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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후(11)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4-07-31 (수) 07:58 1개월전 131  


본문) 행 3:1~10, 겔47:1-12, 막 1:29-39


오늘은 강림 후 열한 번째 주일이다. 무더위의 절정을 맛보게 하는 8월의 첫 주일이기도 하다. 지구촌이 기후 변화로 인한 온갖 몸살들로 진통하는 중이어서, 부디 여러분 모두 조물주의 크신 돌보심으로 이 고비를 잘 넘기시기를 기원한다. 무엇보다도 나라 경제나 살림살이도 급속이 악화(惡化)되고 있고 가난한 자들의 민생 복지에 그늘이 커진 상황이라서, 더욱 우려가 된다. 이럴수록 자신의 돌봄과 함께 주변의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말자.


무엇보다도 내 영혼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내 생명의 중심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이다. 우리 찬송 383장의 가사가 기억난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시네 나의 발이 실족 않게 주가 깨어 지키며 택한 백성 항상 지켜 길이 보호하시네(1절). 도우시는 하나님이 네게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상치 않겠네 네게 화를 주지 않고 혼을 보호하시며 너희 출입 지금부터 영영 인도 하시네’(2절) 


오늘 받는 세 본문 내용의 초점은 무엇일까? 생명을 살리는 복음(福音)이 어디에서 나올까를 집중적으로 전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오늘 말씀은 그 기원을 물(water)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이 물은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 들어가면서 만나는 모든 영역들을 살리고 새롭게 한다. 동시에 물은 그 솟아 나오는 곳이 성전(temple)이요 성소(sanctuary)이다. 곧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망가진 환경을 새롭게 하는 회복의 능력임을 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성전에서 바깥세상을 향해 솟아 흘러나오는 물’이 누구며 무엇이냐는 점이다. 물론 마시는 음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요한복음이 전한 내용은 우리의 생각을 열어준다. 곧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참된 음료’하고 말씀하셨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할 것’이다고 증언하셨기 때문이다(요6:55-56절 참조). 그뿐 아니다. 초막절 끝 날에는 예수께서 이렇게 온 세상에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生水)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요7:37-38절). 이는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聖靈)을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39절). 이는 제1 보혜사인 예수 그리스도와 제2 보혜사인 성령이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는 생명의 물이요 생수가 되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오늘의 에스겔 말씀은 성전에서 흘러나올 그 놀라운 강물 자체의 등장을 예고한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특정인을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물이 온 세상 만물을 새롭게 하고 살리는 능력을 행사할 것만을 예고한다. 성전의 주인은 누구신가? 창조주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가 곧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만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친히 물이 되시고 물을 주시는 분으로 계시하셨다. 


복음서의 증언은 무엇인가? 생수의 물이 되어 오신 성자 예수를 전하는 내용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로,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흘러 들어오셔서 모든 부조리의 판을 완전히 바꾸신 메시아를 전하는 내용이다. 그는 회당에서도 전하셨으나 여기에서는 친히 움직이시는 회당(성전)이 되셔서, 치유자로, 축사자(逐邪者)로, 전도자와 가르치는 자로 목마른 영혼들의 믄제들을 해결해 주셨다. 


서신서는 그런 성부와 성자의 영인 성령을 받게 된 사도들(제자들)이 어떻게 범죄와 살인의 도시가 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인 원래의 예루살렘으로 변화시켰는지를 소개한 곳이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죽음과 부활 이후 승천하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5참조)라는 명령에 순복하면서 이루어낸 쾌거였다. 여기에서 성령은 그곳에 가장 낮은 자를 되살리시면서, 그 대역사를 이루셨다. 


결국 오늘의 세 본문은 삼위 하나님의 세상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기원과 그 방법을 차례대로 알리고 소개한 내용들이다. 구약의 에스겔은 생명 구원의 총론적 구도를 전해 주셨고, 복음서는 성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생명의 물이 되어 오신 성자의 구원의 구체적 접근의 내용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그런 예수의 역사가 성령 받은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어떻게 온 세상으로 확산되었고,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1. 구약 / 겔 47:1-12 / “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 강 가에 어부(漁夫)가 설 것이니 ”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기 후기에 주로 활동했던 선지자였다. 그러기에 오랜 포로 생활에 지친 유대인 포로들의 마음과 생활에는 당연히 희망보다는 낙담과 슬픔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한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을 가진 여호와께서는 그런 당신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회복과 구원의 구상을 에스겔에게 환상을 통하여 밝혀주셨다. 본문은 바로 그 순간의 정황을 소상히 전한 내용이다. 


1) 인도자인 천사가 에스겔에게 보여준 곳은, 40-46장을 통하여 이미 보여준 성전 경내(境內)가 아닌, 성전의 광범위한 둘레였다. 그중에서 천사는 선지자를 성전 문 앞면의 동쪽 켠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1-2절).


2) 흘러내린 물이 고여 있는 곳들이 네 단계로 계속 나타나면서, 천사는 선지자로 하여금 물을 건너게 하였다. 약 450m를 일천 척(尺)으로 측량하면서 걷기 시작하였을 때, 처음엔 그 물이 발목에 올랐다. 두 번째 측량한 후 걸은 다음엔 그 물은 무릎에 올랐다. 세 번째 후에는 그 물이 허리에 올랐다. 네 번째 후에는(약 2km정도) 물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있었다. 그 물은 이미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었다(3-5절). 


무슨 의미일까? 성전에서 나온 물(생명의 물)이 세상의 낮은 곳(죽음의 땅)으로 흘러 흘러, 매우 광대한 곳(땅끝)에까지 덮어갈 것을 예고한 것이다(행1:8 참조). 


3) 천사는 선지자를 강 가로 이끌면서, 그 강물로 인하여 발생한 강 주변의 변화된 현장들을 둘러보게 하였다(6-12절). 우선은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았다(7절). 푱요로운 곳으로 변화가 되었음을 말한다. 동쪽의 아라바에까지 흘러 들어갔는데, 그곳에 있던 사해(死海)의 물을 되살렸다(8절). 그러면서 사해의 일부를 제외한(11절),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다 번성하여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도 심히 많아지고, 바닷물이 홍해처럼 되살아나 강변 모두를 풍요롭게 살려내고 있었다. 큰 고기들이 많아서 어부들이 모여드는 곳들이 된 것이다(9-10절). 


4) 강 좌우에는 각종 과실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藥)재료가 된다. 실로 복낙원(復樂園)의 현장을 맛보게 된다(12절).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복낙원이 가능해진다는 것인가? 바로 성소에서 나온 그 물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그 생명을 살리고 삶의 풍성하게 하는 물의 실체가 무엇이겠는가? 


2. 복음서 / 막1:29-39 / “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 


복음서 기자인 마가는 열병(熱病)으로 죽을 고비를 맞아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에 의하여 한순간에 고침을 받고 회복되어서, 예수 일행을 수종(隨從)하게 된 극적인 변화된 모습을 소개한다. 하지만 변화는 결코 그 여인에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과 그의 소문을 들은 지역 공동체 모두에게도 예수는 치유와 변화와 희망을 안겨 준 장본인이었다. 한순간에 인간 존재를 새롭게 만드신 이가 바로 예수임을 보게 된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성전에서 흘러나온 그 물의 실체를 바로 이 예수에게서 보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1) 회당을 중심으로 가르침을 마치신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데리시고,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의 집에 들어가셨다(29절). 거기서 주님은 열병으로 고생하며 누워 지내던 시몬의 장모를 만난다. 형편을 헤아리신 예수님은 곧장 그녀에게 나아가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자비와 치유의 손길을 선사하신 것이다. 그러자 즉시 열병이 떠나가면서, 힘을 얻은 장모가 예수 일행의 수종을 하고 나오는 격변(激變)이 발생하였다(30-31절). 


2) 이는 무엇을 말하나? 예수는 회당(성전)만이 당신의 무대가 아니라, 고통하는 인간들과 그들의 무너진 가정 중심에까지도 그의 목양(牧羊) 대상이요 현장임을 보여주셨다. 예수는 회당을 무대 삼아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세상에 나오시면 그곳에 흩어진 수많은 민중의 고통과 탄식의 현장에도 응답하시는 ’이동(移動)형 성전으로서의 예수‘의 정체성을 보여주셨다. 이런 모습은 모이는 교회로만 집착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교회 생태에 강한 경종을 주는 일이다!


3) 이 소식은 급속히 퍼지면서 수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이 밤낮 없이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예수께 나오는 일이 초래되었다(32-34절). 가난한 민중(民衆)의 목자의 사역을 수행하시게 되는 예수의 모습을 확인하고 희망을 품고 몰려들게 된 것이다(36-37절). 


4) 이런 사역이 본격화되면서, 예수께서 가장 힘을 기울이신 일이 있었다. 바로 하늘 아버지께 기도(祈禱)하신 일이었다(35절). 그것도 우리가 말하는 새벽 일찍이 일어나 한적한 곳을 찾아 드리신 새벽의 기도였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기도를 통한 신령한 힘과 능력을 공급받지 않으면, 그렇게 생명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목양 사역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 정도였는데-, 우리같이 나약한 체질을 가진 자들의 목회에 이런 류(類)의 기도의 영성이 보다 강하게 밑받침되지 못하면, 과연 어찌 되겠는가? 분명히 부끄러운 일들만 가득할 것이다.


5) 주님의 목양은 찾아가는 유형이었다. 당신을 애타게 찾고 기다리는 영혼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시기 위하여, 그는 하루가 다르게 다른 마을들을 찾으셨다. 그러면서 온 갈릴리를 살피셨고, 회당들도 찾아서 전도하시고 귀신 들린 자들을 해방하는 축사(逐邪) 활동도 계속하셨다(38-39절). 그게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임을 분명히 하시면서 진행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사역은 결국 그의 제자들에게까지 전수되면서, 생명을 살리는 복음 운동으로 확대된다. 


3. 서신서 / 행3:1-10 /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


본문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한 불쌍한 자에 대한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전하려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의 성령이 어떻게 이미 생명을 잃은 죽은 종교였던 유대교를 극복하고, 생명과 구원의 참 종교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 지구촌의 무대 위에 등장하게 하였는지를 전하고자 한 내용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문은 예수를 알지 못해 십자가에 죽게 한 살인(殺人)의 도시였던 예루살렘에 대한 성령의 강력한 도전을 극적으로 펼친 현장 보고였다. 


이 역사의 대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의 제자들을 향한 첫 지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이었다(행1:4). 그 명령에 순복한 120명의 예수 무리들에게 주의 성령은 오순절에 강림하셨다. 그러면서 첫 그 작업이 디아수포라들을 새 하나님의 일꾼들로 품기 시작한 일이었다(행2장). 본문 행 3장은 예수를 죽인 도성인 예루살렘을. 그러나 본래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을 먼저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작업을 아주 주밀하게 시작하셨다. 낮은 곳을 찾아 흘러드는 물이었다. 


미움이나 보복이나 책망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그 차원으로, 자각과 반성을 견인하는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새 구원의 예수 중심의 도시로 거듭나게 할 대변혁의 작업을 전개하신 것이다. 그 방법은 무엇이었나? 그 도시에서 모두가 인지하던 가장 불행한 자의 상징이었던 존재를, 자기들이 죽였던 바로 그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한순간에 공개된 무대인 성전 앞에서, 가장 온전하게 회복된 자의 얼굴을 되찾아 주는 방법으로 그 도성의 변혁을 이끄셨다. 


1)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성령에 충만하여 취한 방식은 바로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와 그의 살아 있는 이름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려 한 일이었다(6-7절). 그래서 그들이 예수가 진정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게 하려 하였다. 자신들은 미워했으나, 그는 사랑이셔서 이렇게 자신들은 전혀 불가능한 일, 곧 어긋난 삶을 평생 살고 있는 그들의 이웃인 앉은뱅이 장애인을 고쳐주고 새롭게 회복시킨 능력의 하나님 아들을 대면하게 한 일이었다. 


2) 그래서 참 생명의 종교는 누구인지, 자기들이 의지할 이는 누구인지를 다시 찾게 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무지와 집단적 왜곡에 의한 폭력이 얼마나 어리석은 큰 범죄였는지도 깨닫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주민들의 대각성과 회개로 대거 주께로 돌아오는 기폭(起爆)점이 이 치유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이다(행2:37 참조). 사실상의 그리스도 교회의 출발이 시작되었으며, 예루살렘 성도의 회복도 함께 이루게 되었다. 


o 삼위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시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이시다. 성전(회당)은 그 핵심 매체인 것이 분명하다. 그곳에는 삼위의 물이 있고, 그 세상 전체를 변화시킬 생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영과 말씀이 흘러나온다. 이는 성소의 생수가 세상의 변화와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저 사도들처럼, 성령과 말씀의 생수로 충만해야 한다. 에스겔 환상에서 본 온몸이 물에 잠길 정도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도 사도들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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