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빌2:12~18, 사4:2-6, 마5:13-16
오늘은 강림 후 열두 번째 주일이다. 지난 17일간이나 그토록 매섭던 폭염의 맹위도 이제 입추를 지나면서, 한풀 꺾인 모습이어서 큰 산을 넘었단 마음이다. 그동안, 이 불볕더위에 쓰러진 생명체들이 너무 많다. 온열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물론, 울안에 갇혀서 이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간 숱한 가축들, 뜨거운 태양열에다 물 부족 사태로 제대로 열매도 맺지 못한 채 수명을 다해버린 전국 산야의 과수와 채소들, 모두가 이 기후 위기와 재난의 희생물이다. 문제는 이런 환경 재난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대책이 시급해졌다.
우선 오랜 가뭄의 후유증이 심각하다. 그러기에 가장 필요한 일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 모든 생명줄을 장악하고 계신 우리 창조주의 긍휼과 자비를 얻는 일이다. 그분이 우리의 탄식과 간구를 들어주셔서, 어서 전국 대지를 적실 비를 풍성히 베풀어 주시기만을 기도하자. 이런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조물주와 고통의 현장을 연결해 줄 사람들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내고 인간이 안고 있는 고통과 비극의 아픔을 헤아려서, 이 둘이 은혜와 용서로 화해와 평화의 세상을 열게 하는 그 다리가 되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 모습은 일찍이 사도 바울의 하나님께 올리는 세 가지 탄식의 기도에서 잘 나타났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피조물의 탄식과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성령의 탄식을 함께 들을 수 있는 영적 귀가 필요함을 구한 것이다(롬8:19-27 참조). 이 기도 끝에, 바울은 우리 모두가 가슴에 새겨 둘 감동적인 성령의 응답을 이렇게 받았다. 곧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善)을 이루느니라”(롬8:28).
마침, 오늘 주신 세 본문 말씀은 이 창조의 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일하시는지를 밝혀주신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이 세 본문이 겨냥한 대상은 세상 일반인들이 아니다.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과 구별을 받고 구원의 자리에로 이미 깊이 들어와 있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품고 지내야 할 정체성(正體性)과, 그런 택함을 받은 이들을 돌보시는 하나님과 축복과 사랑이 무엇인지도 밝혀주셨다.
세 본문에 나타난 핵심적 주제를 담은 용어는 ‘빛’(light)이다(사4:5, 마5:14-16, 빌2:15 참조). 다만 구약에서의 이 빛은 하나님 여호와를 직접 드러내는 매체로서의 빛이다. 당신의 백성을 밤에 광야의 행진을 이끄시는 불기둥으로 드러내신 그 빛이다. 그런데, 이 빛은 복음서에 와서는 그의 아들 예수를 지칭하고 있다. 곧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으로서의 빛이다(요8:12, 9:5). 그러면서 이번에는 그의 빛을 받은 제자들에게 적용되기도 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14절).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16절, 1:4)라고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사도 바울의 글, 빌립보서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곧 성도들을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15절)로 칭한 것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제자들과 그리스도인을 서로 꿰매며 하나 되게 하는 고리가 바로 ‘빛’임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말할 때, 그의 구원을 말할 때, 그와 동행하는 삶을 말할 때, 우리는 먼저 이 빛이 ‘과연 & 진정으로’ 내 안에 존재하는가를 점검하고 성찰하여야 한다. 아울러 그 빛이 과연 어떤 내용과 방향으로 발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서는 오늘의 세 본문 내용에서 확인해 보면 된다.
1. 서신서 / 빌2:12-18 / “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
빛은 천지창조 과정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가장 최초로 있게 된 존재다(창1:3-5절 참조). 그러면서 창조주는 그 빛을 앞세워 만물 창조를 이루셨다. 요한은 그 조물주의 아들이신 로고스(말씀)가 사람들에게는 ‘참 빛(The true light)’이셨고, 특히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셨다‘고 증언한다(요1:4,9절). 예수께서도 바로 자신이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시다‘고 공언하셨다(요8:12. 9:5).
그런데 이 빛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어둠과 죄악을 쫓아내고 물리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참 빛 되신 예수와의 만남에서 나온다. 그러기에 그 빛인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은 모든 죄와 사망의 어둠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기쁨의 세계로 전이(轉移) 받고 구원을 받은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되고, 빛의 자녀들로 자신을 세상에도 드러나게 된 존재들이다(요1:12-14절 참조). 바로 그 점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일깨워 주었다(2:15).
1) 바울이 본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영생도 상속할 존재가 된 너무도 존귀한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러한 사실을 그곳 성도들에게 주지시키면서, 거기에 걸맞는 믿음의 대응을 하며 살아갈 것을 독려했다. 까닭은 자칫하면, 자신의 변화된 존재의 위상을 깨닫지 못하고, 밀려드는 각종 시험과 시련 앞에서 허망한 대응을 통해서, 모든 귀한 것을 다 날려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2) 바울이 본 빌립보 성도들의 긍정적인 모습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매우 일관성 있는 신실한 믿음의 행보를 흔들림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12절). 그래서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심정으로, 사도는 그들의 행보에 이렇게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는 무슨 말씀인가? 그들은 알아야 했다. 곧 자신들은 지금 완전히 하나님께 매여 있고 붙들려 사는 존재임을 명심하는 일이었다(고전2:13 참조). 그럴 근거로서는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 안에 계시면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과 영안에 당신의 소원(所願)을 두고 행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13절). 그런 점에서, 지금의 자신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임을 명심하고 처신하여야 했다.
3) 이에 가장 주의할 요점을 전한다. 곧 주의 일을 하는 데에서, 그들은 모든 일을 원망(怨望)과 시비(是非)가 없이 하여야 하는 점이다(14절). 사실 원망과 시비는 열심히 있는 곳에서 발생하고, 잘해보려는 데에서 일어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서이다. 그러기에 항상 조심해야만 한다. 마귀가 그물망을 치고, 교회와 성도들의 노력과 헌신을 망가뜨리려 하는 곳이 바로 그 지점인 까닭이다. 그래서 김을 뻬고, 의욕을 날리며, 나중엔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고, 결국은 상처만 남게 되어, 믿음에도 큰 마이너스만 남게 하는 곳이다. 잘 나가던 교회와 기관들이 도중에 주저앉게 되고, 판이 깨치는 것도 그 함정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바로 모든 충성꾼 들에게, 우선 자기 마음 단속부터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4) 빛의 자녀는 어느 지점에서 확인되는가? 바로 그 원망과 시비의 늪을 인내와 겸손과 관용과 기도로 잘 건너서, 목적을 이루는 감동과 기쁨을 드러나는 순간에 비로소 그 빛이 드러난다(15절). 그때 하나님과의 완전한 소통하는 교제도 이루어지고 있음도 체감하게 된다. 그때 말씀이 승리한 것을 확인하게 되며, 자신들의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을 알게 되고, 신앙의 경륜이 두터워졌음도 자각하게 된다(16절). 우리 교회들은 이런 믿음의 승리자들이 정말 필요하다. 이런 경륜자들이 버티고 있어야, 교회가 비로소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된다.
5) 그런데 우리 교회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원망과 시비의 그물망에 걸려들어 서로 만신창이가 된 패잔병과 같지는 아니한가? 아니면, 그 어려운 단계를 인내와 겸손과 치열한 관용으로 극복해 내어서 얻어낸 빛을 발하는 무리인가? 이런 여건에서 교회와 목회자는 어떤 대응을 해야할까, 어떤 빛으로 길을 밝히며 새로운 출발선상에 우리 교회 공동체를 올려 세울 것인가?
2. 예언서 / 사4:2-6 / “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에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
본문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자들(Remnant)을 향한 여호와의 축복 말씀이 가득한 곳이다. 이 말씀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의 오랜 시련과 역경을 힘겹게 극복하고 고국 예루살렘과 이스라엘로 귀국하여 고향과 성전을 지켜낼 처지에 선 이들을 향한 축복과 격려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처지는 나무의 줄기나 열매 수준이 아니라, ’싹‘에 불과했고, 남아 있으며, 머물러 있고, 힘겹게 생존해 낸 자들 수준이었다(2절).
인간적으로 보면, 매우 힘겹고 생존 하기에는 위험하기까지 한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바로 그런 자들에게 당신의 미래를 거신다. 없는 자, 사라진 자, 흔적만 있는 과거의 세대가 아니라, 연약하고 가련하며 미천하지만, 그러나 생존하면서 버텨내고 결국은 미래를 떠맡을 현재 당신의 눈앞에 있는 자의 손을 여호와는 들어주신다(3절).
☞ 이런 여호와의 시각은 연약한 교회를 힘겹게 지켜내는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시각이 아니겠는가-! 당신의 승부수(勝負手)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또 없는 자가 아니라 연약하고 빈곤함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교회와 목회자를 지켜주고 있는 눈앞에 있는 아련한 자들을 향하여 전력을 다 쏟으면서 목회를 해내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두신단 말이다-!
1) 그들 남은 자를 향한 여호와의 마음과 시각은 어떠했나? 이 심판의 때가 지나면, 그들은 참된 의미의 하나님 백성이 될 것이기에,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라고 하셨다(2절, 단12:1 참조), ’그들 남은 자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을 것이라 하셨다(3절). 그러면서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성령에 의하여 더러움을 씻고 청결함을 받게 하시면서, 다시 성장하게 하시고, 다산의 축복으로도 선물하실 것임을 예고하셨다(4절).
2)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될 때 그랬듯이 끝날 때도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은 눈에 드러나는 표에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5-6절). 이때 빛 되신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3. 복음서 / 마5:13-16 /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燈檠)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
본문은 빛 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된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확실히 규정해 주신 말씀이다. 곧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다’고 규정해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근거는 그들의 삶에는 이미 당신 예수가 주가 되셔서 살아가게 된 연고였다. 곧 그들은 예수를 만난 후, 자신들의 그 간의 삶을 내려놓고, 참 인간 되어 오신 예수의 삶을 배우고 익히며 살기 시작한 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맛과 멋이 이미 그들의 삶을 흠뻑 적셔 놓았음을 말한다. 마치 배추가 김치로 변함과 같았다.
1)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13절). 소금은 맛이 나야, 음식의 품질을 향상(向上)시키고, 변질도 막아낼 수 있다. 인간을 살리는 음식에 소금은 필수인데, 그만큼 세상의 품질과 변질을 막아내야 할 핵심적 세력은 바로 예수의 품성을 닮은 그리스도인임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과유불급(過猶不及) 교훈은 중요하다. 교만과 오만 대신에 겸손과 인내로, 자신보다는 전체를 포용하고 품는 희생적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섬기려 할 때에만 가능해진다.
2)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14절). 세상은 어둡고 혼란스럽다. 그러기에 밝은 빛이 필요하고, 중심을 잡아 줄 모범과 모델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그 역할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런 역할은 전혀 쉽지 않고, 오히려 무겁다. 큰 부담이고 위험하기도 하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 역할을 당신을 담은 제자들이 수행해 주길 바라셨다.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고, 대접이 아닌 베풂을 택하며, 취함이 아닌 나눔의 길에 서야 했다.
3) 주님은 ‘너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는 분부에서, 그 빛의 실체와 목적을 이렇게 규명해 주셨다(16절). 곧 우리가 비쳐야 할 빛의 실체는 ‘착한 행실’, 선행(good deed)이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의 목적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께 영광(榮光)을 돌리게 하려는 데에 두어야 한다.
이 질서가 흩어지지 않고 분명하면 그 결과 역시 최상이 된다. 하나님께도, 나에게도 최상이 된다. 하지만 자칫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자랑이 되는 순간은, 의외의 결과로 얻게 될 것이다. 모두를 다 잃고 빼앗기게 될 것이다. 명심하자. 우리 그리스도인은 발광체도 자가발전(自家發電)할 주체가 아니다. 다만 내가 믿고 섬기는 세상의 참 빛 되신 그리스도의 빛을 받고 사는 존재들이기에, 그 빛만을 내 안에서 밝혀 드러내려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o 우리는 남은 자들이다. 온갖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살아남아 있는 소수자들이다. 다만 우리가 겉보기에는 가련하고 빈곤하게 보일지라도, 우리를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은 지고하다. 당신의 미래를 우리에게 위탁하실 정도로 우리에 대한 기대가 크시다. 분명히 그때가 오면, 주님은 우리를 앞장세워 일하려 하신다. 그때 그 순간까지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이미 붙잡은 구원을 잘 가꾸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맛을 살리는 소금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무리들이다. 우리는 또한 세상의 빛이다. 주께서 보여주신 인생의 참삶의 모델을 이 세상 만민에게 보여주며 살 사명이 있는 자들이다. 이는 내 자랑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자 함에서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우리는 더욱 가치 있고, 본받고 싶어 할 삶의 모델로 쓰임 받게 되도록 지혜를 모으고 길을 찾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