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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6)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 어버이주일- 승천일

관리자 2021-05-05 (수) 10:06 1개월전 132  

본문) 눅 24:44~53, 출19:16-25, 계 5: 6-14 

 

부활절 여섯째 주일이다. 한국교회는 오늘을 어버이 주일로도 지킨다. 오늘을 맞이하면서 우리에게 귀한 어버이를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모님에게는 공경과 효도란 인륜 최고의 덕목을 확실하게 보여 드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어버이는 우리 존재에게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에 의하여 내가 생산되었고, 그의 헌신과 희생의 젖줄로 성장해왔으며, 비록 늙어 우리 곁을 떠나셔도 여전히 우리 안에 그의 존재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분이 바로 우리 어버이이기 때문이다. 사별(死別)하여도 관계단절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내가 늙어갈수록 더욱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신 존재가 어버이이고,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부르고 찾게 되는 주인공이 우리 어버이이기 때문이다. 

 

우리 어버이도 나약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자식들에게서의 어버이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맛볼 수 없는 신적(神的)인 거룩한 존재이다. 대체불가능(代替不可能)한 신비한 능력을 맛보게 하는 결정적인 주인공이다. 주고 또 주고, 먹이고 또 먹이고, 돌보고 더 돌보면서도 조금도 자기 자랑이나 업적을 뽐내지 아니하는 모습들-, 평생을 그렇게 퍼주다가 늙어 죽어가면서도 여전히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늘 아쉬워하고 미안해하는 그 마음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 어버이이다. 대체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가 부모의 그런 사랑을 대체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인간들에게 어버이는 언제나 마음과 영혼의 고향(故鄕)이다! 탐욕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의 아픔과 시련으로 상처 받은 우리를 쉬게 할 결정적인 품이다. 그런 점에서 육신의 어버이는 자손들에게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너그러운 품을 제대로 맛보게 해주는 지상 최고의 매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모 된 이들이 진정 자기 자식이 참된 하늘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식들과의 관계 유지에 남다른 관심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어버이와의 관계가 불량해지고 단절되면, 그에게는 부모를 잃어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된 영적 고아와 같은 처지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자식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라도, 부모가 우선 바로 서야만 한다.  

 

우리 주 예수께서 이 지상에 오셔서 가장 관심을 집중하여 제자들을 양육하신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당신의 제자들을 당신의 하늘 아버지와 부자(父子)관계로 맺어주시는 일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라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치신 일이다. 저 높은 곳에 계신 신인 여호와를, 당신의 제자들과 절대 인격 관계인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이어주고자 하셨다. 실로 연결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한 상황으로 만들고자 하신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말씀으로도, 행동과 삶으로도, 기적과 표적들으로도 하시다가, 그래도 부족하니까 나중에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죽기까지 그 일을 하시니까. 감동하신 하나님이 그 단절된 고리가 개통(開通)되도록 비로소 허락하신 것이다. 부활은 바로 당신의 아들의 그 죽음을 통한 노력과 희생을 하늘 아버지가 공식으로 인정하신 일이었다. 예수가 죽음으로 얻어낸 선물이, 바로 ‘의로우신 하나님과 불의한 인간 사이의 관계 잇기’ 였다. 

 

우리는 모두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된 그의 자녀들이다. 더 이상 비인격적이고 장난감 같은 로봇처럼 살 존재가 아니다. 신의 자식이 되었기에 우리에게 부여된 특권(特權)이 많아졌고, 감당해야만 할 의무(義務)들도 많아졌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승천(昇天) 주일의 말씀들은 그런 놀라운 신분을 갖게 된 우리들로 하여금 이쪽저쪽을 함께 보며, 자녀로서의 중심을 잡고 살아야할 소중한 부분들을 여러 가지로 일깨워 주신다. 

 

이번 주 목요일(5.13)은 예수 승천일을 맞이한다. 주의 승천은 무엇을 말하는가? 단순히 표현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이 계셨던 본향(本鄕)으로 되돌아가신 일이다. 제자들 앞에서 산 자로 오르신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는 달리, 주의 승천과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갔다. 오르신 주께서 다시 오실 것, 곧 재림(再臨)까지도 약속하시고 돌아가신 것이다(행1:1—11). 하지만 오늘은 복음서의 증언인 승천 자체가 열어준 세계와 영향에 한정하여 말하겠다. 

 

o 주의 승천은 우선 그를 믿고 떠나보낸 사람들의 신앙 지평에 놀라운 확장적 변화를 안겨 주었다. 주님의 떠남을 단순한 헤어짐으로 보지 않고 다시 만남을 전제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가 오르신 곳인 하늘의 본향에 대한 인간적 영적 관심과 시선(視線)을 갖게 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던 지상적 평화의 나라와 백성의 주권의 회복 차원이 아닌(행1:8), 그 분의 나라와 그가 계신 곳을 사모하고 그곳에 이르려는 믿음의 형성을 말한다

 

그와 함께 영원한 천국 시민에 대한 믿음과 긍지도 형성되었다(빌3:20). 그런 신앙의 형성은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에도 질적(質的)인 변화를 안겨 주기도 했다. 나그네 의식이요 거류민 의식이 생겨났다(벧전2:11).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시켰다. 머잖아 주님을 다시 만나고 그와 함께 영생을 누릴 때를 믿으며, ‘지금 여기에서’(Here & Now) 먼저 필요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대비하는 신앙적 윤리를 찾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곧 그 나라의 온전한 시민답게 사는 삶의 윤리인 종말론적(終末論的-eschatological) 삶의 과제에 대하여서도 깊이 성찰하며 사는 무리들(교회)이 지구촌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모습의 가장 대표적인 메시지는 예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내용에 잘 압축되어 있다.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라는 말씀과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는 메시지 속에 깊이 담겨 있다(마5:13-14).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위하여, 필요하면 고난도 영광도 능히 함께 감당해야할 과제로 보면서, 이 땅의 삶을 살게 한 것이다. 

 

o 또 있다. 예수의 승천은 승천하신 분인 예수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 상대하게 되는 전기(轉機)가 되었다. 한마디로 지상의 예수는 더 이상 단순한 선생의 위치가 아닌, 모든 인간들과 만물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그리스도(주님)로 섬기는 대상으로 받게 된 것이다. 이런 화려한 예수의 변신(變身)은, 번데기에서 나방이가 나오는 차원을 넘고, 평민이 대통령으로 한순간 새 옷을 입는 변신의 차원을 훨씬 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앞으로 그를 믿게 될 여러분과 나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변신의 전주곡(前奏曲)에 될 것이어서, 더욱 우리 모두가 관심할 수 있는 ‘사건 중의 대 사건’이었다. 승천이 이 모든 새 세상을 여는 문이었다!  

 

오늘 복음서의 후반부(50-53절)는 모두 예수 승천이 불러 온 예수의 그리스도로 오르심의 진면모들을 압축하여 보여 준다. 몇 가지 요점 중심으로,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을 그때부터 우리가 어떤 분으로 모시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잠시 살펴 보겠다 :

 

1) 축복(blessing)하는 분이 되셨다(50절). 그는 하늘에 오르실 때 손을 들어 축복하셨다. 이 모습은 그가 그를 좇는 모든 그의 백성들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축복권자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대제사장적 존재임을 보여주신 것이다(레9:22-23). 아울러 자신이 구원과 심판을 결정 지을 엄청난 처결(處決)권한을 보유한 자이심을 선보이셨다(눅22:28-30, 23:43, 계5:7,12). 교회에서는 교회 성직자의 성도들 향한 축도(祝禱)의 전거(典據)가 되기도 하였다. 

 

2) 승천(Ascension)자가 되셨다(51절). 구약에서는 이미 에녹과 엘리야를 승천자들로 전하지만, 예수님만큼 모든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공개적으로 올림 받은 이는 없었다. 그 장면은 그의 신자들에게 확실한 들리움의 신앙 곧 휴거(携去)될 신앙을 심어 주었다(살전4:13이하). 죽음을 넘어선 존재로 살 길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3) 예배(Worship)와 경배를 받으실 주님이 되셨다(52절). 하늘에 오르시는 주님에게 제자들의 행동은 단순한 이별의 현장이 아니었다. 주님께 엎드려 예배하고 경배를 올리는 자리였다. 주님은 탄생시, 이방인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신 후(마2:11), 그 어떤 유대 동족들에게 경배 받으신 적이 없었는데, 이제 하늘에 오르시면서, 그들로부터 하나님에 준하는 경배와 예배를 받으신 것이다. 그때부터는 예수는 주님으로 그를 좇고 찾는 이들로부터 예배와 경배를 받으실 분으로 신분이 확정되었음을 확인해 준 대목이다(계5:8-14참조). 이 모습에 의거해 지금의 우리도 그 예수 그리스도께 예배와 경배를 드린다! 

 

4) 찬양(Praise)을 받으실 주님이 되셨다(52-53절). 예수님을 떠나보내는 제자들의 마음은 전혀 슬픔이 아닌 성령이 주신 큰 기쁨(great Joy)으로 가득했다. 다시 만날 약속으로 설레였고, 주의 제자로 살아옴에 보람과 감동으로 가득했다. 주님의 마지막 분부에 충실하여 더 나은 세상의 주역으로서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려는 의지로 가득했다. 뜨거운 찬양이 떠져 나왔다.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기억하며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5) 성전 중심의 삶이 형성되었다(53절). 예배와 찬양과 기도의 삶은 지속되어야할 일들이었다. 집안의 모임도 가능하지만, 그래도 중심은 당연히 성전(聖殿)이었다. 성별된 공간을 통하여 성도들은 함께 모여 주님을 경배하며, 기도하고, 교제하며, 배우고 선교하며, 사랑하는 삶의 훈련을 익히는 공간으로 정착하였다. 교회 공동체의 모체(母體)로서의 성전이 등장한 것이다. 

 

o 복음서를 더 자세히 보면, 승천을 앞둔 주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리시는 일에 전력하셨음이 보인다. 제자들이 당신을 알 되, 당신의 말씀들을 통하여 당신을 알도록 말씀 공부를 시키셨다(44-48절). 말씀의 기반이 튼튼하게 갖추어져야 비로소, 제자들이 끊임없이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영적 제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그 말씀 자료가 풍부해야만 그들의 예배나 선교도 가능하고, 증인 사역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혹 말씀의 자료, 말씀공부가 빈곤하면, 그 어떤 것들도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축복-예배-찬양-성전 모임 등도 제자들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온 선물이었다. 

 

☞ 그러니, 우리도 명심하자. 성경 말씀이 빈곤하면, 우리의 예배, 기도, 찬양, 축복 모두도 빈곤하여 제대로 지속할 수 없다. 반면에 성경에 풍부하면, 이 모든 것들도 활짝 살아난다!!!

 

1) 이를 위해 주님은, 앞으로 당신의 증인으로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할 제자들에게(48절), 당신의 고난과 부활에 관련된 자료들을 성경 안에서 확인시키는 작업들에 집중하셨다(44절). 구약에서는 세 본문들인 율법-선지서-시편에 기록된 자료들과, 당신이 예고하셨던 말씀들(눅9:22,44)까지 동원하면서, 제자들의 성경보는 눈과 마음을 열어주시고 깨닫게 해주셨다(45절). 

 

2) 동시에 주님은 회개(悔改) 운동이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온 세계로 퍼져 나가야만 하겠기에(47절), 이를 위하여 당신이 곧 보혜사 성령(聖靈)을 보내주실 터이니, 그의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도록 명령하셨다(49절). 이런 주님의 최후의 제자 교육은 제자들의 마음을 담대하고 강하게 해주었고, 모여서 말씀과 기도로 오순절을 대비하게 하였다. 

 

o 구약의 출애굽기 내용은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기 이전에, 강고하게 닫혀 있던 모습을 접하게 한다.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시고, 그의 십자가 희생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를 이루게 되심으로 그 닫힌 문은 열리게 되었지만, 모세 시대의 하나님 나라는 그의 거룩함에 저촉되는 일에는 아주 엄격하고 가차 없는 징벌을 당하는 세계였다. 그의 신실한 종 모세까지도 극도로 조심해야만 했다(출19:17-25참조). 

따라서, 주님이 인간되어 오신 성육신 사건과 십자가에 속죄 제물로 당신의 몸을 바치신 예수로 인한 하나님과의 화해(和解)의 일은, 범죄한 인류가 꽉 닫힌 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는 유일한 길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예수 이름이 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열쇠가 되었는지도 확실히 알게 해 준다. 

 

o 서선서인 계시록은 승천하신 예수, 본향에 오르신 그리스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시내 산의 꽉 닫힌 곳과는 달리, 갈보리 산의 어린 양 예수로 인하여 활짝 열린 주님 계신 곳의 영광과 은혜의 세계를 공개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초청 대상은 복음을 전하다 밧모섬에 유배당한 요한 장로가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안내로 하늘에 오르게 되어, 그곳 하나님의 보좌에서 뵙게 된 어린 양 예수의 신분과 그 영광스러운 위엄이다. 

 

o 그곳 장면은 지상 사역을 죽음과 부활로 승리하시고 본국에 개선하신 이의 환영(歡迎)식과 함께, 본국에 ‘귀향하신 예수’의 ‘보좌의 어린 양(Lamb)으로 취임(就任)’하시는 그 예전이었다. 

 

1) 어린 양은 보좌(the Center of the Throne)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계셨다(6절). 

2)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Scroll)를 취하셨다(7절).

3) 네 생물-24장로들이 그에게 예물을 바쳤다. 거문고와 성도들의 기도들인 향(香)이었다(8절)

4) 새 노래로 그에게 찬양(讚揚)을 올렸다.

-‘어린 양의 두루마리(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역사 계획서) 취하심과 기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다. 그는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백성의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王)노릇하리라’라는 주제의 내용이었다(9-10절). 

5) 이번에는 그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무리들로서, 그 수가 천천이요 만만으로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천사들의 큰 음성들이 (고백적 외침처럼) 이어졌다(11-12절).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power)과 부(wealth)와 지혜(wisdom)와 힘(strength)과 존귀(honor)와 영광(glory)과 찬송(praise)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6) 그러자. 마치 추임새와 같은 대규모 응답(應答)사가 이어졌다. 그 참여자들은 놀랍게도 천지와 바다와 그 아래와 위와 속에까지 퍼져 살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피조물들이었다.(13절)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7) 예전은 네 생물들이 ‘아멘’으로 응답하고,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일로 마감했다(14절). 

 

o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왜 우리에게 승천하신 주님의 천국에서의 놀라운 모습까지 보여주셨다고 생각하시는가?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폭(幅)과 질(質)이 영원에까지 이르도록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시려 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의 죽음의 무게였다. 십자가는 땅과 하늘에서도 최상의 가치요 영광의 증표였다. 우리의 신앙의 품질도 십자가 영성을 담고 있어야 비로소 산 것임을 보여 준 일이 아니겠는가! 증인으로, 섬김으로 내려놈으로, 내어 줌으로 십자가의 흔적이 우리에게는 절대 필요하다. 천국 문에서도 바로 그 부분은 필수적인 점검사항이 될 것이다. 잘 대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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