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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8-1) - " 성령에 이끌리는 삶 " / 홍철화 목사

관리자 2019-07-31 (수) 17:08 22일전 88  

본문) 잠 8:1-21, 벧전 2:11-17, 마 6:19-24

 

  교회력에서 성령강림절 시기가 제일 깁니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성령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지냅니다. 설교자가 계속 성령을 강조하고 그 성령 안에서 살도록 말씀을 전합니다. 성서일과가 모두 성령에 관하여 일관하지 않더라도 이 시기에 성령으로 사는 삶을 힘써 전합니다. 

 

  구약에서 성령에 관하여 강조하거나 자세히 설명한 곳이 별로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어렴풋이 성령의 역사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읽고 깊은 감명을 받는 시편 51 편 10 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에스겔 37 장에 하나님의 영이 마른 뼈들을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엘서의 ‘만민에게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2:28-29)

 

  예수의 공생애 활동 시작 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감명 깊습니다. 그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서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계속 이끌어간 추진력처럼 보입니다. 이 때의 사건이 예수의 구원사역에서 <원체험> 같은 것이라고 한 목회자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받으셨다고 한 그 기록 앞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라고 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성령에게 이끌리어...’라고(마 4:1, 눅 4:1) 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말할 때, 교회를 탄생시킨 것이 하나님의 영이라고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관해서는 신약성서에서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기에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성령에 이끌린다는 것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선교할 곳으로 갈 때 성령의 지시를 따랐다는 것을잊지 말아야 합니다.

 

  1. 지혜로운 삶

  성령에 이끌리어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를 연관시킵니다. 고린도 전서 12 장 은사를 말하는 부분에서 신령한 것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성령의 활동은 여러 모습입니다. 그 중에서 지혜의 말씀을 우선으로 꼽고(12:8-) 지식의 말씀이 그 뒤를 잇습니다. 이렇듯 성령과 지혜가 연관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어리석은 인생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서는 성경에서 지혜문서로 분류됩니다. 시편과 함께 애독하는 성경입니다. 이 잠언서가 31 장이어서 매일 한 장씩 읽으면 한 달 내내 지혜로운 인생을 살도록 안내합니다. 신앙생활을 절도 있게 하려는 교인들이 잠언을 사랑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지혜라는 말이 되풀이 됩니다. 이 단어와 함께 명철이라는 단어와 지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여기서 구분하여 설명하지 않고 이 모두가 ‘지혜로운 삶’으로 안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으로 이런 지혜를 들 수 있겠습니다. 잠언과 시편은 이 지혜를 우선적으로 언급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점에서 지혜가 지식보다 중요하고 값지다 하겠습니다. 

 

  아침 명상 때 지혜로운 삶을 몇 가지로 생각합니다. 우선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잠시 내게 맡긴 것이라는 청지기 의식입니다. 소유에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경고를 내립니다. 다음, 살아가면서 잘못된 것, 실수 이런 것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다음, 제 나름으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 상식을 저버리지 않는 것, 욕심과 이기심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는 것, 이런 것을 떠올리면서 반성합니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지혜로운 삶이 이런 것이겠다고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모든 가르침을 중심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7 장 24 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삶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매우 구체적이어서, 판단하지 않고 자랑하지 말고 경쟁심으로 살지 않으며 시기하지 않는 것 불평하지 말 것 비난하지 말 것 앙심을 품지 말 것... 이런 것입니다.  

 

  본문이 밝히 전합니다. 17 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가 되라는 겁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 신분이 완전히 바뀐 인생

  본문에서 인생을 나그네와 거류민 같다고 합니다. 그런 인생을 향하여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리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으로 권하는 그 당사자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당시 성도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란 지금 같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함께 했던 신앙인들이 십자가형에 처할는지 모르는 그야말로 환난과 핍박이 목전에 늘 있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사랑을 실천하여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신앙을 굳게 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받들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음까지 당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믿음을 보배처럼 여기고 순교를 각오했던 것입니다. 

 

  벧전 2: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이 말씀에 이어진 구절들입니다. 이렇게 그들의 신분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세상에서 별 보잘 것 없던 백성들이 고귀한 신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성도들에게 명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그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그 사실을 늘 확인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신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베드로 시대에 걸맞게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그리하라.’라는 구절에서 난해한 점을 발견합니다. 당시 통치 제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런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는 신앙인들의 지혜라고 생각 됩니다. 신앙을 지켜가는 그 세상 현실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게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과 타협하고 사는 것으로 오인하거나 정당화해선 안 됩니다. 세상은 우리가 사는 현장이면서 또한 우리가 이겨내야 할 ‘밥’입니다. 민수기에서 가나안 거주민에 비하여 이스라엘 백성 자신을 메뚜기와 같다면서도 그들을 정복해야 할 <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자유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본적 태도를 깔고 통치자인 왕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3.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인생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을 보십시오. 모두가 세상의 소위 출세 성공에 골몰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복 받았다는 것으로 부자가 되고 좋은 여건에서 권세와 명예를 누리는 것, 대 재벌이나 유명한 연예인 또는 이름난 선수 그들이 어마어마한 부와 명성을 가지는 것을 최상이라고 바랍니다. 이제 세상의 신이란 돈(맘몬, 돈신)처럼 보입니다. 그 돈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현대인의 적나라한 모습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자니까, 모르는 사이에 그런 생활과 사고방식으로 고정된 듯합니다. 교회 생활에서조차 하나님께 그런 부귀와 영화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마치 양다리를 걸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세상의 재물 신을 겸하여 섬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습니다. 대교회, 세계 제일의 교회라고 자랑하던 것이 이제 부끄러운 사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이 산상수훈의 말씀이 그대로 와 닿습니다. 그렇게 자랑하던 모습이 마치 <보물을 땅에 쌓아둔 대표 사례>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추한 모습으로 있겠습니까? 

 

  이제 다시 새 출발하는 자세로 가다듬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하시던 예수님께서 솔로몬의 영화가 그 꽃 하나만 못하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떳떳하게 솔로몬보다 더 좋은 삶을 산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삶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삶>이라고 힘주어 가르치십니다.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 이토록 보배롭다는 것입니다. 매일 그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고 살게 하십니다. 이토록 귀하고 보배로운 삶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듣습니다. 볼 눈이 있는 사람이 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그 고귀한 삶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보고 듣는 그 눈과 귀가 복이 있다!’고 밝히 알립니다. 그런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 세상을 하나님 뜻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돈을 섬기는 맘몬 우상을 깨뜨려 부숴야 합니다. 돈신의 노예에서, 이 세상 권세의 노예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매일 성령에 이끌리어 자랑스럽고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사람을 중히 여기고(잠 8:17) 성령 안에서 행실을 바르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살기 바랍니다.(벧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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