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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해] 사순절(1-1) - " 예수 그리스도가 답입니다. " / 송종근 목사

관리자 2026-02-19 (목) 11:26 6일전 53  

본문) 3:55~66, 7:14~25, 13:16~30

 

얼마전 불법 계엄과 내란 주요임무 종사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공통적인 의견은 그 모든 혼란과 어려움을 국민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로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극복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이 더 부각되는 이유는 최근 소위 민주주의 보루라고, 기독교 국가의 대명사라고 알려졌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국가 주도의 여러 가지 정책 때문입니다. 불법이민자 단속이라는 미명 하에 공공연한 차별과 혐오, 살인이 자행되는 오늘날 미국의 현실은, 우리가 알고 있던 나라, 미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내세웠던 정의, 평화의 본질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이익뿐이라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그 중심에 소위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들이 작금의 미국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비성서적이고, 몰신앙적인 모습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도 그들과 협력하며, 미국을 일방적으로 신봉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 중 대다수가 신앙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미국을 하나님처럼 신봉하고, 신뢰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살피게 될 말씀은 왜 오늘날 기독교 국가의 대명사 미국이 엉뚱한 행보를 걷고 있는지, 왜 기독교가 주류인 미국에서 비상식적이고, 비성서적인 일들이 자행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귀한 대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신앙으로 무장하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먼저 살필 말씀은 서신서의 말씀, 로마서 7:14~25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를 가르치면서, 성도는 구원도 중요하지만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도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말씀은 성화의 과정에 있는 성도의 내적 상태와 율법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는 지적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갈등과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자 하나 현실적으로는 육신의 법, 죄의 법에 사로잡혀 죄의 길을 걷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뿐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바울은 분명히 지적합니다. 곧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죄의 법은 구원 여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인간을 공격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근원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와 성령의 법 뿐이라는 점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지적하면서, 이를 위해 성도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닮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마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산 에덴에서 선악과를 두고 갈등하고 번민했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선악과를 두고 갈등했던 아담처럼 이 시대 모든 성도들도 매 순간 생명의 법과 죄의 법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탄식하며 죄의 법 앞에서 연약한 자시의 한계를 고백했던 것입니다. 끊임없는 갈등과 유혹에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 바울은,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절규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바울이 결론적으로 찾은 해결책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와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음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성령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생명의 길을 걷고, 생명의 법에 거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은 생명의 법을 따르는 성도의 모범을, 신약의 말씀은 죄의 법을 따라는 인간의 한계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살펴 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예레미야의 탄식을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거듭된 불순종과 불신앙에 하나님이 이방 민족의 속국이 되도록 심판하셨을 때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 가운데 예레미야는 남유다와 동족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희망을 끝까지 간직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피를 토하는 아픔과 슬픔 표현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반복된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자 주변의 이방 민족과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하나님이 그 나라와 민족을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예레미야는 주변의 모함과 비난을 거부하며, 지금 겪는 상황은 하나님의 징계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 징계의 참된 의미는 회복이라는 점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들이 범한 죄의 결과로 잠시 주어지는 것일 뿐 하나님은 다시 유다를 세우시고 회복하셔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 역할 하도록 만드실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 아래 예레미야는 주변의 모함과 비난은 합당치 않다 지적하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남유다가 겪는 고난과 시련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점에 대해서는 겸허히 인정하면서도, 주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하고 모함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적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비난받고 있는 백성들의 마음을 아시오니, 저주하고 조롱하는 이방 민족에 대해서는 심판해 주소서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징계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의를 왜곡하는 이방 민족과 나라들의 조롱과 모함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경은 예레미야가 철저히 하나님 편에 서서 그 사명을 감당했음을 보여줍니다. 자기 동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는 사람이 예레미야였지만, 자신의 뜻과 감정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충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게 충성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믿고 원수들에 대한 처분을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레미야가 이와 같이 고백하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의지와 심지가 굳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오늘 로마서에서 증거한 생명의 법을 따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 대신 오직 생명의 법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뜻을 세상에 선포했던 것입니다.

 

반면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의 말씀은 죄와 사망의 법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 주인공은 제자 중 한 사람 유다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직후 진행된 유월절 만찬의 풍경입니다. 유월절 만찬과 세족식은 예수께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고, 제자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유다는 그 거룩한 가르침의 현장을 배반의 자리로 만들고 있음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통해 장차 자신이 겪을 고난에 대해 가르쳐 주시고, 장차 예수께서 겪는 모든 고난의 과정이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동요하던 제자들에게 유다가 장차 예수를 팔아넘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 주셨지만, 정작 제자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는 예수를 팔아넘기기로 작정했던 유다뿐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 이야기에 분노했던 제자들도 완전히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배웠던 제자들조차도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매주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 것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말씀을 통해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면 그 중심이 바뀌고, 그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 서서 죄와 벗하며 살아가는 삶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입술로는 진리를 사모한다고 하지만, 정작 실상은 죄의 길을 걸으며, 죄에 익숙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유다가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는 제자로 살면서 예수를 팔아넘기는 결정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몸은 비록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었지만, 그의 사고와 그의 중심은 세상과 죄 가운데,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머물렀던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세 본문의 말씀은 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 대표되는 사탄의 유혹은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완전히 변화되지 않으면, 완전히 달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이내 다시 죄의 늪에 빠지고, 죄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임을 성경을 경고합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태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선악과는 우리 삶 가까운 곳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뿌리치기 힘든 유혹과 완전히 결별하지 않으면 우리도 예수와 동행하면서도 팔아넘기고자 했던 유다와 같은 결정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음을 고백하며,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탄식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과 연관된 모든 인연을 단호히 끊고, 오직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음을 보여줍니다. 가운데 겪었던 모든 슬픔과 아픔, 억울함과 답답함은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예레미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사명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 예레미야는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의지하여, 생명의 법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겪는 위기와 혼란의 실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혼란의 본질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생명의 법이 아닌 죄와 사망의 법에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증거되고 선포된 하나님의 뜻 대신 인간들의 욕망과 욕심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집착하면서 생긴 현상이 오늘 우리가 겪는 위기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 성도와 교회가 나아갈 바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임을 오늘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자랑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풍요한 물질이 아니라, 넘치는 축복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향하던 따가운 세상의 시선은 변할 것이요, 죄와 사망의 굴레를 벗고, 참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해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그 사랑과 계명으로 결단하여 참 생명의 길을 걷는 거룩한 주의 자녀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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