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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강림후(2-2) - " 피해자에서 가해자/핍박자에서 간증자로 " / 총회선교주일 / 전완기 목사

관리자 2020-06-11 (목) 17:59 3년전 1170  

본문) 행 9:1~19, 마 9:35~10:1, 렘 1:4~10


  코로나19로 인해 안부를 먼저 여쭙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서로 서로가 안전을 위해 조심해야겠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 공동체를 위해서 조심하고 조심해야겠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서운 감염전파로 인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개인의 인간관계가 손상되고 공동체 특히 교회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모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많이 손상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이 성호 교수님이 쓴 <자녀교육의 비법은 없다>는 책 서두에서 주목할 만한 통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느 연구단체에서 서울시내 중학교 학생 2,000명을 상대로 의식조사를 하였습니다. 제시된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은 지금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5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첫째로 전혀 그렇지 않다. 둘째로 대체로 그렇지 않다. 셋째로 그저 그렇다. 넷째로 대체로 그렇다. 다섯째로 매우 그렇다.] 그런데 조사대상 학생 2,000 명 중 긍정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 있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 표를 한 학생은 불과 27%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00명 중 27명의 학생만이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73명의 학생들은 존재할 가치가 없거나 자신을 그저 그런 존재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 보면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크리스천들 가운데도 자존감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뉴스 기사 중에는 교회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삶은 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으며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놀림거리가 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자존감은 더욱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세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서신서의 말씀입니다.(행9:1-19)


  사울(바울)은 위대한 사도입니다. 그의 회심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가장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의 회심장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찾아오심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 만나기 전의 사울: 

  다소 출신의 사울은 학문적으로나 가문이나 지위에 있어서 내놓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❶가말리엘 문하생 ❷로마시민권을 가진자 ❸유대인중의 바리새인). 그는 열심 있는 유대교인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려고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사람이었습니다. 


2) 다메섹의 사울: 

  다메섹을 향하는 길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사울을 변화시켰습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은 빛으로, 음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로 변화되는 체험입니다. 사흘간의 금식과 기도와 회개로 자신을 성찰하는 사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니아에게 직가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금식 기도하는 사울을 찾아가 안수할 때 개안, 성령 충만, 그 후 물세례를 받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다시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3) 믿은 후의 사울: 

  회심 전과 후가 분명하게 달랐습니다. 핍박자가 변하여 전도자가 되었으며(행9:22), 죽이려는 공문을 가지고 가던 자가 하나님의 사랑의 서신을 전하는 자로 변했습니다. 회심 후 바른 열심을 가진 사울은 이후에도 그 열정은 동일했습니다. 새로운 목표와 사명을 가지고 고난 중에도 기쁨과 평안을 소유하게 되는 변화된 삶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복음서의 말씀입니다.(마9:35-10:1)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세우시고 내가 사역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내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주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1. 상처 입은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라.

  36절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마9:36) “보셨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리는 어떤 무리입니까? 양과 같이 쉽게 상처받고 쉽게 무너지고 쉽게 병들고 쉽게 다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보셨다는 말은 그냥 지나가다가 힐끗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관찰하셨다.”는 말입니다. “주목하셨다.”는 말입니다. 이웃을 주목하여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상처 입은 이웃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을 가지라. 

  36절을 보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마9:36) 주님은 자세히 관찰해 보셨습니다.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이들의 필요가 무엇인가? 이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이들의 아픔이 무엇인가? 이들의 현실적인 고뇌가 무엇인가? 그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라고 강조합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된 자를 누가 살려줍니까? 누가 다가가 돌봐줍니까?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마리아인입니다.(눅10:33) 내 일처럼, 내 아픔처럼 느낄 때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3. 상처 입은 이웃을 섬기는 사역을 하라. 

  여기서 말하는 사역은 함께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현실을, 애환을 공감하면서 함께 듣고 함께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와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0:1절을 보시면 상처를 입고 고통 중에 있는 양떼들, 그 상처를 쉽게 받는 양들에게 있어서 제자들이 목자 곧 치유자가 되도록 만드시는 것이 주님의 의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고쳐주시는 주님, 치료해 주시는 주님, 낫게 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구약의 말씀입니다. (렘1:4–10)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가 멸망할 시기의 예언자로서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예언을 하므로 유대인들이 매국노라고 괴롭혀 고통을 많이 당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국가 운명이 기울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예레미야가 소명 받는 상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청년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고 “하나님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항변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의 육체를 형성하기도 전부터 사랑했고 너를 준비했는데 왜 못한다느냐? 내가 하도록 했으니 너는 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알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성별하다는 말은 구별해 놓으셨다는 말로써 '거룩하게 만드셨다, 성화 시키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워주셨다는 말은 ‘사명을 임명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열방의 선지자로 사명을 임명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예레미야는 부름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예레미야는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만한 자질이 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며 슬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너는 아이가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전하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여기 ’그들‘이란 이스라엘 동족들을 비롯한, 바벨론이나 애굽, 모압, 에돔, 블레셋, 암몬과 같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들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결코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 땅에 보내신 계획과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결론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지자체와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그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사연이 기사가 되어 소개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마저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기부하는 모습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던 자에서 도움을 베푸는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울이 핍박하던 자에서 간증하는 자로 변화되었던 것처럼, 가난하고 무능력한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의 제자로 변화된 것처럼, 아이 같다던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그 변화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성령강림 후 둘째주일을 지키는 저와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역사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총회가 정하고 교회가 함께 참여하는 총회선교주일입니다. 우리가 늘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요. 비록 한사람의 힘은 작을지라도 마음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면 놀라운 결과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아름답고 위대한 일을 펼치시기 원하십니다. 


이제 남들로부터 존경 받으려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남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귀한 존재다.' 남들에게 신뢰를 받으려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환경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낮아진 자존감을 성령충만함으로 회복하여 각자의 일터에서 복음 전하는 사명자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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