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 64:1-9,엡1:3-14,막13:28-37
1) 맥추감사주일
한 해의 절반을 돌아서서 맞이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첫 열매를 거두고 농사를 잘 짓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중요한 날이었는데 도시산업사회를 살면서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있어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며 예배드려야 하겠습니다.
금년에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들이 있었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불신앙의 시대에 하나님을 등지고 교회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건재(健在)하여 오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고 정성을 다해 예배드립시다.
2)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사랑
서신서 말씀 에베소서 1장은 우리 장로교 교리의 핵심인 예정론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장로교 창시자인 칼빈은 이 말씀을 근거로 예정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자칫 오해하면 예정론을 운명론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바울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신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그리스도의 원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여러 곳에서 중언하는 전도자가 된 것을 생각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말고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어떤 노력에 의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 말고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선택(택하사)’, ‘뜻’, ‘예정’, ‘경륜’, ‘계획’ 등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내세웁니다.
사실 바울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도 이 말 말고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서 우리의 지적(知的) 능력으로 지금 이 믿음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이 오직 주권적 판단으로 나를 예수 믿게 하신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봐도 예수 믿기 이전에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말고 다른 무슨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예수 믿기 이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까? 아니면 철학적 탐구를 통해 진리를 꿰뚫을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가지셨습니까? 바울도 그렇고, 루터도 그렇고, 칼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는 전혀 몰랐는데 하나님만이 아시고 만세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그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6절에서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 구원해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12절에서도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14절에서도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명확합니다.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 신앙 요리문답 제1조는 “사람의 첫째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고 그 답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삶 전체를 바쳐 그 분을 영화롭게 하며, 여원토록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 찬송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
구약의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재건하며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탄원(歎願)의 기도입니다. 이사야 63장과 64장이 그런 탄원시 문학형식을 가진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지은 죄악을 고백합니다.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어려움은 죄의 결과라는 점을 5, 6, 7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토기장이가 흙으로 그릇을 빚는 것처럼 만들어 주셔서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셨음을 고백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것은 몇 곳이 안 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으신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나님의 손에 들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죄를 용서해 주셔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바울의 말로 하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죄를 지어 하나님을 욕되게 했고 이로 인해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죄에서 자신들을 향한 분노를 거두시고 자신들이 지은 죄악을 기억하지 말아달라는 간구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우리는 “다 주의 백성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면 감쪽같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감추인 것이 없고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사야는 그래도 그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백하며, 이제는 그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라고 간구합니다. 이는 용서해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도 다 아십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사야처럼 우리 죄악을 회개하고, 기억하지 말아주시라고 간청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복음서 말씀 마가복음 13장은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예루살렘 성전이 내려다보이는 감람산에서 말세와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성전 돌을 가리키며 “이 얼마나 대단합니까?”하고 질문 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온 것을 느끼시고 계셨기에 사람들의 눈에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 이 성전 돌들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시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일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들어 비유로 시대의 징조를 깨닫고 깨어 대비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할 말씀은 “그 날과 그 때”에 대한 말씀입니다. 32절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적으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신데 여기서 아들이신 자신도 모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르신다고 하신 것을 사람들이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이야기하며 이는 잘못된 일이고 그것은 사이비(似而非)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것의 결정권자임을 알고 미래에 대한 것은 하나님만 아신다는 겸손한 신앙의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5) 맺음
오늘 예정에 관한 말씀과 우리 죄악에 대한 심판과 구원의 탄원 그리고 그 날과 그 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며 “하나님만 아십니다”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내일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만 아십니다. 우리의 심판도 하나님만 아십니다. 역사의 종말도 하나님만 아십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종하며 예수님의 말씀처럼 깨어 있으며 주님 오실 것을 대비하며 상실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내일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흐트러지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곧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의 내일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