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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부활절(1-2) - "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부활의 주 " / 부활주일 / 제주 4.3기념주일 / 김진수목사

관리자 2024-03-30 (토) 11:35 30일전 71  

본문) 출 14:15-31, 계 1:10-18, 눅 23:50-24:12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에는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가을에 땅에 떨어진 씨는 조용히 흙 속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그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의 싹을 틔웁니다. 우리는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다세포생물' 입니다. 이 세포들은 태어났다가 죽고 또 새로운 세포들이 생성되어 생명을 이어갑니다. 산다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포들은 생물체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세포가 어떻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느냐고요? 놀랍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폽토시스(Apoptosis)” 현상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세포가 노화에 이르거나, 몸에 더 이상 존재할 필요 없는 잉여세포가 되거나, 세포가 손상을 입거나 훼손당해 죽음에 이르게 될 때 세포는 스스로 자신을 죽여 다른 세포를 살리고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다른 세포의 양분이 되어주는 것이지요. 스스로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으면 암세포가 되어 다른 세포를 죽이고 온 몸을 죽이고 자신도 죽습니다. 그러나 세포가 때가되어 스스로 죽으면 다른 세포를 살리고 온 몸을 살립니다. 


죽어서 사는 하나님의 나라(출14:15-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폭력적인 힘으로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애굽이나, 우상을 숭배하고 물질의 풍요나 쾌락에 빠져 사는 가나안 땅에 있는 나라와 같은 또 하나의 나라를 만드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나라,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이웃을 살리고 섬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애굽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의 지리적인 이동이 구원이 아니듯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공간적인 이동이 믿는 이들의 구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새로운 백성, 전혀 새로운 존재,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재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타락한 백성을 새롭게 재창조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먼저 그의 백성을 억압하고 결박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사 바로의 노예로 살고 있는 그 백성을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바로의 권세보다 더 강한 권세로, 바로가 섬기고 있는 우상들을 심판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결박하고 있는 애굽과 바로로부터 그의 백성을 건져내셨습니다. 장자들이 죽는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장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 양을 대신 죽여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셔서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대신 감당하셔서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저주와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새 피조물로 만드시는 전부가 아니라 첫 과정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그 다음에 하신 일이 있습니다. 홍해 도강의 사건입니다. 홍해 도강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종으로 삼았던 세력들로부터 벗어난 후 그들을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게 하는 어둠의 장벽을 뚫고 정복하는 과정이요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은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게 하는 죄와 사망의 권세와 싸워 이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권세에서 건짐 받은 것으로는 안 됩니다. 마귀를 정복하고 싸워 이겨야합니다. 


하나님은 혼돈의 원시 바다에 침수되어있던 땅을 건져 올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살 수 있는 마른 땅, 육지를 만드셨습니다.(창1:2, 9-10) 혼돈의 물결은 항상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나타납니다. 출애굽사건이 하나님의 백성을 결박하고 억압하는 애굽의 권력에 대한 심판이라면 홍해 도강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의 길을 막는 저항세력인 죽음의 바다를 격파하고 정복한 사건입니다. 출애굽은 했지만 홍해를 건너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치적, 신체적, 정신적 해방과 자유가 곧 우리 구원의 성취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자유와 해방을 성취해야 합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혼돈세력, 저항세력인 죄와 사망의 권세와 싸워서 그것을 깨뜨리고 정복하는 일입니다. 어떻게요? 우리 앞에 놓인 홍해를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저 죽음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갈2:20)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홍해를 건널 수 없습니다. 우리 옛사람이 죽어야 홍해를 건너 갈 수 있고 우리 대적 애굽의 군대를 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완성은 부활입니다. 부활 없는 십자가는 미완성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부활의 예수(눅23:50-24:12)


부활은 의미나 상징이 아니라 이 역사가운데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의로운 사람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이 제공한 새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라 온 여자들은 향품을 준비하여 안식 후 첫날 아침 무덤을 찾아갔고 돌문이 열려진 것과 주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보았으며 천사들을 만나 예수께서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5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일이라 여인들조차도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에 이르러 보니 로마병사가 밤새워 파수보고 있음에도 몇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육중한 돌문이 옮겨져 있었고 철저히 인봉된 무덤 안에 둔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웬 일인가? 당황하며 제자들에게 알렸고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는 즉시 달려가 직접 무덤 안을 들여다보고 주님이 입으셨던 세마포만 놓여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죽은 예수, 과거의 예수, 역사적 예수만 찾고 있어요!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는데, 무덤문은 열리고 무덤은 텅 비었으며 수의만 보이는데도 여인들도,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찾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시신만 찾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이 곁에 있는데도 삼일 전에 십자가에 죽은 과거 예수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은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도행전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예수, 사도들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바울행전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파도 속에서 살아남게 하시고, 우리가 결박된 감옥 문을 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모든 장벽을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바울서신을 보십시오! 과거 역사적인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 항상 그의 삶 가운데 나타나셨던 예수, 고난의 현장에서 함께 하신 예수, 지금 내 곁에 살아계신 예수를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변화시켰고, 그에게 친히 이방선교의 사명을 주셨으며 감옥 문이 열리게 하셨고 풍랑에서도 건져주셨으며 수많은 위기 가운데에서도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고난의 교회와 함께 하시는 온 땅의 통치자 예수(계1:10-18)


부활의 주님은 승천하사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입니다. 계4장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이미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이미 계획되고 결정된 대로 이 땅에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주십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통치의 보좌가 있고 이 땅의 모든 존재들을 대표하는 네 생물들인 사자(맹수), 송아지(가축), 사람(인류), 독수리(날짐승)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계4:6-9). 또한 그 보좌 앞에 24장로(신, 구약의 모든 성도들의 대표)들이 엎드려 경배하고 찬양합니다(계4:10-11). 부활의 주님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은, 하나님이 그의 모든 창조와 구원의 계획을 십자가로 성취하신 아들 예수께 이 역사의 마지막에 이루어 질 온 우주의 통치권을 위임하셨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래서 계5장은 앞으로 이루어질 모든 일(인봉된 두루마리)의 성취자(인봉 떼는 자)가 어린양 예수이심을 증거 합니다(계5:5절).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유입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 계1:9-20절 말씀은 로마에 의해 고난과 핍박 중에 있는 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곱 촛대로 상징되는 교회는 이 어둠의 세상에 진리와 생명의 빛을 비추는 금 촛대처럼 매우 존귀한 존재지만 또한 얼마나 불안정한지 바람 한 번 불면 꺼지는 촛불(등잔)이 아닙니까? 그런데 부활하셔서 온 땅의 통치자로요 왕으로 계신 예수께서 바람 앞에 선 위기의 촛대 사이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오른 손에는 로마의 핍박 앞에선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꼭 붙들고 계십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주님이셨고 이미 하늘에 오르사 보좌에 앉으신 온 땅의 통치자 예수, 왕이신 예수이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 온 땅의 통치자(13절, 발에 끌리는 옷, 금띠)로 교회와 함께 계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모든 죄를 감찰하시는 재판장(14절, 흰 머리털, 불꽃같은 눈)이시며, 부활의 주님은 엄위로우신 심판의 주(14절, 주석 같은 발, 물 같은 소리)이십니다. 핍박과 환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활의 주님은 주의 사자들의 보호자(16절,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죄를 드러내시고 악을 갈라내시는 분(16절), 해같이 빛나는 영광스러우신 분(16절)이십니다. 바로 그 분이 지금 고난 중에 있는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통치하십니다. 그는 죽으셨지만 부활하사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이시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지금 이 땅에서 고난 받는 교회와 함께 계십니다. 


금년 부활주일은 제주 4.3 기념주일입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아직도 미해결의 사건 중의 하나가 제주 4.3 사건입니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남로당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몰려 1만 4천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4.3사건의 민간인 사망자들의 가족들은 좌우 이념갈등의 희생자가 되어 침묵 속에 살다 비로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정부차원의 사과와 피해자보상이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전 국민적 참회와 위로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와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추모식에 참여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로도 일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장차 예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 질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그 서막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이야 말로, 주의 피로 구원받은 백성들, 핍박과 환난 중에 있던 의인들도 죽음에서 일어나 주님처럼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불의한 자들도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이르기까지 교회는 억울한 한을 품고 고난과 핍박 중에 있는 이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로마의 핍박가운데 있던 일곱 교회(촛대) 사이에 함께 계시며 일곱 사자들을 오른 손에 붙들고 계셨던 것처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현재하는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들도 지금 절망과 고난 중에 있는 이들과 함께, 그 곁에 서서, 그들의 위로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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