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 13:31~35, 신6:1-15, 요일3:11-24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이다. 지금은 어느 시점인가? 우선은 지난 주간에 전국을 공포로
몰아간 경상 지역의 대규모 산불도 일단락을 짓게 되어서 무척 다행스럽다. 다수의 이재민들
에 대한 전 국민의 돌보기가 절실히 필요하고, 목숨을 잃은 순직자들의 위로도 필요하다. 그
런 중에, 윤석열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어제 예고되었다. 금주 4월 4일 11시에 그
의 파면 여부가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차대한 재판이다. 부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을 우리나라와 민족이 힘입게 되는 정당한 판결이 내려지길 소망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우리나라가 현재 미움과 증오로 너무 날카롭게 양쪽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 그룹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경쟁자요 라이벌이
라고 생각되는 야당의 이재명을 두려워하며 그를 제거해야 자기들이 산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내란 시도는 물론, 테러와 각종 사법적 조작과 여론적 집단 리치도 서슴지 않는다. 그
들은 이재명만 제거되면, 자기 세상이 활짝 열릴 것으로 보면서, 무차별적 공격을 쏟고 있다.
반면에 그들의 탄압과 억압에 맞서는 야당과 이재명은 숱하게 자신에게 뒤집어씌워진 각종 불
명예와 오해란 공격과 맞서고 있다. 최근의 그를 향한 고등법원에서 내려진 세 가지 무죄 판
결은 그의 어깨를 한층 가볍게 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상대의 공세들이 거칠고 폭력적
이라서, 그는 지금 방탄복을 입고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을 정도로 자기방어에 전력을 기우리
며 살아간다. 정말 안타깝고 불행한 상황이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폭력적 상황에 떨어졌나!
이런 때, 접하는 사순절 다섯째 주일의 성서 메시지는 그러기에 더욱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그곳에 담겨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예수님과 그 예수를 증오하며 그를 제거해야 자기들
세상을 유지 내지 보전할 수 있다고 믿는 유대교 당국의 대치 국면(局面)이, 오늘 우리나라의
양쪽 진영의 정치 국면과도 매우 흡사한 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예수님의 일차 관심사는 무엇이었나? 분명한 것은 당신 목숨의 무사함이나 안일한
보전 차원은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다. 까닭은 당신의 목숨은 이미 내어놓은 하늘 제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당신의 절대적 관심사는 당신이 이곳에 오셔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의 길을 남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중단없이 계속 이어가게 하고 확산시켜 갈 것이냐에
있었다. 그 점에서 세상 정치인은 하늘 정치인인 예수님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 본문은 이 시점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요구 사
항이 무엇인지를 공개해 주신다. 그중에서 특히 성자인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메시지는 매
우 중요하다. 그게 무엇인가?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남은 생애가 임박해 왔기에, 당신의 제자들을 향해 전하시려는 교육과
분부 역시 긴박함이 높고 크다. 곧 당신이 떠나기에 앞서, 남은 제자들과 가족들에게 꼭 명심
해서 지켜야 할 당부의 말씀이 그의 가슴을 통하여 나왔다. 유훈(遺訓)이었다! 그것이 무엇이
었나? 남은 제자들 간에 미움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일(Love one another)이었다!
그렇다면 이 점이 왜 그렇게 긴급한 명령이었나? 생각하라. 예수님에게는 바로 제자들의 서로
간의 사랑이 가장 시급하고 긴급한 일이었다. 그것은 남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여 결
속이 무너질 경우에는 지금까지 스승인 당신에게 배우고 익혀 온 모든 생명과 구원의 질서들
이 모두 쓸모없는 폐기물(廢棄物)처럼 될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의 말씀과 삶을 세상 만민에게 전달해야 할 중차대한 책임이 이미 부여되어
있는데, 그들이 서로 불신하고 다투어 있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예수님의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된다. 그런 점에서 제자들 사이의 서로 사랑은 그 어떤 요구보
다도 매우 엄중하고 우선적인 과제였다. 서로를 하나로 묶어줄 사랑이 있어야만, 모두를 다
이룰 수 있고, 사랑이 없으면 그간의 제자 자신들의 세월도 헛되고 주님의 귀한 것들도 무용
한 것이 되며 또 세상에도 아무런 유익도 없게 될 뿐이다(고전13:1-3 참조).
그리고 이런 서로 사랑은 광대한 차원의 이웃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 단위의 사랑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늘 가까이 대하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면, 먼 이웃들에 대한 사
랑 역시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일까? 남
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과 혈족, 그리고 교회에서 함께 믿음 생활하는 교우들과 동네 이웃들,
아울러 직장 등에서 계속 만나는 무리 등등 모두가 서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기에 우
리는 진정한 이웃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이런 서로 사랑에서부터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직접 받았던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보다 이
사랑의 복음을 열심히 전한 인물이었다. 특히 주님의 이 분부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
는 아주 오래전 형제 살인을 범했던 가인을 생각했다(12절). 그러면서, 그가 왜 동생을 죽인
악한 인물이 되었는지를 직시하고, 이 극복을 위해 서로 사랑을 강조한다. 그것은 가인이 악
행을 지속하다가 자기와는 달리 선행하며 살고 있는 동생 아벨을 미워하고 시기하던 끝에 결
국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기까지 했음을 일깨운다(요일3:11-15, 창4:3-12 참조).
중간은 없다. 우리가 사랑을 잃거나 포기하면 미움과 질시와 시기의 사람이 되어 살게 된다.
사랑은 나를 생명과 영생에로 나아가게 하지만, 미움은 사망과 어둠에 떨어지게 한다. 그리고
선과 의를 미워하며 괴롭힌다. 그런 모습이 이상하지도 않다(13절). 우리 예수님도 앞서 그런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대비는 필요하다. 악의 세력과 맞서서 싸울 수
만은 없기에, 사랑의 선행자는 홀로만의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하여서도,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사는 이들과의 힘의 연대(連帶)라는 거룩한 방어망이 필요하다. 이게 교회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 사랑의 힘은 역시 두 차원을 안고 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인간) 사랑이다. 마침 구약인
신명기서는 하나님 사랑의 방법을, 서신서에서는 이웃 서로 사랑의 방법을 전해 준다.
1. 복음서 /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는 일을 새로운 계명(誡命)으로 주신다. 그것도 서로 사랑의 모델을 당신
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으로 안내해 주셨다. 계명은 일반 계율과는 다르다. 반드시 지켜야 하
는 의무가 부여된 멍에이다. 그러기에 나와 평소 가까이 사는 존재를 향해서는 서로 사랑해야
하라는 당위성이 부어진 것이다. 이를 무시하면 범죄하는 것이며, 그에 따른 처벌이나 징벌(懲
罰)도 피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이 계명을 의식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서로 간에 사랑
할 자유만 허용되었을 뿐, 미워할 자유는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계명 때문일까? 초대교회 생활사를 연구하던 어느 역사가는 초대 교인들의 특징을 ‘티타
테우스’로 파악했다. 곧 ‘그들은 일단 만나면, 먼저 서로 사랑부터 시작한 무리들이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성도의 참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먼저 사랑부터 시작하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숱한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이다. 새 삶을 가능하게 하고, 새 삶의 의무도
품게 되어서 형제애 실천가들이 되기에, 숱한 기적들이 발생하면서, 참된 예수의 제자란 표시
를 세상에 보여주게 되고, 그 결과로 예수의 진정한 친구(親舊)까지 된다(34-35절).
2. 서신서 / 요일 3:11-24 /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
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
그러면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요한은 제시한 방법들을 살펴본다.
첫째는 가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12절). 앞에서도 가인은 ‘서로 사랑’의 실패자라 칭하였는데,
그 핵심 요인은 그의 정신과 마음이 ‘악한 자에게 속하였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그는 평
소 항상 악행을 쫓아 살았다. 동생 아벨은 평소 의롭고 선한 것을 추구하며 살았는데도 말이
다. 그 바람에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살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가인 안에 둥지를 틀
고 있던 악이 아벨의 선행에 깊은 갈등과 질시와 미움과 저주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놈만 없으면 내가 하나님 사랑을 독점할 터인데-’라는 강박감을 품고 살았
던 것이다. 그걸 억제하지 못하자, 그만 악의 충동을 받아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만 것이다.
이를 어찌 극복할까? 사람이 그런 가인의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이 불행할뿐
더러, 그 역시 또 다른 가인이 되어서 선한 자들에게 칼질을 서슴지 않는 살인범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가인들이 지금 우리나라 정치계 한복판에서 활개 치고 있기에, 더
욱 불행하다. 그러기에 힘써 기도와 회개해야 한다. 동시에 목숨을 건 자기 부정을 위한 치열
한 영적 싸움을 통하여 자기 안에 죄악의 가인을 추방해야만 한다(13-15절).
요한은 이런 불쌍한 생명들의 구원을 위한 특효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먼저는 우리가 믿는 예
수가 죄인인 우리와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사랑을 주신 분임을 알고, 우리 역시 어려움
에 처한 형제들을 돕는 행동을 주도적으로 시도하면서, 자신의 내적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16
-17절). 이는 그런 적극적인 선행을 통하여, 자기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악한 속성에 도전하
고 그 뿌리를 파내는 노력에 힘쓰는 일이다. 이 일은 말이 아닌 행위로 실천하고, 자신은 악
이 아닌 진리에 속한 자임을 의지적으로 각인해 본다(18-19절). 그래서 내 곤고한 마음을 헤
아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어내는 것이다(20-21절).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내는 사람이 되고, 자신은 주님의 이름을 기꺼이 믿고 주님
이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임을 확인해 간다(22-23절). 그렇게 되면,
그는 주님이 거하시는 존재가 된다. 주께서 이미 보내신 보혜사 성령의 내주(來住)도 확인된다
(24절). 그래서 가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아벨과 같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로 살게 된다.
3. 구약 / 신6:1-15 /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서로 사랑이나 이웃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서는 독립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보다는 인간 사랑
을 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조물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선해야, 인간 사랑도 비로소 그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아빠와 엄마를 알 때, 그에게서 함께 세상에
나온 형제와 자매까지도 알게 되면서 그들을 사랑하게 됨과 마찬가지이다. 곧 하나님이 나만
이 아니라, 내 이웃도 사랑하시며. 예수께서도 나만이 아니라, 내 이웃을 위해서도 죽으셨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주변인들과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어야 할 방법이다.
본문은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유명하다. 모세는 인간 사회에서 서로 사랑하라
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사랑부터 가르쳤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내려
주신 각종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는 일로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 말씀의 내용들은
모두 피조물이 듣고 지킬 때 이 땅에서의 삶이 복이 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크게 번
성하게 되는 안내문이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 말씀과 계명들을 그 자신은 물
론, 자기 아들과 손자들인 가족 3대에 걸쳐서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들의 날을 영구히 장구하
게 할 토대를 마련해 주어야만 했다(1-3절).
인간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존재이다. 스스로 가지고 나온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들은 다 부모를 통해 주신 조물주(造物主)로부터 받아서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시작일 뿐이다. 조물주가 계속 주시는 복들을 받아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
서 인간이 특히 주의하고 조심할 것들이 많다. 눈에 보이고 귀로 들어온 거짓 신들과 매력적
인 세력들이 많이 나타나서, 자기들이 나에게 복을 줄 터이니 자기를 믿고 따르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우상과 이념과 재물과 권력과 위인과 각종 매력적인 존재들이다. 유혹들일 뿐이다!
그것들 역시 자존(自存)자가 아니라 피조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의 시선은 좌우(左右)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진정한 복은 오직 창조주이요
자존자이신 여호와 하나님만 주신다는 점을 확고히 하고, 오직 그와 그의 말씀과 지시에만 마
음을 집중하면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 하나님 사랑을 그에게 드려야 한다(5절). 모세는 우리
에게 조물주가 주시는 생존을 위한 선물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잊지 말라’ 당부한다(10-12절).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세상(땅) 무대, 생존하도록 도울 가족들, 네가 건축하지 않은 성읍과
아름다운 주거지, 수고 없이 얻게 될 재산들, 풍부히 마실 물과 먹게 될 식품과 과일들 --!!!
어찌 이뿐이랴? 삼위일체 하나님이 먼저 계셔서, 우리의 건강한 생존과 행복한 삶과 나중에는
영원한 삶과 세상까지도 마련해 주셨잖은가! 따라서 그의 사랑의 품에만 안겨도 우리는 이 모
든 복을 거져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교회와 성도들, 아름다운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들, 창조적 가치와 세상을 위하여 동원할 수 있는 우리 내부에 있는 수많은 은
사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우리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면 마음껏 누리고
발휘하며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사랑이 무너지면 이것들도 증발하고 만다.
O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중에서도 서로 사랑은 매우 절박하고 시급해 받고 지켜내야할
주님의 새로운 계명이다. 이 계명을 순종하여 붙들면, 우리는 모든 잃은 것들과 빼앗긴 것들
과 되찾아야 할 것들의 회복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준비하신 그 분의 놀라운 은혜의 계획들이 결실하고 성취될 수 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라
는 분부에 전적으로 순종하자. 여러분을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시고 그래서 당신의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