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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2)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여신도회주일

관리자 2023-01-11 (수) 09:46 1년전 254  

본문) 요 17:20~26, 슥 14:5-11, 고전 12:12-31


주현절 둘째 주일이다. 코로나 사정이 많이 좋아진 듯하지만, 이웃 중국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안심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날씨도 추위와 따뜻함이 업다운이 계속되면서 우리의 몸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쓰게 한다. 그런 중에 가장 우려스러운 일은 최근 북쪽의 무인기(無人耭) 도발로 인하여 우리 쪽의 상공이 유린당한 일로 인하여 우리의 안보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자의 공격적 성격에 비하여 자체 대응 능력의 허술함이 드러난 것 같아 큰 아픔을 느낀다. 꼭 무엇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과연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하지만 더욱 아쉽고 아픈 것은 최고 권력자의 포용력 부족이다. 전 국민의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태도가 갈수록 드러나고, 완전 한쪽 진영의 두목으로만 만족하기로 작정한 듯한 모습이 문제이다. 현재 세계 정세나 우리나라의 사정으로 보면, 우리 국민은 절대로 뭉쳐야만 할 때이다. 흘어지고 분열되어 있으면, 외부의 적은 위기에도 우리는 몰락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그 노력에 땀 흘려야만 한다. 


우리가 서로 하나로 뭉치기만 하면, 우리는 그 어떤 불안과 시련이 와도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는데, 대통령이 지금처럼 비(非)포용적이고 자기와 다른 상대들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로서는 어찌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국민 앞에서 집권자가 정직하고 겸손하면 국민들은 그의 부족한 능력도 충분히 감싸줄 것이다. 그런데, 계속 힘없는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힘센 자들 편에 서고, 자기편만 감싸면, 우리는 결국 모두 불행해질 것이다. 


오늘은 새해 들어 세 번째 주일이면서, 주현절 둘째 주일이다. 총회는 매년 오늘을 여신도회주일로 맞이한다. 새해의 출발점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 가장 절실하고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에 대한 메시지를 듣게 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새해 벽두에 나라나 교회나 우리 신도회에서나 가장 화급한 과제가 무엇일까?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안겨 주시려는 세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은 중요하다.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서로 ‘하나 됨’을 이루는 일이다! 


복음서는 제자들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 하늘 아버지께서 가실 성자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주님의 기도의 핵심은 남은 제자들 흩어지지 말고 모두가 하나 되어 사는 일이었다. 부자 되고 건강하게 편히 살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서로 하나 되어야 그들이 곧 예수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품어 생명을 살리고 온 누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보셨기 때문이었다.   


구약의 스가랴서는 포로기 생활의 잔재를 끊어내고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의 날이 회복될 날이 올 것을 예고하는 말씀을 담고 있다. 그 날에 대한 구체적 때는 올라와 있지 않으나, 내용상으로 보면 그 때는 바로 구원자 예수가 세상에 오시고 그의 거룩한 영인 보혜사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회복될 새 세상에 대한 예언이 분명하다. 곧 스가랴의 예언은 나머지 두 분문들인 복음서와 고린도전서의 내용을 미리 알리는 말씀이었다.  


서신서의 내용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로서, 그 핵심은 은사(恩賜)론에 대한 입장 차이로 내부 분열을 겪고 있던 고린도교회가,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하나임을 일깨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세미한 방법은 서로에게 부여된 다양성을 귀하게 인정하고, 그러면서도 공동체 안에서의 가장 약한 부분(영역)을 배려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이다. 즉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라는 것이다  


이렇듯, 올 해 우리 교회와 가정과 국가 사회를 향한 주님의 강력한 명령은 서로 차이를 부정(否定)하거나 불용(不容)하지 말고 그 모두에게 주어진 차이와 다름을 소중히 보면서, 서로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어내는 일에 헌신하고 노력하는 일이다. 부디 오늘의 말씀을 잘 듣고 가슴에 새겨서 일치와 평화를 견인해가는 주역이 되도록 하자. 


1. 복음서 / 요17:20-26 / “ 아버지여 ---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유언(遺言)과도 같았던 하늘 아버지를 향한 최후의 기도이다. 당신은 이제 지난 3년간의 제자들과의 생활을 끝내게 된 시점에서, 남은 것은 오직 기도뿐임을 절감하시고, 마지막 간절한 심정을 담아 당신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께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올린 것이다. 요14-16장까지의 제자들을 향한 교육과 당부의 말씀 직후에 나온 본문 요17장은, 그런 점에서 주님의 최후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기도의 요점은 무엇이었나? 불안정한 제자들이 온전함을 이루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처럼 제자들 서로가 하나 되어,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아들인 예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21절). 이것은 주님이 당신과 아버지를 세상에 알릴 주역들이 바로 제자들로 보셨음이 분명하다. 그 일을 위한 절대 필수요인은 바로 제자들 모두가 사랑 안에서 서로 하나 되는 일이었다. 그들의 분열이나 흩어짐은 모든 것의 실패 요인일 뿐이었다. 

   

주님이 제자들 사이의 대화들에 끼어 드신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주의 날이 임할 때 자기 중에 누가 높으냐’라는 문제로 서로 신경전을 벌리는 일에는 주님이 직접 개입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4-27)라며 관심사를 조정해주셨다. 제자들의 이 지위나 명예욕 문제 극복은 예수님에게도 그만큼 해결해야할 중요한 부분으로 보셨던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의 행동은 제자들이 안고 있는 명예욕에 대한 아킬레스건을 완전 치유하시려는 극적인 개입이었다(요13장 참조). 서로 발을 씻어주고 서로 섬기지 않으면 결코 예수와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제자들이 되지 못함을 단호히 전하신 메시지였다. 그런 후에 나온 주님의 이 기도, ‘저들로 하나 되게 해 달라’는 더욱 간절한 간구이었다. 그 기도로 인해 그 후 제자들 사이에는 그 어떤 분열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런 사실을 심각하게 두려워하고 회복해야할 대목이다.)  주님의 기도 내용을 더 살펴본다. 


1) 주님의 기도는 제자들은 물론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이 대상임을 밝혔다. (20절)

2) 주님의 기도에는 하늘 아버지와 당신이 언제나 하나였음과 그 안에서 당신의 지상의 모든 사역이 펼쳐졌음을 밝히셨다. 그러면서 제자들도 모두 하나 될 때, 성부와 성자의 하나 됨의 영역에 속하게 되면서, 그 결과로 세상이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21,23절). 이는 하나로 결속된 제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세상에 밝히게 되는 핵심적 주체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3) 주님은 당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영광을 제자들에게도 주었음을 밝히신다. 목적은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시려함이었다(22절). 문제는 이 영광이 무엇이며 어떻게 주어졌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날에 차지할 영광의 한 몫이다(5절 참조). 곧 이 영광의 구원과 영원자인 예수와 영원히 함께 하며 누릴 영광을 말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영광은 씨앗으로 제자들에게 주어졌으나, 그 열매로는 아직 미래적인 것이다(24절 참조).  


4) 주님은 여기에서 기쁨을 드러내신다. 그것은 세상은 아직 당신을 아버지께서 보내셨음을 알지 못하지만, 제자들은 이제 아버지로부터 주님이 오신 분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25절). 이는 무엇을 말하나? 제자들 가슴에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와 있고 그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있음을 확인하신 것을 말한다(26절). 그 믿음이 장착된 제자들의 미래를 이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 구약 / 슥 14:5-11 / “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일 것이라 ”


스가랴 예언자는 바벨론 포로기 생활을 마친 후 본국에 귀환한 이후에 활동한 선지자였다. 귀국 후 모든 것의 회복이 더뎌지면서 밀려오는 많은 문제들 속에서, 스가랴는 하나님으로부터 머잖아 때가 오면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광을 회복할 날이 오리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다가 올 영광의 시대를 준비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된다. 


그 날이 구체적으로 언제인지에 대한 확약은 없으나, 내용으로만 보면 그 때는 바로 구원자 메시야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고 그의 거룩한 영이신 보혜사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새롭게 회복될 교회의 시대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통하여 펼쳐질 것을 예고하신 내용으로 보인다.  


1) 5절의 이스라엘의 웃시아 왕 때에 발생한 무시무시한 대지진은 예루살렘에서 아셀 지역에 걸쳐 대규모의 골짜기를 만들면서(5절, 암1:1,8:8 참조), 당시의 사람들 마음속에 두고두고 잊지 못한 심판에 대한 생각과 두려움을 심어주었던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아모스가 사회적 불의에 책망하며 예언 운동하던 시절이어서, 더욱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게 했다. 


2) 스가랴는 그 때의 강력한 심판의 역사를 회상시키면서도,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한 날의 도래를 말했다. 거짓과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생명의 하나님께서 온 천하의 참 임금이 되시는 카이로스의 때의 개막을 예고한 것이다. 

 

3) 그 날은 저녁이 되어도 여전히 대낮처럼 밝을 것인데(7절), 그 때는 예루살렘에서 생수(生水)가 솟아나서 동서로 흐르고, 여름이나 겨울 내내 흐를 거라고 말했다(8절). 그 때는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王)이 되시며 오직 여호와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되시고 그의 이름 역시 하나이신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9절). 그 바람에 사람이 그 가운데 살며 저주도 사라지고 예루살렘도 평안해질 것이라 예고했다(11절).  


4) 이런 하나님 중심의 세상의 질서의 완전한 재편과 수립을 견인할 그 주역은 누굴 말할까? 예루살렘에서의 솟아난 생수는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과 보혜사 성령의 강림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증언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스가랴의 예언은 나머지 앞의 복음서의 주역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고린도전서의 주역이신 성령의 강림과 역사로 인하여 펼쳐질 새로운 세상을 미리 알리는 예고의 말씀이었다. 


3. 서신서 / 고전 12:12-31 / “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전도의 열매로 세워진 교회이다. 놀라운 성령의 강한 역사로 다양한 각종 은사(恩賜)들이 그곳에 임했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 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초월적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했던 것이다. 그런데 큰 문제가 뒤따랐다. 각 사람에게 임하신 은사의 모양새를 놓고 서로의 우월감이나 경쟁심이 드러나고 받은 은사의 취지가 훼손되면서, 교인들 사이에도 편가름 현상까지 일어난 것이다. 놀라운 은사도 왔지만, 마귀의 시험도 온 것이다.


이런 모습은 앞서 거론된 대로, 예수님께서 가장 우려하신 서로의 하나됨이 깨어졌음을 말한다. 큰 모순에 빠진 것이다. 본래 은사를 주신 것은 그 주신 다양한 은사들을 가지고 서로의 부족을 돕고 채워주면서 함께 온전함을 이루라고 성령께서 섬김의 무기들을 공급하신 것인데, 그 의도와는 정반대로 ‘누구 것이 더 좋고 최고의 은사냐’라는 경쟁 논리에 빠져들면서, 그만 힘의 결집이 아닌 힘의 쇠진을 불러온 것이다. 이는 교회가 마귀의 수술에 휘말린 것이다. 


1) 이에 바울 사도는 문제 해결을 위해 편지를 보냈다. 한 몸에 붙은 여러 지체들처럼, 그리스도 한 분에 붙은 수많은 출신들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게 했다(12-13절). 이는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라는 많은 자식들과도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이런 관계를 맺은 지체들 사이에는 싸움이나 경쟁이나 시기나 질투들은 전혀 불필요하고 또 있을 수 없음을 일깨운 것이다. 


2) 오히려 이들 지체들의 관계는 서로 돌보고 지켜주며 살피고 보호해주는 관계일 뿐이다. 그러면서 그들 중에 혹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나 대상이 있으면, 더 돌보고 지켜주려고 남은 전 지체들이 힘을 모은다. 한마디로 함께 아프고 함께 기뻐하는 관계란 것이다. 슬픔과 함께 하고 영광도 함께 하는 것이 한 몸에 붙은 전체 지체들이란 말이다. (14-26절 참조).  


3) 성도들은 누군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에게 붙어 있는 그 분의 지체들이다(27절). 사도도, 선지자도, 목사도, 교사도, 일반 신도도 다 주님의 지체들이다. 역할이 다르고, 받은 사역이나 은사가 다르다고 남이 아니다. 모두가 나와 한 몸을 이룬 지체들이다. 은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한 성령에게서 나온 기능이요 능력일 뿐이다. 그러기에 높낮이란 있을 수 없고, 호불호도 없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어진 도구일 뿐이다(28-30절). 


4) 따라서 주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를 이루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다(31절). 이 사랑 없이 자기의 은사만을 뽐내려는 자는 그 은사를 주신 성령을 모독하는 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능적 은사를 전혀 못 받아도 괜찮다. 하지만 최고의 은사인 사랑을 받으면, 그는 가장 좋은 길에 들어선 자이다. 


o ‘저들로 하나 되게 하소서’란 주님의 최후의 기도를 명심하며 살자. 모든 거룩한 힘과 열매는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될 때만 나온다. 분열과 다툼으로 마귀의 대변인이 되지 말자. 오직 서로 하나 됨을 강화시키는 한 해가 되게 하자. 우리 가정이, 가족이, 교회가, 우리의 소속 기관들(여신도회)이, 우리의 사회와 국가가 서로 하나 되도록 전력하자. 그런 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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