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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신학교육주일

관리자 2026-02-03 (화) 17:36 9일전 59  

본문) 막3:20-35, 암9:7-15, 롬8:12-17    


오늘은 주현절 다섯째 주일이다. 이때는 메시아이신 주 예수의 구원의 활동이 매우 강렬해진 때이다. 여기에는 당시의 예수님의 메시아 활동이 활발해 질수록, 그만큼 이를 저해(沮害)되는 세력들의 역공(逆攻)도 거셌음을 말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역공 세력이 그래서는 안 될 자들에 의한 것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것은 아예 하나님을 모른 세속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주 잘 안다고 자부하던 유대교의 서기관(신학자)들이 그 주도자이었다는 데에 있었다(22절).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의 예수를 향한 공격은 아예 도(度)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곧 말말에 가까운 비난과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일삼던 수준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가 미쳤다’고 공개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하였고, 그것도 ‘예수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에 지펴서 한 일‘이라고까지 음해(陰害)했다(21-22절). 이런 저해 행위는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희망을 품고 몰려든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사회적으로도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들은 바로 당시 백성의 신앙을 지도하던 신학자요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신 예수께서는 그런 훼방에 침묵하실 수 없음을 아시고, 아예 그들을 불러다가 묻고 책망하시기까지 하셨다(23절). 자칫하면 백성들이 당신을 통하여 밝히 보고 알게 된 하나님 나라의 길을 이 서기관들의 훼방에 의하여, 또다시 미궁에 빠져들게 될 수 있고 길을 잃은 양들의 처지와 같이 될 수 있다고 보셨던 까닭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이 기회에 그들의 공세를 아주 강력히 차단하고자 하셨다. 


마침 오늘은 총회가 제정한 신학교육주일이기도 하다. 우리 교단의 목회와 신학의 지도자들을 양육하고 배출하는 한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위한 주일이다. 이 주일이 중요한 까닭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곳에서 배출한 인물들이 우리 교단에 소속한 교회들을 섬기게 되고, 성도들의 영혼들을 목양하는 사역자들로 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엄중히 찾아야 하겠다. 


그렇잖아도, 작금의 한국교회는 수준 낮은 신학과 영성으로 사회적 신뢰를 크게 상실하였다. 이는 성서나 예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해서 얻게 된 자업자득이다. 여기에 우리 기장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자칫하면, 우리 교단도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에 대한 비난과 오해를 주도했던 저 예루살렘 성전의 서기관들과 같은 미숙한 신학자와 목회자와 설교자처럼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더욱 정신 차려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올바른 삼위일체 신학이 제대로 교육되어야만 하고, 그 중에서도 온전한 성령론에 의한 선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바르게 익혀야 하며(복음서), 에큐메니칼 신학에 따른 건강한 구원론도 훈련되어야 한다(구약).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됨과 그 자녀와 가족으로 사는 삶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깊이 훈련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누릴 영광 못잖게 고난도 받게 될 훈련도 강화되어야할 대목이다(서신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 기독교장로회는 매우 자랑스러운 교단이다. 신학의 우수성에서는 이미 한국교회에서 공인을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 역시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많다. 삼위일체 신론이 부족하고, 특히 그리스도론에서 함께 일하시는 성령의 역할을 함께 보는 시야가 매우 좁다. 그 바람에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는 주님의 경고가 두렵기 까지 하다. 아울러 주의 가족의 삶이 무엇인지도 더욱 훈련해야 한다. 고난 강조 못잖게 영광 받기에도 마음을 기우려야 한다. 화살촉의 은사와 함께 그것을 대량으로 곳곳에 쏘아댈 화살들인 은사 개발에도 열심을 해야 하겠다. 


1. 복음서 / 막 3:20-35 /  “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운동에는 이 성업을 계속 방해하고 훼손하는 일들이 잇달았다.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예루살렘의 유대교 본부에서 파송된 서기관들의 비방들이었다(22절). 그들은 예수의 치병과 귀신 축출(逐出)행위를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방하고 나선 것이다. 곧 예수의 그 행위들은 예수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행한 일이라면서 그 일을 격하시켰기 때문이다. 예수를 귀신의 일원 내지 하수인으로 매도한 것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무지와 악의에서 나온 일이었고, 실로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그 이유는 예수의 귀신 축출은 자신이 가진 긍휼과 자비의 능력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고, 동시에 주님의 사역에는 언제나 보혜사 성령의 개입에 의한 역사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배경을 모른 체 예수의 은혜로운 사역을 왕 귀신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그렇게 했다고 매도한 것이다. 그런 짓에는 예수에 집중된 백성들의 관심의 열기를 무너뜨리려는 악의마저 있었다.  


또 하나는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를 붙들려고 찾아 온 일이었다. 그 이유는 가족들의 귀에 ‘예수가 미쳤다’거나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는 소문이 들렸기 때문이다(21, 30절). 이 악소문의 출처도 서기관 측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신학적 지식과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악의 세력으로 매도하는 아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내용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본다.   


1) 당시의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셨다. 무리들이 주님을 계속 따랐기 때문이다(20절). 그런 중에도 매우 불유쾌한 소식들이 두 가지 들렸다. 하나는 예수의 친족들이 예수께서 미쳤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를 붙들어 들이려고 찾아온 일이었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신학자)들이 예수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에 지펴서 귀신을 쫓아낸다며 악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2) 예수님은 즉각 대응하셨다. 당시 서기관들은 신학자들로서, 나름대로 백성들에게 율법에 대한 해석을 내릴 권위를 가진 자들이어서, 그런 자들의 예수의 사역에 대한 평가절하는 마냥 무시할 수만을 없었다. 백성들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부당한 선동을 막으셔야했다. 그래서 그 소문을 낸 서기관들을 직접 부르셔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들로 해명과 함께 날카롭게 경고도 하셨다(23절).  


3) 주님의 첫 반문은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는가’였다(23절). 사실이 그렇다면 그 점은 사탄의 왕국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고 동시에 사탄의 왕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이기도 해서, 그들의 주장은 처음부터 허구(虛構)임을 밝히신 것이다(23-26절). 둘째의 해명은 강한 자만이 약한 자에게 쳐들어가 결박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 당신께서 사탄보다 강하시기에 그가 약자이자 하수인 사탄을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몰아내신 것이었음을 밝히셨다(27절).    


4) 그와 함께 주님은 비장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저주하듯 말씀하셨다. ‘사람의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한 죄가 되기에,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28-29절). 이 내용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치병 사역과 사탄 축출 사역이 성령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펼쳐진 일임을 알게 된다. 사실이 그러하였기에 예수께서 그들의 비난을 성령 모독죄에 해당됨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매우 큰 경각심을 안겨주기도 한다. 

   

5) 그와 함께 예수님은 당신의 미쳤다는 소문 때문에 당신을 데리러 온 가족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의미심장한 반문을 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이냐’(33절). 이 질문에 자문자답하시듯 예수께서 답을 주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35절). 이미 메시야로서 출가(出家)하신 예수님에게서의 가족관은 개인 요셉 가문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을 좇는 사람 중심의 가족관을 이뤄놓으셨다.


6)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절대적인 하늘 가족들이었다(34절). 그들은 이미 사가(私家)의 일원이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삶의 길을 예수와 함께 택하며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예수로 인하여 거듭난 존재였고, 예수가 이루시려는 세계를 가슴에 품고 새 삶을 출발한 하나님의 가족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누구의 자손이냐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 자녀란 정체성을 운명처럼 이미 걸머진 체 살아가고 있었다. 


2. 구약 / 암 9:7-15 / “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 내 백성 중에서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 


북 왕국 이스라엘의 아모스 예언자 시대는 왕 여로보암 2세가 약 40여년(주전 787-747)간의 집권 동안, 그 어느 시절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하던 때로서 최상의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 때 하나님의 위탁을 받아 예언운동을 펼친 아모스는 배부르고 자신감에 차 있던 그 시대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적군이 쳐들어와 그들을 사로잡아 갈 것을 예고했다(7-9장). 사실 북쪽에서는 이미 아수르가 위협 세력으로 등장하는 중이었다.  


그런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선고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 상류층이 부패의 늪 속에 빠져 있었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행태 때문이었다(2:6-8, 3:9-10 등). 곧 힘없는 형제와 이웃을 향한 사랑이 없이,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일에만 전력을 쏟았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그런 일이 하나님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대상으로만 간주한 일이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5:21-24). 


1) 그러면서, 아모스는 인간에 대한 그들의 제한된 인식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하나님의 정의롭고 자애로운 모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7-10절 참조).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과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보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사랑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라는 말씀이다. 물론 뒷부분에서 이스라엘을 멸하시지는 않을 것임을 약속하셨지만(8-9, 11-15참조), 하나님은 이미 세계 만민 모두를 고르게 사랑하고 계심을 분명히 하셨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듯 구스(에티오피아)도 사랑하시고, 애굽도 사랑하시고, 갑돌(그레데)도 사랑하시며, 기르(아람)도 사랑하심을 표명하신 것이다. 이 점은 우리들이 왜 온 세계 만민도 사랑해야할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2) 이 점을 모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마치 자기들만 사랑하시기에, 자기들은 어떻게 살아도 절대 내치지 못하신다는 착각에 빠져든 것을 경고하셨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화(禍)가 우리에게는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도 아니하리라’며 헛소리하는 모든 죄인들은 칼에 죽으리라고 무섭게 경고하셨다(10절). 이는 여호와가 분명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그런 자만과 오만한 자들에게는 긍휼이 아니라, 불과 칼의 심판을 내리실 것을 전한 것이다.  


3. 서신서 / 롬 8:12-17 /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여기에는 사도 바울의 지적 대상이 보인다. 바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 여전히 육신의 육정에 따라서 교회 생활하는 자들이다.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생각 밖에 많다. 어찌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모독한 자들이라며 책망을 받았던 서기관들처럼, 그리고 아모스로부터 이웃 사랑 없이 하나님 사랑에만 매달렸던 유대교도들처럼, 믿음의 형식을 갖추었으나 생명력은 없고, 관습적이지만 진심은 고갈되어 있는 그런 메마른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다,  


1) 이런 사람들 가슴에는 빚진 자의 의식이 없다(12-13절). 예수께서 날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는 부채의식이 없다. 그러기에 주를 위해 산다는 마음이 없다.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14절). 따라서 모든 신앙생활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육신대로 살고 육정을 쫓아 산다. 믿음의 냄새나 향기가 전무하다. 생명체들이 찾아올 리가 없다. 그런 생명 없는 자들에게, 어찌 영생의 기업이 허락될 수 있겠는가!   


2) 길은 하나뿐이다. 이제라도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죽고 예수가 내 안에서 살아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 내 삶이 죄의 멍에와 병든 자아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가 나의 진정한 주이심을 고백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되어야만 한다. 죄로 인한 두려움보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 더 충만해야만 한다(14-15절) 


3) 성령은 물론 내 안의 영까지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항상 환기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하늘의 영원한 상속자 의식과 그에 따른 영광의 소망을 보유하며, 그에 따른 어떠한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역경도 두려움 없이 능히 감당할 각오도 품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o 오늘은 신학교육주일이다. 신학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을 알리고 섬기는 특별한 학문이다. 그 교육의 내용에 따라서, 이 세상과 인간의 영혼들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그곳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하여 투철한 정체성을 보유해야 한다. 우선은 부르신 하나님의 뜻과 분부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분별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 소명(召命)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성령의 훼방자가 되면 안 된다. 


100%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사역하여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전적으로 동역하여야 한다. 그 분의 영광과 고난도 함께 할 각오로 임해야 한다. 하늘 상속자의 일원으로 살아야한다. 어떤 경우에도 성령의 모독자가 되어선 안 되고, 기쁘시게 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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