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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5-1) - " 예수 수난의 의미 " / 김거성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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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해] 사순절(5-1) - " 예수 수난의 의미 " / 김거성 목사

관리자 2024-03-15 (금) 11:37 9개월전 433  

(레 16:1-10,20-22; 히 9:11-15; 요 11:47-57)


 


1. 실마리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 그리고 고난주간이 이어집니다. 이 절기를 지내면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수난당하신 뜻을 생각해 봅니다.


 


2. 구약성서의 의미


 


흔히 성서를 인용하면서 그 맥락은 무시하고 특정한 구절만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경우를 접하게 됩니다. 구약과 신약이 둘 다 정경(canon)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그 둘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성서인 타낙(TaNaKh)과 기독교의 구약성서는 내용구분 등 부분적인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구약을 신약,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모든 내용을 축자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레 20:10, 신 22:22 등에 보면 간음하는 자는 그 남자와 여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나선 이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셨고, 결국 양심에 가책을 느낀 그들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간통한 남녀를 함께 사형에 처하라는 구약의 요구를 따르고 있습니까?


또 레위기 11장 정결법전에 등장하는 돼지는 어떻습니까? 그리스 셀류커스 왕조 때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1) 는 예루살렘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돼지고기를 먹을 것이며, 사내아이들의 할례를 금지하고, 안식일 준수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하시딤 사람들이 그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마카비 전쟁이었습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지금도 돼지를 부정한 것으로 철저히 거부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가운데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비건으로 엄격한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관점입니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안식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금 대부분의 교회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을 주일이라는 이름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소개한 주제들은 몇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3. 더 이상 제물 없는 예배


 


요한복음서 11장 본문에서 ‘유월절’(Passover)이란 언급이 나옵니다. 출 12장에는 첫 번째 유월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이나 염소를 유월절 제물로 삼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上引枋), 즉 문의 바닥 부분을 제외한 위쪽과 양 옆쪽에 그 피를 바르라고 요구합니다.


오늘 구약 본문인 레위기 16장에도 속죄와 관련한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숫염소나 숫양, 수소를 속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숫염소를 끌고와 그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워 빈 들로 내보냅니다. 바로 여기서 ‘희생양’(scapegoat)이라고 하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왜 이런 속죄 제물 규정도 따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더욱이 양이나 염소, 비둘기 등 왜 제물을 바치지 않느냐며 문제삼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근본적으로 성서를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읽고 있는 까닭입니다.


히 9:12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once for all)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예수께서 바로 스스로 속죄제물이 되셨다는 것이 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4. 알렉산더 대왕2) , 힘의 상징


 


고대 지중해 연안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당시 서아시아 , 중앙아시아 , 남아시아 일부 및 이집트 전역에서 긴 군사 작전을 펼치며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성공적인 군 사령관으로 기억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에서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대왕(the Great)이라는 칭호를 붙였습니다. 바로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3세입니다. 이집트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힘의 상징입니다. 그는 힘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여 제압했습니다. 승리하고 보복했습니다. 힘으로 지배했습니다. 알렉산더에게 당신이 죽으면 다음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 물었을 때, 그는 ‘가장 강한 자’라고 답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또 전세계 사관학교에서는 지금까지도 그의 전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힘으로 지배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의 사촌 아민타스(Amyntas)3) 까지도 직접 처형했다고 합니다. 또 전투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부하조차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5. 예수, 희생의 상징


 


마 26장에 보면 대제사장의 종들이 칼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가룟 유다를 앞세워 예수를 체포하러 몰려온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제자 한 사람이 저항하며 칼을 휘둘러 종 한 사람의 귀를 잘랐는데, 예수께서는 이를 칭찬하시기는커녕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 26:5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는 다른 생명들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감과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이웃들이었습니다. 자신을 십자가 형틀에 매단 그들을 보시고,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성서는 구약시대의 희생양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요 1:29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향해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 바탕은 사 53장에 나오는 고난받는 종의 노래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단 한 번’의 수난이었습니다. 이를 잘못 해석하면 십자가는 예수가 지고,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영광만 누리면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으로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 힘의 통치의 종언(終焉)


 


십자가형은 당시 로마 세계에서 피압박 민족들에 대한 정치범 처형수단으로 쓰였습니다. 그런 십자가형은 바로 우리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직접 살해하는 것은 아니라도 자신의 힘을 앞세워 경쟁세력을 정치적으로 압살하려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정치군인들은 군대라는 힘을 앞세워 권력을 찬탈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참히 총칼로 짓밟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검찰 등 사정기관의 압수 수색, 기소 등과 온갖 매체를 앞세운 선전과 선동으로 모든 사안을 힘으로 밀어붙이고자 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힘으로 제압하려 합니다. 의대 증원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화와 타협, 조율이란 없습니다.


수백만의 무고한 생명을 가스실로 보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히틀러도 결국 패망했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정적 조봉암을 처형했던 이승만도 끝났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사법살인을 자행하고 삼선개헌으로 체육관 선거에 종신 대통령을 꿈꾸었을 박정희도 영원한 권력을 누릴 것 같았지만 그 힘의 통치는 영원무궁하지 못했고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습니까?  


알렉산더는 주전 323년 포도주를 마시고 11일 후에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의 시신은 금으로 부조하고 꿀로 채운 석관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독살설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알렉산더 대왕도 죽음을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7. 십자가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예수는 철저하게 달랐습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처럼 30대 초반에, 그리고 죽음 직전에 포도주를 맛본 것은 알렉산더 대왕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생명을 살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내어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과제는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이웃에 대한 철저한 공감을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누르고 미래의 이웃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해 주신 자연을 돌보는 일입니다.


오는 4월 총선도 이러한 관점에서 신앙인들이 바르게 선택해야 합니다. 힘은 끝이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영원합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붇들겠네.“(찬송가 150장)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백을 마음에 담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  https://g.co/kgs/hEdKkXB.


2)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the_Great.


3)  https://en.wikipedia.org/wiki/Amyntas_IV_of_Mace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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