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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사순절(6-2) - " 그대의 길 그리고 나의 길 " / 종려주일 / 전완기 목사

관리자 2024-03-23 (토) 09:57 1개월전 67  

본문) 11:1~10, 삼하 6:12~19, 12:18~24

 

오늘은 사순절 여섯째주일로 종려주일입니다. 복음서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오신다고 하여 매우 요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치며 기뻐하고 환호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지난주 본문 말씀 기억하십니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누구든지 그가 있는 곳을 알거든 알려 달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던 것을 말입니다.(11:57) 이 사실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유대 사람들 가운데로 더 이상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거기를 떠나, 광야에서 가까운 지방 고을로 가셔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몸을 피하신 것입니다. 잡으려는 자들이 두려워서 몸을 피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때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바로 유월절 때가 오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이제 유월절이 가까워 오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기 자신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실 때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제자들에게만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셨고 보여주셨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대신 자기 목숨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 예수님 역시 당신이 선택한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일까요?

 

복음서(마가복음 11:1-10)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입성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제자들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예수님께서는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올 것을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마귀 주인의 항의 받을 것을 생각 못 한 바가 아니었으나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나귀를 선 듯 내준 나귀 주인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제자들 보다 더 합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풀어 끌고 가려할 때에 나귀 주인은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을 듣고 서슴없이 나귀를 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미리 의논하거나 서로 기별을 주고받은 것도 아닐 텐데 마치 잘 쓰여 진 극본처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인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할 내용까지 알려 주셨습니다. (3)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새끼 나귀를 풀어 왔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뜻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하면서도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할 때에 우리가 가진 것을 서슴없이 내드리고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 , 지능,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영광스럽게 사용된 새끼 나귀 한 마리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 앞에 끌려 나온 새끼 나귀는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부러움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은 나귀와 같은 믿음의 삶이되기를 우리는 늘 기도하고 원하고 있습니다. 나귀 자체는 큰 가치가 없지만 주님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나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것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과 그리스도를 위해 영광스럽게 쓰임 받는 일일 것입니다.

 

구 약(사무엘하 6:12-19)

다윗은 왕으로서 감독자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감독과 확인을 잘하였더라면 비극적 사고를 당하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법궤는 거룩하기에 사람의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제사장들이 조각목으로 만든 막대기를 법궤 이동용 고리에 끼워서 옮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법을 몰라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가다가 수레가 흔들려 법궤가 떨어질까봐 법궤를 손으로 붙잡은 웃사가 불경죄로 인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마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저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을 교훈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근처에 있던 가드사람 레위인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를 보관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잃었던 법궤를 되찾아 예루살렘에 안치하는 다윗은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른 후 여호와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일을 추진했습니다. 처음에는 율법대로 이동하지 않았으므로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하나님의 율법대로 법궤를 옮김으로 다윗성으로 오는 것이 성공하였습니다. 이때 다윗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기뻐하였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장막에 안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화목제는 재물을 드리고 난 후 그것을 나눠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기 모인 사람들과 함께 감사하며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서신서(히브리서 12:18-24)

히브리서는 더 좋은이라는 비교급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옛 언약을 어떻게 성취하고 더 좋은 소망이 되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셨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이 신약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처음부터 삼위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는 방법임을 설명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선택한 성도들의 삶으로 이야기 하며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셨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어렵고 인내하기가 힘든 때일수록 하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과 그리스도인 앞에 열려 있는 영광의 종류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즉 하늘의 예루살렘과 새로 만들어진 세계가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즐거운 축제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인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자기 할 바를 다한 의인이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위하여 자신의 피로써 대가를 지불하셨던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도성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자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은 다윗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지금의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람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이 됩니다. 사람들이 변한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고 기대했던 모습의 구원자와 다르기 때문에 실망하였고 그 실망감과 배신감이 결국 예수님을 향하여 기뻐하고 환호하던 모습에서 결국 예수님을 저주하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고 고통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그리고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순종하며 걸어가 신겁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영혼을 맡아 감독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마다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상급을,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자는 합당한 화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할 자리에서 자기의 위신이나 체면을 생각하고 망설인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정말 믿고 의지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부입니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의 전부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어떤 일과 사건, 이해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 뜻과 계획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진 모습으로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오늘도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시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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