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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5-2) - "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 " / 이태영 목사

관리자 2019-07-12 (금) 14:47 1개월전 149  

본문) 슥 4:1~14, 고전 12:1~11, 눅 17:5~10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를 번역한 말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아포스톨로스는 매우 특별한 말입니다. 그냥 보내어진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명과 권한을 띠고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헬라시대에서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 자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보낸 자의 인격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제자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 ‘보냄을 받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6:13). 예수님께서 사도를 택하시고 이들을 통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특별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매우 중요하게 증언되고 있습니다.

 

사명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신들에게 믿음을 더해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 세워진 다음,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본문의 상황을 살펴보면 오늘의 본문 말씀은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17:1-2)형제가 죄를 범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17:3-4)는 가르침에 이어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은 그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은 작은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도 않으며, 형제의 죄를 용서할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말씀드린 것이 바로 그러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만일 이들의 믿음이 진실하고 정직했다면,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을 때 곧바로 회개를 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저희들은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작은 자들을 제대로 인도하기는커녕 저희 스스로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입니다. 또한 저희들은 저희 형제들을 용서하면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저주하고 증오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많은 말을 하기에 앞서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또는 주여, 저희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9:24)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이러한 자세는 마치 자신들에게 믿음의 기초는 그런대로 닦여져 있으니, 거기에 믿음의 건물을 세워달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본과 원칙은 갖추어져 있으니, 그 바탕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기본은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태신앙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믿음의 연조가 있는 성도들은 신앙의 기본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믿음의 기본은 갖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의 원리도 약간은 이해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도 많이 들어봤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매주 한 번씩은 사도신경을 외우고, ‘주기도문도 수차례 암송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용서도 알고, ‘은혜도 알고, ‘십자가도 알고, ‘부활도 압니다. 아주 잘 알지는 못해도 전혀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론이나 기본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간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의 기초에 뭔가 다른 믿음을 더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론이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에 믿음을 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오늘 우리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러한 자세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태도를 보인 제자들을 철저하게 부정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스스로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기본을 송두리째 부인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 대한 철저한 부정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로 세워졌지만 사명을 감당할 만한 믿음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익한 종에 대한 가르침”(17:7-10)도 본래 종에게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종이 자기의 공로를 따지기 시작한다면 그 종은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자기가 내세울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종의 기본적인 자세라는 말씀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의 출발점은 철저한 자기 부정입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과 자기 부인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철저하게 부인하고, 부인했다는 생각마저 부인할 때, 그때서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부인할 때, 하늘의 거룩한 것이 채워집니다. 목숨을 걸고 일을 했더라도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종을 주인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에게 소중한 임무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철저한 자기 부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만이 있을 뿐이지, 자기의 믿음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믿음에 하늘의 믿음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4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주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룹바벨은 유다의 총독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을 때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성전 재건을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1:12-15).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닦으시는 것이며, 그 위에 세워지는 성전 역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비록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스룹바벨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룹바벨의 힘이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룹바벨이 해야 하는 일은 오늘 누가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최선을 다해 부르심과 보내심에 순종하되, 하나님 앞에서 무익한 종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며, 믿음과 은사를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능력을 행하는 일, 예언하는 일, 영을 분별하는 일,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일, 방언을 통역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고전 12:8-11).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며,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각각 다르더라도 이 모든 역사를 이루어가지는 성령은 한 분이심(고전 12:3-6)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공덕이나 믿음으로 세워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닮은 모상(模像)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세워지고 채워집니다. 비록 우리 모든 성도들이 교회의 지체가 된다고는 하지만,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시지 않는 지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고 보냄을 받는 자에게는 끊임없는 자기 부인만 있을 뿐입니다. ‘자기의 믿음을 부인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뿐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더라도 우리가 마지막에 할 일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온전히 나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성령님께서 온전히 비워진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채워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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