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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9)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19-02-28 (목) 22:42 5년전 1110  

본문)  마16:21-28, 잠3:1-12, 골1:24-29

 

주현절 절기의 마지막 주일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가까이 오면서,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은 이전보다 더욱 예민하고 절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 까닭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제자들은 당신의 그 동안의 지상 사역과 앞으로의 연속성 차원에서 미래를 담보할 핵심 요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활동 여하에 따라, 예수와 그의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입장임을 주님 자신이 잘 아셨기에, 주님은 일관되게 타협적이나 양해(諒解)하는 등의 입장이 없이, 제자 됨의 조건을 더욱 분명하고 뚜렷하게 제시하며 가르치셨다. 

 

즉, 주님은 당신에게 누가 없으면 안 된다는 입장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제자’의 생산을 일관되게 원하셨다. 이는 어느 특정 인간을 염두에 둔 조건 제시가 아니라, 당신이 제시하신 말씀과 그 뜻에 누가 적합(適合)하느냐 만이 절대 조건이었음을 말씀하셨다. 거기에 맞으면, 어느 누구도 당신의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지만, 그 조건에 맞지 못하면 그 누구도 당신의 제자일 수 없음을 분명히 천명하셨다.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베드로가 책망 당한 모습이었다. 수제자인 베드로가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에 몰두하여 당신의 가시는 길을 막고 서자, 주님은 그를 향하여 인정사정없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까지 내치셨다(23절). 이는 조금 전, 베드로의 놀라운 신앙고백을 들으신 주님이, 기쁨 속에서 그를 향하여 극찬하셨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대응이어서, 정말 충격적이었다(마16:16-19참조). 

 

그런 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대체로 주님의 엄한 교훈과 훈련 속에서 책망과 질책을 들으면서 성장해 온 무리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결국 그 주님의 훈련 과정을 잘 마치면서,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후에는, 세상 변혁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것은 제자들이 그러한 주님의 징계와 꾸지람을 경히 여기거나 싫어하지 아니하고, 마치 아비의 징계처럼 받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기회로 응답하였기 때문이었다(잠3:11-12참조). 

 

그렇게 하여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공인 받게 되면, 그 열매는 놀랍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잠3:4). 이 점은 중요한 신앙의 열매로서, 우리 모두가 깊이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사람이 하늘과 땅으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신도들 중에는 자기는 ‘하나님께만 인정받으면 되고 사람에게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치고, 그 다음이 궁금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 하나님께로부터는 확실히 인정받고 사는가?’ 아마도 거의 없다고 본다! 그는 특히 주님이 왜 당신의 제자들보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말씀했는지 답해야한다. 사람으로부터의 인정과 신뢰를 받지 못하면, 그는 단 한 사람도 전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걸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모두에게서 인정(認定)받을 제자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삶의 최우선할 가치로 알고, 따르며 순종하면 가능하다(잠3:1,5).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하나님 자신의 뜻을 품고 있음을 물론, 세상과 인간 모두를 아우를 사랑도 포괄하고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좇으면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얻을 수 있지만, 세상과 인간의 편리한 계명만 좇으면 결국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겠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주님의 말씀과 뜻이 내 판단과 상식과 이해를 넘어서 올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그 점에서 제자들도 계속 넘어지고 깨지는 경험을 한다. 동시에 그때가 주님의 책망과 질책을 받은 순간들이다. 그 때가 왜 힘든가? 내가 가진 명철과 내 지식이 주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였기 때문이다(잠3:5). 자신의 지식, 경험, 문화, 관습, 논리 등이 주님의 가르침과 맞서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럴 때,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믿음과 신뢰로서 응답하는 일이다. 주님과 그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모습을 갖추면 된다(마16:24 참조). 여기에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내가 신뢰하고 믿는 이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의 일과 직무를 내 등에 걸머지고(직분으로)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자기 부정도 하지만, 주의 일에 매진하면서 그 내용을 증언하는 일이다. 

 

복음서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이 땅에서, 특히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하나님의 일과 사탄의 일,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제대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이 엄청난 간극(間隙)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대한 답도 우리에게 제공한다. 

 

1) 예수님이 당신의 혹독한 고난과 그로 인한 죽임 당하심, 그리고 제 3일 후의 부활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예고하셨다(21절). 여기에서는 첫 번째로 수난을 예고를 하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전권대사요 이 지상에 파견 받으신 아들로서, 세상 구원을 위해 하늘 아버지의 정해 놓으신 뜻을 따르는 과정을 예고하신 것이었지만, 그 내용의 전말(顚末)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제자들로서는, 정말 청천벽력(靑天霹靂)의 ‘가장 나쁜 최악의 뉴스’로 들렸던 것이었다. 

 

2)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가 매우 격렬(激烈)히 반발했다. 아마도 제자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충격적 소식은 ‘예수가 수난을 당해 죽게 되리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사흘 후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아니했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만일 그들이 처음부터 부활에 대한 믿음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그런 예고에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으리라. 하지만, ‘죽으면 끝이다’는 믿음만 있었지, ‘죽어도 산다‘는 믿음은 아직 그들에게 없었기에, 예수의 죽음 소식은 그들 제자들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였던 것이다. 

 

3) 여기에서 죽음을 넘어선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엄청난 차이도 본다.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에 자신을 겸손히 맡길 수 있다. 과정의 수난과 시련의 아픔도 묵묵히 극복해낼 용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신앙이 없는 자는 인간의 생각에 빠져 들 수밖에 없다. 죽음이 가져다 줄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에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더 좋은 세계를 전혀 못 보기에, 현재까지 자기들이 오직 예수를 믿고 따라 살아온 모든 것에 대한 회의와 좌절감에 떨면서, 극심한 분노와 반발에 빠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예수에 대하여 절망하고 분노하는 그 순간이 사탄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계신 예수가 뜻을 돌이키도록 저지하려고 총력을 집중한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이 아닌, 매우 인간 중심의 사고로 접근하게 하는 것이다(22절).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행태에서 사탄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다음과 같이 추상같이 명령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23절). 

 

4) 그러면서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기본 입장에 대하여 또 다시 정리하여 제시하셨다. 두 가지였다(24절). 

 

① 자기(自己)를 부인(否認)해야 한다. 자기 부인하지 않고, 예수를 따르겠다는 것은 예수의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이용하려는 자가 되려는 것이다. 예수의 뜻과 말씀을 삶의 최우선으로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것과 자기의 것을 적당히 버무려 상대하다가 결국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되어서, 최악의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그러니, 제자의 자세는 기본부터 분명해야만 한다. 

 

② 자기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앞 주일에서도 이 점에 대하여 언급 바 있다. 십자가 짐은 자기를 부인하는 구체적인 응답이기도 하다(눅14:27참조). 자기를 위한 멍에가 아니라, 주님을 위한 멍에를 매고 주님을 좇는 삶에 들어가는 것이다. 즉 주의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주님이 부여하신 직분과 업무에 자신의 삶을 드려서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그의 백성들을 위한 섬김이 다 포함된다(마11:29-30참조). 그들의 수고와 행위의 대가는 오실 주님이 갚아주신다(27절). 

 

구약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주의 말씀과 명령을 기억하며 지키는 자들에게 따르는 삶의 열매들을 다양하게 소개해 준다. 여기에서 가장 스스로 경계하고 주의해야할 일은 자신의 명철(明哲)이나 지혜를 의지해서 주님의 일을 해보려는 태도이다. 그럴 때에는 징계와 꾸지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앞에서 경험하였던 제자 베드로의 사례에 대한 교훈처럼 들리기도 한다. 

 

1)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비이신 여호와의 법과 명령을 절대 기억하고 지키면서 살아야한다.   그래서 그의 말씀과 함께 부여되는 여호와의 사랑과 진리가 그에게서 떠나게 하면 안 된다. 이런 사람에게 부여되는 선물은 장수(長壽)와 평강(平康)의 복이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되는 삶이다(1-4절).  

 

2) 어떤 경우에도 다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여야 하고,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해야 한다. 네 명철로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겨서도 안 된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네 길을 인도하실 것이며, 네 몸에 양약(良藥)이 되어 네 골수(骨髓)까지도 윤택하게 하신다’(5-8절).  

3) 여호와 공경에는 재물과 소산물의 첫 열매로 드려야한다. 그러면 네 곡간이 가득해지고 네 포도주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9-10절).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물질의 축복도 기대하는데, 이런 사람일수록 이 재물과 첫 열매 권고를 잘 새겨들어야 하겠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여기에서도 적용되고 있음을 본다. 헌금은 물질 축복의 통로임을 기억하자. 

 

4) 주님은 종종 당신의 제자들과 사람들을 징계도 하시고 꾸지람도 주신다. 목적은 사랑 때문이다. 아비가 자식을 징계함과 같다(11-12절). 베드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보다도 책망과 질책들도 계속 들으며, 제자로서 성장했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려면, 꾸준한 훈련과 연단의 쓴 잔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 

 

서신서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제자들과는 달리, 뒤늦게 예수의 종인 사도가 된 바울은 남은 생애 전체를 자신을 택하여 세우신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과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 전력을 쏟는다. 특히 그는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 받은 백성들을 생산하고 양육하는 데 진력을 다 한다. 특히 그는 그때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자신이 받은 직분(職分)에 관하여 증언한다(25절). 

 

그 점이 매우 중요하다. 까닭은 제자 된 이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통로(通路)는 역시 교회의 직분들이기 때문이다. 목사-장로-교역자-권사-집사-성가대-교사-구역장 등등 모든 직분들이 곧 부름 받은 이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결정적인 창구이다. 이런 직분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일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모든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의 직분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직임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신분임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충성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분은 사탄의 유혹을 끌어드릴 도구가 될 수 있다.  

 

1)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할 수 있는 것과, 주님의 남기신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는 일은 그가 참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꾼이 되었음을 확실히 증언해 준 말이다(24절). 

2) 교회의 일꾼에게는 공적 직분이 부여된다. 그 직분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게 된다(마16:24절). 그 때 그는 그 직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간다(25절). 일꾼은 일을 할 때가 가장 보람 있고 열매들도 거둔다. 때가 주어졌을 때, 감사함으로 일하시라! 

 

3) 바울은 만세 전부터 비밀(祕密)이셨던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성령을 만나면서,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전파하고 그들을 권하고 가르치면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도록 일하게 됨을 확인하면서, 그 일 수행에 자기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을 따라 최선을 다한다고 고백하였다(26-29절참조). 우리도 그래야 한다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 일은 교회를 통하여 나에게 부여하신 직분을 통하여 하게 된다. 그러기에 모든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아 복음의 일꾼이 되었음을 감사하여야 한다. 이 일에 게으르고 나태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촛대를 다른 이에게 넘겨 줄 수 있다. 빼앗기면 좋을 것 같아도, 실은 불행하다. 

 

일을 하되, 여호와의 말씀과 법을 좇아해야 한다. 내 얄팍한 지혜나 명철로 대체하려고하면 안 된다. 최고 수준의 하나님의 일꾼을 목표로 살아가자. 주님과 사람에게 인정받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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