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 5:1~14, 시 26:1~8, 약 5:13~20, 막 5:1~12
예수님께서 거라사, 이방인의 땅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난주에 만났던 바디매오는 자기를 감싸고 있던 옷, 자기를 제한하고 옥죄던 제 허물을 벗어던지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거라사 지방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삼켜버린 귀신을 만납니다.
귀신에게 삼킴을 당한 사람은 바디매오가 옷을 벗어 던지듯이 귀신을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사람을 삼켜버린 그 귀신의 정체를 드러나게 합니다.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 있습니다. 쇠사슬로도 묶어둘 수 없습니다. 밤낮 소리치며 자신의 몸을 해치고 있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형제나 이웃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제 삶도 제어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해침으로 더욱 깊이 고통으로 빠져듭니다.
사람이라면 자기의 일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자기결정권이 없습니다.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동은 이미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행동들은 자신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이롭게 하지 않습니다. 그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보호하거나 감싸줄 수 없으므로 안타깝고 두렵습니다.
귀신이 예수님께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ὁρκίζω)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할 때, 사용한 단어는 ‘맹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명령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귀신을 축출하는 축귀자들이 사용하던 것입니다. 귀신이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예수께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귀신이 예수님에게 “나를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애원하거나 부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지배하고 있는 영역에서 썩 물러가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귀신이 예수께 대하여 강력하게 맞서는 까닭은 예수께서 이미 귀신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그는 “나는 군대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무덤가에 살면서 자기를 해치는 그 사람을 삼킨 귀신은 자기를 군대귀신이라고 말합니다. 군대귀신은 유대를 점령하고 있는 로마군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의 동남쪽 지역으로 로마군단이 주둔해 있는 데가볼리스라고 부르는 지역에 속해 있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서기22~23년에 만들어진 비문에는 거라사에 제우스를 숭배하는 올림피우스 신전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귀신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에 지극히 높으신(ὑψιστους)은 이방적인 표현으로 제우스신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존재와 활동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군대는 점령지에서 떠나려 하지 않고, 점령당한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군인들을 몰아내고 싶어 합니다. 당시 로마제국에 점령당한 국가나 지역의 주민들에게 로마의 군대는 저 호숫가에 빠져서 없어졌으면 좋을 법한 대상입니다.
그러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는 귀신의 요청은 불결한 것들이 저희들끼리 뭉쳐서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지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로마의 황제처럼 부르면서, 영적인 권위는 여전히 자신이 쥔 채로, 자기의 영역에서 떠나라고 명령하는 귀신의 정체가 군대라는 것을 밝힙니다.
군대는 평화의 반대입니다. 군대를 이용해서 만들어 놓은 평화는 가짜평화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서기 약 400년 쯤경에 외쳐지던 로마제국의 구호를 2024년도 대한민국 정부에서 외칠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차마 부끄러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뱉을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태연스럽게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평화와 전쟁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르게 말해야 합니다.
같이 합시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실천하라.>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생명과 감사를 이웃들과 공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귀신의 놀음에는 담대하게 맞서야 합니다. 귀신이 떠나 돼지 떼에게 들어간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귀신과 얽혀 있던 관계를 끊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살이를 알려줍니다.
사람은 혼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께서 함께 계십니다. 주께서 언제나 곁에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고난당하거나 즐거운 시간에 주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찬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로 서로 연결되어 협력하며 성도들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사람이 인간됨을 잊은 채 신념과 이념과 관습에 휩쓸려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성령임재의 순간이고 하나님의 빛 안으로 들어가는 때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구원의 순간입니다.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고 온전하게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귀신이 쫓겨남과 동시에 그의 영혼이 치료되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 하듯이 영적인 고통을 받는 사람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는 일, 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협력하는 동안에 고통스럽고 아픈 영과 육은 치유되고 그 곳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평화가 넘쳐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위해 이방의 왕인 히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좋은 건축자재와 일꾼들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조건 교회 밖의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협력합니다. 그러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 협력할 일이지 평화를 깨뜨리거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협력하여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온갖 권력들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자기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비교적 힘이 약한 나라를 하나의 띠로 묶어서 그것을 이용해 제 세력을 강화시키려고 합니다. 2024년 대한민국에는 정부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친일매국세력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정부나 자위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우리나라 정부와 군대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매국적 행태를 자행하는 중입니다. 국가안보실 1차장 김태효라는 자가 방송에 나와서 ‘정부가 일본에 대해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질문에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망언을 서슴지도 않고 내뱉습니다. 일본이 허락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다는 말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내년 2025년이면 을사늑약이 있은 지 120년이 되는 해입니다. 회갑이 두 번째 돌아옵니다. 2025년에는 일본의 왕을 대한민국으로 초청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일제가 강점했던 것을 기념하여 시찰이라도 하라는 건지, 아니면 다시금 강제점령 할 권한을 주려고 하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국가의 근본적인 기반이 틀어질 가능성이 내다보이는 현실입니다.
무덤가에 사는 귀신을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다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힘을 얻는 귀신의 특성을 말해줍니다. 군대는 그 힘이 강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피를 요구합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시기로부터 이제껏 군대귀신에게 삼킴을 당한 채 지낸 우리나라입니다. 이미 오랜 시간 아파했고, 병들었다가 치료를 받았으나 일제강점기의 지배세력이라는 곪은 부분을 도려내는 일을 미뤄 온 결과 다시금 죽음의 세력에 먹히게 생겼습니다.
더럽고 탐욕스런 돼지가 우굴거리는 땅에서 군대 귀신들이 떼를 지어 삼켜버린 사람의 처지처럼 보이는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치유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계에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입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생명뿐입니다. 우리는 생명으로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놀라우신 생명 살림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이 민족과 교회와 성도들을 치료해 주시고 온전히 앉아 있게 하실 것을 믿읍시다.
<더러운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를 우리들도 한 마음으로 외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