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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7-1) - " 새 하늘, 새 땅, 하나님 나라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0-07-17 (금) 15:00 3년전 1528  

본문) 사65;17-25, 계21:1-7, 눅13:22-30


그동안 우리는 구원을 죽어서 천당에 가는 내세구원으로 생각했습니다. 내세구원을 받기위해 영혼이 육신을 떠나 천당으로 이동하는 ‘영혼구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죽어서 가는 천국을 영원한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영혼구원이나 영혼불멸이 아니라 우리 몸의 부활을 믿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 우리 영혼이 잠시 머무는 천국(낙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처음 땅과 처음 하늘이 완전히 새로운 새 하늘 새 땅으로 재창조 된 바로 이곳에 부활의 주님이 다시 임하셔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흙으로 빚으셔서 만드신 인간(몸)을 버리지 않고 마침내 부활의 몸으로 완성하시며 그가 창조하신 이 처음 하늘과 땅을 포기하지 않고 새 하늘 새 땅으로 재창조하심으로 첫 에덴을 마침내 회복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성경에서 명백하게 증언해주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교회 현장에서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 후에 부를 찬송을 고르다 사실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적합한 찬송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믿는 그릇된 신앙의 위험은 무엇보다 그 왜곡된 신앙이 만들어 낼 위험한 삶의 방식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당신앙은 이 세상을 무너지고 망할 세상으로 보고 우리가 사는 일상의 삶은 가치 없고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 이 땅에서의 삶을 부정하는 삶으로 여기게 됩니다. 죽어서 천당 가는 신앙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부정하고 교회생활만 잘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이 세상에서의 바른 삶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과는 담을 쌓고 예배와 기도, 교회만 잘 섬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구원과 하나님 나라


우리는 먼저 바른 구원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죽어서 천당 가는 구원이 아니라 참 구원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구원은 ~로부터(from) ~로(to)의 변화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로부터 “구원받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원은 물속으로부터(from) 물 밖으로(to)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의 구원은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부터(from) 하나님께로(to) 돌아오는 것이며 출애굽기에서의 구원은 이집트에서(from) 가나안으로(to), 노예로부터(from) 자유민(to)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을 떠나(창세기)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살던 그의 백성을 해방시켜(출애굽기) 다시 하나님이 말씀과 계명으로 통치하는(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새 에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여호수아)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에덴(하나님의 나라)은 어떤 곳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보좌(통치)가 있는 곳입니다. 창세기는 그곳이 “먹기 좋은 과실이 풍성하고 물이 풍족하여 4개의 강이 흐르는 곳”(창2:8-14)으로 표현하고, 겔47장과 계22장은 풍성하고 차고 넘치는 생명의 강물이 흘러나오고 그 강물의 좌우에는 각종 실과와 약재료인 잎사귀가 풍성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땅과 나무를 살리는 그 생명의 강물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에덴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생명과 그의 말씀으로 통치되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은 폭력과 억압과 독선으로 지배했던 바로의 폭압통치로부터 벗어나 시내산에서 주신 야훼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 인애(hesed)와 공의(tsedeq)의 말씀으로 통치되는 새 나라로 들어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의 나라가 마지막 날에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이 땅에서 성취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며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말은 지금까지 사탄이 지배하고 있던 나라가 끝났고 이제 새 왕이 통치하시는 새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마귀사탄이 지배하던 죄와 사망의 나라는 무너지고 불법적인 왕은 쫓겨나며 새 왕이 다스리는 새 나라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옛 왕을 섬기지 말고 새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제 질병과 억눌림, 정죄, 죽음으로 다스리던 마귀사탄의 통치로부터 벗어나 예수님이 다스리는 치유와 귀신으로부터의 자유, 죄의 용서, 새 생명, 부활의 세계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 새롭게 창조되는 하나님 나라(계21:1-7)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질까요? 오늘 구약의 말씀 사65;17-25과 서신서 계21:1-7의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서 완성되는 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시는 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새롭게 재창조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곳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65:17)” 

“또 내가 새 하늘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1:4) 


이미 죽어 이 땅을 떠난 자들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처음 땅과 하늘이 있던 곳, 그러나 새롭게 재창조된 곳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하십니다. 보십시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새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이 땅으로) 내려온다고 하십니다(계21:2).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주님이 친히 세우신 도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소서(마6:10)”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새 하늘 새 땅은 이 세상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벧후3:12-13) 전혀 새로운 세계로의 갱신을 말씀합니다. 부활이 몸의 소멸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몸으로의 변화요 갱신인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사망과 질병과 죄와 파멸이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완전한 것으로 불완전한 것을 이기는 하나님 나라(사65:17-25/ 계21:1-7)


새 하늘 새 땅은 기존에 존재하던 것의 질적 갱신과 변화지만 동시에 완전한 새것이 도래함으로 온전치 못한 부분이 완전히 소멸될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이 땅에 세워지고 여전히 우리 몸이 부활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될 낡은 것들은 남김없이 소멸되어야 참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이 부활하지만 우리 본성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은 완전히 소멸되고 이 세상은 새롭게 재창조되지만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파괴적인 것들은 소멸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불완전한 것들이 소멸됩니까? 완전한 것이 올 때만이 불완전한 것들은 사라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인하여 눈물과 슬픔(계21:2-4/ 사65:17)이 사라집니다. 슬픔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죄수에서 국무총리가 되는 기쁨을 맛볼 때 지난 세월동안 아팠던 상처로부터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오직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임할 때 깊은 상처로 인한 슬픔과 사라집니다. 둘째는 다시 만남으로 인해 사망과 이별로 인한 애통과 애곡이 사라집니다.(계21:4/ 사65:19-20) 새 예루살렘은 갈라지지 않은 단 하나의 성입니다. 그래서 이별이 없고 사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원수인 사망이 소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친히 온 세상을 회복시키심으로 재난이 사라집니다.(계21:5) 신음하고 있는 이 자연이 회복되어 인간을 공격했던 지구적 재난으로부터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넷째는 풍성함이 와야 갈증이 사라집니다.(계21:6절) 이 세상은 갈급합니다. 사랑과 용서와 섬김과 평화가 없습니다.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힘이 없습니다. 용서할 능력이 없습니다. 평화를 만들 에너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수 강물이 흐르는 곳이며 하나님이 날마다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를 공급해 주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생명강수를 마셔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눅13:22-30)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씨를 뿌리고 밭을 갈기를 시작해야 이루어집니다.(마13:3-9] 밭에 감추인 보화(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자기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야합니다.(마13:44)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히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눅13:22-23) 그냥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주 앞에서 먹고 마셨다고 길거리에서 가르쳤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주의 말씀대로 살고 행하는 자, 그의 통치가운데 있는 자가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원받을 자가 적다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인 것을 아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대로 살고 행하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는 자, 힘들고 어려워도 순종의 좁은 길을 걷는 자가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영지주의는 영적지식을 가진 자, 깨닫는 자가 영원에 들어간다고 가르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영지주의적 신앙에 빠져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것, 주님의 십자가사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임을 아는 것, 오직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새 삶을 산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믿음으로 생각합니다. 그 길은 쉽습니다. 편합니다. 수고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살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는 것은 자기 부정의 희생 없이 고난 없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여, 주여 한다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적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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