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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3)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관리자 2023-04-19 (수) 07:56 1년전 449  

본문) 요 20:19~31, 사43:8-13, 행10:34-43


부활절 셋째 주일이다. 새 순들이 이미 크게 자라서 무성해졌다. 새 기운이 온 누리에 가득한 느낌이다. 이때에 우리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에 계신가? 당신 제자들을 찾기에 분주(?)하시다. 지난 주일에 만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을 찾아주신 주님은, 오늘도 제자들을 찾아주신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동일인 저녁 때였다(19절,  눅24:30 참조). 동시다발적 심방이다. 


이런 모습은 예수의 부활체가 이전의 생존하실 때의 모습에서 크게 변형되었음을 말해 준다. 지난 엠마오에서처럼 가고 오시는 일이 자유로워진 모습에서도 그렇고, 오늘 본문에서 문을 닫아놓은 공간 안에 훌쩍 당신만 들어오신 모습에서 그 변형(變形)된 모습을 확인한다. 이런 모습은 부활이 가져다 준 획기적 변화로서, 예수의 신적 존재와 능력이 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이는 우리가 예수를 하나님이자 인간으로 고백하게 된 자료도 된다.


그러면 주님은 왜 그렇게 당신의 제자들을 찾으시는가? 그 이유는 당신의 부활을 먼저 믿게 하고, 믿는 자들에게 산 소망을 안겨주실 뿐만 아니라, 그 부활 신앙이 줄 삶의 변화와 은혜를 널리 또한 영원히 우리들과 공유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대상의 우선은 제자들에게 이지만, 종국은 온 세계 만민들에게 그 복을 안겨 주시고 싶어 하심에 있다. 소중한 부활의 은혜는 어느 특정인들만을 위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가장 우선적인 작업은 당신의 삶과 부활에 대한 증인(證人)들을 세우시는 일이다. 그 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상은 당연히 제자들이다. 당신이 공생애 3년을 통하여 함께 살고 일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것을 함께 보고 배웠고, 또 마지막의 십자가의 죽음과 사흘 후의 무덤을 제치고 일어나신 일과 그 후에 부활하신 모습까지의 일체를 세상 만민에게 증언해 줄 제자들이 가장 중요했다. 바로 그 연유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토록 제자들을 극진히 돌보셨다.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은 바로 이 점에서 제자 교육에 마지막 생애를 집중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집중 보도되어 있다. 그 내용들이 13장-17장에 모여 있다. 거기에서 보면, 예수님의 관심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얼마나 깊고 크게 집중되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13장에서는 주님이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제자들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동시에 섬김의 힘이 모두를 살릴 것을 일깨우신다. 그러면서도 끝내 제자들 중에서 당신의 교육을 수용하지 못해 배신할 자도 거르신다. 아울러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새 계명으로 주신다.  


14장에서는 당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리시고, 당신을 믿음으로서 하늘 아버지 집에 갈 수 있음을 알리신다. 동시에 당신과의 이별할 때에 당신이 보내실 보혜사 성령이 제자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을 평화 가운데서 돌보고 지켜주실 것임을 예고하신다.  


15장에서는 제자들에게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당신에게 절대 붙어있는 존재가 되라고 지시하신다. 당신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당신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다 이룰 것임을 역설하신다. 사랑하고 살면, 그 관계는 주종이 아니라 친구의 관계가 될 것이니, 서로 사랑할 것을 또 다시 강조하신다. 그게 세상이 가할 증오와 미움과 분열을 이길 길이고, 성령과 함께 증언자로 살게 할 것이라 하셨다. 


16장에서는 당신이 떠난 후에 닥쳐올 고난과 시련을 예고하시면서도 당신이 보내실 보혜사 성령의 본격적인 활동이 그들 안에서 있을 것임을 예고하신다. 보혜사는 그들을 진리 안으로 인도할 것이며 장래 일과 영광의 세계로 인도할 것도 예고하셨다. 이별의 슬픔은 피할 수 없으나, 결국은 마치 해산의 경우처럼 새로운 기쁨과 희망을 안겨줄 것임도 예고하시면서, 세상을 이겨내신 당신을 본받아 담대하여 세상을 이겨낼 것을 요구하신다. 


17장은 세상에 남겨두신 제자들을 위해 대제사장으로 올리신 예수님의 최후의 기도이다. 제자들을 아버지가 주신 무리들임을 고백하면서 그들을 보전하사 그들로 서로 하나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신다(11,21-22절). 세상이 가할 미움과 박해 속에서도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신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당신도 그들 안에 있기를 구하셨다. (이 기도 후에 주님은 체포되시고 수난과 죽임을 당하신 후, 부활에 이르신 것이었다)   


이토록 심혈을 기우려 양육 받았던 제자들이었기에, 그들은 이제부터 주의 뜻을 따라 예수 이후를 책임져야할 주체로서, 굳세게 일어나야만 했다. 주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신 것처럼, 제자들도 그 어떤 죽임과 두려움의 권세들로부터 담대해야하고 강해야만 했다. 오늘 부활의 주님이 그들을 찾으신 까닭은 바로 당신의 힘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어 주시려 함이었다. 이때 그들을 찾으신 주님은 이전과는 새로운 차원의 만남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 내용을 보자.


1. 복음서 / 요20:19-31 /  “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당신의 제자들을 그런 소심한 자리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차원의 역할자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내시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하여 주님이 취하신 방법들은 평화의 인사, 파송의 말씀, 성령 전달, 그리고 사죄권 행사 등등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없었던 제자 도마가 자기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주의 부활을 의심하고 나오자, 여드레 후 다시 그곳을 찾으신 예수께서는 그 도마를 불러 세우셔서 직접 당신의 못 자국을 확인하게 하셨다. 그러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면서,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하셨다. 이는 그 이후의 세상, 곧 오직 증인들의 증언만으로 믿게 될 후대의 숱한 신앙인들을 염두에 두신 축복의 말씀이었다.  


1) 제자들이 모인 한 가운데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첫 인사는 ‘평강이 있으라’(샬롬)이었다. 그것도 마치 유령이 아닌가를 의혹할 자가 없기를 바라시면서, 주님은 친히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셨던 흔적인 손과 옆구리의 못 자국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시면서 인사를 전하셨다. 제자들 가슴의 두려움을 쫓아내 주시는 순간이었다(19-20절). 그러면서 두 번째 평강도 전하셨다.  


2) 주님이 제자들에게 내리신 첫 명령은 이것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 사실 예수님은 항상 당신이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파송되어 오셨음을 말씀하셨는데(16:27,30, 17:8참조), 이제는 그와 같이 당신도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派送)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마5:13-14)란 말씀에서 언급하신 바로 그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파견사(辭)였다.  


3) 그런데 세상은 스승 예수를 거부하고 못 박아 죽였다. 진리와 생명을 비웃고 저주하며 맞서고 있다. 거짓과 죄악이 판을 친다. 그러기에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그곳을 제압할 힘과 능력이 절대 필요하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나? 바로 부활하신 당신이 주시겠다는 것이다. 바로 성령이다! 성령을 받아야만 가능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주님이 그의 깊은 가슴에서 품어 나온 숨(네페쉬)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Receive ye the Holy Ghost)


4) 이 성령 없는 세상 상대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께서 말씀하신 바,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참조)란 파송의 말씀을 믿고, 겸손히 주께서 가슴으로부터의 퍼서 안겨주시는 성령을 받으면 가능하다. 행1:8의 말씀도 그래서 나온 주님의 유훈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힘-power)을 받고, 죽음과 죄악의 도시 예루살렘, 황망한 곳 온 유대, 저주의 땅 사마리아, 그리고 미지의 세계인 땅 끝까지 주저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5) 특히 사죄권(赦罪權)도 덧붙여 주셨다. 이는 맹목적 사죄가 아니다. 깊은 죄악에 대한 회개와 성찰을 통하여 안겨 줄,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펼칠 수 있는 용서의 권세였다(23절). 이런 내용은 예루살렘을 회개시킨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한 과정에서 매우 모범적으로 잘 나타났다(행2-4장 참조). 이 단계적 접근을 통하여 베드로는 비롯한 사도들은 예수를 죽인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성도요 교회의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6) 실증주의적 신앙의 경향은 도마의 몫만이 아니다. 보아야 믿고 확인되어야 믿겠다는 흐름은 상존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복된 것은, 성령을 통하여 가슴으로 믿는 힘을 받아서 사랑하고 용서하며 나누고 선행에 힘쓰며 살아가는 일이다. 믿는 힘으로 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증거중심의 사람들보다도 확실히 삶을 지혜롭고 능력 있게 살아간다. 여기에서 조건이 있다. 증언자들의 증언이 참되어야 하고, 전도와 선교의 파송도 성령의 능력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거짓이나 위선으로는 안 된다. 가슴에서 나온 헌신이어야만 한다. 


2. 구약 / 사 43:8-13 / “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내라 ”


본문은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보내어 바벨론 포로 70년을 마치게 된 이스라엘을 당신의 증인으로 택하셨음을 통보하신 내용이다. 마치 제자들을 찾으셔서 증인으로 파송하겠다는 예수의 파송 명령과 같다. 그렇다면 어떤 증인인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신들도 감히 행할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그곳 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에게 친히 보여주셨기에, 바로 그 점을 이스라엘 자신이 증인되어 온 세상에게 알리는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여호와로부터 남달리 받았던 구원의 은혜가 무엇이었나?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가 제2 출애굽 사건으로 평가되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국에로의 귀환을 받아낸 일 때문이었다. 그것도 완전하고도 순수하게 오직 여호와를 향한 고레스의 깊은 공경심 때문에, 무혈(無血) 해방을 얻어내어서, 주변의 23개 국가들의 놀라움과 부러움 속에서 꿈꾸는 것처럼 환국하게 된 일 때문이었다(사41:22-24, 스1장, 시126편 참조).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세계 해방 역사의 증인으로 세우신 까닭은 그런 능력자가 있음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백성들이 온 세상에는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8절). 따라서 이렇게 살아계셔서 고통하고 짓눌려 탄식하고 신음하는 자들을 의와 공의와 평화로 인도하고 해방시키는 여호와가 계심을 알리는 자들이 절대 필요했다(9절). 알려서 깨우쳐 돌아오게 할 증인들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 땅에 130여 년 전의 언더우드 아펠셀러의 등장처럼 말이다.

    

2)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바로 바벨론 유수(幽囚)에서 해방 받은 사건 자체로 인하여, 세계 만민에게 해방의 주, 역사의 주, 구원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을 온 세상에 직접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 증인의 일을 할 때, 그도 살게 되고 그의 증언을 듣고 여호와께 돌아오는 숱한 백성들도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증언자는 그간의 수치와 치욕의 굴레에서 벗어나, 만민들로부터 명성과 칭찬을 듣게 된다(습3:20절). 결국 증인이 될 때, 그들 자신도 완전한 부활생명체로 거듭난 족속이 된다(10-13절). 


3. 서신서 / 행 10:34-43 / “ 그를 나타내심은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와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 


본문은 위탁받은 증인의 사역이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 일은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을 성령의 지시로 심방(尋訪)하면서 나타났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미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어느 민족이건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면 다 받게 되는 줄을 확인했다. 그들이 베드로의 증언을 들을 때에 성령이 임하시면서, 마치 제2의 다락방의 역사가 그곳 이방인들에게도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의 복음 자체가 화평(和平)의 복음의 성격을 띠면서 나타난 열매였다(34-36절).  


1) 베드로는 자신이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가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메시야로서 펼치신 전 생애에 관련된 일들을 목격하고 증언하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 당하심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그를 사흘 후에 다시 살리셔서 나타내시되, 그것도 오직 미리 택하시고 그를 모시고 음식도 먹은 당신 같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셨음을 증언한다(37-41절). 


2) 동시에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자신들은 백성들에게 전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일을 증언하고 있음과, 예수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들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용서함을 받는다 사실도 증언하고 있음을 밝혔다(42-43절). 따라서 이 증언은 실재와 권위를 담보한 것이었기에, 그대로 믿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게 된다. 고넬료 일행이 그 증언을 믿는 것만으로 성령 받았다.


o 기독교 신앙은 성령과 증언자들에 의존한다. 전승 신앙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목숨을 걸고 생명과 정성을 다하여 믿게 된 일도 모두 사도들의 증언에 의한 것이며, 그 이전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의존한 것들이다. 사실 예수님 자신이 증인의 원조이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제2의 증인들이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성령의 부름에 따라 복음 전파에 나선 모든 선교사와 전도자들도 다 증인들이다. 성서의 증언 못잖게, 오늘의 설교자들도 교회와 성도들을 살리고 있다.  


우리 자신도 성령의 증인들이다. 자녀들에게 주님을 보여 준 예수의 증인들이다. 증인들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기에 부디 거짓 증인이 되지 않고 온전한 증인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전하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게 될 우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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