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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해] 사순절(6-2) - " 그의 뒤를 따르는 세상 " / 종려주일 / 씨뿌림주일 / 이혜숙 목사

관리자 2022-04-08 (금) 17:38 2년전 325  

본문) 9:9~12, 2:1~11, 12:12~19

 

언제부턴가 꽃망울이 부풀어 올라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 앞길 가로수로 심긴 벚꽃은 혹시, 혹시 하는 마음으로 눈길을 빼앗습니다.

농부들은 농사 계획을 세우고, 밭을 고르고, 씨앗을 셈하고 이른 씨앗은 벌써 땅 속에 묻혔습니다. 기다림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다가 뾰족한 싹이 땅 속에서 올라오면 환희입니다. 오래된 고목을 보면서 어디에서 이렇게 작고 여린 새싹과 꽃이 숨겨져 있었는지 참 신기합니다. 사람이 한 해 한 해 지나가면서 50, 60, 때로는 100년을 살다 보면 새로운 것을 내기는커녕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나무는 늘 같은 꽃과 잎을 내는지 신비롭습니다.

겨울을 지내고 봄이 오는 계절에 교회는 사순절을 지내고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며 기념합니다. 추운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펼쳐놓으시는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의 신앙도 새롭게 부활하도록 하는 전령이 됩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가시는 길 곁에 종려가지를 손에 든 사람들이 소리칩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 짧은 환호의 말 속에 사람들의 소망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12:18)

사람들은 특별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신다는 길거리로 달려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보았다고 하는 표적은 나사로를 살리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 예수가 오신다는 데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런 분이시라면 그동안 기다리던 메시야, 우리 왕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로마에서 당하는 착취와 제사장들에게 받는 억압은 유대에 살던 시민들로부터 희망을 제거하였습니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삭제해 버린다면 뭐가 남을까요?

사람에게서 희망이나 사랑이 사라지면 남는 건 어둠입니다.

육체는 살아 있으나 그들의 영혼은 낡고 해져서 무덤처럼 짙은 암흑입니다.

그러다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분이 계시다는 증언과 소문은, 한 줄기 빛으로, 다시 소망을 품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설레게 합니다.

그 빛을 따라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꿈틀거리며 다시 살아나려 합니다. 그래서 노래합니다. ‘호산나! ! 찬양받으소서.’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가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고대 근동에 살던 농부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켜내는 것을 매우 가치 있게 여겼다고 합니다.

헨리 아이라우트라는 신부가 중동의 농부에 관해 연구한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농부들은 그들의 주인을 바꾸고, 종교를 바꾸고, 언어와 농작물을 바꾸었지만 자신들의 생활양식은 바꾸지 않았다. …… 그들에게는 혁명도 없고 진화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믿음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변할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씀의 의미는 다르게 와 닿습니다. 성경을 여러 차례 읽으면 읽을 때마다 똑같은 성경 구절이라도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경험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하나님 나라의 경험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면 안 된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깨닫고 변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는 것도,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서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양 받으소서라고 외쳐도 가만 듣고 계십니다. 그뿐입니까?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리쳐도 예수께서 그들을 만류하지도 않으십니다. 지난 번 갈릴리에서 오병이어의 잔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할 때는 도망치듯 혼자 떠나셨지만(6:15) 오늘은 다릅니다.

제자들 중 몇은, 아니 어쩌면 모두가 오늘과 같은 광경을 기대하며 예수님과 함께 지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다 오늘 일어나는 일을 보니 흐뭇합니다. 이제 원하는 바가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알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몰랐습니다.

땀이 피같이 변할 만큼 간절히 기도하실 것을 몰랐고, 가룟 유다가 입을 맞추는 것으로 선생님을 잡아가도록 넘겨줄 것도 몰랐고, 예수께서 이리저리 법정을 돌아다니며 수치를 당하고 멸시를 당할 줄도 몰랐고,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것도 몰랐습니다.

영광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선생님 곁에 있으면, 내 기대, 내 소망, 내 믿음이 실현될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영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일입니까? 귀하게 여겨지고, 좋은 것을 가지게 되고, 높게 바라보여서 보통 사람은 감히 접근하기 어렵게 생각되는 자리에 서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셨다고 하는 것은 버림받고, 채찍 맞고, 죽임당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영광은 예수께서 맞이하는 영광과 전혀 달랐습니다.

 

자신 앞에 놓여있는 고난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그 예수님께 사람들은 환호하고, 제자들은 내심 뿌듯하고 그 뒤편에 서 있던 바리새인들은 서로 말합니다.

우리 하는 일이 쓸데없다. 세상은 온통 저 예수라는 자를 따라간다.”라고 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예수는 다른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낸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의 표적을 보았기 때문에 열광하면서 예수에 관해 큰 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다는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권위가 실추될 수 있다는 것에 당황해하며 예수를 경계하고 배척합니다.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가까이 있었으나 선생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합니다. 메시야에 대한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립군 메시야를 기다리던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걸으면서 높은 관직 한 자리 차지하고 출세를 할 수 있을까?’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과 충분히 하나 된 존재로 뒤뚱뒤뚱 어린 나귀를 타고 하나님의 시간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예수께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예수님께 환호성을 보내던 사람이나 바리새인이나 제자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예측을 벗어납니다.

 

살던 그 모습 그대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소망을 품은 사람은 그 삶의 모든 것이 바뀝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것을 찾아갈 때에 예수님은 어둡고 비루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 화려한 곳,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갈 때에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비워내는 일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종의 자리로 가셔서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과 하나가 되어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통해서 소망의 빛을 보게 되었고, 소망의 빛을 본 사람들은 예수를 따릅니다. 환호성은 잦아들고, 당황스러움도 염려도 욕망도 힘을 잃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행위는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음의 자리로 내려가고 순종하였던 예수의 삶을 내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나 신앙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는 바리새인들이 말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이 아무 소용이 없어졌소. 보시오. 세상이 그를 뒤따라갔습니다.”

 

우리 곁에는 여전히 가난과 폭력과 착취와 혐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픔이라고 감히 표현하지도 못할 고통으로 가족을 잃고, 자녀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었던 사람들이 아직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따라 나선 이들의 삶은 그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과 함께 고통 받으며 그들과 함께 새로운 빛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생명으로 만납니다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도 예수님의 그 뒤를 따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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