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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3) - 세 분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남신도회주일. 한가위감사주일

관리자 2026-09-14 (월) 17:49 1시간전 1  

분문) 창2:18-25, 막10:1-18, 엡5:21-6:4


오늘은 창조절 셋째 주일이다. 날씨는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었고, 일기도 급격히 변하면서 감기 환자들도 급증하고 있다. 거리의 가로수 중에는 벌써 낙엽이 떨어질 정도의 나무들도 보인다. 하긴 금주 후반엔 금년도 중추절 추석(秋夕) 명절이 들어 있기도 하다. 그 바람에 길거리엔 명절 분위기도 크게 달아올라 있다. 아직도 세계 처처엔 전쟁이 가시지 않아 세계 경제에 먹구름도 떠돌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은 상대적으로 굵게 보인다. 


이런 때, 우리 총회는 오늘 주일을 남신도회 주일로 지킨다. 남신도회는 총회에 있는 세 개의신도회들(여신도회와 청년회와 더불어) 중에서 가장 무게감이 있는 그룹들이어서, 부디 오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더욱 성숙해지고 굳건해지는 평신도 기관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제 잠시 남신도(男信徒)가 처해 있는 삶의 위치를 확인해 본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인간들 그룹 중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적 위치를 부여받은 이들이다. 가정을 이끌 세대주(世代主)의 위치에 있다. 조상 적부터 부여된 성(姓)씨의 멍에를 매고, 그 가문의 역사를 계승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집안의 가장(家長)이 되어 동반자인 아내와 더불어 가정과 가족을 이끌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이 책임을 감당하고자 그는 평생의 직업을 갖고, 직장의 일원으로 노동하며 기업도 일구며, 그곳에서 그에게 부여된 각종 직임(職任)들이란 멍에까지 감당하면서 지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성 한 사람에게 부여된 멍에는 대단히 무겁다.


어디 그뿐인가? 그중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때문에, 교회를 평생 섬기며 그곳에서 맡게 된 평신도 직임인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 및 각종 기관들 안에서의 책임까지도 멍에를 매고 죽도록 충성하며 지내게도 된다. 그런가 하면 봉사 기관에 참여 하여 헌신하는 멍에도 많다. 이런 멍에들이 그래도 건강하고 수입도 적절한 가운데 감당하고 있으면, 무척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병을 얻고, 수입도 빈곤한 가운데 있게 되면, 그의 인생은 무척이나 고달프게 된다. 


그런 이에게는 명절은 반갑지 않고, 오히려 부담이다. 사람 만나는 것도 즐겁지 못하다. 삶 자체가 고달프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칫 원인 모를 원망과 불신이 내 마음에 그늘로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처지는 어떠한가? 즐겁고 감사한가, 아니면 부담되고 힘겨우며 피곤하기 그지없나? 혹 내 삶이 평안이 없고 꼬여있어서 힘들다면, 그건 무엇 때문인가? 


마침 오늘 창조절 셋째 주일에 주신 말씀들은 내 인생의 전모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것도 내 삶에 가장 압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가정과 가족의 문제, 그 중의 부부 문제, 그리고 자녀들과의 문제에 관하여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한다. 이는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창조 질서의 일번지로 안겨 주신 가정과 가족이란 선악과를, 우리가 지금 어떻게 관계하며 지내왔는가를 살펴보게 하면서, 거기에서 길을 올바르게 찾으라는 메시지를 주시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오늘 세 본문을 일관되게 하나로 묶어 전하는 말씀이 있다. 곧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내용이다(창2:24, 막10:7-8, 엡5:31 참조). 곧 부부(夫婦)란 존재는 서로 다른 둘이 만나서 합(合)하여, ’한 몸(one flesh)을 이룬 자‘라는 표현이다. 참 놀랍고도 기이하며 신비한 존재가 부부란 말이다. 


그러면 왜 이 대목이 오늘의 말씀 중에 이토록 중요시되고 있는가? 그것은 이 대목이 모든 인간관계의 성패(成敗)를 좌우하는 키(열쇠)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자(남편)는 자기가 만난 여자(아내)를 통하여, 협소했던 남자만의 세계를 넘어 인간 세상의 전반을 보게 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동시에 아내와 함께 다음 세대를 창출하여 더 나은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 주역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온전한 남녀의 등장은 숱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이 창조주의 선물이다. 


그러기에 슬기로운 부부, 건강한 부부, 생산적인 부부는 이런 창조주의 가정 질서 보전의 계명을 존중하며 그 뜻을 받들어 사는 일에 전념한다. 그래서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산다. 반면에 어리석고 병들고 실패한 부부는 창조주의 이 뜻과 명령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바람에, 그 엄청난 유익과 보화를 상실하거나 포기한 채 살아간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에게서 태어난 후세들의 미래에도 씻어지지 아니한 고통을 안겨주는 부모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부부 관계 보전과 유지는 일종의 선악과 계명과도 같다. 지키면 생명과 구원이지만, 포기하면 죄악과 불행의 늪에 빠져들며 헤매며 살게 된다. 그러기에 문제는 모든 세상의 부부들이 과연 그 창조의 질서를 제대로 이해하며, 지켜 살려고 노력하는가에 있다. 지금은 사실 ’이혼의 범람‘시대이다. 참사랑을 모르고, ’한 몸‘이란 창조 질서를 외면하고 사는 시대이다. 그러기에 이 시대는 ’저 네팔 사태‘처럼, 가정과 가족이 무너지는 시대가 되었다. 혈족이란 방패막이 무너지는 외로움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 오늘의 세 본문을 다시 본다. 


1. 구약 / 창2:18-25 /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창조 질서에 관한 언급을 계속하는 창세기 본문은 사람(여기서는 남자)의 출발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것도 평생의 짝인 배우자 아내와의 관계 형성이 어떤 차원으로 이루어지게 하셨는지, 조물주이신 하나님 뜻의 관점에서 알고 살도록 안내한다. 이 관점 정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 부분이 어긋나면 그 부부는 평생 ’한 몸‘을 이루지 못한 불행과 불편 속에서 인생을 무겁게 살다 갈 것이기 때문이다. 


1) 사람의 독처(獨處)는 원래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었다. 아예 홀로 사는 것을 ’좋지 않다‘고 보셨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조물주께서는 그를 ’돕는 배필(配匹-suitable helper)‘까지 만드셨다(18절). 왜 그러셨을까? 이는 피조물인 인간을 전능자와 같은 완결형 존재로 만들 것을 전혀 원치 않으신 까닭이다. 하나님도 삼위의 구조로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사랑하면서 존재하는 분이신데, 그 피조물을 어찌 완성형으로 만드실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안고 있는 한계를 최대한 보완하고 이해하며 협력할 인생 도우미로 아내를 안겨주셨다. 


2) 흥미로운 조물주의 제조(製造) 솜씨가 소개된다(20,하 –22절).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flesh)로 대신 채우신 후,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女子)를 만드셨다. 그리고 아담인 남자에게로 데려오셨다. 이런 장면은 마치 병원에서 마취 수술을 받은 환자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일은 여자(아내)의 위치가 남자의 몸 전체의 중심에 있는 존재임을 상징한다. 남자의 상부인 머리도 아니고 하부인 발도 아니라, 남자의 가슴과 심장을 에워싼 핵심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깊은 메시지를 준다. 


3) 수술에서 깨어난 남자는 곁에 와 있는 여자를 보면서, 첫눈에 반하고 만다! 자기의 빈 가슴을 채워 줄 대상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23절). 그래서 고백하며 이렇게 외쳤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는 마침내 자기와 같은 존재가 나타났음을 고백한 외침이었다! 그의 마음은 이제야 비로소 온 세상을 다 얻은 존재가 된 느낌이었다. 


4) 그 바람에 그들 두 사람은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주례자로 삼아, 신비하고도 황홀한 결혼 생활에 들어갔다(25-26절). 주례자 하나님은 영원한 주례사를 그들과 우리에게 안겨 주셨다. “이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5) 첫 인간들인 아담과 하와, 그들의 신혼(新婚) 생활은 지극히 행복하고 즐거웠다(25절).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은 서로가 신뢰와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며 온전한 하나로 살아갔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게 생활을 위하여 관리를 맡겨주신 천지의 모든 각 생물들에게 이름까지 부여하면서, 다스리며 지냈다(2:19-20절 참조). 


2. 복음서 / 막10:1-16 / “ 창조 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


성부의 시절에 비하여 시간이 많이 흐른 성자의 시절은 창조 질서인 부부 관계 유지에 관한 여호와의 지시와 명령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 유대교의 엄격한 율법종교의 틀 안에서도, 이혼을 허용하는 문제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바로 그 아내 버림의 허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놓고, 바리새인들이 집단으로 예수를 찾아와 질문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1) 먼저 예수게서는 모세의 명령이 무엇인지를 상기(想起)하게 하셨다(3-4절). 그들의 답변은 신24:1,3절을 근거로 하여, 아내 버림의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다고 답했다. 하지만 예수가 보신 그 사유는 제대로 된 이혼 사유가 못 된다. 오히려 남편이 아내를 임의로(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모습의 주도권 행사가 더욱 좋지 못하게 보셨다. 이런 행사는 밀려나는 여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의 범죄가 더욱 크기에 더 큰 문제다.


☞ 그 기회에 성자 예수께서는 제대로 된 가정 안에서의 창조 질서 확립이란 차원에서, 부부 관계와 자녀 관리가 어떠해야만 하는지를 매우 강력하게 일깨워 주셨다(5-16절).


2) 창조주로부터 남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들은(6절), 성숙해지면서 결혼을 통하여 자기 부모로부터 독립(獨立)하면서(7절), 자기 배우자와 함께 ’한 몸‘을 이룬다. 그때부터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one flesh)이다(8절). 여기까지는 창2:24의 내용을 확인해 주신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런 어두워진 세태에 더욱 분노하여 열을 내셔서, 그다음 단계의 메시지를 내놓으셨다. 곧 자신의 아버지이신 성부의 주례사에다 이렇게 한마디를 추가하신 것이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9절). 만일 본처와 본 남편을 버리고 다른 이성을 찾아 시집 장가들면, 그는 그 본처와 남편에게 간음(姦淫)한 자라고까지 규정하시면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부정(不淨)과 욕망(慾望)에 의한 이혼(離婚)과 재가(再嫁)의 위법성을 강조하신 것이다(10:11-12절). 창조질서 차원에서도 큰 위법이란 것이다.  


4) 이어서 어린아이들을 영접하시면서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장면이 이어진다(13-16절). 이 장면 역시 버림당하고 소외당한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애정과 관심을 부모들이나 어른들은 품고 살아야 함을 일깨우신 것이다. 특히 이혼한 부모에게서 버림당하고 상처받아 평생을 배신감과 외로움에 젖어서 살아가야 하는 어린 양들을 향한 책임 의식도 담았다. 


3. 서신서 / 엡5:21-6:4 / “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


교회는 어둡고 거친 마귀의 세력이 횡행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 가정과 가족을 보호하고 지켜내려는 영적 훈련소요 베이스 켐프와 같은 곳이다.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가정생활지침>를 제시하면서, 그 교회의 가정을 통한 창조질서 보존을 이루려 한다. 


1) 아내와 남편 사이에는 반드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바로 그 사랑이 자리하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그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22-30절). 그렇지 못하면, 부부는 자기 내면에서 치솟는 주장이나 자존심이나 욕망의 화산 폭발을 피할 수 없고, 그래서 서로 싸우며 다투다가 함께 모두를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 구체적 실천 방안은 바로 창세기 2장에 나온 창조 질서 확립 방안으로서의 부부의 한 몸 이루기를 기억하면서 재현하며 사는 일이다(31-33절). 요점은 이렇다.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尊敬)하는 일이다. 이와 더불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곧 자녀들은 주안에서 자기 부모에게 순종하고, 어버이들은 자기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주장이나 논리가 아닌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며 사는 일이다(6:1-4 참조). 그래서 자녀의 미래를 형통과 장수의 시대로 들어가게 하는 일이다. 


o 오늘은 남신도회 주일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품고 남자로 생존하면서 각종 크고 작은 은사와 멍에를 매고 헌신하며 수고하는 회원들의 앞길에 부디 하나님의 큰 위로와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교회와 세상의 공직자로서도, 훌륭한 위인으로도 승리하시길 빈다. 특히 추석 명절을 통하여 가정과 가족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받는 어른이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창조 질서의 일꾼으로 인정받아, 영생의 은총도 누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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