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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5) - 세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 어버이주일

관리자 2020-05-05 (화) 21:41 1개월전 91  

본문) 요 21:15~19, 렘 23: 1-4, 벧전 5:1-11  

 

어느 덧 부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이하였다. 한국교회는 오늘을 어버이 주일로도 지킨다. 어버이는 누군가? ‘나’란 존재의 뿌리 되신 이들이다. 이들로 인하여 ‘나’라는 생명체가 열매가 되어 세상에 와서 살고 있다. 그러니 이 분들처럼 귀하고 감사한 분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나를 낳고 기르고 양육하여 오늘에 있게 하신 주역인 어버이들께 감사드리자. 창조주께서 특별히 맺어주신 인연인 우리 부모와 나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보존해 가자. 

 

성경은 대체로 우리 인생을 위한 목자(牧者)를 세 차원에서 소개한다. 즉 창조주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세 영역의 목자들을 세워 주셨음을 말한다. 그들은 누군가? 첫째는 나를 낳고 길러주신 육신의 부모(父母)이다. 둘째는 우리 영혼을 돌보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교회의 목회자(牧會者)이다. 셋째는 국가와 백성을 안위하고 지켜내는 위정자(爲政者-왕,대통령)들이다. 그들 셋은 모든 인간들의 생존과 보호와 행복을 지켜낼 필수불가결한 사역 목자들이다. 

 

이 셋 중의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때는 큰 위기를 당하게 된다. 요즈음 부모란 목자의 사명을 내평개친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부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여, 자식들에게 씻을 수없는 이별의 상처를 안겨 준 문제의 부모들이 많다. 또한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부모 밑에서, 인격이 망가지고 품성에 문제가 많은 자녀들이 세상에 배출되는 바람에, 많은 가정들에게서 세상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인물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훌륭한 인격과 영성과 진리를 보유한 교회 목회자란 목자의 역할도 크다. 물론 학교의 교사의 역할도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란 제도권은 짧게 스쳐간다. 그러나 신앙 생활하는 교회는 평생을 간다. 교회에서 만난 공동체 가족들은 평생 가족들이기도 하다. 얼마나 큰 영향을 피차 주고받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신도들은 좋은 목자를 만나야 산다. 편협하고 왜곡된 신학에 빠진 목자를 만나면, 신도는 얼마든지 광신도나 맹신도가 될 수 있고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신도들은 바른 신앙을 키워줄 목자가 절대 필요하다. 

 

나라의 위정자들도 중요하다.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르고, 자기 이익이나 권력추구에만 연연한 자를 왕이나 대통령이란 목자로 만나면, 그 백성은 멸망당할 수 있다. 세월호 처럼 침몰 당하게 한다. 임진왜란을 통하여 우리는 선조의 무능과 사색당파의 싸움이 나라를 얼마나 급속하게 왜적에게 넘기게 되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반면에 든든한 위정자는 백성과 국가를 살려낸다. 우리는 위정자의 중요성을 최근 코로나 국면에서 생생히 목도하고 있잖은가!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5:10)은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들인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잘 보호하고 지켜내며 번영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핵심 역할을 감당할 목자들을 세워주신다. 부모로, 목회자와 교사로, 대통령과 위정자로 세워서 당신의 백성들과 양무리들을 건강하게 지켜내게 하신다. 그러기에, 목자로 세우심을 받은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반드시 소명감이 있어야 하고, 초지일관(初志一貫) 일편단심(一片丹心)하는 자세로 직임을 감당해야 한다. 

 

오늘 주신 세 본문 말씀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당신의 일꾼 된 ‘목자 세우기’에 집중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사도로, 나라의 왕으로, 그리고 지역교회의 목회자로 세우셔서 그들의 사람들을 돌보게 하신다. 목자인 그들에게 당신의 양들을 맡기시고, 목양(牧羊)과 치리(治理)를 위탁하셔서 그들 목자 자신들의 영광과 함께 당신의 백성들이 그 돌봄을 통하여 생육(生育)하고 번성(繁盛)하기를 원하시고 계셨다(렘23:3참조). 

 

복음서를 보자

본문은 지난 주 부활절 넷째 주일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즉 디베랴 호수에 가있던 제자들 7명을 다시 부르시고 세우시려는 목적을 갖고, 특별 심방하신 예수님의 행보(行步)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은 제자들이 쉽게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일들의 상황들을 재현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한 당신의 뜻과 마음을 전달하신 바 있었다(1-14절). 

 

그 두 가지란 무엇이었나. 밤샘하면서도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그들의 빈 그물(마음)에, 찾아오신 주님이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라는 말씀 한마디로 큰 물고기들을 가득 잡게 하신 일과(6절), 떡과 생선으로 조반을 만들어 그들의 허기를 채우시는 성찬(聖餐)을 베푸신 일들이었다(9-13절). 제자들은 이 일들을 접하면서, 깊은 침묵(沈默)에 젖어들었다. 이 두 가지 일들을 접하게 하신 주님과 그의 마음이 그들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깊은 침묵의 성찬이 끝난 후, 예수님이 그 다음 상황을 주도하셨다. 어떤 상황인가? 곧 떠나실 당신 이후의 시대, 즉 사도(使徒)시대의 개막과 함께 그 사도단을 이끌 인물을 세워서 대내외에 알리는 공인식(公認式)을 주관하셨다. 그 역사적인 대표 사도는 시몬 베드로였다. 그들을 대표할 위치에 있던 인물로 이미 피택하셨기 때문이다(마16:18-19참조). 예전을 위한 설교(說敎)는 이미 앞의 두 행사로 끝냈다고 보셨음이 분명하다. 남은 것은 서약문답(誓約問答)이었다. 손에 땀이 나는 역사적인 서약 문답이 집례와 취임자 사이에 진행되었다(15-17절 참조). 증인들은 동료 제자들이었다. 놀랍게도 그 문답은 세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1)

주  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 -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  님 - ‘내 어린 양을 먹이라’(Feed my lambs)

2) 

주  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 -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  님 - ‘내 양을 치라’(Take care of my sheep)

3) 

주  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 -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  님 - ‘내 양을 먹이라’(Feed my sheep)

 

☞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세 차례에 걸친 반복성 질문이었다. 집례자인 예수는 왜 그랬을까? 시몬의 아픈 곳을 찌르려던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씻어내 주시려는 것이었다. 세 번의 예수를 ‘모른다’고 했던 배신의 트라우마를, ‘사랑합니다’라는 정반대의 공개적 고백으로 완전히 지워내시려고 그 질문을 반복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베드로가 그런 부끄러운 부분으로 인하여,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전혀 훼손되는 일이 아예 없게 하고자 하신 것이었다. 사실 그랬다. 보라, 그 이후 베드로의 행보에서 그 부분에 대한 뒷소리들은 완전 사라졌잖은가-!

 

☞ 목자나 교회 사역자의 최고의 영적 윤리적 덕목을 온 세상에 분명히 규정해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다. 그것은 목자장이신 예수를 그 누구(무엇)보다도 더 사랑하는 일에 있음을 확인시켜주신 것이다.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다. 가장 우선적인 사랑을 주님께 드려야 되는 사랑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주님의 양무리들(어린이나 어른이나)을 결코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된다. 

 

☞ 모든 목회자는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 목장의 양들은 결코 자기 양들이 아니다. 다만 주님의 양무리이다! 그러기에 목회자들은 신도들에게서 목자장 예수가 함께하고 계심을 늘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정 예수를 사랑하여야만, 그 양무리 사랑도 가능한 까닭이다. 

 

취임 선언(宣言)이 이어졌다 -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양육과 치리권이 부여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사도 및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확보하게 되면서, 예수 이후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로 공인 받았다. 이제는 이전의 나약한 개인 시몬이 아니었다. 오직 목자장인 예수만을 따르는 순교적 삶의 길로 묵묵히 앞장 서 가야만 하는 목자가 되었다(18-19절). 그 일로 부활의 예수님도 비로소 본향으로 떠나실 준비를 마감하셨다!

 

구약을 보자

그 때에는 성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볼 목자로서 임금(王)을 세워 일하셨다. 하지만 그 때의 왕들 대부분은 세운 이의 뜻을 거스렸던 ‘악(惡)한 목자들’이었다. 여호와의 백성들(양떼)을 멸하며 흩어지게 한 것이다(1-2절, 겔34장참조). 그 까닭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우상 종교에 빠져 지내면서 공의와 정의가 아닌 불의와 부패 행위를 일삼다가 여호와의 진노를 받아 제국의 침략을 당하면서, 백성들을 죽음과 흩어짐으로 내 몰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저주의 흐름을 차단하신 이는 바로 여호와이셨다. 두 가지 대책을 마련하셨다. 하나는 당신의 흩어진 백성들 중에 남은 자(remnant)들을 다시 모아서 돌아오게 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일이었다(3절). 또 하나는 그 일을 위하여 전혀 다른 차원의 목자, 즉 그들을 품에 안고 길러낼 ‘의(義)로운 목자들’을 당신이 직접 세우셔서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양들이 두려움이나 놀라거나 흩어짐도 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게 하시고자 하신 일이었다(4절). 

 

그러면 하나님이 예고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기를 ‘새로운 차원의 의로운 목자들’은 누구일까?  개인이 아닌 집단(集團)적 목자들의 등장을 예고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4절).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 어느 개인적 사역자가 아닌 예수의 제자들 - 즉, 사도들의 등장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예수도 목자로 오셨다. 선한 목자이셨다(요10:14). 하지만 예수님의 본질적인 목자 사역은 온 세상의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들을 돌보고 길러낼 목자(목회자)들을 불러 세우기 위한 목자장(Chief Sherpherd)이었다(벧전5:4참조). 그런 점에서 예수에 의하여 제자로 선택받고 양육도 받아 이제 사도로까지 새 출발하게 된 복음서의 인물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 성취로 된 그 인물들로 보아야 한다. 그들의 헌신 속에 있는 양들은 구원을 누린다-. 

 

서신서를 보자

본문은 교회의 대 사도로서 초대교회들을 지도하던 베드로가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교회들에게 보낸 목회서신(牧會書信)중 일부이다. 그의 권위는 이미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받은 권위여서 큰 힘을 갖는다(복음서 참조). 그 주요 내용은 박해로 인해 고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교회 현장을 섬기고 있는 목회자들과 지도를 받는 젊은이들에게 각각 필요한 목회 윤리와 신앙 윤리에 관한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1) 사도 베드로는 먼저 이 목양 편지를 장로(長老)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신도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규정해서 밝히고 있다(1절). 목양 지침을 평신도 장로들에게 보낸 까닭이 있다. 당시의 교회들은 제대로 된 신학과 교육을 받은 목회 지도력이 절대 부족했다. 그래서 평신도 지도력 중에서 목회까지 맡을만한 인물들이 있으면, 그를 기름 부어 세워서 교회 목회까지 맡겼기 때문이다(행22:20,계2:13,17:6참조). 얼마 전까지 한국에 있는 시골교회들 중에는 이런 장로 목회자들도 제법 있었다. 

☞ 이 지침으로 목사도 장로 당회원의 일원이 되어, 평신도 장로와 함께 당회(堂會)를 이룬다. 

 

2) 따라서 신학교육이 부족한 장로들은 다음의 목회 윤리를 잘 익혀서 실천해야 했다(2-3절):

☞ 목양 사역은 억지로 해서는 아니 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원(自願)함으로 해야 한다.  

   돈벌이 목적(더러운 이득)으로 해서는 안 되며, 개인적 손익(損益)따라 처신하면 안 된다. 

   군림하려거나 자기 뜻 관철하려는 자세가 아니어야 하고, 양 무리의 본(本)이 되어야 한다. 

☞ 최후의 심판은 목자장에 오실 때 나타난다 - ‘시들지 아니할 영광의 관’을 얻게 된다(4절).  

 

3) 교회 젊은이들에 대한 신앙 윤리도 제공되었다. 박해와 고난이 압박으로 가해지는 상황에서 젊은 신앙인들은 어떤 신앙적 대응이 필요할까? 특히 배교(背敎)하도록 유혹하고 날뛰고 있는 마귀의 공세 앞에 처한 젊은이들의 신앙 윤리는 어떠해야만 할까(계2:10,13:7,시22:13)? 

 

☞ 순종(順從)하고 겸손(謙遜)해야 한다 – 교회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5-6절). 

   주님을 신뢰하고 염려는 맡겨야한다 – 주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을 택하는 일이다(7절).

   깨어서 대적해야 한다 – 마귀는 대적의 대상이다. 분별하여 고난에 담대히 맞서라(8-9절). 

☞ 우리를 부르신 은혜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0절).  

 

결론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다음 세대를 열기 위한 준비는 매우 철저하고 은혜로웠다. 그는 이제 낙심한 제자들을 찾아가 사도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셔서, 교회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력을 준비하셨다. 그 대상에 바로 오늘의 우리들도 들어있고, 이모습저모습으로 활동하며 살고 있다. 

 

우리도 부름 받은 목자들임을 기억하자. 부모라는 목자로,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어린 신자들은 돌보고 양육해야할 목자로,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주어야 할 사랑의 목자로 더불어 부름 받았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목자장 되신 예수님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하면 된다. 그때만이 거짓 없고 후회 없는 충성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목자로 세우신 주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자. 오직 겸손과 믿음과 근신과 인내로 주님의 소명에 감사로 응답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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