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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후(1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평화통일주일

관리자 2026-08-04 (화) 22:59 11분전 1  

본문) 빌1:3~11, 출40:17-38, 마18:15-20


오늘은 강림 후 열한 번째 주일이다. 전국이 불볕더위에 시달일 정도로, 폭서(暴暑)의 위력이 무섭다. 이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어서, 매우 염려스럽다. 최근엔 우리 한반도와 제일 가까운 이웃 일본의 구마모토 지역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그들이 얼마나 황폐하게 무너져서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는지-, 실로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폭염으로, 태풍으로, 지진으로--, 또 다가올 대지진에 대한 공포로, 그들 일본의 신세는 아주 참담하다. 


그런가 하면, 저 유럽에는 자기 집안에 에어컨 설치하는 일에 온 국민이 목매달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 이는 최근에 불어닥친 기후변화에 따른 불볕더위로, 그동안 에어컨 없이도 넉넉하게 살아왔고 또 실외기 등의 소음에 대한 이웃들의 부정적 인식도 있어서, 하나 설치하려면 이웃들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만 했던 고상한 처지(!)에 비하면, 이런 현상은 그들이 이제는 실로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실로 나날이 격변하는 대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간들이 지켜야 할 품위란 마지노선도 왠지 허망해지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는 또한 지난 몇 주 전(7.12)에의 말씀 중, 어떤 유대인이 예수를 향하여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리이까’란 질문까지도 새삼스럽게 기억이 나게 한다(눅13:23 참조). 동시에 주님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기를 힘써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24절)라는 무거운 답변까지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이 우리들의 큰 과제이다. 이는 쉽게 살고 편히 살며 자기중심적 삶이 아닌, 타인과 우리 모두를 우선해서 생각하며 사는 공동체 중심의 삶을 의미한다고 보기에, 이 문은 분명히 큰 부담이 되는 문이다. 그럼에도 그 대답을 외면하거나 매달리지 않고 살면, 우리는 그 즉시 길잃은 양들이 되어, 우리도 결국 실종자들이 될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좁은 길과 좁은 문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오늘은 마침 우리 민족이 일제의 치하에서 해방된 광복절 81주년 기념 주일이다. 실로 매우 의미 있고 감격스러운 기념 주일이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의 출애굽 절기인 유월절기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이날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하여야 좋을까? 우선은 우리의 탄식과 기도에 응답하셔서 해방을 안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자. 그리고 목숨을 바치며,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헌신하신 선조들을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자. 


문제는 그 계승을 어떻게 이어가며 발전시키느냐에 있다. 특히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기에, 더욱 차원이 다른 대비가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대비가 필요한가? 우선 우리는 해방된 후, 지금까지 우리 민족을 분열과 대립으로 갈등하며 서로 원수시하며 지내게 하였던 분단 의식의 고리를 부정하고 깨뜨리며, ’우리 민족은 하나‘라는 자각으로 서로 하나 되게 하는 일, 서로 사랑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함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의식을 가진 지도부를 보유하고 있어서, 더욱 이 일에 한국교회가 연대하여 교회와 정부가 하나 되어, 민족이 하나 되게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다. 물론 아직도 한국교회 극우세력 중에는 상대를 정죄하고 저주하며 분열과 파괴자로 매도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냉전 구도로 몰고 가려는 정반대 입장을 가진 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평화와 화해의 세상을 향해 이 좁은 평화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강림 후 열한 번째로 주시는 오늘의 세 본문 말씀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세 본문이 주시는 큰 틀의 메시지의 핵심은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에 누구와 함께 계시는가‘로 보인다. 곧 하나님은 어떤 자들과 함께 하시며, 어느 곳에 계시며, 무엇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가를 우리에게 확인하게 해주시는 말씀들이다. 


서신서는 성령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계시는 지를 바울의 증언을 통해서 알려주신다. 곧 주님은 복음을 위한 일에 흔들림이 없이 참여와 연대하는 자들과 함께 하심을 전한다(5절). 


구약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당신의 거처로 마련하시는 성막 건립에 모세와 이스라엘이 얼마나 전심전력을 다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일심으로 성막을 건립하였다. 거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거처를 삼고, 이스라엘 광야 생활 40년을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다(36-38절). 


복음서에서는 주님이 말썽을 일으킨 공동체의 일원을 향하여, 그의 회개와 반성과 복귀와 회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도하며 수고하는 이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신다(19-20절). 이는 곧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선한 싸움과 노력의 땀을 흘리는 일꾼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심을 밝혀준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열된 나라와 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루어 서로 하나 되기 위하여 헌신하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시는 주님까지도 다시 뵙게 된다. 


1. 서신서 / 빌1:3-11 / “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분문은 성령이 복음을 위해 서로 사랑하며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마음으로 얼마나 사랑하였는지부터 보여준다. 그들은 바울의 유럽을 향한 복음 전파 운동의 첫 열매였는데(행16장 참조), 그때부터 바울과 그곳 성도와의 서로 사랑은 남달랐다. 마치 부모와 자식 관계 이상으로, 그들은 자기들을 떠나 복음 전선에서 온갖 시련과 역경을 마다하지 않고 수고하는 바울과 그의 사역과도 함께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4:15-16, 행18:5, 고후11:8-9 참조). 


1) 바울의 마음과 기도에는 항상 빌립보 성도들이 있었다(3-5, 7절). 마치 떨어져 있는 자식을 둔 어버이의 심정이었다. 다만 그들은 감사와 기쁨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시종일관(始終一貫)하여 바울의 복음을 위한 일에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도 항상 동참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기뻐했다. 그들이 행한 착한 일들은 주의 성령이 시작하게 하셨는데, 그들의 그런 꿋꿋한 모습은 너무 신실하여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바울이 믿고 있을 정도였다(6절). 


2) 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당하여, 온갖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는 일에도 침묵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옥중에서도 여전히 바울의 복음의 능력과 역사들이 온전히 펼쳐갈 수 있도록 다양한 모습으로 격려하고 지원하며 기도해 주었다. 그러기에, 투옥 중인 바울에게 빌립보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확실한 위로조요 기쁨조였다. 그리고 늘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7-8절). 


☞ 이런 모습은 오늘날의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성찰하게 하는 표본과 같다. 서로가 이용의 대상이 아닌, 생명과 사랑과 뜻을 공유하며 나누는 가족 같은 관계로 존속하고 있는지, 아니면 헤어지면 끝나는 형의 관습적 관계로만 머문 것 아닌지를 점검하게 한다. 목회자에게는 ’나에게도 빌립보 성도와 같은 믿음의 식구가 있는가‘를, 성도들에게는 ’나에게도 가슴과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기도해 주는 그런 목자가 있는가‘를 점검케 한다. 


3) 그들을 향한 바울의 기대는 컸다. 그 소중한 이들의 믿음이 현재의 단순하고 소박한 관계 차원을 넘어서, 미래와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 믿음으로 거두게 되는 의의 열매까지 풍성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그들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하였기 때문이다(9-11절). 그러려면, 그들은 현재의 믿음과 사랑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총명으로 더 풍성해져야만 했다. 그러면서 선한 분별력(分別力)을 높여서 이단 세력 등의 거짓과 말씀의 내용을 구별하면서 진리를 보전함으로써, 주의 그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자신을 지켜내야만 했다(9-10절 참조).


2. 구약 / 출40:17-38 / “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명령이 성막에 충만하매 ---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는 —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 


본문은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명령과 뜻을 온전히 받들어 순복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임을 보여준 곳이다. 본문은 그들의 출애굽 여정의 둘째 해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는지를 알리셨다. 그것은 당신의 지상에서의 거처(居處)를 성막(聖幕)으로 정하시고, 그곳을 건립하고자 모세에게 그 내용물을 지시하셨는데, 모세는 그 지시를 받아서 그대로 건축하였다. 곧 일곱 차례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란 표현이 그 핵심이다(17-32절 참조). 하나님의 동행과 이끄심은 그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 하나님의 거처가 될 성막에는 일곱 가지의 성물들이 있어야 했다. 널판-기둥-막-덮개와(18-19절), 증거판을 담은 법궤-궤 위에 둘 속죄소-가리개 휘장을 늘어뜨릴 증거궤(20-21절), 성막 북쪽 휘장 밖에 놀 상-상위에 진설할 떡(22-23절), 성막 남쪽의 등잔대-등잔대에 켤 불(24-25절), 회막 안 휘장 앞에 둘 금 향단-그 위에 피울 향기로운 향(26-27절), 성막 문에 달 휘장-성막 문 앞에 둘 번제단-그 위에 드리는 번제와 소제(28-29절),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둘 물두멍과 씻을 물-수족을 씻을 모세와 아론과 자식들-회막과 제단에 들어갈 때 씻기-성막과 제단 주위에 칠 포장-뜰 문에 달 휘장(30-33절) 등의 모두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차질 없이 설치된 것이다. 


2)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곳에 임재(臨齋)하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곳을 당신이 거하실 처소인 성소(聖所)로 인정하신 일이었다(왕상8:10-11 참조). 지극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때부터는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인 거처에 충만하였다(34절). 그곳엔 모세도 출입이 금지되었다. 오직 여호와의 거룩하심으로만 가득하였기 때문이다(35절). 


3) 그때부터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면서, 친히 그들의 광야 행보를 목자처럼 이끌기 시작하셨다(36-38절). 구름과 불이 하나님의 임재를 대신하였는데, 낮에 활동한 구름이 떠오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앞으로 나아갔고, 밤에는 불이 그들을 이끌면서 이스라엘을 행진하게 하셨다. 그렇게 당신의 백성을 계시의 산인 시내 산에까지 인도해 가셨다(13:21-22 참조). 뜨거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춥고 서늘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면서, 당신의 백성을 이끌어 주셨다. 여호와는 그의 명령을 쫓는 자들을 그렇게 품어주셨다. 


3. 복음서 / 마18:15-20 /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분문은 예수께서 당신의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얽힘(죄와 혼란)을 풀기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점을 밝혀준 곳이다. 공동체를 위한 땅과 인간의 수고를 하늘과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는 점을 확인해 주신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취할 신앙적 절차는 다음과 같다 : 


1) 기본 원칙은 상대인 죄인과 단 둘이 마주 앉아, 사랑 안에서 형제적인 훈계를 하는 것이다(레19:17-18 참조).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끝없이 용서할 자세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15절, 15:21-35, 5:24, 6:12 참조). 접촉의 목적은 용서와 화목에 두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2) 그런데도 상대가 고집을 부리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교우 한두 명을 동반시켜야 한다(16절, 신19:15 참조). 그래서 그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한다. 


3) 만일 그래도 그들의 말까지 듣지 않거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교회의 전체 회중에게 그 상황을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상대하면 된다(17절, 5:46-47 참조). 이는 최후 수단으로 그에게 공동체로부터의 축출(逐出)하는 방법까지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4) 예수께서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범죄하고 문제를 야기한 개인에게는 회개와 성찰할 기회를 주려고 하셨고, 공동체에게는 그런 개체의 형편과 사정을 외면치 않고 최선을 다하여 그에게 재기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열린 모습을 갖추게 하셨다. 


5) 그러면서도 두 가지 메시지는 분명히 하셨다. 최종 선택과 책임은 그 당사자의 몫이라는 점과, 선의를 가지고 합심하여 구하여내려는 교회 공동체의 목자적 행위에다 심판할 전권(全權)도 부여하심도 분명히 하셨다(18-19절). 주님은 그렇게 두세 사람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당신이 함께 하시겠노라고 확언해 주셨다(20절). 


O 지금까지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대상(인물)이 누구인지를 확인해 보았다. 성령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함께 하고 후원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분임을 확인했다.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과 지시에 순복하면서 하나님이 활동하시도록 헌신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는 분임도 확인했다. 성자 예수님은 교회의 주님으로서,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킨 이들을 돌이켜 세우고자 화목과 갱신을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하는 이들과 그 결정에도 함께 하시는 분임도 확인했다. 


오늘은 마침 평화통일 주일이기도 하다. 우선 주님과 나와의 하나 됨이 선행되도록 힘쓰자. 나의 선 자리, 설 자리를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의 사람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내가 보다 노력하고 헌신해야 할 영역이 어디인지도 찾아보자. 주님은 돕는 이 이시다. 내가 그의 사람이 되는 순간, 나를 위한 주님의 시간도 분명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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