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알리셨다. 하지만 가시는 목적이 있었음도 전하셨다.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제자들과 함께 살 거처(居處)를 마련하신 후, 다시 와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것이 당신의 떠남의 목적임을 확언(確言)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 지를 너희는 (이미) 알고 있다’(4절)라고 제자들이 진짜 알고 있는 것처럼, 한 말씀을 추가로 건네셨다. 

 

이 주님의 한마디는 이별과 헤어짐이란 생각 때문에 심한 우울과 좌절에 빠질 수 있었던 제자들을 새롭게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그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가시는 길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나 무관심을 일깨우면서, 동시에 주님이 어디로 가시고, 또 그 길을 자신들이 어떻게 알게 되는지를 관심을 갖고 여쭈어보게 하였기 때문이다. 참 놀라운 교육학적, 심리학적 유인책(誘因策)이었다는 느낌이 드는 질문이었다-! 그것은 그 주님의 그 말씀이 던져지자, 평소 궁금증이 많고, 매우 논리적으로 보이는 듯한 제자 둘이 질문들을 하였기 때문이다. 

 

제자 도마 - ‘주여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릅니다.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5절).

제자 빌립 -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절)  

 

주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제자들의 관심을 더 이상 헤어짐과 떠남 자체에서 그 이별의 인한 삶의 변화를 제자인 자기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는 지에 대한 관심과 대비할 차원으로 확실히 옮겨가게 하였다. 그들이 자라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주님은 자연스럽게 당신 이후의 시대를 제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면서 이 세상을 이끌어가게 할 것인지를 준비시키는 논리적 전거(典據)를 제공하여 주셨다. 그것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주는 무게감과 진리성에서 입증되었다. 그 핵심 말씀을 경청해보자.  

 

1) 주님은 일관(一貫)되게 ‘당신 안에 계신 아버지’를 강조하셨다(9-11절). 즉 육신(肉身-인간)으로 오신 당신 안에는 영(靈)이신 하늘 아버지가 함께 계시니, 그것을 제자들은 믿어야 한다고 하셨다. 만일 당신 안에 계신 하늘 아버지의 존재를 못 믿겠으면, 당신이 이제껏 행하신 그 일들로 말미암아 믿으라고까지 요구하셨다(11절.하). 예수님의 이런 발언은 예전에,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는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다. 

 

2) 그러면서 주님은 오직 당신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삼는 자’만이 하늘 아버지께로 간다고 선포하셨다(6절). 그리고 당신을 아는 자는 이미 아버지도 아는 자라는 점을 강조하셨다(7절). 결국 예수님은 보이는 하나님을 요구하는 제자(빌립)에게, 이미 아버지는 아들을 통하여(삶과 인격과 행위 속에서) 지난 몇 년간이나 당신을 충분히 보여 주셨음을 일깨우셨다(8-9절). 그럼에도 여전히 보여 달라는 것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 첫째는 예수님의 일깨워 주신 말씀, 즉 예수께서 하늘 아버지께 나아갈 유일한 길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서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그 믿는 자에게 놀라운 표징(標徵)이 나타날 터인데-, 곧 주님이 행하신 일을 그도 행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행하게 되리라고 하셨다(12절).  

 

☞ 둘째는 ‘예수의 이름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일이다. 즉 기도(祈禱)하는 일이다(13-14절). 믿음과 함께 올리는 기도는, 떠나신 주님과 그의 아버지와의 교통과 교제를 이루게 해 주는 통로가 된다. 이 기도를 통한 교제는 그들이 떠난 주님과 여전히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 드리는 것이기에, 주님의 즉각적인 개입(介入)을 불러오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영광도 받으시게 된다(13절). 결국 믿음과 기도는 하늘에 오르신 분과 여전히 하나로 살아 갈 비밀 통로와 같은 선물들이기에, 적극 활용해야만 하겠다. 

 

구약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엘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대선지자였다. 하지만 그의 평생은 항상 왕 아합 부부와 대립해 살았다. 그것은 왕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신을 비롯한 각종 이방신들과 우상 숭배정책을 취하고 있는 일에 엘리야가 극력 반대하고 비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엘리야는 노상 살해 위협에 쫓기면서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에, 그토록 사악한 이스라엘이 멸망치 않고 생존할 수 있었다. 실로 그는 엘리사가 외쳤던,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었다(12절).  

본문은 그런 의로운 당신의 종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를 엿보게 되는 곳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시련 속에서도 백성의 신앙을 위해 헌신한 엘리야에게 불 수레와 불 말들을 보내셔서 산체로 데려가시는 특별 선물을 내리셨다(11절). 승천의 주인공으로 올리셨다. 

 

주목할 부분은 그의 제자 엘리사가 스승에게 매달리는 모습이다(1-8절). 그는 예수의 제자들과는 달리, 엘리야의 그 큰 사역이 그의 안에 있는 성령(聖靈)에 의한 것임을 보았다. 이제 그는 엘리야 없는 시대와 나라에 대한 깊은 책임의 자리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스승의 보유했던 성령보다 갑절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보았다(9절)! 그래서 간절히 구했다. 그 결과, 그는 승천하던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면서, 갑절로 역사하는 성령의 예언자가 되었다(13-15절 참조).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를 보면서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서신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교회 공동체는 이렇게 하늘에 오르시고 또 다시 오실 주님을 구주로 믿고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은 무리들이다.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낮은 땅에 내리셨을 뿐만 아니라 하늘 위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는 공히 만유(萬有=All)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함께, 만유를 충만하게 하시는 구세주가 되셨다고 선포한다(6,8-10절 참조).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만유의 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 지켜내야 할 일이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분이듯이, 신도들도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내야 한다. 그래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 아버지를 온전히 그리고 충만히 드러내도록(전하도록) 힘써야만 한다(1-6절 참조). 그게 교회가 보여 줄 진정한 선교이다!

 

교회의 주이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분량에 맞는 다양한 일꾼들을 세우셨다. 그들이 바로 사도-선지자-복음전파자-목사-교사들이다. 사도는 근본이 되는 선교적 복음을 수립한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 상황에서 전파한다. 복음전파자는 복음을 널리 퍼뜨린다. 그리고 목사와 교사는 목회와 성경을 해석함으로 교회를 지도한다. 바로 이들의 인도 속에서, 교회의 신도들은 세상의 유혹과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온전해지고 봉사의 일을 수행하며 성숙한 신도들이 되어가게 된다(11-14절 참조). 

 

교회의 머리는 역시 그리스도이시다. 신도들은 주님의 피와 살을 받고 그가 공급해주시는 양식을 받고 사는 유기체적 몸을 이룬 생명체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참된 생활을 실천하므로서 성장해야 한다. 어린 아이 수준에 머물고 있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한다(15-16절 참조). 잘 자라면 농촌과 도시에서 선교의 큰 일꾼들이 될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부활신앙을 보유했나? 그렇다면 승천 신앙도 확고히 가지라! 그러면서 재림 신앙도 갖추고 종말론적 삶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의 백성의 자리와 삶에로 나아가라. 우리의 유일한 경배자는 만유(萬有)의 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깨어 있자. 이런 균형과 온전성을 가진 신앙인만 하늘과 땅에서 필요한 자가 되리라. 그리고 이 지금의 망가진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해 내는 일까지 능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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