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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후(2-2) - " 해방 희년의 도래 " / 정상시 목사 > 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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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 후(2-2) - " 해방 희년의 도래 " / 정상시 목사

관리자 2019-06-21 (금) 15:02 4년전 3141  

본문) 사 54:1-8, 롬 6:15-23, 눅 19:1-10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새 시대의 도래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눈 먼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하려 하심이라”(눅4:18-19) 은혜의 해, 즉 희년(禧年)은 땅도 그 경작을 쉬고 빚이 탕감되고 노예들이 해방되는 날입니다. 해방 은총의 기쁜 소식, 그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첫 복음 선포하셨던 갈릴리는 역사적 아픔의 땅이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의 역사서에서 ‘갈릴리의 반란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드다’와 ‘갈릴리 유다’는 갈릴리의 대표적 반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성경(행5:36-37)에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반란의 땅’ 갈릴리 사람은 죄인으로 낙인찍혔고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도 많았습니다. 우리도 분단 시대, 억울하게 정죄되고 낙인찍히고 희생된 이들 많았습니다. 해함과 상함의 눈물의 역사입니다.   

   오늘 민족화해주일입니다. 한국전쟁 69주년입니다. 그러나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에 발발한 것이 아니라 1945년 분단으로 내전이 시작되었고 1950년 국제전으로 확대된 전쟁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그런데 그 오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고 있습니다. 때(카이로스)가 찼습니다. 평화 통일의 희년을 선포할 때입니다. 문익환 목사는 ‘통일 다 되었어’ 선포했습니다. 희년의 예언이었습니다. 작년 남북 정상들의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도 희년 시대의 선언이었습니다. 본문, 이사야 54:1-8, 해방의 새 시대를 선포한 이사야(제2 이사야)의 희년선언입니다. 본문 롬 6:15-23, 율법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바울의 해방의 희년 이야기입니다. 눅19:1-10, 회개한 삭개오의 희년 이야기입니다. 민족화해주일, 분단의 담 너머 새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해방 은총 희년을 선포하고 희년노래를 부를 때입니다.   

 

해방, 새로운 시작

 

   바빌론 포로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이제 우리는 끝났다’고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민족 회복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비전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오늘 본문 사54장 이사야가 그 대표적 인물입니다. 이 이사야가 누구일까요? 바벨론 포로 이전, 활동했던 원 이사야와는 뚜렷이 구별되기에  흔히 제2 이사야라 불립니다. 시대 배경은 유대가 망한 후, 바벨론 포로기입니다. 원 이사야와 최소 150년의 시간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 2 이사야, 개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예언활동을 했던 익명의 예언자 집단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시대, 이사야의 꿈과 신앙을 계승한 ‘이사야 키드’ 희망 공동체였습니다. 이사야의 이름으로 예언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처한 역사적 현실은 참담한 포로시대였습니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은’(사54:1)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 갇히지 않았고 눌리지 않았습니다. ‘너머’를 보며 기쁨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 역사신앙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분단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저 멀리서 새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오시는 하나님 나라, 해방은총의 희년을 선취(先取)하여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되시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박해시대 매 맞고 사슬에 묶여 옥에 갇혔으나 해방 은총을 찬양했습니다(행16:25) 초대교회, 로마 박해 시대를 살면서 해방 은총의 희년을 살았습니다. ‘해방 희년 공동체’였습니다. 로마제국의 박해시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부활생명의 희년을 살았습니다. 

 

   본문 눅19:1-10, 여리고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세리는 로마제국의 식민지 수탈의 첨병으로 동족의 피를 빨아 로마에 바쳤던 ‘민족 반역자’였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 거듭난 이야기입니다. 로마 제국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리장이 되기까지 삭개오는 온갖 가렴주구(苛斂誅求)와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일삼았습니다. 출세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외롭고 공허하고 기쁨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봅니다. 회한이 밀려옵니다. 그 부모는 바르고 깨끗하게 살기를 바라며 ‘삭개오’(정결하다는 뜻)란 이름을 지었을 것이지만 그 이름값 못하고 살았습니다.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소문으로 듣던 예수라는 분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동구 밖으로 달려가 만나려 했으나 군중들에 막혀 뽕나무에 올라 예수를 바라봅니다. 그런 삭개오 모습,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 중심을 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1-10)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며 하나님도 이웃도 형제도 모르고 살았던 삭개오,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삭개오의 해방의 희년, 삭개오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해방은총의 감격시대

 

   ‘감격시대’라는 흘러간 옛 노래가 있습니다.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숨쉬는 거리다/미풍은 속삭인다 불타는 눈동자/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거리의 사랑아/

휘파람을 불며 가자 내일의 청춘아(중략)” 일제말기, 분단과 전쟁의 시대에 가장 많이 애창되었던 노래입니다. 암울한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은폐하는 노래로 욕도 얻어먹은 노래입니다. 하지만 국민 애창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암울한 시대를 살던 민초들은 그런 노래를 부르며 힘든 역사의 아리랑 고개를 넘었는지 모릅니다. 암울한 시대라고 암울한 노래만 부를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암울한 시대에 해방의 새 시대를 노래했습니다. 바울도 암울한 박해 시대, 해방 은총의 감격을 노래했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를 만나 감격하여 외쳤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삭개오의 감격시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분단과 전쟁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기 갇히거나 눌려 살지 말로 새롭게 살도록 불러내셨습니다. 교회는 ‘해방 평화 은총의 삶을 살도록 불러내어진 공동체입니다. 바울의 증언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그 때 로마의 무서운 박해시대였지만 바울은 은혜의 때요 구원과 해방의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 은혜가 보통 은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예수가 선포한 은혜의 해, 해방의 은총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그 역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역사 현실의 도피와 외면이 아니라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거기 갇히지 않는, 해방의 은총이었습니다. 교회는 역사를 외면하는 ‘도피 공동체’가 아니라 역사에 참여하되 거기 갇히지 않는 ‘너머 공동체’입니다.      

 

   민족화해주일, 먼저 교회가 재를 뒤 집어 쓰고 회개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민족의 화해를 만드는 교회로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분단을 치유하는 교회가 아니라 분단의 쌓고 분단체제의 하수인으로 살아왔지 않느냐 돌아보고 회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분단 시대, 상처로 신음하는 백성의 상처를 싸매주기는커녕 쉽게 낙인찍고 죄인으로 정죄하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역할을 해 온 과거를 회개햐 합니다. 바울은 회개한 바리새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새 시대가 왔는데도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율법의 종, ‘꼴통’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부활 예수를 만나고 회개하고  해방은총의 감격시대를 살았습니다. 그 감격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복음’을 훼손하고 태극기를 들고 태극기를 모독하고 십자가를 들고 십자가의 도를 훼손하는 시대입니다. 갈릴리 오셔서 해방은총의 희년을 선포하셨던 예수님, 이 분단의 갈릴리에 오셔서 해방 은총의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해방은총의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교회가 자기 정체성과 본질을 회복하는 은혜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랜 분단과 전쟁의 바벨론 포로 시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귀향을 준비할 때입니다. 여러분들 희년의 뿔 나팔 소리를 들을 귀 있는 자 되길 바랍니다.  해방의 희년이 오고 있습니다. 희년 공동체, 교회되길 바랍니다. ‘회개한 삭개오’, ‘회개한 바울’처럼 해방 희년, 감격 시대를 사는 성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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