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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강림후(6-2) - " 코로나 앞에서 다시 새로워지는 교회 " / 김진수 목사

관리자 2022-07-15 (금) 10:08 2년전 1055  

본문) 암5:18-24/ 계2:8-11/ 막13:1-13  성령강림후여섯째주일


최근 감염성이 훨씬 강한 코로나 변종의 출현으로 온 나라가 다시 긴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제는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어디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 한국교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논의할 때입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유행하기도 전인, 1997년 미국의 종교사회학자인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가 쓴 “The Rise of Christianity”이란 책(한국어 번역본, “기독교의 발흥” 2016.4.8)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에서 기독교가 급성장하게 된 원인을 AD165년과 300년, 로마인구의 1/3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전염병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초대기독교의 부흥의 원인을 첫째, 역병의 원인과 극복의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온 로마를 휩쓴 역병은 이방종교나 철학이 설명하고 위로할 범위를 넘어서는 재앙이었지만, 당시의 교회는 왜 이런 끔찍한 위기에 봉착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설명할 수 있었고, 하나님 나라를 통한 미래의 소망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요, 둘째, 재앙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고 했습니다. 전염병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환자들을 내쫓았고, 가장 가까운 자부터 도망쳤으며,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버리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달랐다는 것이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버려진 사람들을 돌보고, 병자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갔으며, 기독교인 뿐 아니라 이교도들까지 차별 없이 그들이 질병을 이기고 일어서도록 도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 앞에서, 다시 처음으로!(암5:18-24)


오늘 코로나가 진행 중인 우리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다시 하나님께로! 다시 말씀으로! 창조질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셉 때, 애굽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애굽의 환대가운데 살 때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기를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조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핍박하자 그 고난 속에서 비로소 출애굽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큰 권능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아모스시대의 북왕국은 출애굽시대와 같은 “여호와의 날”의 도래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 때 이스라엘은 죄악과 불의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 앗수르의 발흥으로 그 주변나라들이 압박을 받으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은 국력을 강화했고 빼앗겼던 땅을 되찾아 넓혔습니다. 죄악과 불의에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곧 온 땅에 이스라엘의 번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마침내 “여호와의 날”이 이를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오히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될 것이며, 빛없는 어둠이요 사자는 피했으나 곰을 만나고, 환난을 피해 집에 들어가 벽에 손을 댔으나 뱀에게 물리는 날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8-20절) 지금 정치적, 경제적 번성 오히려 큰 재앙이요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번성함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대로 살고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는(24절)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천성 통증 무감각증’이란 병은 통증을 모르는 병입니다. 못에 찔리면 아프기 때문에 빨리 조치를 해서 그 고통을 주는 원인을 해소시킵니다. 그러나 ’선천성 통증 무감각증’에 걸린 사람은 못에 찔려도 통증을 모르니 못에 찔린 자리가 염증이 생기고 심각한 괘사가 일어나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심각한 병으로 전이되어 심각한 피해를 줍니다. 고통이 있어야 조심하고 삼가고 바르게 살고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한국교회는 지금 “코로나 이후시대”를 논할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영화를 회복할 일에 몰두할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사람이 많아지고 재정이 많아져서 교회 짓고 기도원 짓고 교회를 확장하는 일에 힘쓸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지금의 이 고통과 아픔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주님을 향한 첫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난은 알곡이 되는 과정입니다(계2:8-11)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의 날이 와야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과 권세가 나타납니다. 서머나 교회는 황제숭배를 거절함으로 로마로부터 큰 환난과 궁핍을 당했습니다.(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나 교회는 그 모든 환난을 이기고 그 고난 속에서도 충성하는 교회, 순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진실은 고난 속에서 드러납니다. 99.99% 순금은 수천도의 용광로에서 나옵니다. 그 용광로의 고통을 통과할 때 진짜 금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고난의 용광로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면 충성이 아닙니다. 어떤 손해도 고난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고난 속에서, 환난 속에서 순교의 죽음 앞에서 충성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강한 바람 앞에서 갈라지듯 고난의 바람 앞에 서야 고난을 이기는 자와, 배교하는 자가 나누어지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고 장벽을 뛰어넘는 자가 참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고난 속에서 충성하는 자가 되십시오! “죽도록 충성하라”(10절) 환난을 이기고 고난을 이기는 자가 그보다 더 무서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11절) 그리고 참 부요한 자가 될 것입니다.(9절) 고난의 바람을 통과할 때, 알곡이 되어 창고에 모아들입니다. 


진정한 능력은 고난을 당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기쁨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능력입니다.(10-11절) 진정한 힘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도 받는 힘입니다. 교회는 환난 중에 성장하고 역경 중에 성숙해집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속에서 경험한 사자의 입을 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단6:10)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그의 하나님께 감사(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나무는 ‘무릎 꿇는 나무“로 만듭니다. 로키 산맥 해발 3000m 높이에 수목 한계선이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서 있다고 합니다. 이 고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과 싸우며 생존을 위해 무서운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을 꿇는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고난을 이겨낸 나무라야 현이 울려 소리를 낼 때 강한 울림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모세도 쓰임받기 전에 광야 40년의 훈련을 받았고 다윗도 광야의 훈련을 받고난 다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쓰임 받았듯이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었던 사람들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당면한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오히려 참 믿음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 믿음이 되는 훈련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환난과 고난을 견디어 낸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중에 복음이 온 땅에 증거 되도록(막13:1-13)


주의 복음은 교회의 환난과 고난을 통해 크게 전파되고 확장됩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일어날 징조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말세의 징조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거짓그리스도의 출현과 미혹입니다.(막13:5-6) 둘째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난리와 전쟁입니다.(막13:7-8) 셋째는 지진과 기근의 창궐이며(막13:8) 넷째는 참되게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입니다.(막13:9-·13)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주는 일을 통해 이루어질 놀라운 일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9절)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10절) 교회의 고난과 환난을 통해 주의 복음이 더욱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신기합니다. 복음이 잘 증거 되기 위해서는 형통하고 모든 일이 잘되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보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때 보다 더 잘 증거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교회가 가장 복음증거가 왕성할 때는 형통할 때가 아니라 고난 중에 있을 때였습니다. 주 예수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 당하고 핍박받고 환난을 당할 때 교회는 놀라운 복음 전도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순교를 통해 복음은 더욱 크게 증거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교회에 오셔서 간증을 해주신 “이지선 교수”가 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죽음에서 살았다!” 는 기쁨보다는 “어떻게 이 고통을 견뎌내며 살까”라며 큰 고통을 안고 산분입니다. 수십 번을 수술하고도 여전히 이식 수술한 피부가 땅겨서 그 자리에 또 피부를 덧입히는 수술을 하고 양쪽 엄지를 제외한 여덟 손가락을 자르고 온 몸을 진동하는 통증과 싸우며 살았습니다. 손가락을 자르는 수술 날 이지선교수의 엄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답니다.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하지?” 그 날 이후로부터 이지선교수는 “이 때부터 하루 한 가지씩 감사할 것을 찾았다고 합니다. 내 힘으로 숟가락질 하는 날에 감사하고 환자복 단추 구멍 채울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계단 올라가서 감사하고, 습관처럼 그렇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고에 대해 “모든 것을 잃고 좌절한 순간도 있지만 돌아보니 많은 걸 얻었다. 사고 이전보다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서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그 전에는 내가 행복하려면 뭔가 더 가져야하고 부러워할 가정과 직장을 꾸려야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면서 그러나 “지금 이 얼굴이어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분이 강단에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받고 힘을 얻습니다. 이 분이 자신의 고난 속에서 그 아픔을 이겨낸 이야기를 하면 절망했던 수많을 사람들이 새 힘을 얻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말하면 “너는 건강하니 그렇지”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사람들이 힘을 얻고 절망한 사람들이 일어선답니다.


“기독교의 발흥”에서 로드니 스타크는 로마에 큰 재앙이 닥쳤을 때 기독교인들은 훌륭하게 대처했고 놀랍게도 그 결과 월등한 생존율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초대기독교의 엄청난 부흥의 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높은 생존율 때문에 이교도 중심의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기독교 주류 사회적 네트워크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것이 기독교 확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의학 전문가들은 약물을 전혀 쓰지 않고 성실한 간호만으로도 전염병의 사망률을 1/3 또는 그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기독교인들의 사랑의 간호를 받은 이교도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기독교도들에 대한 “애착 관계 증진”을 통해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코로나 시대는 교회의 위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총의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이 위기를 믿음으로 잘 견뎌내고 복된 기회로 삼으면 오히려 교회가 전혀 새로워지는 기회가 되고 이 세상의 소망이 되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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