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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청년주일

관리자 2026-03-04 (수) 10:26 2시간전 3  

본문) 요 18:28-40, 사60:9-14, 빌3:17-4:1 


오늘은 사순절 셋째 주일이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계속 왔다. 창밖의 정원에는 이미 봄을 알리는 봄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의 국운에도 봄이 온 듯해서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다. 나라의 부가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이나 기타 다양한 산업 방향으로 옮겨지고 있어서 더욱 반갑다. 무엇보다도 부지런하고 나라와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대통령이 활발히 국내외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런 백성들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따뜻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 더욱 기쁘다. 


이런 긍정적이고 축복된 기운이 우리 대한민국에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세계인의 희망이 되며, 교회와 성도들이 깨어 있으며, 백성들이 서로 하나 되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민족 공동체가 형성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최근 대통령이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어느 교민이 ‘나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뜨거운 고백을 들으면서 그곳에 모인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는 말이 들리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모처럼 찾아온 대한민국의 봄이 다시 겨울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빈다. 


세계가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주목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중에 가장 돋보이게 하는 대목은 우리 민족이 서로를 향해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we)라는 생각이 강하고, 실제로 그 ‘우리’를 위하여 거침없이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드러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이런 모습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를 비롯한 웬만한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시각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우리’가 언제 빛나는가? 잘 나갈 때가 아니라, 어렵고 고통할 때, 모두가 힘겨워할 때 빛을 낸다는 점에서 매우 강렬한 의미를 안겨 준다. 그렇다. 이 우리 의식이 우리의 고난의 오천 년 역사를 지금껏 유지하고 버티게 해 온 지렛대가 분명하다. 


오늘 주일은 지난 주간의 3.1절 독립만세 기념 주일에 이어서, 청년(靑年) 주일로 지킨다. 청년은 우리의 미래세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막중하다. 게다가 요즈음 우리나라가 인구절벽 시대에 진입한 연고로, 청년들이 맞이할 미래는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특히 소수화 되어가는 여건에서, 젊은이들이 나라와 민족에 대한 어떤 의식과 사고로 자신의 미래를 접근하느냐의 문제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된다는 점에서, 오늘의 주일은 중요하다. 


마침, 오늘 세 본문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 눈에 띈다. 바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증언들이다. 그런 증언은 예수님에게서도 나왔고, 이사야 예언서에서도 집중해서 나왔으며, 바울의 빌립보서에서도 ‘시민권’에 관한 증언으로도 나왔다. 그렇다.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나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조상은 물론, 나라와 민족과 그 문화라는 배경 모두를 부여받고 태어났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있는 DNA(유전인자)에는 특정 민족의 피가 흐르고 특성과 함께 문화적 개성들이 담겨 있고, 또 그것들이 삶에서 솟아 나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 모든 드러난 것들에는 차이(差異)는 있으나 차별(差別)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서로 다름으로 인한 비난과 배척은 절대 안 된다. 반면에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내게 있는 것이 소중하듯, 상대의 것도 귀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이 창조주께서 정해 주신 진리(眞理)이다(요18:36 참조). 이 진리(질서)를 좇을 때는 모두가 부족하고 짧음에서도 함께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되지만, 이 진리를 거부하면 모두가 가진 것이 제법 있음에도 결국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되어 빈곤해져서 죽게 된다. 


창조주께서는 당신의 모든 풍부한 것들을 그 어떤 특정 국가나 집단에게 몰아주지 않으셨다. 독점하게 하지 않으셨다. 대신 온 인류와 민족들에게 골고루 분배해 주셨다. 여기에 진리가 있고, 공존(共存) 공영(共榮) 공생(共生)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 예수님의 오신 이유도 바로 그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고 따라 살면서 이 세상을 평화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셨다. 여기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가 있다. 바로 이러한 하늘의 진리와 삶의 내용을 잘 깨닫고 온 세상에 알려주고 시범을 보여주며 살아가도록 하시려고 불러 세워주신 것이다.


오늘의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당신의 지상 생활 최후의 순간에 당시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밝히신 당신의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내용이 주목된다. 그 증언에서 보면,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다. 그 내용은 빌라도가 추정하고 있던 세속적인 힘의 제국이나 무장한 백성들이나 과시적인 영토를 뽐내려던 그런 류(類)의 나라가 아니었다. 그 대신 그의 나라는 ‘진리의 나라였고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의 뜻을 좇는 자들을 백성으로 둔 나라였다(36-37절, 빌3:20 참조). 


그 나라의 특징도 분명했다. 곧 핏줄로 선을 그을 수도 없고, 이념으로도 갈라놓지도 못하고, 군사력이나 피부색으로나 가진 물질이나 소유로 갈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 대신 이 모든 인간과 지상의 차이와 다름을 넘어서서, 하늘의 뜻과 사랑을 받아 그것을 좇고 공유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한 가족이 되어 살게 된 모든 새 인류가, 바로 진리의 나라 백성이고 그 나라의 시민권자이다. 국경이나 성별이나 빈부나 능력으로 구별된 것이 아닌, 오직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된 무리가 바로 진리 나라의 예수 백성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신분을 확인해 보자. 나의 나라와 나의 위치도 확인해 보자. 과연 나의 국적은 어디인가? 어디 시민권자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끝낼 건가, 하늘 시민증은 있는가? 


1. 복음서 / 요18:28-40 /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니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


본문은 체포당한 예수께서 당시 나라를 통치하던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을 대면하시면서, 그의 질문에 따라 자신이 <진리의 나라>의 왕(王)이심을 밝힌다. 이런 모습은 백성들이 숱하게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고자 할 때마다 무반응 내지 외면하시던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요6장 참조). 빌라도의 관심은 그가 진정 유대인의 왕인지를 확인하면서, 고발자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를 처리하고자 했는데, 이런 반응으로 빌라도는 예수가 범죄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속의 왕들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지배자임을 확인하게 되면서, 오히려 그를 석방하려 하였다. 


1) 유대인들에 의하여 체포당한 예수께서 끌려간 곳은 로마 관리인 빌라도가 통치하는 가야바 관정(官廷)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처형하고자 예수를 빌라도의 손에 넘기고 자신들은 관정 밖으로 빠져나온 것에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예수를 처형하려면, 처형의 법적 권한을 보유한 로마 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처형(處刑)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자신들의 종교적 이유 때문이었다. 곧 닥칠 거룩한 유월절에 이 예수를 처형하는 자리에 있으면 결국 자신들이 더럽혀질 것을 우려하여, 그러기에 세상 법의 손길을 통하여 예수를 처형하는 것이 좋겠다는 동기 때문이었다(28, 31절).


2) 하지만 예수를 넘겨받게 된 빌라도 역시 예수를 재판하는 일을 아주 부담스러워했고, 가능하면 발을 빼고자 애썼다. 이때 예수께서 안게 된 죄목은 이중적(二重的)이었다. 실제 사연은 그의 죄목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성모독(神性冒瀆)죄를 범하였기에, 그런 그를 죽이려 하였다(19:6-7절 참조). 하지만 빌라도는 그런 종교적 일이라면, 자신들 재판으로 처리하는 게 옳다고 보았다. 이에 그들은 빌라도가 재판을 피할 수 없도록 또 다른 혐의를 씌워다. 예수가 ’나는 왕이다‘라면서, 백성을 현혹하고 로마 황제 통치에 저항하게 한 정치범이라는 억지 논리를 얹혔다. 그 바람에 빌라도는 결국 그 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3) 결국 관정에 다시 들어온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직접 맞대어 재판하는 희대(稀代)의 재판관이 된다. 그의 심문(審問)할 주제는 당연히 종교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정치적 관심사인 ’예수가 과연 유대인의 왕이냐‘였다(33절). 이에 예수께서는 그의 관심사가 자신의 것에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왜곡된 논리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하신 후(34-35절), 당신 자신이 진정 누구신지를 직접 빌라도에게 담백하게 밝히셨다(36-37절). 


☞ 이 내용은 후에 당신을 향한 재판관 빌라도의 증언이 십자가상에 달린 팻말에 기록으로 남겨진 영원한 증표로 인류사에 길이 남게 될 것으로써, 예수 자신을 과감히 알리신 계시(啓示)였다(36-37절, 19:17-22절 참조). 곧,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다.


4) 예수님은 진정 왕(王)이셨다! 다만 세상의 왕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왕이셨다. 그의 나라는 진리만이 있고, 그의 백성은 예수에게서 나오는 진리를 생명과 생활의 양식으로 삼고 먹고 사는 사람들 모두였다. 그들은 예수 앞에 거짓과 위선과 독선과 탐욕과 배타성을 내려놓고, 그가 보여준 신뢰와 믿음과 용서와 포용과 사랑의 법만을 한껏 즐기며 살아간다. 그가 보여줄 갈보리 십자가는 바로 예수 나라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결정적 카드였다!!! 


5) 그러기에 그의 백성은 세계 그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동서남북, 빈부귀천, 남녀노소, 과거-현재-미래 가릴 것 없이 그 어디에서도 그의 백성은 존재한다. 다만 진리(眞理)란 양식을 자신의 생명(삶) 양식으로 취하고 살고 있다면 그는 확실히 예수의 백성이다. 그는 언제나 예수를 찾고 예수를 듣고 예수를 좇아 사는 모습을 취하면서, 예수를 드러낸다(37절). 


6) 이러한 예수의 증언에 영적 귀먹어리인 빌라도는 깊은 고뇌를 품고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리가 무엇이냐‘(What is truth?). 그러면서도 그런 예수에게서 진리란 내용에 대한 영감을 맛본 빌라도는 고발자들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기의 진심을 이렇게 드러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38절, 하). 백(白)을 백(白)이라 말해야지, 백(白)을 흑(黑)이라 할 수 없었다. 빌라도 역시 예수 앞에서는 길을 찾는 한 마리 어린 양이었을 뿐이었다. 


2. 구약 / 사60:9-14 / “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 ”


본문은 왕의 백성(百姓)의 지위(地位)를 회복한 자들이, 그 왕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복과 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인지를 소개한 내용이다. 본문의 배경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이 아주 오랜 세월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외면하고 이방 우상 종교에 심취하고 강대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벌을 받게 되어, 바벨론 포로의 멍에 속에서 오랜 세월 가난과 곤경과 압제와 슬픔에 짓눌려 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복역(服役)의 때를 마감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유보된 지위를 되찾게 되는 때가 오면서, 온 세상을 놀라게할 축복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의 환상적인 축복의 시대가 올 것을 예고하였다. 그것은 변방의 나그네 같은 처지의 백성이 이제는 세상 나라와 민족의 중심국가를 이루게 될 것을 예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대통령 한 사람이 새 인물로 뒤바뀌면서, 국민들과 온 나라가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롭고 신선한 다양한 선물들을 정치, 경제, 외교, 국방, 국민된 긍지 등등에서 누리게 되고 있음과 버금할 내용과도 흡사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과 마음을 드러내기를 소원하는 백성을 사랑하신다. 진리를 드러내는 백성들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 경제, 안전, 영화, 명예를 누리도록 모아 주신다. 그 점에서는 제외당한 민족이나 백성은 없다. 그야말로 예수의 진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면 누구나, 택한 백성의 영화와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신다. 본문은 그 구체적인 약속들이다. 


1)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엄과 축복을 이방 나라들로부터 받게 된다. 특히 존경과 경제적 헌물들로 회복된 이스라엘이 새 힘을 얻게 된다(9절). 

2)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의 은혜에 따른 외국인들의 적극적인 도우미 활동을 받는다(10절). 

3) 외국과의 관계가 항상 개방적이 되어, 나라와 백성의 살림이 엄청나게 풍성해진다(11절). 

4) 이 나라를 가까이하는 백성은 복을 받지만, 멀리하고 대적하면 멸망을 당하게 된다(12절).

5) 세계의 중심국가의 반열에 서게 되면서, 예전의 무시하던 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13-14절)


3. 서신서 / 빌3:17-4:1 /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우리를 본받은 자들을 눈여겨보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게 매우 담대한 요구를 한다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러면서 당신을 본받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들도 눈여겨볼 것도 권한다(17절,고전11:1). 왜 그랬을까? 이 요구의 배경에는 그곳 교회 주변에 있는 위선적인 율법주의자들이 있었고, 또한 그들과는 전혀 다른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사는 자신의 삶도 있었기에, 그는 교우들에게 양측의 삶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확증을 얻으라고 말했다. 하늘 시민권자가 진정 바울인지 율법주의자들인지 비교하여 그 답을 찾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얼마나 당당한 성도인가!


사실 진리의 영인 성령을 받아 율법주의자에서 복음주의자로 바뀐 바울에게는 항상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이 가득했다. 교회를 살리고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기도와 눈물과 시련이 끝이 없었다. 그래도 감사하면서 복음을 전하므로, 지금의 빌립보교회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행16장 참조). 이렇게 진리의 백성, 확실한 천국 시민권을 보유한 이들이 교회에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들어서, 당신의 교회와 나라를 보전하고 확장해 가신다.


o 오늘은 청년주일이다. 우리는 진리를 보여줄 젊은이들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필히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요14:16—17, 15:26), 그래야 예수와 동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리의 사람은 진리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이나 미움과 배척도 받기도 한다. 세상은 자기들이 못하는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드러내는 자들의 모습에 극심한 시기와 질투를 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거기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다시 오실 주님께서 입혀 주실 하늘 영광의 변화된 형체를 입게 될 날을 꼭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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