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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어버이주일

관리자 2026-05-06 (수) 07:46 2시간전 3  

본문) 요16:1~15, 신34:1-8, 행1:1-11


오늘은 부활절 여섯째 주일이다. 늦봄과 초여름의 날씨가 교체하는 때이기도 하다. 가정의 달도 한창이다. 그중에 오늘의 한국교회는 어버이 주일로 지킨다. 지난 주일의 어린이-청소년 주일이 이어지는 주일이다. 모두가 소중한 대상들이다.


그렇다면 잠시 생각해 본다. 어린이로 대변되는 자식과 어버이로 대변되는 부모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성경에 지시하는 바로는. ‘네 자식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찾지 못한다. 다만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가 있을 뿐이다(엡6:4). 하지만 부모의 경우는 ‘네 부모를 순종하라, 공경하라’라는 가르침이 있다(엡6:1-2 참조). 이러한 차이 나는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요즈음 간혹 친 자식도 굶기거나 학대하여 죽이는 경우도 발생하여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사례도 없지 않지만, 그러나 압도적인 부모의 자식 사랑은 어찌 보면 본능적(本能的)인 차원의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해결할 차원의 것이기에, 성경이 세삼 주의와 경고를 담아주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양육 방식에 대한 지침만을 덧붙여 주셨을 뿐이다(엡6:4 참조). 


반면에 성경은 부모 공경 문제를 계명(誡命) 차원에서 다룬다, 곧 구원 문제와도 직결될 차원으로 자식의 부모 공경의 건을 다룬 것이다. 십계명에서 인간관계를 위한 첫 계명인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비롯하여, 출20:12, 신5:16등에서도 부모 공경에 계명은 그 강도가 매우 강하다. 특히 율법에서는 부모의 말에 불순종하고 완악하며 패역한 불량한 자식은 공개적으로 ‘돌로 쳐죽이라’는 등의 아주 격렬한 지시까지도 올라와 있을 정도이다(신21:18-21참조). 


곧 하나님은 자기를 낳고 길러 준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패륜적 인물이라면, 그의 하나님 공경 역시 거짓되고 위선적인 행세로 간주하신 것으로 보신 것이다. 물론 이때의 부모는 늙고 병들어 허약해진 세대들을 염두에 둔 배려임을 말할 것이 없다. 늙고 병들어 허약해진 노부모를 외면한 자의 경건은 하나님께서도 가증한 것으로 간주하신 것이다. 깊이 명심해야 할 대목임은 분명하다(잠23:22 참조). 


반면에 효도하는 자식에게 내리신 축복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내용에 집중해 있다(엡6:2-3. 신5:16). 이 내용엔 담긴 뜻은 무엇일까?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은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아주 귀한 효(孝) 교육의 자료이다. 이는 곧 자기도 노년에 자기 자식들로부터 공경받을 수 있게 하는 보험이 된다는 말이다. 자식은 부모의 삶에서 모두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효자의 삶의 보상은 노후의 복된 삶과 장수로 약속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성경이 동양 사상의 효도론 못잖게 부모 공경을 강조하는 것은, 더 큰 원인이 있다. 성경의 역사관은 처음과 끝을 말하고, 그 가운데 존재하는 시작인 처음과 현재인 지금과 미래인 최후의 그날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시각의 무게는 그 역사의 흐름이 마디의 단절이 아니라, 마디들의 이어짐인 연속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에게도 가계의 역사를 담은 족보(族譜)가 중요하지만, 성경의 족보관도 아주 대단하다. 한 사람을 소개할 때, 결코 그만을 소개하지 않고, 언제나 누구의 자손임을 함께 줄기차게 소개한다. 


복음서 시작에서도 예수가 아브라함의 42대 후손으로 오셨음을 소개할 정도이다(마1:1-17 참조). 엄청난 연대성과 책임성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본 ‘나’는 결코 나 혼자가 아니다. 아담에서부터 찾아보게 된 존재이고, 아브라함과 예수를 통해서 찾아보아야 할 존재이며, 까마득한 조상들을 함께 둔 존재임을 묵상해야 할 지극히 섭리론적이고 책임적인 존재가 바로 지금의 ‘나’(我)이다. 그러기에 나는 결코 함부로 살다 갈 존재이다. 그러기에 나는 부모에게서도 소중한 존재이지만, 창조주의 마음에서도 더욱 귀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늘의 세 본문은 이런 특별한 시각을 담고 태어나 살다 갈,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을 향한 삶의 자세가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시각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안겨 주신 매우 특별한 삶의 새로운 방향성이기도 하다. 그를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절묘한 디딤돌이 마련되었음을 일깨워 주셨기에, 비로소 얻게 된 놀라운 시각이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 이후에 시작될 세상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대비시키는 내용이다. 당신의 떠나심이 제자들에게 오히려 유익한 일이라고 역설하셨는데, 그 이유는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실 것이며 장래 일을 알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 이후의 제자들 삶을 근심이 아닌 희망으로 맞이하게 하셨다. 서신서에서는 그런 예수의 예언이 제자들에게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신명기의 모세 죽음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그의 죽음을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의 품속에서 영광스럽게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아주 좋은 사례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1. 복음서 / 요16:1-15 / ”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곧이어 닥칠 제자와의 이별은 스승 예수님께도 또 다른 과제를 안겨 주었다. 그것은 당신에게 닥쳐올 수난과 죽음, 그리고 다시 살아서 결국은 하늘 본향에 돌아가실 일련의 일들이 염려스럽거나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런 일 후에 남아 있을 제자들에게는 한결같이 당황스럽고 고통과 슬픔에 빠져들 일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이제 주님은 그들에게 닥쳐올 시련기와 혼란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미리 주지시켜서 잘 대처하게 하시려고 했다. 


그것은 죽음 너머의 활짝 열릴 영원한 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그 작업은 보혜사(保惠師)이자 진리의 영이신 성령(聖靈)이 당신의 대리자로 오셔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당신이 주셨던 말씀을 생각나서 깨닫게 하며, 그들의 장래 일에 관하여서도 제대로 알리시는 일이었다. 그런 성령의 역할은 떠나신 예수님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일들이기도 해서, 제자들은 그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스승과의 이별의 고통을 극복하고, 스승의 분부를 더욱 적극적으로 받드는 일에만 전력할 수 있게 하였다(행1:8 참조). 


1) 주님은 당신의 떠나심으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는 제자들의 실족(失足)을 방지고자, 발생이 가능한 사안(事案)들을 예측하셨다. 그것은 당신을 죽일 무리들이 제자들에게까지 위협하고 폭력을 서슴지 않으리라고 예상하셨다(2-3절). 예컨대, 출교(黜敎)를 통하여 제자들의 공민권을 제약하여 그들의 활동을 제압하는 일과 심지어는 박해하며 죽이는 일까지도 내다보셨다. 이런 일은 그게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란 미명으로 포장된 것인데, 그런 판단은 결국 그들이 아직 하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서 나온 것이었다. 


2) 그러면 이렇게 임박한 위기를 제자들은 어떻게 대응하며 극복해 갈 것인가?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한 대안자로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셔서 그들을 이끌게 될 것임을 예고하셨다(7-14절 참조). 곧 하늘에 오르실 당신 대신에 그들에게 임하실 성령의 활동(시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을 통보하셨다. 이렇게 오신 성령의 활동은 대략 외적인 영역(8-11절)과 내적인 영역(13-15절), 양면(兩面)으로 전개되리라 보셨다. 


➀ 성령이 일하실 외적(外的) 영역은 죄(罪)와 의(義)와 심판(審判)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는 일이다. 

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를 미워하면서 믿지 않는 일 자체이다(요15:25 참조).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우리는 보통 죄를 말할 때, 대부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것에만 국한해 생각하는데, 성령은 그것보다도 구세주 예수를 믿지 않는 일을 더욱 큰 죄로 본다. 의는 하나님께서 부활을 통하여 예수가 의롭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고, 그를 영화롭게 하시려고 하늘 보좌로 부르셨음에도, 세상은 그런 부활과 승천을 하나님의 의로 보지 못하고 믿지 아니함을 책망하신다(요8:50, 54 참조). 또한 성령은 예수의 부활로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심판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모르거나 믿지 아니한 마음을 심판하신다(요12:31-32참조).


➁ 성령이 일하실 내적(內的) 영역은, 예수께서 택하여 세우신 이들을 보혜사(保惠師-another Counselor)로 오셔서 진리와 평화와 사랑으로 굳건하게 서도록 돕고 보호하신다(7,13-15절).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제1 보혜사이셨다면, 그가 보내신 성령은 제2 보혜사이다. 예수는 육으로 오신 하나님이셨다면, 성령은 영으로 오신 하나님이셨다. 예수께서 성령과 함께 제자들을 돌보시지는 않았으나, 당신이 하늘 본향에 떠나시면서는 성령 보혜사를 당신의 대리자로 곧장 보내주셨다. 이때의 성령은 ‘파라클레토스’(그)로서, 변호사, 조력자, 원조자, 위로자, 교사 등의 활동을 펼치면서(14:26, 15:26, 16:7-11, 13-14 참조), 말씀도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들은 것만을 말하면서, 제자들을 오직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였고, 그들의 장래(將來) 일을 알리는 일에 집중하셨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이런 성령을 힘입어 사역하게 될 때는, 자연히 큰 능력들도 행사되었다.


2. 서신서 / 행1:1-11 /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를 받들어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받고자 사모하며 기다리는 중에, 부활 후에도 40일 동안이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오셨던 주님의 마지막 방문을 받고, 그의 최후의 유훈(遺訓)을 들은 후에, 그들이 보는 데에서 하늘로 승천(昇天)하신 모습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시에 그때 그들은 한 천사로부터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놀라운 재림(再臨) 계시(啓示)까지 받았다. 


그러기에 누가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의 서문인 본문은, 짧지만, 우리 기독교회가 아주 소중히 간직하게 된 여러 절기(節氣) 신앙의 근거가 될 말씀의 소재들을 담고 있다. 부활절기와 승천절, 성령 대망과 세례 및 재림신앙 등등이다. 성령 운동과 사회참여 문제의 지침도 있다. 


1)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숱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확실히 살아 계심을 증거하시고자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3절, 눅24장 참조).


2) 주님의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분부는 당신에게서 들은바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고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명령하셨다. 원수와 같은 예루살렘을 피하지 않고 성령으로 극복하게 하시려는 단호함이 담겨 있는 지침이다. 그때 주님은 거기에서 요한의 물세례가 아닌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을 예고하셨다(4-5절). 


3) 그들의 현실적 관심사인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 문제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이 나왔으나, 주님의 입장은 분명하셨다. ‘때와 시기는 하늘 아버지의 권한에 있기에 너희가 알 바 아니니, 너희는 오직 성령을 받아서 권능(힘)을 얻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당신의 증인(證人)이 되라’는 말씀으로 그들 관심사에 관한 입장을 정리해 주셨다(6-8절). 

☞ 이는 우리의 현실 참여에 관한 입장을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동행에서 나온 것이 우선해야 함을 강조하신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 곧 성령 안에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보다 큰 차원의 해방자이어야 한다는 점을 그렇게 지시하신 것이었다.


4) 부활 후 40일에 하늘에 오르셨고, 오르신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9-11절). 


3. 구약 / 신34:1-8 / ”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게서 길르앗 온 땅과 단까지 보이시고 — 이에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셨더라 “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의 죽음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전한 곳이다. 무려 성경 한 장 전체를 할애하면서, 그의 최후를 전하고 있다! 적어도 예수 이외에는 성경에서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지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그의 최후 시간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눈을 밝히시며, 그가 갈망하였지만 못 들어가게 된 가나안땅 전역을 직접 미리 볼 수 있도록 배려하신 모습은(1-5절),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사랑과 존귀함과 위로함을 받은 존재였는지를 알게 해 준다(출33:11, 민12:6-8참조). 


성경은 비록 그의 육신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마감했지만, 그의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특별한 영접을 받았음을 깊이 암시한 기록들을 남겼다.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다‘(6절), ’죽을 때 —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7절). 이는 그가 승천자의 명단에는 누락 되었지만, 여호와의 영원한 품에는 소중히 영접을 받았음을 확인하게 한다. 결국 그의 성스러운 최후는 우리(내) 자신의 최후의 그날을 위한 준비와 기도가 어떠하면 좋을지에 대하여서도 폭넓게 묵상하며 갈망하게 해준다. 


o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보낸다. 자식의 입장과 어버이의 입장 양면에서 우리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해보아야 할 때이다. 살아 계신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하며 지내야 할 것인가, 이미 어버이의 삶을 향유하고 지내는 나는 후손들에게 어떤 뒷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에 나는 어떤 대비가 더욱 필요한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삶을 마감한 모세의 삶에서 나는 어떤 도전을 받게 되는가? 어버이이기에, 성령 충만이 보다 더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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