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문) 요16:16~24, 사32:9-18, 행1:12-26
오늘은 부활절 일곱째 주일이다. 부활절기 마지막 주일이면서, 성령강림을 대망(待望)하며 기도하는 주간이기도 하다. 33년이란 짧은 인생살이를 살고 하늘 본향으로 떠나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시면서, 당신의 또 다른 몸체인 교회(敎會)공동체라는 큰 생명 공동체를 이 지구촌에 낳아 놓고 떠나신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때 우리 한국교회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주일로도 맞는다. 매우 의미 있고 뜻깊은 주일이다. 벌써 46주년이 되었는데, 그사이 우리나라는 광주의 처절한 피 흘림의 은혜를 힘입어, 세계에서도 모범적인 민주화 국가를 이루게 한 놀라운 열매를 맺고 있다. 특히 윤석열의 12.3 내란을 막아낸 동력도 제공했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원한다’라는 논지의 소설을 쓴 한강 작가를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하는 기념비적 열매를 거두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그 깊은 뜻을 헌법전문에 새기고 다시는 이런 폭력적 사태가 우리 역사에서 영구히 사라지게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지난 4.27에는 교단의 증경총회장단이 전체의 결의로 망월동 묘역을 찾아서 <5.18 민주 정신, 이제 헌법으로 새겨야 합니다>라는 특별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그 은혜의 통치 아래에 있음을 고백하고, 나라와 시대를 구원하는 교회로 제 역할을 감당하게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 우리는 오늘 주신 세 본문을 통하여, 인류사에서 새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등장한 하나님의 선물인 교회 공동체의 출현과 그 본래적 배경과 실체의 모습을 접한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하늘로 떠나심으로 인해 제자들이 겪게 될 심리적 걱정을 예견하시면서, 그 상처받을 마음을 상쇄시킬 더 큰 선물을 제시하는 것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붙들어주시려는 예수님을 뵙게 한다. 주님은 제자들이 마치 임산부와 같은 마음의 격변을 경험할 것으로 보셨다. 곧 기다리던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고통은 잊고 충만한 기쁨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서신서는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좇아서, 행동하기 시작한 예수 공동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그런 모습은 저들의 이전 모습과는 판이(判異)하다. 그들은 더 이상 엠마오나 갈릴리나 디베랴가 자기들이 돌아갈 곳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자기들이 갈 곳은 바로 예수께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셨던 예루살렘 바로 그 죽음의 현장이었다(행1:4 상).
예언서는 주의 성령이 오시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펼치시는지를 놀랍게 소개한다. 특히 주의 성령이 어느 교회와 같은 특정 그룹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 모두에서 매우 절실하고 광범위한 관심사로 당신의 실체를 드러내 주시는 모습에 놀랍다. 그런 점에서 특히 성령의 열매가 우리 민주화운동과도 그 성격상 맥락을 같이하고 계심을 엿보게 해준다. 정의와 공의로 광야를 아름다운 숲이 되게 하고, 평화와 안전의 처소로도 제공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승천으로 인한 스승 예수님과의 이별과 다시 그와 만남을 위한 약속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으려면(행1:11), 어떤 대비(對備)가 필요할까? 그 해답은 말씀으로 돌아가 그 지시를 좇는 데에 있다. 이제 세 본문의 내용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자.
1. 복음서 / 요16:16-24 / “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셨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본문은 곧 다가올 제자들과의 이별을 놓고,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때를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처할 것인지를 일깨워 주신 말씀이다. 한마디로, 주님은 그 기간을 마치 임산부의 해산할 때처럼 생각하며 받아들이라고 하셨다(21절). 곧 해산 시의 통증과 고통은 아주 혹독하지만, 일단 아기를 낳고 나면 산모는 그때 자식을 얻게 된 큰 기쁨으로 인하여, 그 직전까지의 고통의 때를 전혀 기억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1) 따라서 우리가 관심해야 부분은 우리가 주님을 다시 뵙게 될 때 가질 압도적인 기쁨과 만족함을 보유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일단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얻고, 채움을 받게 되면, 그때의 우리는 그간의 모든 혼란, 고통, 슬픔, 아픔, 고독 등등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일시에 벗어나게 되는 신비를 경험한다. 그런 수퍼 파워(super power)는 대체 무엇일까? 주님은 그 괴력(怪力)의 신비한 능력의 실체를 바로 보혜사 성령을 만나게 되는 일로 지적하셨다. 곧 그 성령을 받으면, 사람이 직전과 직후로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주님을 새삼 찾을 필요도 못 느낀다. 그 영은 바로 주님이 보내신 주님 자신의 영이셔서 그렇다. 그러면서, 주님 자신이 보유한 힘과 지혜와 능력이, 자신을 덮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주님만이 행사되던 그 놀라운 능력이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서도 표출되는 것도 경험한다. 마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일으켜 세운 것과 같은 일까지 행사했던 것처럼 말이다(행3:1-10 참조). 실로 역사를 바꾼 인물들이 된다!
2) 이런 보혜사의 거룩한 임재를 체험하게 되면, 그 누구나 큰 기쁨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본문에는 슬픔과 고통을 극복해 내어서 얻게 된 기쁨에 대한 증언이 가득하다(20-24절). 동시에 주님은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기쁨을 한순간 날려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게 하시려고, 확실한 방안 하나를 제자들에게 이어서 제시하신다. 그것은 아버지께 구(기도)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개입을 통하여, 공급받는 기쁨이 중단됨이 없이 계속 이어지게 하려 하셨다.
3) 이것이 주님이 당신 이후의 시대를 제자들이 어떻게 발전시키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비법(秘法)이었다. 바로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의 하늘 아버지께 직접 구하는 것이다. 즉 기도(祈禱)하는 것이다(23-24절). 이 기도는 여태껏 예수님이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와 교통하시던 교통수단이었다. 그때까지 제자들은 거의 기도 없이 살았다. 하지만 예수가 떠나신 이후에는 본인들이 직접 기도해야만 한다. 대신할 성격이 아니었다. 직접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모든 필요한 것들을 직접 받으며 살아가야 했다.
4) 이 기도가 살아있을 때, 성령이 주신 기쁨과 소망과 믿음은 유지되고 살아있게 된다. 성령은 이 기도를 통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운행하신다. 기도가 매설로(埋設路)인 파이프라인(pipeline)의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모든 주의 목자와 종들은 이런 기도의 통신수단을 뜨겁게 달구며 살아야만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4절)는 주님의 지시를 지상명령으로 알고,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매진하여야 한다.
2. 서신서 / 행 1:12-26 / “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 여자들과 어머니 마리아와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
본문은 평소 주님을 따르고 섬기던 자들이 주님께서 앞서 분부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흩어지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의 강림을 사모하며 오직 기도에 힘쓰면서, 새로운 역사와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준 곳이다.
그들은 이제 주님의 지시에 적극 복종하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스승을 죽였던 도시였기에 두렵고 멀리하고 싶은 곳이었던 그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고, 그곳에서 주님이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보혜사 성령을 전심으로 기다렸다(행1:4 하).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주님의 분부하신 말씀에 따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무리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는 몸 상태에 들어갔음을 보여 주었다. 그게 무척 중요했다!
이는 사실상의 지상 교회의 모태(母胎)였다. 이 모임은 교회의 기본이 될 큰 지침을 제공했다. 곧 교회의 총론(總論)적 면모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증인이 되어 그의 뜻을 펼치는 선교를 하려는 바를 목적으로 모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핵심 내용들은 세 가지였다. 예수 이름으로 모임이 이루어졌고(13-15절. 상), 사도(목회자)의 말씀 선포(증언)를 중시하였으며(15-20절). 필요한 인력을 세워서 선교를 효과적으로 펼쳐갔기 때문이다(21-26절).
이제 그곳에서의 주요 활동을 보다 각론적(各論的)으로 세밀히 살펴본다. 새 역사의 여명을 밝히려는 예수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행보로 그 문을 활짝 열었는가?
1) 예수 승천 후,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였다. 그들을 가르치고 먹이셨던 예수를 정점으로, 이들은 흩어짐 없이 함께 모였다. 장소는 예루살렘의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었는데, 대략 120명이었다(12-15절 상). 그래서 <예수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예수로부터 받았던 집단적 힘과 지혜와 사랑과 기도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흩어지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오직 모여야만 가능한 차원의 새로운 공동체가 출현한 것이다(히10:23-25 참조). 모인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祈禱)에 힘썼다(12-14절). 그러자 기도의 응답들이 잇따랐다.
2) 모임을 주도한 사도 베드로는 전체 모임에서 매우 중요한 안건 하나를 제시하면서 전체의 합의를 끌어냈다. 그것은 배신자 가룟 유다의 자살로 인해 결원(缺員)된 12제자 단의 빈자리를 새 인물로 채우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12명의 사도란 개념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성한 족장 야곱의 자손들인 12지파의 한 자리 몫을 채우는 의미 그 이상의 자리로써, 새로운 이스라엘의 빈자리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특히 그의 제안은 그가 시69:25과 시109:8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인물 대체를 예고한 말씀을 발견한 데에서 얻어낸 귀한 선물이었다(16-20절).
3) 사도의 조건은 엄격했다. 곧 요한의 물세례로 시작된 예수의 공생애부터 주의 고난과 부활 때까지 함께 한 자로서, 앞으로도 예수의 생애와 부활의 증인으로 삶을 헌신할 인물이어야만 했다(21-22절). 그래서 적합한 자들을 찾았는데, 곧 요셉과 맛디아(Matthias)였다. 그들은 이 둘을 놓고,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께서,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 보여 주소서’라며 하나님의 선택을 간구했다(24-25절).
4) 사도 보완을 위한 선택 방식은 구약에서 취하던 제비뽑기에 의한 것이었는데(잠16:33, 레16:8-10, 대상24:5-18,31, 욘1:7, 눅1:9 참조), 그 결과로 맛디아가 뽑혔다. 그가 12번째 사도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섰다(26절). 그는 평생 예수님 만나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만 충실하게 살다가, 그렇게 12번째 사도의 일원이 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맛디아의 후기 행적은 달리 소개된 바 없으나, 전승에 따르면 그의 유골이 유일하게 독일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120여명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에 따라 제자단의 빈자리도 채우면서, 비로소 하나 되어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주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어찌 보내지 아니하겠는가? 마침 ‘위에서부터 임할 성령’이 오시면 어떤 세상에 펼쳐질 것인지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하여 예고된 바가 있기에, 이제 그 내용을 확인해 본다. 거기에는 성령에 의한, 보다 새로운 차원의 변화가 이미 예고 되어 있었다.
3. 예언서 / 사32:9-18 / “ 마침내 위로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리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
전체 내용은 두 가지 차원을 담고 있다. 앞부분은 나태와 안일한 마음으로 자기만족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순종하지도 않고 지내는 이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예고했다(9-14절). 뒷부분은 그럼에도 여호와는 당신의 영(靈)을 부어주셔서,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아름다운 동산과 숲으로 회복(回復)시키는 비전도 주신다(15-18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이들과 그들 미래에 부어주실 축복의 예언을, 이곳에서 그렇게 미리 전하셨다.
1) 이 두 상반된 갈림길은 무엇인가? 바로 여호와의 목소리(음성/말씀)를 듣고, 그에 귀를 기울이느냐 여부에 있다(9절). 곧 그 말씀과 경고에 두려워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느냐 여부에 있다(10-12절). 경고에 안일한 대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임하겠지만(9-14절), 주의 음성을 듣고 깨어 응답하는 사람에게는 주의 성령이 임할 것이라고 했다.
2) 주의 영이 임하는 곳에는 놀라운 변화가 발생한다(15절-). 그곳은 교회 현장만이 아니다. 광야 같은 거친 세상 현장도 포함한다. 민주화와 인간화와 인권 보호가 필요한 모든 곳도 포함한다. 그곳도 세상 창조주의 사랑과 주권이 머문 곳이기 때문이다(요3:16 참조). 그러기에 주를 믿는 자들은 당연히, 성령께서 교회는 물론 인간 삶의 전 영역을 새롭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주의 영이 그곳에 임하셔서 공의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
가시와 찔레가 가득한 광야와 같은 곳이 평안과 안전을 누리는 아름다운 숲처럼 변한다. 빈곤한 곳이 충만한 곳으로, 슬픔의 삶이 기쁨의 삶으로 변화를 입는다. 정의와 공의가 함께 하면서, 평안과 안전을 누리는 삶의 터전으로 선사 받는다(15-18절).
o 오늘은 광주5.18민주화운동 기념주일이며, 동시에 성령강림을 대비하는 기도의 시간대이다. 참된 민주화의 열매를 위해서도, 우리는 성령의 힘과 도우심의 은혜를 뜨겁게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힘입지 않고 인간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이 황량한 세상을 창조주의 아름다운 밭과 숲이 되게 할 순 없다(사32:15-16 참조). 민주주의의 목표는 공의에 의한 평화요 안전인데, 그 성취 역시, 바로 하늘에 내려주신 거룩한 영의 능력을 받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회 성도의 깨어 있는 영성운동이 절실하다.
우리 목표는 주님의 말씀과 삶을 힘써 따르고 전력을 다하여 기쁨으로 증언하는 일이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자. 나부터 건강한 주의 일꾼이 되도록 엎드리자(행1:8). 내가 주님께 받은 소중한 직분이 어둠의 세력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게 하자. 성령과 말씀으로 깨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