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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성령강림후(9-1) - " 산 아래로 내려가라 " / 김거성 목사

관리자 2026-07-24 (금) 12:01 36분전 3  

본문) 1:1~8, 1:8~17, 8:1~13

 

1. 실마리

 

+ 주님의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후 아홉째 주일입니다.

 

2. 백부장의 종을 고치심

 

앞서 봉독한 오늘 마태복음서의 본문은 예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서와 함께 요한복음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인 마 8:5-13에는 백부장이 예수께 직접 나오고, 7:1-10에는 유대인 장로들과 친구들을 대신 보내고, 4:43-54에는 백부장의 종이 아니라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이야기로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만, 근본적으로 그 병에 걸린 당사자가 눈 앞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만으로 치유해 주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더욱이 마태복음서에는 이 본문이 5-7장의 산상수훈 바로 다음에, 또 누가복음서에는 6장의 평지설교 바로 다음에 나온다는 또다른 중요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즉 그곳에서 예수의 말씀을 들었던 무리들은 그 말씀에 흠뻑 취해 그곳이 마치 천국으로 화한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서 계속 머무르지 아니하시고 이른바 팔복산’(Mount of Beatitudes) 아래 약 2km 떨어진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산상에 계속 머무른 것이 아니라 내려가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이란 도시는 갈릴리 호수 북서쪽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갈릴리는 로마 황제가 직접 통치한 지역이 아니라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지역이었으므로, 이 백부장은 로마 정규군 장교라기보다 헤롯 안티파스의 군대나 지방 수비대에 속한 장교였을 것입니다. 즉 그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을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가버나움에 회당을 지어 줄 만큼 유대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에게서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우리에게 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라는 평판을 전하며 그의 종을 고쳐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축복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 듣는 자리에만 만족하며 머무르는 것은 주님을 통해 치유의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일입니다. 이미 장공 김재준 목사는 신앙이 생활로 연결되지 않는 신앙생활의 잘못에 문제를 제기하며 생활신앙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말씀 듣기에 만족하여 제 귀만 즐겁게 하고, 이웃들의 아픔과 힘든 모습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라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산상수훈 또는 평지설교 다음에 이어 이 백부장의 종을 고쳐준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예수께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라며 간청했던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 또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나오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의 평판도 그의 믿음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12절에 그러나 이 나라의 시민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는 말씀이 신앙인이라 자처하는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일이 없도록, 오히려 우리들이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과 삶의 자세를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3. 이사야의 경고

 

1:1에 따르면, 이사야는 주전 8세기 남 유다에서 활동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웃시야 시대의 유다는 솔로몬 왕국 분열 이후 보기드문 번영을 누렸습니다. 대하 26장에 보면 웃시야 왕은 군사·경제·농업·국방 분야에서 매우 유능했고, 주전 8세기는 남북 왕국 모두 상당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시기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코스피 8천 시대에 들어섰다이런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하 26:16을 보면 웃시야는 이렇게 강성해지자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6:1에는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때가 바로 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국가가 정상에 우뚝 선 것처럼 보일 때입니다. 웃시야의 아들 요담 왕은 바른 길을 걸었던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백성은 여전히 부패해 있었습니다.(대하 27:2) 왕 한 사람이 변했다고 사회 전체의 우상숭배와 부패, 불의, 착취 등이 저절로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는 형식만 남고, 지도자들은 뇌물을 주고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토지를 강탈하며, 재판을 왜곡했습니다. 더욱이 이 시대 유다는 앗시리아, 이집트 등 당시 강대국들 어느 한 쪽과 편먹기를 통해 외교적 방식으로 생존해 나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시작부터 하나님의 꾸짖음을 전합니다: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님을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따라서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요구를 선포합니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1:16-17)

가장 잘 나가는 것 같은 고점에 그 사회의 바탕을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말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깨우침을 이 말씀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 그 밑바닥,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사회의 작동원리 등을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이사야의 하나님의 말씀 대언이었습니다.

 

4. 바울의 로마 방문

 

로마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따라서 그 즈음에는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라 독립된 그리스도교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러 도시들에 교회가 조직되고 나름대로 힘이 생겼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도 바울의 영향력은 매우 컸습니다. 요즘에도 교회가 커지면 불공정한 방식으로 후계 자리를 세습하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지위나 지도력에 취해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5장을 보면 그는 서바나, 즉 스페인에 가는 길에 선교의 자금을 지원해 주기를, 또 예루살렘 성도 가운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보도 해 줄 것을 로마교회에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28장을 보면 그는 로마로 향했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거기에서 순교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이 로마서는 그의 유언과도 같은 편지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런 이른바 기둥 사도들을 넘어 가장 중요한 일인자였던 바울 자신이 당시에 신으로 모셔졌던 로마 황제에 맞서 죽기까지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담대한 마음을 가졌는지, 요즘 기득권에 심취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사도 바울의 최후 아니겠습니까?


5. 매듭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또한 이 사회의 현실을 반성해 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의 말씀 듣기에만 머무르고 사회에 나가 실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가? 또 조그만 기득권에 심취하여 봉사하고 헌신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또 이 사회가 잘 나간다고 넋을 빼앗긴채 사회의 작동원리나 사람들의 생각의 바탕을 점검하는 일은 무관심하고 또 게으른 것은 아닌가? 우리가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까닭들입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 사도 바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은 우리 모든 교우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손모아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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