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 4:31~38, 왕상 3:5-14, 골3:1-11
오늘은 부활절 셋째 주일이다. 산천은 신록으로 이미 덮여 있다. 거리의 정원에는 온갖 꽃들의 잔치 향연으로 가득하다. 년 중 가장 새 기운으로 충만한 시기로 보인다. 이런 때, 우리나라는 6월 3일에 있을 제21대 새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한다. 마침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전쟁을 일으켜 온 세계에 자기 아메리카의 제국 힘을 과시하려고 위세를 부렸으나, 그것 역시 자국 내의 분노와 역풍에 막혀서, 대세가 꺾였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탄핵까지 운운할 정도로 역풍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미국의 존재 이유를 왜 그렇게 대통령이 모를까-?.
저들 미국민은 한국 백성들이 온 세계에 보여준 민주주의의 힘과 위력을 이제는 자기들이 본받아야 할 때라면서, 자기들에게는 왕이나 독재자는 필요 없고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면서 온 나라가 대규모 시위들로 들끓고 있다. 미국이 노출한 가난의 내면을 보면 처참할 정도이다. 트럼프의 오만이 멋지게 견제되면서, 세계는 우리 한국의 새로운 변화와 전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 역시 불안하다. 내란 우두머리는 여전히 체포도 되지 않은 체 뒷 정치를 계속하고 있고, 저들 대규모의 내란 잔당(殘黨) 세력들은 여전히 판을 뒤집어 놓으려고 역풍을 도모하면서, 나라의 정상적인 거듭남의 행진을 저지하려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 주일과 함께 교회교육(敎會敎育)주일을 맞이한다. 우리의 미래 세계를 생각하며, 저들에게 가장 영향을 주고 사는 기득권을 가진 성인 세대의 삶을 먼저 되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부여된 것이다. 한국은 교육열에 있어서 세계의 탑 클래스에 속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생산된 자원들이 기득권자가 될 때,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또한 매우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대 출신들이 우리 사회에 보여주는 허망한 모습들이다. 이는 교육 방법의 문제가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기계적 인간 생산에 몰두하고,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을 생산하는 데에는 너무도 무지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 교육은 생각하게 하는 교육, 함께 묻고 대답하게 하는 교육, 길을 찾게 하는 교육, 더 나아가 나만이 아닌 모두를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다. 그러면 어떤 교육이 되어야 할까? 그런 점에서 교육의 방법은 어서 쇄신(刷新)되어야 한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교육 방식을 교회와 가정과 학교에서 진지하게 참고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특히 하브루타(Havruta) 학습법이 주목받고 있다. 하브루타는 토론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 방식이다. 이러한 교육 방식으로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스타트업(start-up) 강국이 되었으며, 창의적 글로벌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말씀목회연구원에서 출간하는 성경공부 교재들이 이러한 하브루타 학습법을 도입하면서, 학습자들인 교인들이 함께 생각하고 함께 답을 찾는 교육 방법을 채택하며, 같이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설교식이고 나열식으로 말씀 이해를 주입하려는 방식을 지양하고, 대신 다양한 질문을 제공하면서, 교인들의 다양한 사고와 응답을 도출하여 공통의 모범 답안을 창출하고자 함이다. 이제 우매한 교인들만을 생산할 위험성이 많은 맹목적인 아멘 유발형 설교나 교육은 지양(止揚)되어야 한다. 그 대신 충분한 근거와 합리적인 공통적 관심사를 찾아서 마음에서 나오는 아멘을 유발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보면, 대체로 전인적 축복과 응답을 목표로 하는 내용이 많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양자 선택적 명령보다는, 그 명령과 지시를 거부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잃거나 빼앗기게 되는 형태의 말씀이다. 예컨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마6:33)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는 우리가 전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있고, 모두를 다 잃을 수 있는 길도 있음을 일깨우신 말씀이다.
우선순위 문제가 역시 큰 과제이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하면, 우리가 필요한 땅의 것들도 하나님이 더하여 주시리라는 약속이다. 이 말씀을 따르면, 우리는 위의 것과 땅의 것들 모두를 함께 얻지만, 불순종하여 땅의 것을 우선하면 하나님의 것은 물론 온전한 땅의 것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앙 교육도 이런 ‘다 얻게도 하고, 다 잃게도 되는 대조적 세계’를 보다 선명히 밝혀 주어서, 모두를 얻는 자를 양육해 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면 좋겠다.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이 알지 못하지만, 당신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양식이 있음을 알리시면서, 당신이나 제자들 모두가 이 둘을 함께 다 알고 함께 즐거워할 길이 있음을 일깨워 주신다. 그러려면, 먼저 제자들도 눈이 열려야 한다.
구약의 내용은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면서, 여호와로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가 다른 무엇보다도 분별(分別)해서 듣는 마음인 지혜(discernment)를 요청하자, 이를 기뻐하신 여호와께서 그가 요구한 지혜는 물론, 미처 요구하지 아니한 왕으로서 필요한 부귀영화의 모든 것들도 덤으로 안겨주시는 내용을 담고 있다. 땅의 것이나 인간적인 것은 위의 것인 하나님의 것을 받게 되면, 거기에 잇대어 따라옴을 알려주신 내용이기도 하다.
서신서는 교회 성도들의 온전한 믿음 생활을 일깨우기 위한 말씀이다. 여기에서도 ‘선(先) 위의 것’을 강조한다. 또한 위의 것 외면하고 땅의 것만 매달려 사는 일은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길임을 강렬히 경고한다. 위의 것은 축복을 안겨주지만, 세상 것은 오직 하나님의 진노(震怒)만을 불러오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하신다. 이와 함께 새 사람을 입은 우리들은 마땅히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고 사는 모습을 보여줄 것도 요구하신다.
1. 복음서 / 요4:31-38 /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향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사마리아에 전도 차 방문하신 때에 일어난 일이다. 그곳 수가 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적잖게 대화가 길어지자, 제자들은 먹을 것을 준비하고자 동네에 들어가 구해서 왔다. 제자들이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그 여자 때문에,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 관심하고 뵙고자 제법 찾아왔기 때문이다(27-30절).
그때 제자들이 준비해 온 먹을 것을 드리며 ‘잡수시라’고 권하자, 주님이 예기치 아니한 말씀을 하셨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32절). 놀란 제자들은, 주님의 그 말씀은 그 누군가 주님께 가져다드린 또 다른 먹을 양식이 있어서 하신 말씀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러면 주님이 알리신 당신이 가지고 계신 그 양식은 대체 어떤 것이었나?
1) 주님의 답변을 보자. 곧 ‘나의 양식(糧食-food)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절). 주님의 이 말씀은 주님의 양식관은 세상 인간들이 가진 양식관하고 아주 다른 차원의 것임을 밝힌 것이다. 양식은 물론, 먹어서 인간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소개하신 또 다른 양식은 입으로 들어가 몸을 살리는 형태의 양식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여 하나님의 뜻과 의를 이루는 삶으로서의 양식이었다.
2) 주님의 이 양식은 분명히 인간의 보편적 양식과는 다르다. 매우 구별된 의식을 갖고, 마음을 품고 사는 자들이 아니고서는 생각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할 양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양식은 위에서 오신 예수와 연결되어야 가능하고, 그분이 보여주시고 열어주셔야 함께 품을 수 있는 삶의 양식이다. 일종의 하늘의 소명(召命)을 받은 자라야 취할 수 있는 양식이기도 하다. 특히 그런 양식을 소유한 자는, 그 양식이 육체의 양식보다 우선적인 것임을 자각하며 산다. 곧 이 소명에 응답하지 못하면, 그게 곧 죄인이요 불충성이며 영적 빈곤에 빠진 죽은 자로 인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양식에 충만하면, 그는 육신의 빈곤도 기꺼이 극복하며 살아간다.
3) 예수님은 항상 당신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와 직결되어 사셨다. 당신을 왜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를 잘 아셨고, 그 뜻을 헤아려 이 세상에 펼치시는 데에 기꺼이 전 생애를 바치셨다. 그 점에서 완벽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지상 선교는 항상 열매가 가득하였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들이 풍성하였다. 그래서 뿌리는 자인 아버지와 거두는 자인 아들 예수 모두가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사셨다(36절). 주님은 당신의 이 일이 당신에 거두신 제자들을 통하여도 이 세상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계승되어 지기를 원하셨다(38절).
2. 구약 / 왕상3:5-14 / “ 네가 —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
기브온 산당에서의 일천 번제(燔祭)를 드렸던 솔로몬왕에게 여호와께서 밤 꿈을 통하여 나타나셨다. 그리고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며 놀라운 요구를 하셨다(5절). 그러자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의 하나님을 향한 성실-공의-정직한 마음으로 보여준 모범을 기억하며, 그의 본을 충실히 따르고 싶어 했다(6-7절). 하지만 자신은 아직 어려서 매사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함을 통감하고 있었기에(7-8절), 그는 왕으로서 주의 백성을 재판할 때 선악을 제대로 분별(分別)할 수 있을 지혜를 달라고 구했다(9절).
그 요구에 마음이 흡족해진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그가 구한대로 먼저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셔서 전무후무한 뛰어난 왕이 되는 복을 주신다(10, 11-12절). 동시에 그가 구하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왕으로써 필요한 주요 요소들인 육신의(땅의) 것들인 장수와 부를 비롯한 부귀영화까지 얹혀서 주셨다(11-12절).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우선하고,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우선하며, 사욕이 아닌 공의를 먼저 구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더 하여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응답해 주신 것이다(마6:33 참조).
그러면서 만일 그가 그의 아비인 다윗의 행위처럼, 주의 길로 행하고 주의 법도와 명령을 지켜 행하면 그의 날도 장구하게 해 주시리라고도 확약하셨다(14절).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위의 것, 곧 하나님의 것을 절대 우선순위에 두고 지켜 행하면, 우리의 세상에서의 필요한 모든 것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먼저 살펴서 알아 채워 주신다는 축복 공식을 분명히 알린 것이다.
3. 서신서 / 골 3:1-11 /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물세례를 받아 새 부활 생명을 살게 된 이들에게 매우 특별한 당부를 한다. 곧 자신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결코 죄의 옛사람 시절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1) 그러면서 부활 생명을 살게 된 자들의 확고한 선택 사항을 제시하였다(1-2절). 그게 무언가? 바로 ‘위의 것을 찾는 것’이다(set your hearts on things above/NIV).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set your minds on things above, not on earthly things)이다. 이런 요구는 세상 도피적 열광주의를 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이미 선한 자로 살도록 되었음을 강조해서 나온 것이다(롬6:11 참조).
2)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면서, 더욱 적극적인 영적 싸움을 요구하였다(6절).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태만으로는 부족함을 상기시키는 지시로서,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통하여 자신의 영혼을 강건하게 보전해 가는 일이 필요함을 일깨운 것이다. 그러면 죽여야 할 땅의 지체들은 어떤 것들인가? 음란, 부정(impuriyt), 사욕(lust), 악한 정욕, 탐심(greed=우상숭배)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있으면 무슨 현상이 발생하나? 하나님의 진노(震怒=wrath)가 임한다! 비록 부활의 생명이 있어도, 이런 세상 지체들과 뒤섞여 있으면, 예외가 없다. 다시 옛사람으로 되돌아간 상태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싸워서 쫓아내야만 한다!
3) 또한 땅의 것이요 옛사람과 그 행위들로서, 어서 벗어 버릴 것이 있다(8-9절).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slander), 입술의 부끄러운 말(filthy language), 서로 거짓말하는 것들이다.
4) 우리는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우리 안에 온갖 더럽고 부정한 것들이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철저히 방어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마음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답게, 자신을 보전하고 지키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10-11절). 그리스도의 지식과 사랑으로 내 마음과 영혼이 언제나 충만해 있도록, 끊임없이 예배하고 배우며 훈련하고 선교하며 부활 생명이 잘 자라가야 한다.
o 교회 교육에서 명분(名分)은 분명히 좋아야 하지만, 실리(實利)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는 진리와 의의 힘은 모든 면에서 힘도 있고 열매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위하여 매우 합리적인 방안을 처음부터 제시해 주셨다.
곧 하나님의 것을 먼저 찾으라, 위의 것을 먼저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을 먼저 구하라는 말씀들이다. 그러면 응답을 주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셨듯이, 그의 구한 것을 기꺼이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미쳐 구하지 아니한 필요한 것들까지도 헤아리셔서 다 공급해 주신다. 그렇다. 부활 생명을 보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그 복으로, 그 은혜로 살아간다. 이 세상에서 전혀 부끄러움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우리 미래 세대들의 성장 기반도 이런 하나님의 것, 위의 것을 먼저 구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