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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5-2) - " 죽으며 사는 인생 " / 제주 4.3기념주일 / 홍철화 목사 >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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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사순절(5-2) - " 죽으며 사는 인생 " / 제주 4.3기념주일 / 홍철화 목사

관리자 2020-03-26 (목) 11:52 4년전 1319  

본문) 겔 18:1-4,21-32 갈 2:15-21, 눅 23:39-43

 

  이 원고 부탁받은 것은, 코로나 19 사태로 온 나라가 깊은 시름에 빠진 날 밤이다. 어쩐 일인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깨었다. 은퇴 후 10 여년이 지난 시니어가 이상한 꿈을 꾼 것이다. 전에 없던 일로 내가 완전히 죽는 꿈을 꾼 것이다. 너무 황당하여 깨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지금 사는 형편은 꿈이 생시 같고, 현실이 꿈같은 그런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새벽에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바로 내 핸드폰으로 말씀목회연구원에서 보내준 성서일과를 읽어보았다. 아뿔사! 그 본문에 죽어서 사는 인생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꿈땜이 어떻게 이렇게 맞을 수 있을지 감탄하며 이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다. 수년 전부터 새벽 산책 때 죽음을 명상하는 때가 있다. 이것은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죽으며 산다”는 제 4일 문고 책제목에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 문익환 목사는 그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죽음을 산다>는 단행본을 냈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다가 가신 목자이며 사상가 애국지사 시인이기도 하다. 

 

  내가 죽음을 명상한다는 것이란 아주 평범하다. 어느 누구나 살다가 가는 것이기에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삶이 뭘까? 그 무슨 시원한 답 이전에 삶이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생과 사가 다른 것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 같다고 하겠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니까. 나의 생을 한 번 숨 쉬는 것과 같다고 느끼며 심호흡을 한다. 들이쉴 때 생生! 내쉴 때 사死! 이렇게 한 번 호흡할 때 생과 사가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뿐일까. 매일 체험하는 하루의 일상에서 바쁘게 지내다가 그 날 잠에 든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깬다. 이 엄연한 하루가 생과 사, 나의 삶과 부활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산책에서 이 명상은 죽음을 산다. 죽어야 산다. 죽으며 산다. 죽으면 산다.... 이렇게 이어지기도 한다. 죽고 사는 인생! 죽어야 사는 인생! 모순 같지만 엄연한 진리이다.

 

  복음서를 보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강도 두 사람이 함께 오른 편과 왼편에 있었다.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가 예수를 비방하면서 ‘당신이 그리스도 아니요? 당신과 우리를 이 절박한 시간에 구원하시오!’라고 외친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 그 행악 자를 꾸짖으면서 ‘네가 네 죄에 따른 형벌을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이에 당연한데,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한 후, 예수님께 애원하며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시기를 지내고 있다. 매년 순탄하게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으나, 금년에는 한 달 내내 교회에서 공동으로 예배드리지 못하고 각 가정에서 특별한 형식으로 예배드리게 되었다. 각 교회가 마련한 방법으로 영상이나 다른 온라인 형식의 예배를 참으로 전에 경험하지 않은 식으로 지내고 있다. 이런 비상시국에서 빨리 코로나 19 사태가 지나가기를 소망한다. 불편이 따르고 어떤 분들은 납득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런 어려운 때에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지혜를 다하여 다시 전과 같이 좋은 날이 오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배는 딱히 하나의 고정된 형식만 있지 않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을 다한 예배로 드릴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라고 하였다. 

 

 

 

  사순절 시기에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되새기고 <고난>의 값진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겠다 다짐하며 주님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복음서 본문 그 십자가 장면은 죽음의 순간 다시 새 삶을 얻은 한사람의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힘주어 ‘인간은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산다는 것이 예수의 길이었다. 모든 산자는 죽는다는 이것이 자연의 질서인데 “죽어서 산다. 죽어야 산다” 라는 이 말이 우리가 설 자리가 아니겠는가?’(문고 책 50 페이지)라고 했다.

 

  구약을 보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시작하여 잘 아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라는 속담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각자의 책임을 강조한다. 누구나 남의 죄 값이 아닌 자신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영혼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 똑 같이 나의 것이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표준 새번역 겔 18:4) 남을 탓하거나 핑계하지 말고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다 알 듯이 여권은 야당을 탓하고, 야권은 여당과 집권당을 탓한다. 정치권이야 자신들이 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보다 남을 헐뜯고 탓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팽팽하게 여권과 야권이 서로 대결하는 모양을 보며 국민들은 한숨짓고 있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후진이라 탄식하기 전에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자각이 시급한 것이다. 국민의 수준이 곧 그 나라 정치의 수준 아니겠는가?

 

  한국교회가 이 난국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돌이켜야 한다. 에스겔서 본문 18:21-23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떠나 돌이켜서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법과 의를 실천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은 모든 죄악을 내가 다시는 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내가 참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참으로 시의 적절한 말씀이다. 이 귀한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 상황이 얼마나 뿌끄러운가를 알아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니 통탄스럽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보다 강대국을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냥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이 세상과 권력과 돈을 믿고 물량주의 세속주의에 빠져 죄가 죄인 줄조차 모르는 지경에 처해 있다. 지금 한국교회가 얼마나 자만에 빠져 있고 세속에 젖어 있는지 가슴 아프다. 이런 한국교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그렇게 하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너희를 넘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18:30-32

 

  요한 계시록에서 교회를 책망하는 말씀‘너희가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을 죽은 자다’라고 하신 것이 지금 한국교회에 주시는 것 같다. 그러니 빨리 거기서 돌이켜야 한다. 황금만능주의를 성공의 척도로 알고, 물량주의를 자랑으로 여기는 그 우상에서 떠나지 않으면 그냥 죽고 말 것이다. 이제 죽어야 사는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 뼈를 깎는 회개로 돌이켜야 한다. 지금 사는 이 방법과 지금 가는 이 방향에서 돌이키자. 예언자 에스겔의 외침대로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는 이 말씀을 따라야 산다. 

 

 

 

 

  서신서를 보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를 믿고 그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예수의 그 믿음으로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강조는, 바울 당시에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과 충돌되었다. 율법을 행하므로 의롭게 된다는 것에 반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삶은 의로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해야 한다는 것이다.(5:6)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아라비아로 가서 철저한 수행을 하였다.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대인과의 마찰과 갈등을 경험하고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는 데 목숨을 걸었다. 그가 당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 이것이 그의 부활신앙 고백이다. 

 

  바울의 신앙이 압축된 표현으로 본문 2:19-21을 주목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우리가 이 바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믿음이 바울의 믿음이 되었듯이, 우리 역시 그 예수의 믿음으로 살자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은 그 십자가를 향해 가는 고난의 과정이었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운명하셨다. 고난 없이 영광 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이 없다. 이 확실한 진리를 바울 사도가 고백한 그것이 <죽어서 사는 참 삶>이라 하겠다.

 

  부활 절기를 앞두고 사순절 시기를 지키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다. 비록 코로나 19 재난으로 한 달 내내 집에서 답답하게 지내고 있으나,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 혹한을 견뎌내고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어내는 것을 보고 그냥 넘길 수 없다. 경제적 타격을 심각하게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용직이나 비정규 하청 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고충은 상상할 수 없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격려하고 견뎌내야 한다. 

 

  죽어서 사는 진리가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므로, 이 세상을 이겨야 한다. 이 사순절 시기에 코로나 19 고통을 견뎌내고 승리할 것을 믿는 축복의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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