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 20:1~10, 출15:13-21, 고전15:20-28
오늘은 2026년도 부활주일이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신 지 사흘 만에 죽음의 문인 무덤을 열어젖히시고, 살아나신 놀라운 날이기도 하다. 그 바람에 예수님은 인류사에 가장 새로운 생명의 장(場)을 선사하신 첫 번째 인물이 되셨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에 완전히 뿌리 깊게 자리한 <죽으면 끝이다>라는 의식에, <아니,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라는 새로운 각성을 안겨 준, 충격적인 의식 혁명을 품게 하신 날이다.
사실 당시의 유대교와 그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불러일으킨 하나님 나라 운동과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과 사랑의 메시지, 그리고 가난한 자의 이웃으로 인한 신선한 메시아 사역을 접하면서, 율법주의자들인 그들은 자신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예수의 그런 구원 운동에 시기와 미움의 마음을 품고, <예수만 제거하면 된다>를 목표로 삼아 그토록 전력을 다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었다. 하지만 그런 유대인의 승리는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된 날에 그가 완전히 부활(復活)하여 부활체로 등장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제자들은 물론 숱한 사람들과도 만나셨고, 50일 후인 오순절 직전에는 산자로 하늘에 오르시면서, 그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며 이 땅을 떠나기까지 하셨다. 때맞춰서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힘을 넣어주시자, 부활 예수의 약속을 믿게 된 무리들이 그때부터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믿음의 선포를 시작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물론 이방인들까지 그들의 선포를 복음(福音)으로 받아, 모세의 오랜 율법 종교의 굴레를 떠나, 예수의 몸체인 교회(敎會) 공동체라는 새 인류의 모임체를 이루며 지구촌 전역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죽은 자의 부활은 십자가의 예수를 정점으로 복음의 핵(核)으로 드러난 개념이지만, 사실 부활의 영과 능력은 성경 66권 전체를 관통하고 있던 실재(實在-reality)였다.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을 두렵게 하고 비겁하게 하며 초라하게 하는 어둠과 죽임의 세력을 꺾어내어, 승리와 기쁨을 안겨주는 빛과 승리의 실체로써의 부활 영이 엄존하고 있었다. 구약의 전반은 하나님의 권능과 말씀과 통치 속에 그 실재가 내재하였다. 그 체험은 순종과 믿음이 하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림자와 같은 부활의 실재는 예수와 성령의 강림을 통하여 보다 현실성을 드러냈다. 이를 위하여 제일 강조된 부분이 바로 거듭남(중생)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 바로 부활 생명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체험장이었다(요3:5).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되는 체험에서 부활 생명을 맛보게 하였다. 그 입구는 회개와 세례가 맡았다(마28:19). 그러면서 예수의 부활의 영인 성령 세례를 받게 하면서, 그 세계를 맛보며 들어가게 인도하였다(행1:8).
오늘의 세 본문을 본다. 복음서는 예수의 부활하신 첫 현장의 모습을 마주 보게 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그 부활의 첫 증인들이 그 날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였는지를 상세히 전한다. 구약은 죽음과 어둠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살리시는 능력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돌 같이 침묵했었던 모습을, 역사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있었던 사건들 중심으로 전해준다. 그때의 부활은 사건과 상황을 완전히 압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서신서는 예수의 부활이 죽은 자의 첫 열매임을 알리면서, 부활하신 주님이 그 이후 완전한 승리를 아버지께 바치기 위해 어떤 싸움을 통해, 그 나라에 이를 것인지를 전한다.
1. 복음서 / 요20:1-10 / “ 그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본문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신 그 현장인 무덤에서의 정황을 생중계하듯 한 내용이다. 그러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접하게 되고 믿게 되었는지를 전하여 준다.
(참고로 본문에서 나타난 다섯 단계인, 마리아의 겉보기- 요한의 들여다보기- 베드로의 들어가 보기- 베드로와 요한의 무덤에서의 만남과 믿기- 그리고 나가기의 전 과정은, 본 말씀연구원이 지금까지 제작해 온 모든 성경공부의 전 교재들의 틀(frame)을 이루고 있음을 밝힌다)
1) 첫 목격자는 새벽에 그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였다. 여러 명의 여인이 무덤을 찾았다고 전한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본 복음서는 유독 이 여인만을 빈 무덤의 목격자로 세운다. 그때 마리아는 무덤에서 옮겨진 돌문만을 보고, 예수님의 시신이 실종(失踪)됐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급히 달려가 베드로와 평소 주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2절).
☞ 마리아의 이 추측성 발언(2절)은 두 가지 항간의 소문에 기인한 것이다. 제자들이 사망한 그들의 스승 예수의 시신을 빼돌렸거나(마27:64, 28:11-15 참조), 무덤지기가 예수의 시신을 강탈하였으리라는 추측(15절, 19:41 참조)이다. 제자들의 입장은 당연히 후자의 경우였으리라.
2) 두 제자는 급한 마음으로 무덤으로 달려갔다(3-4절). 그 과정에서 두 제자의 행동에는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났다. 젊은 제자는 베드로보다 더 빨리 무덤에 가서 허리를 구부려 그 안을 살펴는 보았으나, 무덤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뛰어왔던 베드로는 곧장 무덤 안으로 직행했다. 둘 사이에 무엇이 보이나? 둘의 차이는 계속됐다. 베드로는 먼저 들어와 빈 무덤을 보고 그 사건의 중대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다른 제자는 뒤늦게 들어왔음에도 그 빈 무덤을 보자, 주님이 예고하셨던 바를 기억하며(눅18:33) ‘부활하셨음’을 믿었다(5-8절).
3) 그때부터 이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예수 부활의 빛을 받고 보면서 믿게 된 전혀 새로운 존재들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어찌 그뿐인가. 그날과 그 사건 이후로, 이 세상의 역사 구도도 그 부활의 빛을 믿고 찾아 나선 이들과 그 빛을 외면하며 어둠의 그늘에 빠져 사는 이들로 양분(兩分)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빛을 보고 경험한 이들이 자기 생명을 걸고 그 부활과 그 세계를 증언하는 ‘부활 복음의 바이러스’들이 되어 뜨겁게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 구약 / 출15:13-21 / “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
본문의 말씀은, 부활이란 하나님의 영적 능력이 예수를 통한 ‘인간 부활’ 이전부터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전한다. 즉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살리는 부활의 능력은 창조 때부터 이미 존재했음을 말한다. 그 능력은 세상 현실의 어둠과 사망의 굴레를 물리치고 생명과 구원을 안겨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나타났다. 즉 부활이란 정체는 예수 부활 그 이전부터, 아니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영과 빛으로 이미 활동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그렇다. 비록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죽은 자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을지라도(고전15:20), 그렇다고 부활이란 실재가 예수로부터 갑자기 시작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보다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 보유하신 부활의 능력과 그 역사는, 창조 질서의 하나로 에덴동산에서부터 존재하였고, 그의 백성들과 만물을 지키고 돌보며 다스리고 그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시는 힘과 능력으로 존재해 온 것이다. 다음은 그런 부활의 실재를 알았던 바울의 말이다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15:15-18).
그러면,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백성들에게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셨는가?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발생하였던 두 가지 승리의 대형(大型)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다 :
➀ 출(出)애굽 때에 나타났다(19절).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을 애굽 바로의 학정에서 빼내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자유인으로 살게 하시고자 홍해를 건너게 하신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대역사가 홍해 바다를 매체로 하여 일어났다. 애굽과 시나이반도 사이의 홍해(紅海)에 큰길을 내신 여호와는, 그곳의 큰물을 이용하셔서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가르셨다.
당신의 명령과 보호 속에서 애굽을 탈출하는 백성들에게는 홍해를 생명의 길이 되게 하셨고, 그런 당신의 백성을 끌어가려고 뒤쫓던 애굽의 군사에게는 홍해가 죽음의 길이 되게 하셨다. 즉 여호와는 홍해의 물길을 열고 덮는 방법을 통하여 여호와는 인간과 역사를 죽이고 살리시는 능력을 여과 없이 보여 주신 것이다. 그 홍해 도강(渡江) 체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죽음과 함께 다시 살아난 체험을 집단적으로 체득하는 결정적인 현장이 되었다(19-21절).
그러기에 이 역사적 부활 체험을 한 무리들은 그 이전의 사람과는 결코 같은 사람이 될 수가 없었다. 혹 그런 황홀한 체험을 하고도 그렇지 못한 사람처럼 처신하면,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자가 되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 체험은, 죄에는 죽고 의에서는 살아난 그리스도인의 물세례와 같은 차원으로 신학적 해석을 받게 된 인물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➁ 출애굽 후 40년이 지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적들을 제압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얼마나 두렵고 놀라웠던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주할 때의 주변 국가와 백성들이 반응하였던 모습을 본 그들은, 입을 모아 자기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능력을 찬양하게 된다(13-18절). <모세의 찬양>으로 불리는 오늘의 본문 내용을 보면, 그 장면들이 매우 실제적이며 뜨겁다. 주의 능력을 부활의 차원에서 다시 보게 한다-!
그들을 보호하고 돌보시는 위엄과 위세가 얼마나 엄위하던지-, 출애굽 기자는 이렇게 그 장면을 전한다. 여러 나라들이(블레셋-에돔-모압-가나안 등) 듣고, ‘떨며-두려움에 잡히며- 놀라고-떨림에 잡히며-다 낙담하며-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백성들이 통과하기까지 그들은 ’돌같이 침묵‘하였다’(14-16절). 이는 여호와의 부활 능력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와 함께, 예수가 무덤의 사망 권세를 젖히고 일어나실 때, 발했던 초능력에서도 맛보게 한다.
결국, 이 홍해 도강(渡江) 체험은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영원한 찬양과 감사의 주제가 되었고, 그 일에 대한 기억과 믿음은 그들을 일깨우고 구원하는 동력이 되었다(19-21절).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절대 보호하시고 구속하신 백성들이 이 지구촌에 등장한 것이다(13, 17-18절).
그들은 애굽에서 어린 양들의 피 값을 지불하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사신 대상들로서, 그 소유권은 하나님에게 있다(출12:3-14참조). 그 후, 예수의 오심으로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이 등장하였는데, 바로 그의 아들 예수의 이름과 그 십자가의 피 값으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입된 양자(養子)들이다(삼하7:14, 마6:9, 요3:16등등). 그들에게 여호와는 그들의 아빠와 엄마가 되신다! 선하신 하나님이 그의 능력을 드러내는 무리이다(17-18절).
☞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 기업의 산(가나안)에 심고자 하셨다. 거기에서 당신의 이름을 높이고, 당신의 처소(處所)로 뿌리내리게 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만이 홀로 모든 신 중에 왕이심을 드높이게 하셨다! 곧 그들을 세계 만민 중에서 ‘씨앗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는 누군가 맡아야 할 몫인데, 그 주역이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 하나님은 그 일을 가능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거룩한 힘(부활의 능력)을 여기에 동원하셨다.
3. 서신서 / 고전15:20-28 /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그러나 각각 그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할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 ”
본문은 부활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본문은 세상 역사와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의 불멸한 능력이 인간의 실존적 영역에서도 아주 구체적으로 나타났음을 밝힌다.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통하여, 그 능력의 실체를 보이셨다(20절). ‘첫 열매’란 말은 예수가 온전한 부활체의 첫 인물이란 말도 되고, 그로 인하여 죽은 자 중에 함께 부활할 모든 이들의 첫 사람이다’라는 말이기도 하다.
1) 사도 바울은 대표(代表)원리를 통하여 예수 부활의 의미를 설명한다. 즉 예수는 부활의 첫 열매로서, 아담 이래 인류에게 씌워진 죽음의 연쇄 고리를 끊으시고(롬5:12-21 참조), 죄와 저주의 그늘에서 신음하며 탄식하던 모든 생명체가 당신과 함께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신 주인공이 되셨다(21-22절).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란 배(號)에 승선 된 확실한 이유이다!
2) 하지만 바울은 예수의 부활이 안고 있는 과제들도 말한다. 주의 부활에는 마지막 승리를 위하여 밟아야 할 차례(step)가 있음이다. 시작은 첫 열매 예수께서 하셨고(완료), 그다음은 그에게 속한 그리스도인에게로 확대되며(현재), 마지막은 주께서 세상의 왕이 되셔서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셔서 그 장악한 나라를 하늘 아버지께 바치게 되기 때문이다(미래-/23-24절).
즉 최후에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장악하신 만물을 양도하시므로, 온 세상 만물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유(萬有)의 주요 만유 안에 계시는 분’으로 고백하고 복종함으로써, 여호와가 완전한 왕이 되신다(시110:1, 계20:4-6 참조). 인간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은 그때에 완전히 멸망 해서,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한다(25-26절).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시작된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 부활 이후의 최후를 보여 줄 하나님 나라 청사진(靑寫眞)이다!
o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를 찬양하자. 일찍이 그의 부활의 영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과 영광으로 채우시고, 그의 자녀 되게 하심에 감사하자. 다만 이제 주님이 부여하신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과 새 생명들을 생산하는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지금은 마지막 원수인 사망의 권세가 자기의 때가 다 된 줄을 알고, 더욱 열을 내어 우리를 주저앉게 하려고 한다. 저 애굽 바로의 군대처럼 말이다. 그러니 정신 차려 예수만 보고 더욱 앞으로 정진하자.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대장이시다.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자. 부활의 은총이 모두에게 충만하시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